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아동 방문기
시작.
국제기아대책기구를 통해서 제삼세계 아이들과 맺어진지 오래되었다. 나는 늘 바쁘다는 핑계로 그동안 한 번도 아이들에게 편지나 사진을 보낸 적이 없는 무심한 후원자였다.
맨처음 '투메 다다차'라는 이름의 케냐 여자아이와 인연을 맺었다.
두 번째가 몽골의 '어뜨 자르갈'이었다.
세 번째는 네팔의 '키란 반다리'였다. 처음엔 기아대책에서 연결해 주는 대로 결연을 하다가 차츰 나름대로의 기준을 세우게 되었다. 가정형편은 어렵지만 정상인 아이들보다는 장애가 있거나 당장 후원이 시급한 아이들을 우선 대상으로 하겠다고 기아 대책에 그런 내 뜻을 전했다.
그렇게 해서 네 번째로 결연 된 아이가 지금은 이름도 잊어버린 다섯 살 박이 에이즈 감염 아동이다. 기아대책에서 보내온 아이는 사진 속에서 너무도 맑고 큰 눈으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아이와의 인연이 얼마나 지속되었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기아대책에서 온 한통의 서신이 그 아이와 나의 후원관계가 종결되었음을 알려주었다.
기아대책기구에서는 아동의 집안 형편이 나아져 더 이상 후원이 필요 없게 되었다고 했지만 나는 믿지 않았다. 아프리카의 오지. 버려진 불모의 땅에서 태내에서부터 에이즈에 감염되어 태어난 그 작은 아이의 형편이 나아질 리가 만무한 일이었기에. 이 세상의 가장 악랄한 질병에 침범당한 것이 어찌 그 작은 영혼의 바람이었겠는가. 또 그것이 어찌 하늘의 뜻이었겠는가. 세상 어디에도 저항하지 못하고 짧은 생을 살다가 다시 하늘로 돌아갔을 작은 영혼을 생각하며 한동안 우울했었다.
다섯 번째가 얼굴에 화상을 심하게 입은 말레이시아 아이였다. 기아대책 기구의 철수로 후원이 종결되었고 이름도 잊어버렸다.
여섯 번째 아이가 지금도 후원이 지속되는 아이가 말레이시아의 로스맨 대니이다.
이 아이는 심한 언청이 장애를 가지고 있다. 이 아이와 후원이 맺어진 뒤, 온라인상에서 알게 된 분이 정보를 주셨다. 서울 삼성병원에서 장애를 무료로 수술해 주는 프로그램이 있으니 알아 보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여러 번 삼성병원 측에 전화로 상담했다. 병원측에서는 그때까진 장애를 가진 외국인을 치료한 적이 없어서 무상 치료 적용 대상이 될지 모르겠다는 대답을 주었다. 그런데 기아대책기구에서 곤란한 입장을 밝혔다. 외국의 아이들을 한국으로 대려 오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경비는 내가 책임지겠다고 했지만 그 외, 혹여 생길지도 모르는 사고라든지 하는 문제로 불가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렇게 로스맨 대니의 언청이 치료는 불발로 끝이 났다.
일곱 번째는 '몯 아민 몯' 이라는 말레이시아 아이였다. 정확한 나이도 모르고 약 9세라고 하는데 영양 결핍으로 성장이 느려 겨우 네 살짜리만큼 밖에 못 컷다는 사진 속의 아이는 서있는 것도 힘들어 보여서 안아주고 싶은 가여운 녀석이었다. 집안 일을 돕고 싶어도 아프고 기운이 없어서 돕지를 못한다고 했다. 내가 보내는 후원금으로 지속적인 영양공급을 받으면 튼튼해질 것이라는 생각에 그 아이를 만난 것이 행복했다. 이 아이도 기아대책의 철수로 후원이 종결되었다.
각국의 아이들 7명과 인연을 맺었다. 보통 10여세 전후의 아이들과 1:1로 후원자의 관계가 맺어지면 그 아이들이 자립을 하거나, 결혼을 하는 경우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시기에 후원이 자동 종결 된다. 또 후원을 연결하고 선교 사업을 하는 기구가 그 지역에서 철수를 하게 되어도 후원이 종결된다.
그렇게 여러 아이들과 인연을 맺고 끊으며 세월이 흘렀다. 나는 후원금 인출을 자동이체로 돌려놓고 늘 바빴다. 한 아이와의 인연이 종결되면 기구에서는 다른 아이와 결연을 하겠냐고 의사를 물었다.
