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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은 왠지 느긋하다.
저절로 평상시보다 1시간이 늦어 7시에야 아침 산책길에 나섰다.
오늘은 운동화가 동쪽을 향하여 길을 잡았다. 동트기 전의 죽도봉은 후광이 비친 부처님의 얼굴처럼 아름답고 신성하다.
집앞 중앙로 4차선을 건너 황금 사거리를 지났다. 아직 인기척이 없는 상가길에 비둘기만이 모이를 쫒는 시늉을 하다
내가 지나면 푸드득 날아 저만치 앞에 다시 내려 앉아 구구구한다.
예전에는 이곳이 지나는 사람의 어째가 서로 맞닿지 않고는 거닐 수 없을 정도로 북적이는 거리였지만
지금은 가장 사람이 많이 모이는 저녁 7시경에도 두 팔을 벌리고도 지날 수 있을 만큼 지나는 사람이 줄었다.
그러나 여전히 황금로 패션거리란 초입의 안내 간판처럼
모든 브랜드가 즐비하게 늘어서 간판과 진열장이 현대적 감각으로 잘 차려져 있다.
아내는 가끔 이 거리를 걸으며 손님보다 점원이 더 많다며 어떻게 밥이라도 먹고 사는지 걱정을 한다.
성동초 앞까지 이르니 요즘 잘나가는 등산 브랜드인 k2와 블랙야크 간판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새로 뚫린 흰박이 푸른 우페탄 보도블록을 깐 길이 동순천 로타리를 향하여 나 있다.
로타리를 넘어 동천쪽으로 향하였다.
이번에 확포장한 길이지만 오른쪽 보도는 여전히 좁고 조악하다.
기존의 상가와 가옥들의 출입구가 도로면보다 낮다보니 여기에 맞추어 시공한 까닭이다.
앞에 조곡교를 향하여 나아가는데 보도까지 침범한 공사중 간판이 가로 막는다.
순천장 앞의 공터에 제법 큰 건물이 들어설 모양이다. 지하실 기초를 닦으니라고 벌써 크레인이 붕붕거리고 인부들이 분주하다.
조곡교는 동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중 가장 최근에 지은 만큼 처음 난간의 모습이 참 예술적인 다리였다. 그러나 통행량 예측을 잘못하여 4차선으로 설계하였던 다리를 2년만에 6차선으로 확장하면서 그 아름답던 난간과 보도를 뜯어내고 차도를 확장하고 난간을 늘어내어 데크로 보도를 새로 늘어내었다. 아쉽지만 그나마 처음 다리 난간으로 설계된 석조물이 차도와 보도의 경계선으로 남아 그나마 위로가 되었으나 다리치고는 참 독특한 건축물이 되었다.
발길은 계속 봉화터널을 향하여 가는데 4차선가 보도가 좀 좁다. 차도에 어울리지 않는 2미터 보도이다 더구나 중간에 2층 가옥 하나가 불쑥 보도로 50센티미터 쯤 틔어나와 있어 마음마저 답답한 느낌이 들고 괜시리 시공자인지 건물주인지 이렇게 밖에 길을 만들지 못한 원인자가 미워진다.
터널입구 가까이에 가서 죽도봉길이란 이정표가 각종 상가 간판과 이정표 속에 겨우 눈에 띄었다. 죽도봉길로 들어서니 도로는 옛모습 그대로인데 요즈음 헌 가옥을 허물고 좌우로 조금식 정비되어 가는 가운데 오리고기집 전문 지역이 되었다. 곳곳에 오리요리 식당 간판이 즐비하다. 팔마가든, 도화정, 다민정 등등
죽동봉으로 오르는 길은 인도가 따로 없어 차도도 되고 인도도 된다. 아침이어서 인지 오르는 사람은 나뿐이고 지나는 차도 두대만 만났을 뿐이다. 한참 오르다 회전구간에 다다르니 난간처럼 늘어낸 구간이 잇는데 난간 첫돌에 죽도봉교라고 쓰여있어 아! 이것도 다리로구나 새삼스럽게 탄성을 내엇다. 난간에 기대니 앞에 거칠것없이 원도심이 눈에 들어온다.
