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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노동운동의 전설 전노협은 중소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전투적 투쟁 기관이었다. |
중소제조업은 87년 이전 남한 노동운동의 중심이었다. 84년 구로동맹파업, 87년 마산창원 연대투쟁, 90년대 초반 전노협 투쟁 등 남한 노동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굵직굵직한 투쟁들은 모두 중소제조업 노동자들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80년대 후반 3저 호황이 끝나고 중소제조업체들에 대한 구조조정과 퇴출 바람이 불면서 중소제조업 부문 운동은 큰 타격을 입었다.
중소제조업은 외환위기 이후 남한 산업의 구조적 재편 에 따라 중화학공업과 IT산업 위주로 빠르게 고도화되었다. 또한 하청업체 비율이 60%를 넘는 등 대기업에 대한 매출 의존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중소기업의 5대 주력업종 중 화학제품, 1차 금속, 반도체는 대부분 대기업과의 하도급 거래를 통해 발전해왔다. 규모와 업종에 따라서 수익성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으며 정부와 자본은 한계기업 정리와 선별지원 등을 통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지속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산업 평균치에 비해 중소사업장의 고용비중이 작은 편이기는 하지만, 300인 미만의 중소사업체의 고용비중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섬유 등 경공업과 인쇄출판은 이미 90년 이후 고용이 대폭 감소했고, 현재 활성화되고 있는 부문은 전자와 자동차부품이다. 저임금 노동력을 보유한 중국과의 경쟁 때문에 노동집약산업에서 자본집약산업으로의 업종전환이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소규모 전자업체들 역시 최근 2~3년 동안 생산원가 절감을 위해 급격히 해외로 이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정부통계에 따르면 중소제조업의 해외투자는 97년 1억970만 달러에서 2003년 9억5천만 달러로 급증했다. 일본의 경우 지난 10년 동안 10만 개 정도의 일자리가 줄었다고 한다. 대부분 중소제조업의 유실에 따른 것이었다. 통계수치만 봐도 중국이나 베트남, 인도네시아로 건너간 우리나라의 일자리는 최근 들어 일본의 7~8배에 이른다.
중소제조사업장은 영세한 규모로 전국적으로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서울과 수도권 지역은 인구밀집지역이라 비교적 규모 큰 사업장이 많은 편이지만 90년대 초반 정부정책에 따라 대부분 충청도와 경기도 주변 공단으로 공장을 이전하였다. 대부분 저임금의 비정규직, 이주노동자들이 고용되어 있기 때문에 해고가 일상화되어 있어도 투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일례로, 제조업이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영세기업이 밀집돼 있는 경기도 안산지역 반월․시화공단의 경우 사업장의 70% 이상이 100인 미만 사업장인데, 작년에는 노동쟁의가 한 건도 없었고 올해는 12건이 발생했다. 그 중 11곳이 금속노조의 정치파업에 따른 부분파업이었다.
90년 초중반이후 파급력 있는 규모의 사업장들이 매각되거나 해외로 이전하면서 노동운동 역시 침체되고 있는 형편이다. 과거에 투신했던 활동가들도 운동전망을 찾지 못하고 빠져나가는 추세다. 쉽게 들어가고 쉽게 나올 수 있는 중소사업장의 특징상 안정적인 활동가 층이 취약하고 재정적으로 불안정하기 때문에 노조 운영의 어려움이 상시적으로 발생한다.
경기변동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객관적 조건으로 인해 조직률은 현저한 감소 경향을 드러내고 있으며 파견, 계약직 등 고용형태의 변화도 조직률 하락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업장 규모가 영세한 탓에 단위 동력만으로는 기본대오가 형성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지역, 업종별 노조로 조직되어 있다. 과거에는 지역노조연대회의 같은 구조를 통해 지역노조 간 소통과 연대투쟁이 있었으나 근래에는 그마저 없어졌다.
공기업은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철도, 우편, 통신 등 개별 자본이 감당하기 힘든 사회기간산업에 대한 자연독점의 형태로 등장했다. 복지국가의 등장과 함께 공공서비스도 공기업의 주요한 영역으로 떠올랐다. 후발자본주의국가에서는 산업화 추진 수단으로 공기업을 활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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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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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철도노조 |
21000여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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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하철 |
9000여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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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철도 |
5500여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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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산업노조 |
5500며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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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공공사업장 노조 규모 |
우리나라에서도 전력, 체신, 철도 등 사회기간산업에서는 공기업 형태가 이미 일제시대부터 형성되었다. 60년대 국가주도 경제개발 정책이 강력하게 추진되면서 공기업이 크게 늘어나기도 했다.