그런 절차를 여러 번 거치고 남게 된 아이가 셋이다. 말레이시아의 로스맨 대니. 키르키즈간의 아이 한 명, 그리고 두 번째로 나와 인연을 맺었던 몽골소녀 어뜨 자르갈이다. 올해 초에 받은 후원어린이 성장보고서에 자르갈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예쁘고 건강한 숙녀로 자란 자르갈이 멋진 옷을 입고 손으로 브이를 그리며 웃고 있었다.
이렇게 어린 아이였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숙녀가 되었다.
그 아이가 저렇게 성장한 것이 어찌 내가 보낸 적은 금액의 후원금 덕택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마는, 그래도 수십억 세계 인구 중에서 맺어진 인연이었기에 나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처음 자르갈과 후원이 맺어졌을 때 보내온 사진을 꺼내보았다. 붉은 볼의 작고 예쁜 여자아이가 푸른 초원을 등지고 겁먹은 듯 부끄러운 듯. 기대에 찬 눈빛을 하고 서있었다. 이 아이가 저 아이라니....나는 몰라보게 변한 자르갈의 모습을 보고 감동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2009년 3월 기아대책에서 보내온 정기 간행물에서 후원자 필드트립이 계획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의 후원자가 기아대책기구의 인도 아래 후원아동을 방문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6년간 중단되었다가 다시 부활되었다고 하는데, 그 국가 안에 몽골도 포함되어 있었다.
몽골에 갈 수 있다...... 나는 어뜨 자르갈을 떠올렸다. 한 번도 편지를 보내지 않는 후원자가 야속하고 궁금했던지 어느 해 받았던 편지엔 "가족에 대하여 쓰시오"라는 제목을 붙여 놓았던 아이였다. 나는 기아 대책으로 전화를 했다. 그리고 자르갈과 나의 후원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내가 자르갈을 후원한지 어느새 십년이 되었고 자르갈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므로 올 12월이면 후원이 종결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십년. 나는 믿기지가 않았다. 강산도 변한다는 십년이라니. 문득 오래전에 헤어진 사람을 만나고 싶은 듯한, 가느다란 그리움 한 가닥이 피어 올랐다. 이제 와서 왜 그 아이가 그토록 보고 싶은지 나도 잘 모를 정도로 꼭 보고 싶다는 바람은 날이 갈수록 간절해졌다. 일주일 간의 여행을 못할 이유야 없었지만, 그러나 발목을 붙잡는 것이 요양병원에 계시는 두 어머니였다. 아흔 한 살의 친정어머니. 치매가 심하신 여든 다섯 살의 시어머니. 일주일간 집을 비운 사이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할까, 하는 걱정과, 생면부지의 한 아이를 만나러 가는 일주일을 두 어머니께 할애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 에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한편으론 이제 후원이 종결되면 그 아이와의 인연은 영영 끊어지고 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또 한편으론 그 먼 나라까지 그 아이를 꼭 만나러 가야할 이유가 있는가? 라는 당위성 사이에서 갈등했다. 그리고 주부로서 일주일간 집을 비워야 한다는데 대한 미안함도 있었다. 남편과 아이들은 나의 긴 외출을 적극 찬성하는 쪽이었다. 그동안 바쁘게, 열심히 살았으니 일주일간의 휴가는 지나친 일도 미안한 일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내 나이 오십대 중반,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아본 것은 몇 번의 제주도 왕래밖에 없던 터여서 혼자만의 외국여행에 실상 주저하고 불안감에 떠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그러면서도 난생 처음 혼자 떠나는 여행에 마음이 설레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많은 고민 끝에 '몽골에 가는 것은 그 아이만을 만나기 위한 일이 아니라 내 자신에게 주는 휴가'라고 몽골 방문을 합리화 했다. 꼬박 한 달을 고민하다가 4월 말까지 정해진 신청 기한에 맞춰 후원자 필드트립을 신청했다. 출발이 7월 9일이어서 여름방학에 맞춰 잘 정해진 시기였다.
출발까지 3개월여가 남아 있었지만 나는 당장이라도 떠날듯이 인터넷을 뒤져서 몽골관련 카페에 가입도 하고 몽골에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7월의 몽골 기후와 여행에 필요한 준비물. 여행시 주의할 점등, 많은 정보를 찾아냈다. 그 중 가장 기초적인 정보를 옮겨본다.