죽도봉 다리막 지나 잠시 망설였다. 완만한 차도로 갈까. 깍아지른 계단을 통해 죽도봉 팔각정(강남정)에 오를까 계단수를 세워보기로 하고 계단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다. 계단 가에는 시누대가 콩나물 시루안의 콩나물보다 빽빽히 자라 모두 산발한 머리를 숙여 나를 향하여 인사를 한다. 바람이 불때마다 나를 부르는 듯하여 시누대를 만지고 어린시절 연 만들던 추억을 더듬다 세가던 계단수를 잊어버렷다. 대충150계단쯤 되는 것 같다.
계단 끝에 강남정(팔각정)으로 오르는 비상 차도를 만나게 되는데 공사가 한창이다. 안내문을 자세히 보니 죽도봉에 데크로 만든 산책로를 새로 내고 있는 중이었다. 인부들이 벌써 나와 일을 재촉하고 있었다.
강남정이라. 85년 내가 처음 순천에 발을 들여 이팔각정에 왔을 때 이곳은 1~3층까지 상점과 카페가 있어 제법 장사가 잘 되고 있었다. 오늘 와서 보니 걸어 잠근 문에는 자연보호위원회니 자연보호자원봉사자회니 하는 간판이 붙어 있고 보잘것 없는 가구들이 누추하게 어질어져 있다.
팔각정 3층 난간에서 바라본 순천시와 동천만은 예전과 다름 없다. 단지 그때보다 아랫장 너머로 더 넓게 건물이 들어서고 동쪽으로 연향지구에 아파트가 산너머 산처럼 들어서 있느데 저멀리 새로 신대 지구에까지 뻗어있는 것이다.
남으로 한참을 바라보다 계단을 내려오니 강남정의 유래가 적힌 안내판이 보인다. 내용인즉 순천의 아름다움을 중국의 강남에 비유하여 이곳을 예부터 소강남이라 하였단다.
동백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이길 역시 길 좌우에 수로를 내어 새로 정비하고 있었다.
팔마비를 지나치고 연자루의 비둘기 때를 바라보다가
하산길에 주차장 가 운동기구에서 윗몸일으키기를 20회하고 집으로 귀가
첫댓글 근래 카페에 올라오는 일기식으로 쓰여진 글을 읽으며 원도심에 대한 회장님의 따뜻한 마음을 고맙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읽습니다.
그 마음은 오늘 글에서 더 또렷해서 잠시 시간여행을 떠나봅니다.
죽도봉.....
내가 고향 남원을 떠나 낯선 순천에 내려와 처음 살던 곳이 지금은 장대공원 조성으로 흔적조차 사라진 죽도봉 아래 철길 부근이었기 때문입니다.
잠시 열 다섯살 무렵으로 돌아가
시누대(신의대) 숲에 나만의 작은 공간을 만들어 놓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던 기억 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봅니다.
회장님이 오르다 까먹은 돌계단을 저도 하나하나 세며 오른적이 있답니다.
그 돌계단 옆에 홍암중학교라는 숲속학교가 있었지요.
그 홍암중학교는 졸업을 해도 바로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가 없고 검정고시를 봐야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그런 학교여서 학생도 많지 않고 한때 죽도봉 연애학교라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였답니다.
원도심에 대한 추억의 거리가 저보다 길지않는 회장님의 원도심 사랑의 마음을 읽으며 부끄러운 마음이 앞섭니다.
사람의 마음은 중독성이 강하여 쉽게 끊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답니다.
연속극나 연재소설처럼 이젠 운동화가 잡은 방향에 이끌려 방향을 잡고 다녀온 회장님의 산책길 근황이 궁금하여
조바심으로 다음 날이 은근히 기다려지는 연재글이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죽도봉 가기전 홍암중학교를 앎니다. 이름을 잊었는데 안선생님 댓글보며 새삼 어린시절이 기억나게 됩니다.
초등학교때 잠깐 둑실마을에 살았습니다. 동천다리 막지나 오른편으로 두부 공장이 있었습니다. 몸이 약하다고 친정아버지께서 새벽 주산학원을 보내주시고 주산학원 마치고 돌아오면서 두부공장 들러 두유를 한그릇 사먹고 오라고 늘 아침마다 20원씩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시절 학원마치고 돌아오며 마시던 두유는 제게 맘과 몸이 함께 따뜻하게 하는 소중한 기억이랍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죽도봉을 오르며 보니 홍암중학교는 간 없고 빈터만 소슬하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