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둘레길 6코스 안양천코스는이제 양천구와 영등포구로 접어든다. 이곳 제방 산책로에는 약 900주의 왕벚나무가 봄철이면 해마다 변함없이 벚꽃을 피우고, 금낭화, 할미꽃 등 우리나라 고유의 꽃으로 구성된 화단이 조성되어 있다. 또, 둔치에는 튤립, 비올라 등의 봄 향기 가득한 봄꽃 화단과 원추리, 갯버들, 꽃창포 등의 다양한 수변식물을 만날 수 있는 자연학습장, 춘향이 그네 등을 설치하여 가족과 함께 나들이 나온 주민들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10월의 마지막 날 가을을 밀어내듯이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밝은 태양과 냇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고장' 양천를 소개해 본다. 양천구의 뿌리는 고구려의 제차파의현으로부터 불려지기 시작하여 통일신라 경덕왕 16년(757년)때는 공암현이라 변경되어 율진군(부천군의 옛이름)에 속하였고, 그후 고려 성종 14년에 영토를 5도로 나누어 양광도에 귀속하였다가 현종 9년(1018년)에 공암현을 수주군(부천군의 옛이름)에 속하였다가 이와같이 행정구역이 변경되는 과정에서 양원, 양평, 파릉, 제양 등으로 개칭되었고 고려 충선왕 2년(1310년)에 비로소 양천이라는 지명으로 명명되어 작은 암굴의 땅 이름에서 보다 넓은 뜻을 가진 땅이름으로 되었다. 이후 조선 태종 14년(1414년)에 김포군과 양천현을 합하여 금양현이라 하였다가 태종 16년(1416년)에 다시 양천현으로 복귀하고 고종 32년 을미개혁때 양천현에서 양천군으로 되었으며 '현내, 남산(목동), 장군소(신월동, 신정동), 삼정, 가배곡 또는 가곡'등, 5개면이 양천군에 편입되었다.
안양천변의 목동은 면적은 5.34㎢, 인구는 16만 4267명(2008)이다. 남쪽으로는 신정동, 북서쪽으로는 강서구 염창동, 그리고 동쪽으로는 영등포구의 양평동과 접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무가 많은 침수지대로 말을 방목하는 목장으로 이용되어 牧洞(목동)이라 불리던 것이 현재는 木洞(목동)으로 변형되었다고 한다. 안양천에 제방이 생기기 전까지는 물이 자주 넘치는 땅이었으나,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 조성 계획에 의해 제방이 생기면서 물에 넘치지 않게 되었다.
영등포 수변둘레길을 따라 걷는다. 영등포구는 북쪽으로 한강을 경계로 마포구와 마주하고 있고 남쪽으로 관악산을 비롯한 호암산, 독산연봉등의 산악을 먼 발치에서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특히 여의도는 오랫동안 군사기지인 비행장으로 사용되어 온 모래밭으로 별 이용가치가 없었는데, 1968년부터 일기 시작한 여의도 개발 사업으로 국회의사당 및 10층 이상의 대규모 시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KBS 방송국, 세무서, 전화국 등의 국가 주요기관 및 공공단체를 비롯하여 전경련 회관, 증권타운, 은행 등이 들어서면서 금융의 중심지로 탈바꿈 하여 한국의 맨하탄으로 비유된다. 이를 더 발전시켜 2006년 이후로는 여의도를 동북아의 금융허브 및 비즈니스 중심지로 랜드마크화 하고자 최첨단 오피스, 호텔, 컨벤션, 상업시설로 구성된 SIFC몰을 개장하는 등 최첨단 국제금융도시로 발전될 예정이라고 한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산이 없는 영등포는 1986년 한강종합개발사업 완공으로 한강시민공원 여의도 지구에는 각종 체육시설 및 위락시설이 조성되고, 1997년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이 개장된데 이어 1998년 7월 OB맥주공장 이적지에 영등포 근린공원이, 1998년 10월에는 여의도 광장이 여의도 공원으로, 그리고 2002년 5월 선유정수사업소 이적지에 선유도 공원이 각각 조성되었으며, 근린공원 10개소, 어린이공원 19개소가 있어 주민들에게 쾌적한 휴식 및 여가 활동공간 제공으로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 있으며, 마을마당 등 소규모 공원 30개소를 조성하는 등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있다.
목동종합운동장이다. 목동종합운동장은 총면적 35,700㎡로 날로 늘어나는 서울특별시의 체육 인구를 수용하기 위하여 1989년 11월 4일 개장하였다. 시설물로는 축구장과 야구장·빙상장이 있으며, 중앙광장에 전통놀이마당이 있고 건물 내에는 실내사격연습장과 헬스클럽이 있다. 주차 시설로는 2,000여 대를 주차할 수 있는 유수지 복개 주차장과 1,000대를 주차할 수 있는 운동장 주차장을 갖추었다.
양화교를 만난다. 양천지역 주민들은 한강을 건너는 양화나루를 큰 나루라 하였고 안양천을 건너는 곳을 작은나루 또는 철곶포라 하였다. 그 무렵의 작은나루 위치는 현재의 인공폭포 남쪽이었으며 한때는 관선을 두고 건너다가 나무다리를 설치하여 이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1935년 안양천 제방을 염창동쪽으로 축조하면서 지금의 양화교 자리에 콘크리트 교량을 건설하면서 염창교라 하였으나 행정적으로 옛 양화나루로 이어지는 길이라 하여 양화교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