*몽골
개요 : 중앙 아시아 고원지대 북부에 있는 국가
수도 : 울란바토르 (Ulanbaator)
언어 : 몽골어
기후 : 대륙성기후...[현재날씨]
종교 : 라마교 50%, 샤머니즘.그리스도교 6%, 이슬람교 4%
인구 : 약 300만명 (2008)
화폐단위 : 투그릭 (Tugrik)
1인당 GDP : 1486$ (2007)
몽골은 이념문제 때문에 오랫동안 갈 수 없는 동토의 땅이었다. 냉전이 끝나면서 양국이 공식적으로 국교를 맺은 것은 1990년 3월 26일. 몽골이 체제전환과 대외개방 직후 최초로 외교관계를 맺은 나라가 한국이다. 한국 역시 옛 공산권이었던 국가들 가운데 제일 먼저 국교를 맺은 나라가 바로 몽골이다. 현재 남북한 동시수교 국가이다.
몽골국(-國, 몽골어: Монгол Улс 몽골 울스, 통용: 몽고(蒙古))은 중앙아시아에 있는 나라이다. 카자흐스탄 다음으로 큰 내륙국이기도 하다. 북쪽은 러시아, 남쪽 은 중국과 맞닿아 있다. 몽골의 면적은 156만 4116 평방킬로미터로, 아시아에서 6번째로 넓지만 인구는 290만명에 불과하다.
수도 울란바타르에는 몽골 인구의 38퍼센트가 거주하고 있다. 이 나라의 국토 대부분은 황무지 및 농사를 짓기 힘든 스텝으로 덮여 있으며, 농지의 비율은 적다. 북쪽과 서쪽은 산악지대이며 남쪽에는 고비사막이 있다. 이 나라 인구의 30퍼센트 정도가 유목민 또는 준유목민으로 알려져 있다. 몽골인 들이 가장 널리 믿는 종교는 티베트 불교이다. 몽골의 인구 구성은 대부분 몽골인이지만, 소수의 투바인과 카자흐족도 포함되어 있다. 기타 소수 민족들은 몽골의 서쪽 지대에 거주하고 있다.
* 몽골 소매치기들의 근무지 및 소매치기 당할 확률 *
1. 수흐바타르 광장: 단체로 있을 경우 소매치기 당할 확률은 비교적 낮지만, 혼자 있을 경우에는 주의를 요한다. (확률 - 단체로 있을 경우 30%, 혼자 있을 경우 50%)
2. 간등 사원: 비둘기 모이를 파는 척 하면서 접근하거나, 법당 내에 있는 불상을 구경 할때 뒤에서 소매치기하는 이들이 많으므로 주의를 요한다. (확률- 법당 밖 - 30%, 법당 안 60%)
3. 이흐 델구르(백화점) 문: 소매치기들이 재래시장 다음으로 좋아 하는 곳이다. 백화점 문 열때 출근해서 문 닫을 때 까지 근무한다고 보면 된다. (확률 - 70%이상) 들어갈 때 사람이 많을 경우에는 기다렸다가 들어간다.
4. 자이승 탑: 계단 밟고 올라가는 것도 쉽지 않고 바람도 많이 불어 소매치기들이 그리 좋아하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주의를 요한다. (확률- 30% 이하)
5. 공항: 일층은 입국/ 이층은 출국장인데 입국장보다는 출국장을 선호한다. 여행의 긴장이 풀린 틈을 소매치기들이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다른 곳과는 달리 아예 짐 가방 통채로 가져 가버린다. (확률- 50% 이상) 작별을 할 때도 가방에서 항상 눈을 떼지 말기를 바란다. 정든 몽골과 헤어지기 싫어 흘린 눈물이 잃어버린 가방으로 인해 배가 될 수도 있다.
6. 재래시장: 아예 소매치기 본부라고 생각하면 된다. 뭐~~ 조금만 두리번거리면 소매치기 당할 확률 100%다. 재래시장의 소매치기들은 아예 동서남북 둘러싸고 강탈을 하다시피 한다. 강도라는 표현이 더 나을지 모르겠다. 두 눈뜨고 보는데도 손들이 자기 주머니인양 왔다 갔다 한다. 절대 과장해서 하는 표현이 아님을 알아주길 바란다. 재래시장이 궁금해 도저히 안 들어가 보고는 안 되겠다는 여행객은 현금이나 여권등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한테 맡기고 푼돈만 가지고 들어가길 간곡히 부탁한다. 이곳은 내, 외국인 가리지 않고 보이는 대로 소매치기 하는 곳이다.