2000년 현재 공공영역 취업자는 전체 임금근로자의 9.8% 인 약 120여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그 중 70%인 88만 명이 공무원이다. 공기업 노동자는 29만여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국가에 직접 고용되어 있다는 특성상 공기업 노동자들은 일찍부터 한국노총 소속 노조로 조직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까지 민주노총 사업장은 지하철, 한국통신, 사회보험노조 등 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97년 외환위기 이후 공공부문이 주요 구조조정 대상이 되고, 통신, 발전, 궤도 등 기간산업에 대한 민영화가 추진되면서 기존 한국노총 소속이던 한전, 철도, 도시철도 등에서 민주파가 집행부를 장악하고 민주노총에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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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발전산업노조 파업투쟁 |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구조조정 반대투쟁에 나서 한국통신, 한전, 철도노동자들의 투쟁이 잇따랐다. 이 투쟁은 2002년 초 발전산업노조가 중심이 되어 가스노조와 철도노조가 결합한 공공3사 연대투쟁에서 정점에 달했다. 그러나 이 투쟁은 가스, 철도의 조기 이탈로 발전노조가 홀로 38일간 투쟁한 끝에 민주노총에 의한 4월 2일 노정합의와 총파업철회로 패배적으로 마무리되었다.
2000~2002년 사이 한국통신, 한국중공업, 포항제철 등 8개 공기업이 민영화되었다. 그러나 2003년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며 민영화 정책은 사실상 중단되었다. 철도민영화 계획은 백지화되었고 철도청은 2005년 1월 철도공사로 재출발했다. 분할된 발전 자회사의 매각도 중단되고 송전부문을 12개의 자회사로 분할한다는 계획 역시 철회되었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다른 산업의 노동자들에 비해 고학력자가 많다. 활동가들의 정치의식은 강하나 전반적으로 특권의식이 강하다. 공기업에는 금속대공장처럼 전투적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현장조직들이 형성된 곳이 많다. 사보 현장회, 도시철도 현장회, 철도 현장회 등이 대표적이다. 이 부문 역시 정규직운동질서와 마찬가지로 활동가들의 고령화와 보수화가 심각하다.
민영화 공세는 일단 중단되었지만 주 5일제 등을 내세운 구조조정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공공부문에서도 비정규직화가 상당히 진행되고 있으나 정확한 규모조차 파악되고 있지 않으며 활동가들의 대응도 미미하다. 배일도의 오랜 집권 끝에 민주파가 집권한 지하철이나 도철에서는 작년 궤도 연대 파업 패배 이후 현재는 모두 어용이 다시 집권하고 있다.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현황과 전망
궤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활동가 인터뷰
*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현황과 현장 이전자들의 경험을 취재하기 위해 공공부문 중에서도 기간산업으로 중요성이 큰 궤도산업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활동가를 한 명씩 만나보았다. 두 동지다 의식적인 현장이전을 한 동지들로 동지들의 요청에 따라 실명을 밝히지는 않겠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동지들에게 다시금 감사를 드린다. 인터뷰 = 장희수 기자 |
■처음 현장이전을 결심했을 때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계셨습니까?
4년 전 쯤 일이다. 학생운동 시절 활동스타일, 기질, 희망에 부합하여 현장이전을 결심했다. 그리고 현장에서 운동을 다시 출발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보았다.
수도권은 대공장, 대기업이 거의 없고 의식적 현장이전자도 드물다. 따라서 보다 수도권에 현장 활동가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지방의 경우에는 지역문화에의 적응, 거리상의 문제 때문에 생기는 고립 등의 문제가 있을 걸로 예상했다.
현장운동과 결합의 용이성의 측면과 대규모 사업장이라는 점이 지역과 사업장을 선정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공공사업장에 취업을 준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 경우는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취업에 관한 기본적인 자료를 얻었고 현장에 들어가 있는 선배 등 인맥을 통해 현장정보를 취합했다. 1년 정도 준비해서 공채에 합격했다.
