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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민초등학교 [40회 동기모임]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그시절순간들 스크랩 60년대의 그시절
김병호(5반) 추천 0 조회 50 10.06.24 12:2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서울시내 초등학교 입학식. 코흘리게가 아니면 아이도 아니었던 그 때, 가슴의 손수건은 '학년표시'이기도 했다. 2학년들은 코를 흘려도 가슴에 손수건을 달지 않았다. 한참 쌈박질로 크던 그 때 이 손수건은 종종 코피도 닦아냈다.
1964-03-06
조선일보 DB


설탕이 귀하던 시절 일반 소비자들은 지정된 판매소에서 한정된 양만을 구입
할 수 있었다. 재고가 바닥이 난 설탕 진열장 위에 품절 표지판을 올려
놓았다.
1963-06-08
조선일보 DB


한남대교(제3한강교)가 건설되기 전까지는 한남동에서 강남 신사동을 가는 가장 빠른 길은 나룻배였다. 영화 '효자동 이발사'에서 "제1, 제2, 제3 한강교는 각하의 영도력의 상징입니다."고 나오듯이 한강다리는 새 문명의 도래이기도 했다.
1962-09-13
조선일보 DB


명절이면 객지 나간 청년들도 마을 어르신들도 '콩쿨대회'에 나가 '폼' 한번 잡는 소박한 꿈들이 있었다.
"땡-" 소쿠리(참가상) 갖고 가세요.
1966-02-21 / 강화도
조선일보 DB


겨울 방학이 끝나고 천막 학교에도 간만에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시끌하다.
선생님의 지휘에 맞춰 애국가(교가였나?)를 부르며 새학기를 시작한다.

1966-03-02 / 서울 봉천동
조선일보


얼어붙은 한강에서 썰매를 타는 아이들.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썰매는 재산목록 1호였다.

1961-12-25
조선일보 DB


자동 생산 설비를 갖추고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삼강)하드'. 고무 봉지에 얼음과 소금을 넣어 냉장시켰지만 '아이스 케키'가 녹기 전에 팔아치워야 하는 하드 장사 아저씨들의 목청은 높아만 갔다.

1963-03-20
조선일보


불을 떼서 밥도 하고 난방도 하다 보면 굴뚝이 막힐 때가 있었다.
꽹가리를 청소도구와 함께 메고 다니며 '나 왔소'를 알리던 아저씨들의 "뚫어~" 소리는 '똥퍼'와 '찹쌀떡'보다 훨씬 오래 전에 우리 동네에서 사라졌다.
1963-12-23
조선일보

그 때 그 시절 바캉스를 아십니까?

                                               1960년대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그 시절에도 더운 여름철이 되면 바캉스를 떠났습니다.
                                          1962년 7월의 부산 해운대 앞바다입니다.

                                           그 때 그 시절 수영복 패션도 볼 수 있고
                                        2명이서 물놀이를 하는 게 재미있어 보입니다.
                                                  바다가 시원해 보이는군요.
                                                     하늘이 아주 맑군요.
                                            그 때 그 시절 바캉스 한 번 구경하세요.^^


1960년대 총선때 금호극장 앞 천막투표소 점경


1962년 9월 3일
HLKA 서울 중앙 방송국
TV방송이 없던 시절 KBS라디오 방송 남산 제 1 스튜디오.
고등학교 대항 "라디오게임" (진행:박종세 아나운서)
인천고등학교 대 서울여자 상업고등학교 대항 녹음장면.
본인 출전. 정답 맞추고 인천고가 승리했다


1961년2월4일 서울 피겨스케이팅협회가 주최하고, 조선일보사 후원인 제
1회 서울시 남녀종별 피겨스케이팅선수권대회가 남녀35명의 선수들이 참가한
가운데 서울운동장 특설링크에서 개막되었다.
1961-02-04//서울운동장
조선일보 DB


경남 진해에 사시는 전혜옥씨가 보내주신 사진입니다.
림보게임을 하는 여학생들,
촬영연도와 사연이 전혀 없어서 사연을 적을 수가 없네요


우리들이 여고에 다닐때는 학도호국단이 조직이 있어서 학교의 행사때나 국경일에는 사열 분열식 등을 연습에서 행사에 참석했었다   그때 맨 앞에는 기수단이 먼저 나가고 학생들이 그 뒤를 따랐다
이 사진은 광주서중 운동장에서 학생의 날 기념식때 찍힌 사진인데
누군가 찍어서 사진관에 맡겨두어서 우리들이 한장씩 가질수 있었다.
지금도 그 분이 누구인지 감사하고 있읍니다


60년도 중반 경북 월성군 하강초등학교에서, 미국으로 부터 원조받은 옥수수죽을 배급하는 사진입니다.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옥수수죽을 쑤어, 양은 도시락에 선생님이 떠 주는 장면입니다


그 당시 1968년(5학년), 1969년(6학년)때에 국민학교 고적대 경연대회라는게 있었지요.

일종의 밴드부인데 주 편성은 관악기들이 어려우니 주로 피리가 많았고 거기에다 작은 북, 큰 북, 그외 아코디언등 일부 악기들로 편성을 했습니다.

전 고적대 지휘자를 했기 때문에 빨간 색 유니폼이었고 다른 친구들은 초록색 제복을 입었었지요.

사진은 미옥이라는 친구와 같이 찍은 사진인데 미옥이는 지휘자 바로 뒷라인에서 작은 곤봉 돌리는 묘기(?)를 했었죠.

지금은 세월이 흘러흘러 중년의 아저씨 아줌마가 되었지만 지금도 국민학교 동창회때 만나면 그때 이야기들 종종 하곤 합니다


1960년대 국내에서 인기를 누리며 발간되었던 대중잡지들. 수준 낮은 이야기 일색이라고 욕한 사람들 많았을지도 모르지만, 힘들어도 순진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던 시절 많은 이들의 외로움을 달래 줌으로써 국민 정서에 영향을 적잖이 준 그 노고에 경의.

1964-06-13
조선일보 DB


'안내양' 보다는 '차장'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고 정겨웠지만, 차장 누나들은 그 호칭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버스 안내원은 80년대부터 비용 절감을 이유로 슬그머니 사라져 갔다. 요금계산은 물론이고, 안내방송에 '푸쉬맨' 역할까지 했던 그들은 철인이었다.
1964-07-10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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