7. 그 외 기타: 버스 안은 항상 뺏고 뺏기는 전쟁터이지만, 여행객이 버스를 타지 않는 이상 만날 일은 없다. 게스트 하우스에 짐을 놓고 나갈 때는 후론트에 맡기거나 중요한 물건은 가져가길 바란다. 그리고 박물관, 중앙우체국 입구도 주의해야 될 곳이다.
8. 마지막으로 식당: 위에서 언급한대로 신종 소매치기들이 불철주야 기술을 연마하고 있으니 꼭 소지품에 신경을 쓰기 바란다.
*몽골여행을 할 때 알아두어야 할 상식
1. 어워를 돌 때 시계방향으로 세 바퀴 돌며 돌을 던져 놓아도 된다.
2. 길을 걷다가 남의 발을 밟으면 뒤돌아서서 악수를 청하면 된다.
3. 운전사에게 몇 시간이면 목적지에 도착하느냐고 묻지 말라.
4. 손가락으로 상대방을 가리키지 말라.
5. 말을 탈 때는 왼쪽에서 타고 말 뒤로 가지 말라.
6. 도로를 건널 때는 횡단보도를 이용하고 안전을 위하여 주변을 살피면서 가라.
7. 백화점이나 재래시장에서는 소매치기를 조심하고 혼자서는 다니지 말라.
8. 야간에 다닐 때는 믿을 수 있는 현지인과 동행하라.
9. 비누, 사탕, 볼펜, 화장품, 소주 등 현지인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라.
10. 물, 라면, 김치 등을 비상시에 대비하여 준비해 두라.
*몽골 여행시 필요한 준비물.
*바디로션, 수분크림, 자외선 차단용 크림, 선글래스 몽골의 건조한 기후에 견디려면 촉촉한 로션은 필수, 강렬한 태양에 피부가 쉽게 탈수 있으니 자외선 차단용 크림과 선글래스는 꼭 준비 하십시요.
*비타민제 : 쉽게 피로를 느낄 수 있는 고산지대이니 나이 드신 분이나 몸이 불편하신 분들은 피로회복제를 챙겨 가시는 게 좋겠죠. 그 외 간단한 구급약이나 평소 드시는 약이 있으면 꼭 챙겨야합니다.
*침낭 : 몽골은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여름에도 시골여행이나 게르에서 주무실 때 추워서 새벽에 잠이 깨는 경우가 있어요. 시골여행 하실 분들은 계절에 상관없이 침낭은 정말 빠져서는 안될 준비물 입니다.
*기념품 : 몽골 가정집이나 시골 게르에 방문할 때 선물을 준비해 가시는 게 좋아요. 선물은 성의가 중요하니까 자기 취향대로 준비 하십시요. 아이들에게는 사탕이 좋은 선물이 된답니다. 담배를 건네주는 것은 하나의 친근감의 표시이니 특히 시골여행에서 유목민에게 길을 물을 때나 게르에 방문하였을 때 질 좋은 담배 맛을 보여주는 것도 좋겠죠.
참고로 담배는 몽골에도 많은 종류가 판매되고 있으니 면세점에서 사시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즉석사진기 : 몽골에서 사진기 사용은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에 몽골인들은 사진 찍는 것을 신기해하고 좋아해요. 특히 시골에서는 더욱 보기 힘든 물건이기 때문에 시골 여행시 원주민들과 함께 사진 찍어서 그 즉석에서 선물하면 정말 좋은 선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즉석사진기를 추천하고 싶지만 여유가 안 되시는 분들은 디카나 자동카메라로 함께 많이 찍으십시요.
*기타 : 양산, 물티슈 등 양산은 고비에 갔을 때 여성분들에게 유용하답니다.
물티슈는 물이 귀한 몽골의 지방에서 간단한 세수와 미용에 편리하죠.
이밖에도 수많은 주의 사항과 정보들이 있지만 생략한다.
나는 필요한 물건들은 손을 뻗쳤을 때 집을 수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그래서 항상 들고 다니는 가방엔 여자들이 챙겨 다니는 화장품 등,기본적인 물건 외에도 내가 필요로 하는 물건들이 들어 있어 팔이 축 처진다. 언제 어디서나 증거 자료를 남길 수 있는 디카와 연결 잭. 손전화기. 차 키. 수첩. 볼펜 두 자루 이상. 이쑤시개. 귀이개. 눈썹 정리용 가위. 손톱깍기. 혹여 산이나 바닷가에서 조난을 당했을 때 불을 피우기 위한 라이타. 그때 머리를 감쌀 스카프. 혹 엎어져서 무릎이 까졌을 때 붙일 일회용 밴드. 혹시 공것이 생겼을 때 얼른 담을 수 있도록 나비모양으로 접은 비닐봉지 등등. 거의 없는 게 없다. 옆지기와 함께 다니는 경우가 많은데 말만 하면 즉각 대령이다. 누구는 참 마누라 잘 만났다.