자격조건의 경우, 만 28세까지가 응시조건이고 군대 갔다 온 사람은 3년이 플러스된다. 실질적인 경쟁률은 10 대 1 이 좀 넘는 정도이고 기계, 전자, 전기 쪽 관련학과 졸업자(공고포함)나 관련 자격증을 취득해야 응시 자격이 주어진다.
2000년 이전까지 공채는 전문대졸자가 대다수였는데 점차 학력이 높아지고 있다. 3년간 공채를 실시한 도철의 경우 현재는 90~100%가 4년제 대졸자다.
도철이나 지하철은 관련학과 졸업자가 아니면 해당분야의 관련 자격증을 갖고 있어야 한다. 요즘은 자격요건이 강화되어서 토익점수를 추가로 본다.
그에 비해 철도는 취업의 제약조건이 별로 없다. 올해도 2300명을 뽑아서 운동권에서 대거 응시한 걸로 알고 있다. 궤도의 각 사업장별로 시험과목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준비를 하기 전에 확인을 해야 한다. 그리고 매년 일정한 시기마다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시에 공고를 내기 때문에 사전에 준비를 해야 한다.
철도는 자격증 소지가 필수는 아니지만 자격증을 갖고 있는 경우 가산점을 준다.
자격증과 관련해 1년에 세 번 정도 시험이 있고 취득하는데 걸리는 기간은 평균 6개월 정도이다.
비정규직은 외주용역 형태와 직접고용을 하는 모터카 운전원 등이 있다. 외주용역은 용역업체에서 수시로 사람을 뽑고 모터카 운전원의 경우 직원추천에 의해 들어가기도 한다. 상당인원이 공고출신이고, 외주용역 직원과 직접고용직원 모두 의무적으로 관련된 자격증을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군대 가기 전후 인 20대 초중반에 들어오고 급여 및 복지가 떨어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직률이 높은 편이다.
■공공의 경우 시험도 시험이지만 잘 뽑지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궤도 사업장의 취업전망은 어떻게 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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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궤도 연대파업 당시의 모습 |
궤도사업장에서 공채를 통한 추가 인원 채용은 내년 상반기 이후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지하철은 96년 이후 8~9년간 사람을 아예 뽑지 않고 있다. 올해 말에 부족인원 150여명을 뽑았다(정원을 늘린것이 아니라, 퇴직 등으로 부족인원을 뽑은 것으로 실질적인 채용은 없었다). 도철은 3년간 매해 140명 정도 규모로 꾸준히 인원을 뽑아왔지만 주 5일제와 관련하여 내년 상반기 정도에 300여명 정도의 채용이 마지막일 것이다. 지금부터 준비를 시작하려면 좀 늦은 감이 있다.
철도도 도철과 마찬가지로 내년 초에 주5일제 시행에 따른 추가 보충인원을 300명 선에서 뽑고 나서는 향후 몇 년간 공개 인원채용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 현장이전 사례를 보면 95~97년 사이에 이전한 사람이 가장 많았고 적어도 2000년 초까지는 의식적인 이전자들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드물어졌다.
■궤도사업장의 특성에 대해 이야기해 주십시오.
궤도사업장들은 일반적으로 지역적으로 분산되어 있으며 광범위하다. 이것이 현장활동의 수공업성을 야기시킨다. 즉 작업방식이 개별적이라 현장순회를 할 경우 접촉할 수 있는 일반적 규모가 2~5명이다. (차량직능 제외)
근무형태는 교번제, 교대제, 통상근무 등 다양하다. 공기업은 임금에 있어 사측의 자체적 결정권이 별로 없다. 총액임금제라 변동 폭도 적다.
몇 년 전 단협에 의해 자동승진 제도가 생겼다. 9급에서 8급으로 올라가는데 2년 3개월씩 걸리고 7급에서 6급까지는 4년 9개월 걸린다. 6급부터는 심사승진이다. 승진은 노무관리에 있어 관리자들 최대의 무기이다.
간부들 중심으로 노무관리 차원에서 모임을 조직하기도 한다. 현장관리는 (역)분소장과 조책임자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생긴 모임도 있지만 소모임이나 동호회 형식이라기보다 취미가 맞고 서로 알고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노는 형태다.
