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原金地年表(남원금지연표)
☆일러두기: 이 연표는 <금지면홈페이지>, <남원지>, <남원의문화유산>, <남원문화유산의탐구>, <한국곡성> 등의 자료를 통해 작성했음을 밝히며 향후 새로운 자료 발견시 수정할 것입니다. 읽다가 오기 및 추가사항은 연락(리플) 바랍니다.(2007.09.20 김철성, 010-9852-9722)
■ 선사시대
-남원에서는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의 유물이 발견되거나 유물이 수습된 바 없다.
-청동기시대의 대표적 묘제인 지석묘는 남원지역에 골고루 산재돼 있다. 그러나 금지면
에서는 발견된 적이 없다. 다만 주변 대강면에서는 13여기의 지석묘가 발견됐다.
-유물수습 결과 남원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청동기시대 이후부터이다.
■ 원삼국시대
-원삼국시대는 삼한시대, 부족국가시대, 성읍국가시대, 김해기, 철기시대후기, 삼국시대
전기, 마한시대라고도 부른다.
-남원은 마한의 영역이었다.
■ 삼국시대
-남원지역은 백제의 영역으로 온조왕 34년(16)에는 고룡군, 초고왕 31년(196)에는 대방군,
구수왕 7년(220)에는 남대방군이었다.
-남원지역은 가야와 백제의 문화가 공존했다.
-금지면에서는 성안고분군(택내), 서매리고분군, 입암리말무덤, 내기고분군A(택내), 내기 고분군B(택내), 택내리고분군 등이 발견됐다.
■ 통일신라시대
-신문왕 5년(685)에 소경을 두었다.
-경덕왕 16년(757)에 남원에 소경을 설치했다. 소경은 신라가 정복한 지역의 주민들을 집 단으로 이주시켜 그들에 대한 통제와 회유책의 일환으로 남원에는 주로 고구려 계통의 유 민들이 이주했다.
-이무렵 원주원씨가 금지면(옹정리)에 처음 들어와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다고 전해온다.
■ 고려시대
-태조 23년(940)에 남원부라 개칭했다.
-현종 15년(1024)에 기지방(機池坊)과 금안방(金岸坊)이 생겨났다. 방(坊)의 제도는 백제 때 부터 있었지만 그때는 지금의 도(道) 단위 개념이었고 소단위 행정구역으로 바뀐 것은 고 려때부터이다.
-중종이후 설치된 것으로 짐작되는 역참제(驛站制)는 국도 17호선인 금지면에 창활역(昌活 驛)이 설치됐다. 역참제는 중앙정부의 각종 지시전달, 군사연락, 물자수송 등의 역할을 수 행하려 국도 주요지점에 역을 설치했는데 그중 하나가 창활역이다.
-남원부에 지방행정조직의 최말단인 향, 소, 부곡이 있었다. 이 제도는 통일신라시대 이후에 실시된 것으로 고려시대에 전성기를 이루다 이후 조선시대 중엽에 자취를 감췄다. 당시 금 안방(옛 금지)은 금안부곡이 있었다 해서 금안향(면)이라 불렀다,
■ 조선시대
-태종 13년(1413) 남원도호부가 설치됐다.
-중종때 문과에 급제한 원계관 선생이 원주에서 도촌(桃村, 옹정리 옛이름)으로 이주해 살 면서 복숭화나무 주변에서 석천(石泉)을 발견했다. 지금의 독우물이다.
-영조 16년(1740)에 남원이 일신현으로 강등됐다.
-영조 26년(1750)에 남원도호부로 복구됐다.
-고종 32년(1895)에 남원 관찰부가 설치됐다.
-고종 34년(1897)에 8도를 13개도로 개편하면서 방(坊)이 면(面)으로 바뀌면서 기지방이 기지면으로, 금안방이 금안면으로 바뀌었다.
■ 근대
-1911년에 남원 헌병대 금지파출소(옹정리 413번지)가 설치됐다.
-1914년 항일시대(일제 강점기)때 행적구역 통폐합으로 남원부가 남원군이 됐다. 아울러 금안면과 기지면이 통합되면서 그 이름을 한자씩 취해 금지면이 됐고 면사무소는 창산리 에 두었다. 이때 비로소 금지면이 탄생됐다.
-1919년에 창산리에 위치한 면사무소가 화재로 전소되어 다시 지을때 옹정리로 옮겼다.
-1920년 6월 30일 금지공립보통학교가 설립 인가됐다.(택내리 37번지)
-1924년에 금지금융조합이 창설됐다.(옹정리 306번지)
-1931년에 남원이 남원읍으로 승격했다.
