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면 발산초등학교 뒷편으로 가 보면 보물 234호인 석등과
보물 276호인 5층석탑을 비롯한 여러가지 석조 유물이
남겨져 있다.
이 곳은 바로 야마구찌현 구카군 출신의 시마다니 농장이 있었던
자리인데 시마다니는 자신의 정원을 꾸미기 위해
전북과 충남일대의 유적을 수집 약탈하였다.
특이하게도 시마다니는 해방 후 한국민으로 귀화를 요구하며
농장을 지키려고 하는 땅에 대한 애착을 보였으나 결국 그 또한
가방 두개만을 지닌 채 부산에서 마지막 귀국선에 몸을 실어야
했다.
이외에도 현 당북초등학교에는 모리지꾸 농장이, 현 개정병원에는
군산최초의 농장주였던 미야사끼의 구마모토 농장이 그리고
서수에는 소작쟁의로 유명한 이엽사농장이 있었다고 한다.
개정병원에는 현재도 가끔 영화촬영장으로 이용되는 구마모토의
저택이 있는데 백두산 전나무를 이용하여 만들었다는 이 집은
조선총독부 건물과 비슷한 경비가 들었다고 전해진다.
조선의 소작농들은 일본인 지주에게 생산량의 50~70%를 착취당하여
굶주림에 허덕여야 했건만 그들이 생산한 쌀들은 1933년에 이르면
우리나라 전국 쌀 생산의 53.4%가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당시 우리 민족은 인간이 아닌 쌀을 생산하는 기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