지하철은 평균연령이 40대 중반에 이르렀고, 도시철도의 경우 공채 사원들의 평균 연령은 대략 35세다.
금속의 경우 ‘하나의 공장’이라는 일체감에서 오는 유대감이 있지만 궤도는 직능주의와 개별화가 심하다.
■비정규직화는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습니까?
궤도는 종합사령실만 빼고 전 분야에 비정규직화가 가능하다. 아직은 청소용역의 여성노동자들이 많고, 차량이나 식당에 비정규직이 들어오고 있는 수준이다. 임금수준은 차량비정규직의 경우 월 120정도로 평균적으로 정규직의 5~60%를 받는다.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은 여성연맹 소속 조합원들로 최저임금 투쟁으로 조직되고 있다.
도철의 경우 에스컬레이터 설치 등 새로운 시설을 도입하면서 비정규직이 늘고 있다. 터널공사 등 유지보수 업무이고 고용형태는 파견․외주이다. 규모는 파악되지 않는다.
승무는 면허제로 변경하면서 비정규직 채용이 가능해졌다. 참고로, 부산지하철의 경우 퇴직기관사가 모여 자회사를 설립한 사례도 있다.
■현장 활동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대개 사내통신망을 이용하거나 각 기지 혹은 집중 분소를 중심으로 피켓팅과 대자보 부착 등의 활동을 한다. 도철의 경우 지부(지회)장급 이상은 일반적으로 노동에서 열외 된다. 따라서 지부(지회)장 중심의 활동구조(지부장은 200명당 1명 꼴)라고 볼 수 있다.
분소마다 비조합원인 해당관리자가 있고 4급인 조책임자는 조합원이고 사측에서 이들을 직접 관리한다. 인사이동제도가 있는데 분소이동은 3년에 한번, 조는 수시로 이동한다. 즉 안정적인 소모임 운영이 힘든 구조이다.
주5일제 문제가 마무리되면서 궤도사업장은 직제개편 통해 구조조정이 들어오고 있다. 공무원 노조에서 시행하는 팀제 전환 따위를 도입하려고 하고 있다. 궤도 뿐 아니라 공공부문에 전반적으로 조직개편이 들어가고 있다.
■취업 이후 겪은 고충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취업 이후 현장 활동은 크게 두 단계를 거친다. 우선 기존에 운동이 있는 사업장을 전제하면, 현장 활동가들과 미팅과 모임을 갖는 단계, 그 다음이 자기현장에서의 독립적인 조직화다.
현장에 들어가면 서로 대충 알아보기 때문에 활동가들과의 접촉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대의원 같은 직함을 갖고 활동을 하면 공식적 활동으로 인정받게 되어 조합원들과 관리자들 사이에서 움직이는 것이 보다 용이해진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노동과 현장활동을 병행하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교대근무는 신체적 피로도가 심하고, 현장의 일상에서 신경써야 할 작은 일들이 쉼없이 발생하기 때문에 활동에 투여할 수 있는 시간과 노력이 줄어들 수 있고, 접촉 대상이 활동가에 한정되지 않고 광범위해지면서 나타나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단사에 갇혀 있다 보니 전국정세에 대한 시야가 대단히 좁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모든 관심이 현재 닥친 현장의 상황으로만 집중하다보니 정세에는 둔감하게 된다. 현장 활동을 하다보면 전체 운동지형과 상황의 변화를 파악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만 실제로는 궤도정도만 파악하고 있는 수준이다.
현장 내 활동가 모임에서는 현장사안을 넘어서 정세와 전국쟁점에 관한 토론이 이루어질 때도 있지만 원칙적인 측면을 확인하거나 정보를 공유하는 정도에서 그친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의식과 정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조합원들 사이에는 공공의식 즉,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된다는 부담감이 일정부분 존재한다. 궤도분야는 금속연맹(자동차, 중공업)처럼 생산직도 아니고 사무직도 아닌 어정쩡한 업무인 유지보수 업무가 중심이고, 공공사업장이다보니 노동자성을 잠시 망각하는 경우도 있다.