그런데 산 설고 물설고 낯 설은 타국에서 일주일간을 살아야 하는데 준비할게 얼마나 많은가. 나는 필요한 물목을 작성해서 들고 틈만 나면 사재기를 시작했다. 그러곤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대로 비상 반찬도 준비했다. 정보에는 고추장을 필히 준비하라고 했지만 매실 장아찌를 고추장에 무치는 것으로 고추장과 반찬을 한꺼번에 해결 했다. 간식으론 건멸치와 건포도와 오징어포를 섞어서 진공포장해서 500 그램 정도로 다섯 봉지를 준비했다. 오가는 이틀을 빼고 하루에 한 봉지 턱이었다. 그리고 초원에서 필수품이라는 물티슈도 넉넉히 준비했다. 이런 물건들을 준비 하면서 몽골은 후진국이어서 생필품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일거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은 어뜨 자르갈과 가족들에게 줄 선물이었다. 난감했다. 자르갈의 나이 19세인건 알지만 옷을 사려니 치수를 모르겠고 신발을 사자고 해도 발 크기를 모른다. 무엇보다 실제로 그들에게 유용한 것이 무엇인지를 몰랐다. 인터넷 정보는 사탕이나 담배 등으로 너무 추상적이고 실생활에 도움이 안 되는 것뿐이었다. 몽골 사람들이 좋아 한다는 즉석카메라가 한 대 있어서 어뜨 자르갈에게 줄 좋은 선물이라 생각했는데 그에 맞는 필름을 구할 수 없어서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한국 아이들이라면 제일 가볍고 손쉬운 돈을 주면 되는데....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을 준비하고 싶어서 기아대책으로 전화를 했다.
담당 간사는 어뜨자르갈의 나이에 맞게 저렴한 화장품이나 학용품이 좋을 거라고 했다. 몽골은 나무가 귀해서 종이도 귀하다고 했다. 그래서 공책을 사가는 것도 좋고, 옷은 중국산이 많이 들어와서 몽골에도 예쁜 옷들이 많다고 하며 너무 과한 선물은 자제하도록 당부를 했다. 또 직접 돈을 주는 일은 삼가 달라는 얘기도 했다. 어뜨 자르갈이 소속된 종모드 지역 후원 아동들만 2백 명이 넘는데, 몇 명의 후원자가 찾아가 몇몇 아이들에게 선물 공세를 취한다면 다른 아이들이 소외감에 휩싸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나는 참 남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사람이다. 기아대책 간사가 시키는 대로 어뜨 자르갈에게 줄 화장품 한 세트와 색이 고운 매니큐어 몇 개를 샀다. 그리고 어뜨 자르갈의 동생들을 위하여 공책 두 묶음과 연필. 색연필. 지우개. 볼펜 등, 암튼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것들을 골고루 샀다. 그리고 몽골인들이 좋아한다는 조미 김. 인스턴트 커피 등을 샀다. 수건도 몇 장 꾸렸다.
침낭과 속옷과 옷가지들을 꾸리고 보니 가방의 무게가 공항에서 허용하는 무게를 초과했다. 가방을 뒤엎어서 조금이라도 불필요한 것들을 추려 내고자 했지만 모두 필요한 것들 뿐이었다. 무게가 가장 많이 나가는 공책을 한 뭉치 빼고 싶었지만 그건 뺄 수 없는 품목이었다. 눈물을 머금고 멸치와 건포도 뭉치 두 개를 덜어냈다.
출발하는 날까지 몇 번이나 가방을 뒤엎었는지 모른다. 여분의 비닐봉지까지 챙겨 넣고 맨 마지막 과정으로 환전까지 하고 나서 가방꾸리기를 마친 듯 했다. 그런데 중요한 한 가지를 빠뜨렸다는 것을 알았다. 인터넷 정보에서는 몽골에서의 소매치기에 대한 우려가 매우 비중 있게 거론 되고 있어서 여권이나 돈을 넣어서 배에 찰 수 있는 전대를 꼭 준비 하라고 했는데 미처 준비를 못하고 말았다. 할 수 없이 나는 예전에 할머니들처럼 속곳에 커다란 주머니를 달아서 핀으로 꼽아 다니는 방법을 택했다. 딸은 질겁을 하며 자기가 유럽 여행 갔을 때 뭔가를 담았던 거라고 하며 작은 주머니 한 개를 주었다. 궁여지책으로 고리를 바지의 허리띠 구멍에 묶고 속옷 사이로 집어 넣으니 모양새는 우스웠지만 그런대로 쓸 만 했다.