-1933년 이전까지 1대 금지면장은 박준용(옹정리 405번지)이다.
-1933년 10월 전라선 철도 남원 곡성간이 개동됐다.
-1934년 10월 1일 대동전기광주지점 남원출장소 금지변전소가 세워졌다.(귀석리 523번지)
-1936년 3월 26일 금지우편소가 세워졌다.(신월리 79-1번지)
■ 현대
-1944년 10월 7일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던 김주열 열사가 옹정리 93번지에서 태어났다.
-1947년 3월 22일 금지초등학교 옹정분교장이 설립인가 됐다.(옹정리 815번지)
-1952년 1월 7일 문교부 인가로 금지중학교가 3학급을 편성 개교했다.(옹정리 676번지)
-1952년부터 1953년까지 10대 금지면장은 유을상(상귀리 141번지)이었다.
-1956년 금지면 방촌리에 천만리 장군과 그의 아들 천상 두분을 모신 환봉사가 창건됐다.
-1959년 전라선에 역원 무배치로 옹정역이 세워졌다. 1967년 9월 12일 을종 대매소로 지 정 됐고 2004년 7월 15일에 무정차 간이역으로 바꿨다.(1일 평균 9명 이하인 역)
-1960년 3월 15일 김주열 열사가 마산에서 이승만 정권의 3.15부정선거에 항거하다 체류 탄에 맞고 순국했다.
-1964년에 남원농촌지도소 금지지소를 설치했다.(옹정리 301번지)
-1966년 10월 1일 현재 금지면 인구는 10,090명이었다.(증보판 남원지)
-1970년 10월 1일 현재 금지면 인구는 9,452명이었다.(증보판 남원지)
-1979년 7월 31일 숭전대 최래옥 교수 등 3명이 금지면 설화와 민요를 채록했다. <한국구 비문학대계 5-1, 전라북도 남원군편>(한국정신문화원 발행, 198111.30)에 수록됐다.
-1981년 남원읍이 남원시로 승격하면서 남원시와 남원군이 분리됐다.
-1986년부터 1988년까지 제20대 금지면장은 강상호(익산시 거주)이다.
-1994년 5월 2일 택내리 739번지에 소장된 기묘제현수필(1첩)과 기묘제현수첩(1첩)이 보 물(국가지정)로 1197호와 1198호로 각각 지정됐다.
-1995년 남원시와 남원군이 통합되면서 군의 명칭이 사라지고 금지면은 남원시에 속하게 됐다.
-1995년 남원시 금지면은 11개 법정리와 19개 행정리 그리고 22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됐 다. 11개 법정리는 방촌리, 택내리, 서매리, 상귀리, 입암리, 옹정리, 창산리, 상신리, 신월 리, 귀석리, 하도리이다.
-1998. 1. 9일 상귀리 87번지에 거주하는 남원농악(상쇠) 류명철(1942.4.25일생) 선생이 도지정 무형문화재 7-4호로 지정됐다.
-2001. 4. 19일 옹정리 우비산 자락에 김주열 열사 추모각이 건립됐다.
-2003년 4월 6일 독우물회 일동이 옹정리 초입에 독우물 표지석을 세웠다.
-2004.7.12~2007.9.4일까지, 제28대 면장은 문강현(남원시 거주)이다.
-2005년에 금지면 인구는 3,107명이었다.
-2005년 5월 12일 남원소방서 금지파출소 신축건물 개소식을 옹정리 581번지에서 갖었다. (소방공무원 15명, 소방차 4대, 구급차 1대)
-2006년 1월 6일 금지면 면회보 창간호가 발행됐다.
-2006년 3월 14일 제46회 김주열 열사 제향 및 추모식이 옹정리 묘역에서 거행됐다.
-2006년 10월 27일 남원소방대 금지여성의용소방대(대장 박영순)가 20여명의 대원으로 발 족했다
-2007년 7월 13일 금지면번영회(회장 배용춘)애향장학재단설립 및 송덕비(신영태) 제막했 다.(위치 금지면 사무소 입구)
-2007년 9월 1일 제9회 금지면민의 날 행사를 금지초등학교에서 개최했다.
-2007년 9월 5일부터 현재, 제29대 면장은 박노덕(남원시 거주)이다.
-2007년 9월 6일 제17호 금지면(이장)회보가 발행됐다.
-2007년 9월 12일 옹우회(회장 김희택)에서 <내고향 독우물 이야기1>을 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