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靖宗,1018~46) 고려 제10대왕 재위기간 1034~1046
■ 출생과 성장과정
정종은 현종의 차남이자 원성왕후 김씨소생으로 1018년에 태어났으며 이름은 형(亨). 자는 신조(申照)이다. 비(妃)는 용신 왕후
한씨(容信王后韓氏)·용목왕후 이씨(容穆王后李氏)·용의왕후 한씨(容 懿王后韓氏)이다.
1022년(현종 13) 내사령 평양군(內史令平壤君)에
봉하여졌고, 1027년 개부의 동삼사 검교태사겸 내사령(開府儀同三司檢校太師兼內史令)이 되었으며, 1034년에 동복형인 덕종의 유명으로
즉위하였다. 이때 그의 그의 나이 17세였다.
■ 고려의 제10대왕으로의 등극
왕위에 오른 정종은 서경과 개경에 팔관회를 열어 대사면령을 내려 백관과 백성들의 화합을 도모하였으며, 황주량, 최제안, 최충, 유지성
등을 각각 예부, 이부, 형부, 공부상서로 기용하여 조정을 개편하였다. 1035년 서북로(西北路)에 장성을 쌓아 변방의 수비를 강화하고, 현재의
평안북도 창성(昌城)에 성을 쌓아 창주(昌州)라 이름하고 백성을 옮겨 살게 하였다.
1036년 제위군(諸衛軍)에게 토지를 더 지급하여
변경의 방비를 굳게 하였으며, 동서대비원(東西大悲院)을 수리하여 가난하고 병든자들에게 의복과 음식을 주었다.
1037년 압록강 일원에서
거란의 침입을 받고, 이듬해부터 그 연호를 사용함으로써 책봉을 받았으며, 이후 북방경비에 주력하여 1044년 덕종의 유업인 천리장성을
완성하였으니, 이는 압록강 어귀에서부터 동해안의 도련포(都 連浦)에 이르는 것이었다.
1039년 노비종모법(奴婢從母法)을 제정하고,
1045년 악공(樂工)과 잡류(雜類)들의 자손들이 과거에 나가는 것을 금지하였으며, 이듬해 장자상속법(長 子相續法)을 제정하였다.
1045년 비서성으로 하여금 《예기정의 禮記正義》·《모시정의 毛詩正義》등을 간행하여 문신들에게 나누어주게 하였고, 임진강에 부교(浮橋)를
놓게 하였다. 아들 넷을 두었는데 형·방(昉)·경(璥)·개이다.
그러나 1046년 초에 중병으로 드러눕고 말았다. 병이 위독하자 아우
휘(徽: 문종)로 하여금 국정을 맡게 하였다.성격이 너그럽고 어질고 효우(孝友)한데다 학식과 도량이 크고 넓으며 영특하고 과감하였다.
거란과 다시 화친하여 나라가 태평하였으며 유명으로 능침을 검소하게 하였다. 능은 개성에 있는 주릉(周陵)이며, 시호는 용혜(容惠)이다.
■ 정종의 가족들
정종은 5명의 부인을 두었으며, 4남 1녀의 자녀를 얻엇다. 선대 왕들과 달리 5명의 부인이 모두 전혀 혈연관계가 없는 족외혼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5명의 부인 중 제1비 용산왕후 한시가 1남을 낳았으며, 제2비 용의왕후 한씨가 애상군 방, 낙랑후 경, 개성후 개등
세아들을 낳았고, 제3비 용목왕후 이씨가 도애공주를 낳았다. 이들 외에 제4비 용절덕비와 제5비 연창궁주 노씨는 소생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