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성마을(吉星, 걸생굴) 「 북면 길성리 」
참고설명
길성마을(吉星, 걸생굴)
●지명유래
길성리(吉星里)의 지명은 길성(吉星)마을의 이름을 취하여 이름하였다. 길성리는 길성마을 단일로 구성되어 있다.
길성마을은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마을 뒤산이 개의 형국이고 앞에 있는 바위가 범바위라 개가 살려달라고 비는 모습이라 하여 처음에 걸생(乞生)이라 부르다가 걸생(傑生)으로 바뀌고 다시 길성(吉星)으로 변하였다고 전한다. 마을을 세분하면 웃똠, 아랫똠, 새터똠으로 구분된다.
1789년 호구총수에는 동복현 내북면(內北面), 걸생리(傑生里)로 기록되어 있고 1912년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는 동복군 내북면(內北面) 걸생리(傑生里)로 기록되어 있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당시 화순군 내북면 길성리(걸생리일부)로 편입되고 1932년 행정구역개편때 내북면과 외북면을 합하여 북면이 되면서 화순군 북면 길성리로 되었다.
●주산물(쌀, 보리), 특산물(축산, 마포), 주소득원(쌀, 보리)
●성씨 : 경주金(33), 흥덕張(12), 진주姜(6), 청주韓(4), 김해金(4), 황주邊(3), 풍천盧(3), 강화崔(3), 밀양朴93), 광산金(3), 함양呂(1), 창녕成(1), 함평李(1), 압해丁(1)
●마을형성
길성마을의 동쪽으로는 개석골 골짜기가 형성되어 있으며 개석골에서 남쪽으로 사슴재를 넘으면 용곡리 상곡마을로 갈 수 있다. 서쪽으로는 길성천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며 내 주변에 약간의 평야가 있고 길성제 저수지가 자리잡고 있다.
1597년경 김해김씨 金胤國(1576 ~ 1634) 이 능주에서 거주하다가 임진왜란을 피하여 입향하여 처음으로 마을터를 잡아 거주하였다.
1630년경 광산김씨 金乾明(1619 ~ 1678) 이 모친 천안전씨( ? ~ ? )와 함께 담양 불노리면 원율리(현재 담양군 금성면 원율리 원율마을)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1640년경 경주김씨 金彦珍(1620 ~ ? ) 이 순천부 서면 노온동(현재 순천시 서면 노은동)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엿다.
1650년경 흥덕장씨 張復義(1628 ~ 1673) 가 창평현 화면 율천리(현재 곡성군 오산면 율천리)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1820년 張達曄(1810 ~ 1889) 이 성균과 생원에 합격한 이후 한때 진사마을로 불리웠다고 전한다.
1670년경 창녕조씨 曺爾恒(1650 ~ 1725) 이 쑥실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1690년경 전주이씨 李弼光(1667 ~ ? ) 이 약수마을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1715년경 청주한씨 한동백(1695 ~ 1745) 이 전북 임실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1735년경 광산김씨 金左臣(1716 ~ ? ) 이 노기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1786년경 김해김씨 金顯運( ? ~ ? ) 이 순천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1837년경 진주강씨 姜在燮(1817 ~ ? ) 이 순천부 송광면 추동(현재 순천시 송광면 월산리 추동마을)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1875년경 진주강씨 姜晟熙(1865 ~ ? ) 가 모친 창녕조씨와 함께 읍내면 만수에서 입향하였다.
1885년경 강화최씨 崔대영(1864 ~ 1919) 가 곡성 겸면 죽산에서 입향하였다.
동쪽으로는 용곡리 약수마을, 서쪽으로는 옥리, 남쪽으로는 와천리, 북쪽으로는 이천리 도촌마을이 있다.
●유물. 유적. 고문서
서당터, 짐대터, 모정터, 觀農亭(韓思明 건립), 길성제 저수지(소통굴, 1945년 축조), 장창환 소장고문서
●민속놀이. 전설. 민담
⊙당산제 : 매년 정월 대보름 저녁에 마을 웃똠입구에 있는 할아버지 나무(당산나무, 350년생) 와 아랫똠에 있는 당산할머니 나무에 제를 지내고 있다. 당산제를 주관하는 제주는 미리 선정하는데 선정된 제주는 궃은곳의 출입을 금하며 차릴 음식물은 내외가 온정성과 성의로 준비하며 주민의 한해 건강과 올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며 제를 지낸다.
⊙농악 : 정월 초사흘부터 보름까지 징, 장구, 꽹과리, 소구(소고) 등을 치며 당산제를 지낼 때는 먼저 천륭등에서 치고 그다음 웃똠할아버지 당산, 아랫똠 할머니당산 순으로 치며 이어서 시암굿, 마당볼비를 하는데 각 가정을 돌면서 각 가정의 행복은 물론 마을 주민들의 건강과 금년 농사를 기원하며 농악놀이를 즐기고 있다. 이전에 상쇠를 잘한 사람으로는 김쌍문, 어름양반, 중촌양반, 조용주가 있다.
⊙숲거리 : 마을의 남쪽이 훤하게 비어있어 마을의 세가 빼인다하여 이곳에 나무를 심어 마을을 가려두고 있다.
⊙설굿산(섯거산)숲 : 이곳에 각시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마을에서 보이면 동네 부녀자들이 바람이 난다하여 이 바위가 보이지 않도록 바위앞에 나무를 심어 보호하고 있다.