작업장(현장)이란 공간에 대한 인식은 있지만 노동자적 의식이라도 여러 가지가 혼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장에 현안 문제는 늘 산적해있다. 그러나 고용, 임금의 상대적 안정성으로 인해 일상적인 작업현장의 문제와 불만들을 쉽게 자발적 투쟁으로 상승되기 힘든 구조이다.(그래도 우리가 일반 사기업보다 조금은 안정되고 편한것이 아니냐, 이정도면 지금 사회 분위기에서는 감지덕지해야 한다 라는 패배적인 비교우위 심리가 있다) 작년 궤도파업 이후 현장에는 패배적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활동가들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조합 활동가들은 정파별 구별선을 찾아볼 수 없다. 도철이나 지하철이나 모두 활동가 재생산이 정지되면서 활동가 조직자체가 늙어가고 있다.
도철에서는 최근 5년 동안 새롭게 발굴되어 활동하는 사람이 10명이 채 안 된다. 지하철의 경우 정규직 평균연령이 45세 정도이다. 현장운동의 보수화 관료화란 다름 아닌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는’ 고령화된 활동가들이 현재의 조건 속에서 활동의 폭을 한계 짓고 그것을 유형화․고착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궤도에서도 정규직의 노령화와 보수화 양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속에서 비정규직 운동의 가능성은 어떻게 보십니까?
궤도사업장은 시도할만한 영역이라고 본다. 비정규직은 차량 중정비 쪽이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 내부에 운동주체가 들어가서 직접 세워내지 않으면 운동이 촉발되기 힘들다. 현재 궤도에서 정규직 현장세력 중 비정규직 조직화 계획을 갖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의 경우도 여성연맹에 소속되어 최저임금투쟁 등 사실상 현장 밖 외각투쟁을 하고 있다.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는 불만이 축적되어 있다. 임금, 복지수준도 열악하고 정규직 조합원이 업무지시와 관리 등 중간관리자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는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추세지만 업무가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금속제조업처럼 조직률 하락에 대한 정규직노조의 위기감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마지막으로 지금 현장 이전을 준비하고 있는 이들이 가져야 할 목적의식과 자세 그리고 준비 조건에 말씀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현장이전의 목적성은 지금 운동의 과제와 동일하다. 실제로 현장에서 드러나는 활동의 형태나 유형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개인적 결의로든 조직운동적 차원에서든 현장이전은 그 운동의 목적과 과제의 구체화이기 때문에 각자 다를 수 있다.
현장은 자기운동의 기반과 근본이다. 사실 절대다수인 조합원들 속에 있으면 그들과 동화되지 않을 수가 없다. 현장에 들어오면 원하지 않아도 노동자가 되는 구조이고 생활조건이 사실상 운동이 아닌 작업에 맞춰지게 돼 버린다.
이 속에서 해고가 되더라도 끝까지 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운동의 과제에 부합하는 현장활동을 만들어가야 하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학생운동에서의 활동과 조직화 방식, 운동 풍과 차이가 분명히 있다. 즉 조직화하는 시기가 따로 있거나 성과적 측면이 바로 보이는 것은 단기적인 현상이고 장기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철도 비정규직으로 현장이전을 하시게 된 동기는?
2004년 5월, 철도 역무(매표)에 1년 단위 계약직으로 들어왔다. 초기에 현장이전을 결심한 것은 어떤 분야에서 운동을 하든 기본적으로 현장경험이 필요하고 현장 활동 경험 속에서 노동자 정서를 체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전할 사업장을 결정하는데 있어 고려한 지점은 비정규직 사업장일 것, 주거지와 근접한 지역일 것, 여성 활동가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업장일 것 등이었다. 당시 철도에서 비정규직(역무 계약직)이 도입되고 이후에도 비정규직의 수가 꾸준히 늘어날 것이 예상된다는 정보를 들었다.
사실 처음에는 철도 정규직 시험을 준비했었고 주변 동지들 다수 견해도 그러했다. 그러나 비정규직 운동이 중요하다는 목적의식을 한축으로, 정규직 활동가가 현재 보다 안정적이고 편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는 비판의식을 다른 한축으로 하여 비정규직으로 들어가야겠다고 결심했다.
현재도 특채 기회가 생길 때마다 내게 정규직 시험보라고 권유하는 활동가들도 더러 있다.
■철도에 비정규직으로 취업하는 과정에 대해 소개해 주십시오.