가방을 꾸려 놓곤 남은 식구들이 먹을 일주일치 반찬 만들기에 들어갔다. 제일 손쉬운 곰국을 넉넉히 끓여서 일부는 냉장고에 넣고 일부는 일회용으로 만들어 냉동고에 넣었다. 김치. 매실 장아찌. 연근장아찌. 우엉장아찌. 멸치 볶음 등, 밑반찬을 준비하느라 허리 한번 못 펴고 사흘이 지나갔다. 비행기 타기도 전에 몸살이 나서 몽골은커녕 드러눕는 건 아닌가 싶어서 이놈의 여자 팔자, 몽골이고 한국이고 안가고 말지, 라고 한탄을 했다.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떠나는 날이 왔다. 남편과 딸이 김해공항까지 배웅을 해줬다. 김해공항 - 인천 공항- 몽골까지 간다고 했다. 한국의 날씨는 장마철이고 억수로 쏟아지던 비가 마침 출발하는 날은 그쳤다. 하지만 바람이 거세게 불어서 비행기가 이륙할지 못할지도 모르는 상태라고 했다. 탑승 시간이 되어 비행기에 타긴 했지만 비행기가 이륙을 해야만 출발이 확실해지고, 기상에 따라 회항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으며 이러다가 난생 처음 떠나는 나라밖 나들이가 수포로 돌아가는 건 아닌가 가슴이 조마조마 했다. 비행기가 천천히 활주로를 미끄러지며 속도를 내더니 마침내 지상으로부터 둥실 허공으로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http://www.kfhi.or.kr/donation/fix/outcdp_intro.asp
첫댓글 미뤄 두었던 몽골 여행기 개강하기 전에 마무리 지으려고 서두르고 있습니다. 메모는 해 두었지만 벌써 칠개월 전의 일이라 감이 많이 떨어집니다. ^^*
좋은 여행이셨네요. 글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해봅니다. 전 지금 참 행복한 거라는 것도 깨달으면서요.
네~ 행복을 국민소득에 비교한다면 우리나라가 행복한 나라지만 그쪽사람들은 가난해도 나름대로들 행복하게 살고 있는것 같았어요. ㅎㅎ
정말 장하십니다. 지는 모금하면 전화기나 몇번 들엇다 놧다 하는 것으로 끝인데... 존경합니다
고맙습니다. ^*
저는 2009년도 10월과 2008년도 9월 두 차례 몽골수도 울란바타르 일대와 셀렝게 아이막 만달솜(군)에 우리의 우수한 농업기술을 그곳에 전수하기 위한 사전 현지 실태 조사차 다녀왔습니다 혹자는 몽골을 한마디로 양탄자 위에 앉은 거지의 형상이다라고 합니다 지하자원이 현재밝혀진것만도 세계 10위랍니다 그곳의 약 70%의 자동차가 한국산 중고자동차에서 볼수있듯이 미지의 땅 몽골에 우리 대한민국의 손길이 깊숙히 뻐치고 있음을 보고느꼈습니다 몽골여행기행문을 써야하는데 이제 다 잊어버렸습니다 다만 지금도 눈에 아른꺼리는것은 98도짜리 몽골주에 취한 눈까풀앞에 가날픈 몽골여인의 춤과 웃음이 왔다갔다 하옵니다 ㅎㅎ
엇빠야님도 댕겨 오셨네요. 몽골인지 한국인지 모르겠습디다. 한국 차에 한국음식 식당에 한국 물건에....
ㅋㅋㅋ 덕분에 제가 몽골 다녀온듯 합니다 그런데 소매치기 문제를 들으니 하이고 정 떨어지는데요 ㅋㅋㅋ
ㅎㅎㅎ~~전대를 속옷 사이에 꽉 붙들어 매서 소매치기는 안당했는데 바가지는 쓸뻔 한걸 동행한 선교사가 받아주었습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몽골 방문기에서 잠시 머물다 갑니다.
넵~~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