⊙화재막이 장담그기 : 매년 이월 초하루에 마을 천륭등에 묻어둔 장독에 정결한 물과 소금, 그리고 볶은콩으로 장을 담그는데 여기에 필요한 물품은 미리 가정방문을 통하여 거출하는데 집안에 우환이 있는집에서는 받지를 않는다. 이렇게 하는 연유는 이전에 이 마을에 큰 화재가 발생하여 마을이 전소되자 화재를 막기 위하여 산에다 장을 담그고 있다. 장을 담근 연후로 마을에 화재가 나지 않는다고 전한다. 이렇게 담가둔 장은 다음해에 줄어든 만큼만 담그는데 그해 여름 갑자기 배앓이를 하는 사람에게 먹이면 잘 낫는다고 한다.
⊙디딜방아 액막이 : 이전에 마을에 전염병을 막기위해 인근에 있는 상곡, 압곡, 도천마을에 몰래가서 디딜방아를 가져다가 마을입구에 거꾸로 세우고 고쟁이를 씌워 돌림병을 막았다.
이렇게 하면 마을 사람들이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고 한다.
⊙줄다리기 : 웃똠과 아랫똠으로 또는 남자 여자로 편을 갈라 하였다.
⊙달집태우기 : 정월 대보름달이 뜰때 달집을 태우는데 넘어지는 쪽이 풍년이 든다 하였다.
⊙당산나무잎이 한번에 피면 시절이 좋고 나뉘어 피면 물이 귀하다고 점을 쳤다.
●풍수지리 및 주요지명
⊙범과 개형국 : 마을 뒷산이 개형국이고 그 맞은편에는 범바위가 있어 마치 범앞에서 개가 살려달라는 형상을 하고 있다하여 마을 이름을 걸생(乞生)이라 지었다고 전한다. 이후 마을이 빈곤하고 각종 재난이 발생하며 자손이 귀해지자 호걸 걸자를 써서 걸생(傑生)이라 바꾸었고 다시 일본 침탈기에 길할길자를 써서 길성(吉星)으로 하였다고 전한다.
⊙모래들 : 도촌과 노기에서 각각 흐르는 내가 합류하는 곳 주변의 들이름인데 퇴적지로 토질이 모래이기에 이렇게 부른다.
⊙유가들 : 유씨가 집단적으로 경작하였던 들이라 전하며 그래서 유가들이라 한다.
⊙면구등 : 마을 뒷산의 형태가 졸고 있는 개의 머리같다하여 면구등(眠狗嶝)이라 하는데 이곳에는 명당이 있다고 전하여 많은 묘가 위치하고 있다.
⊙개석골(개삭굴) : 면구등에서 동쪽 백아산쪽으로 형성된 긴 골짜기를 말한다. 개가 백아산쪽에서 내려오는 야생조류를 응시하면서 누워있는 형태라 하여 이렇게 부르며 6.25전후로 관음사에서 분립한 승려가 일시 거주하였으나 현재는 없다.
⊙산, 등 : 면구등(뒷동산), 짓등이산, 설굿산(천륭등), 앞산, 쑥실등, 구래등
⊙들 : 모릿들, 똘보들, 옅은보들, 숲쟁이들, 샛들, 황새들, 부들배미, 객버리, 유가들, 새보들, 솔밑보들, 영사들, 돌정지들, 자문논, 이앞쟁이, 웃팩쟁이, 아랫 팩쟁이, 바우논, 너구리배미, 비암배미, 장구배미, 두래배미, 만선들
⊙골짝 : 쑥숫굴(난대굴, 마지막굴, 지슨굴, 초봉굴, 섶밭고개골착), 소통굴(북당굴, 웃장자굴, 아랫장자굴, 짜개나무굴, 장자나무골착), 어름굴(=어림굴), 개석굴( =개소굴=개야굴, 문드래미, 참새암굴, 내르굴, 접박굴, 성적굴, 가랑재굴, 송강굴, 참남굴, 뒨정굴, 서당굴, 초장굴), 중굴(잡장굴, 웃재경굴, 아랫재경굴, 감남굴, 산태굴, 진등재골착, 큰넘굴, 작은넘굴, 큰적굴, 작은적굴, 마지막굴), 부안거래, 수문장굴
⊙고개 : 상곡재( ~ 용곡리 상곡), 사심재( ~ 용곡리 용촌), 압곡재( ~ 옥리 압곡), 어림재( ~ 이천리 도촌), 장재( ~ 임곡리), 구슬재( ~ 옥리 구수)
⊙바위 : 범바위, 삵가지바위, 각시바위
⊙쏘 : 자래툼벙
⊙내 : 앞내
⊙샘 : 웃뜸시암, 중간똘시암, 아랫시암, 가는재굴시암
⊙터 : 자갈삼굿터, 서당터, 연자방아터, 물레방아터, 유가들주막터, 가는재굴절터, 숯굿터
⊙보 : 굿쟁이보, 모릿들보, 똘보, 옅은보, 새들보, 황새등보, 부들보, 객버리보, 유가들보, 새보, 솔밑보, 영사들보, 자무논보, 이앞쟁이보, 웃팩쟁이보, 아랫팩쟁이보, 바우논보, 만선들보
⊙길 : 당산걸, 짐대거리, 사거리, 숲거리
●인물
⊙장달엽(張達曄, 1810 生 ~ 1889歿, 1820. 8 성균생원, 효행천장)
첫댓글 유익한자료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