비정규직의 경우 서류면접과 실기(다소 형식적인), 적성검사 등을 본다. 정보처리, 워드 등 컴퓨터 자격증 취득은 필수이다. 역무 매표분야는 외주화나 직접고용 계약직 채용으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이 고용되고 있으며 다른 직종들은 대부분 남성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공사에서는 낮은 연령대를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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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철도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
계약직의 경우 초기에는 사무소별로 채용을 해서 채용정보를 얻기가 어려웠으나 지금은 지역본부에서 대거 공개채용 공고를 내기도 한다. 뽑는 인원은 0명 혹은 00명으로 대중없다. 철도청과 관리역 홈페이지에 수시로 들어가서 채용기회가 언제 있는지 확인해봐야 한다.
역무계약직은 1년 계약직으로 채용하고 작년까지는 거의 100% 자동으로 갱신되었으나 올해 정비창 계약직 노동자들이 재계약되지 않거나 해고되는 사례가 발생했다. 노동조합에서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받고 있는 것과 근속년수가 2년 이상이 되는 비정규직이 대거 발생되는 것을 원인으로 파악하고 있다.
학원 다니는 기간을 포함하여 이전을 준비하는데 1년 정도 걸렸다. 자격증 취득에 소요되는 기간은 3개월 정도다. 인터넷 다음 까페를 통해 철도취업정보를 얻었고 내부 운동 상황에 관한 정보는 철도 정규직 활동가를 만나 얻거나 철도노조 홈페이지를 통해 파악했다.
철도(정규직 공채)는 공공부문 안에서도 상대적으로 취업이 쉬운 편이다. 그러나 학력이 점점 높아져 이번 공채사원의 경우 4년 대졸자 비율이 높아졌고 대학원을 이수한 자들도 있다고 들었다. 최근에도 철도 정규직으로의 현장 이전자들이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96~97년에 공공부문 정규직으로 대거 현장이전이 이루어졌다. 지역과 단체에서 이름과 얼굴이 알려진 활동가라 하더라도 공기업은 공개채용 시험을 통해 들어오기 때문에 다른 사업장에 비해 별 문제되지 않는다.
■사업장의 특성과 근무조건을 이야기 해주십시오. 아울러 철도에서 비정규직의 현황은 어떻습니까?
활동가들이 이전을 고려할 수 있는 직렬은 운수, 차량, 운전, 전기통신, 토목, 건축이고 전국 사업장이다보니 정비창을 포함해 8개 지역본부(노조-지방본부)가 있다. 운전은 주로 정규직 퇴사자들로 이루어져 있어 신규로 들어가기는 힘들다. 운수는 매표원과 수송원으로 나뉘는데 정규직과 업무가 동일하고 임금이나 처우에 있어서도 다른 직렬에 비해 차별이 적은 편이다. 반면 토목은 주로 선로에서 일을 하는데 노동강도가 세고 이직률도 높다. 차량은 정규직 비정규직 간 업무에도 차이가 있으며 임금격차도 현격하다. 또한 퇴직한 정규직들이 많이 들어와 있어 연령이 60세 이상인 사람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비정규직 규모는 직고용 3000여명이고 직렬별로 고루 분포되어있으며 외주 등 간접고용은 이보다 훨씬 많은데 노동조합에서도 아직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의 경우 거의 대부분이 여성연맹에 가입되어 있는 상태다.
임금은 비정규직 간에도 격차가 심하며 총괄임금으로 따지면 운수는 130~150, 토목은 110, 차량은 80~90정도의 수준이다.
작업자들 성비는 운수분야(매표원과 승무원)를 제외하고는 남성노동자들이 대다수이다. 현재는 3조 2교대로 하루 평균 근무시간이 많이 줄었지만 오랫동안 24시간 철야 맞교대 근무를 해오다보니 장시간 노동의 피로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술모임, 등산모임이 많이 만들어졌고 현재도 그러한 문화가 남아있다.
노무관리 체계는 역의 규모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비조합원인 역장, 부역장 등이 중간관리자급이라 할 수 있다.
■비정규직 활동가로서 현장 활동 조건은 어떻습니까?
비정규직에 대한 인식을 비롯하여 정규직 일반 조합원들이 상당히 보수화되어 있다. 비정규직 스스로도 권리의식이 상당히 없는 편이다.
대개 비정규직이 근무지별로 흩어져 있고 근무체계가 3조 2교대다 보니 조별로 분리되어 있는 구조다. 같은 조가 되지 않으면 서로 술 한잔 하기 힘들고 일과 조직화가 동시에 이루어지기 어렵다.
현재 의식적인 비정규직 활동가 3인이 비정규직 신문을 발행하며 초보적인 조직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비정규직 활동가의 수가 적고, 실제 현장경험이 부족해 조직화도 상당히 더딘 상태다. 촉발되고 있는 비정규직 투쟁을 통한 활동가 주체들의 형성이 가장 당면목표이며 목적의식적인 활동가들의 도입이 필요하다.
아직 초기단계다 보니 공개적으로 활동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어려움이 있고 전국정세에 어두워진다. 노동운동 진영에서 발간되는 신문이나 기관지 등을 탐독하고 타 투쟁사업장에도 의식적으로 찾아가서 정세흐름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취업 이후 현장 활동은 어떻게 해 오시고 계십니까?
취업한지 1년 반 정도 되었고 노동적응 기간을 거쳐 사람들과 친분 쌓는 과정, 현장 내 활동가들과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 등 아직 초기 단계다.
정규직 활동가들이 주도해서 만든 비정규직 모임이 8월부터 가동되어서 10월부터 그 모임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선전물을 만들고 배포하면서 순회선동을 전개하고 있다. 거의 반공개적인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노동조합에서 비정규직을 조합으로 가입시키고 있다. 새마을호 여승무원을 비롯해 상당수 가입되어 있으며 재계약 기간이 끝나는 1월 중에는 약 1000여명의 직고용 계약직이 노동조합에 가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직화 단계에 들어서면 공개 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
■철도 내 운동 지형에 대해 이야기해주십시오.
작업자들이 역별로 흩어져 있고 분산적이라 조직화가 힘든 구조다. 게다가 철도는 대단히 단사 중심적이고 조합주의적인 경향이 있다. 차량의 경우 육체노동자라는 인식이 있고 정규직 활동가가 많은 편이며 여성 활동가들도 있다. 또 집단적 업무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조합원들이 전투적이다. 상대적으로 역무, 운수는 투쟁성이 떨어지고 토목은 거의 어용이 장악하고 있다.
본조는 민주파를 표방하고 있지만 노사협조 경향이 강한 국민파이고 전국적으로 보면 서지본이 제일 건강하다. 현장에서 실제로 움직이는 현장조직은 현장회와 철노회가 있다. 철노회는 대부분이 서지본(서울지방본부) 간부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독립적인 활동이 있지는 않다. 현장회는 가장 전투적인 활동가들이 모여 있는 현장조직이라고 보면 된다. 서지본과 현장회에서 비정규직 투쟁에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있다.
■철도 비정규직 운동의 전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새마을호 여승무원 투쟁, 철도매점 투쟁, 현재 벌어지는 KTX투쟁 등을 통해 비정규직 주체가 형성되고 있는 과정이다. 지하철, 도시철도 보다 앞서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궤도 내 비정규직 투쟁의 선봉에 설 수 있는 조건이다.
자동차의 경우 대부분 비정규직이 독자노조 흐름으로 갔다면, 본조에서 비정규직 직가입을 결의하면서 정규직-비정규직 단일노조는 거의 최초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비정규직 조직화가 용이하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비정규직 주체의 수동성, 정규직 대리주의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존재한다. 반공개 비정규직 모임인 철비연(철도비정규직철폐연대회의)은 정규직 활동가들을 포함해 총 15인 정도로 구성되어 있다. 대표는 정규직 활동가가 맡고 있으며 학출을 비롯해 주로 철도민주화 투쟁과정에서 발굴되고 성장된 정규직 활동가들로 이루어져 있다. 철비연은 회의체계로 출발하여 현재 ‘권리찾기모임’이라는 편집팀을 구성해 선전물을 발행하고 있다.
■현장 이전을 준비하는 이들이 가져야할 목적의식과 자세에 대하여 하실 말씀이 있다면.
현재의 운동지형에서 ‘젊은 활동가들의 수혈‘은 비정규직 운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본다. 새로운 주체발굴의 목적성을 가지고 비록 조합 활동으로 시작하지만 보다 의식적인 활동가들을 배출하려는 노력과 계획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현장이전에 앞서 현장 활동의 상과 밑그림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잡고 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