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메일 박스를 여니 그냥 괜히 들어 온 것 중 하나에 남대문이라고
하면 민족정기를 손상시키니 숭례문이라고 해야 한다고 훈계조로 써있다.
우리 민족정기는 대관절 뭘로 만들었길래 그 정도에 ‘기스’ 가는가?
필자의 먼저 글 ‘남대문-상식의 허실’ 에서 이미 말했지만
옛날부터 현판에 적기는 숭례문이지만 부르기는 남대문이었다.
실록: 태조 5년(1396 병자) 9월 24일
정남(正南)은 숭례문(崇禮門)이니 속칭 남대문이라..
호박국에 땀낸다고 쓸데 없는 것에 정력 쏟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불탄 숭례문
직접 가서 찍고 싶어도 아직 잘 돌아다닐 수가 없어
친구가 찍어 보내 준 사진인데 볼수록 속 상한다.
그건 그렇고 이번 방화범 보니 나이 먹어 그저 사고 치지 말고
담벼락에 똥칠하지 않는 것도 애들한테 부조하는 일인 듯.
숭례문 복원구상도
불탄 것이 11일 새벽인데 하루 만인 12일에 복원구상도가 나왔다.
기왕에 복원계획이 있었는데 그 도면을 발표한 것 같다.
위 도면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2008.02.12
문화재청은 일제강점기에 숭례문 양측의 성벽이 잘라 내어져 성곽 문루가
당당한 모습을 잃어버린 채 고립됐다며 이번 복원 과정에서 숭례문에
양 날개의 성벽을 달아주는 방안을 서울시와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원래보다 1.5m 가량 올라와 있는 지표를 원상으로 회복시키는 일도
함께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래는 구한말(舊韓末)에 찍은 남대문 사진이다.
이 사진과 위 복원 구상도를 비교해 보니 얼추 비슷한 것 같다.
짝퉁 (?)
국보 1호가 (필자가 먼저 글에서 밝힌 바대로 1호란 단순히 관리번호 일 뿐
제일 중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일반의 정서에는 숫자 이상의 의미가
새겨진 듯 하다.) 불타는 광경을 전 국민이 텔레비전으로 지켜 보면서도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결국 무너지는 꼴을 바라 볼 뿐이었다.
현장에 소방차에 보도진 등등 있을 것 다 있었지만 우왕좌왕 할 뿐
시스템이 전혀 없었다.
하여튼 모두 허탈하다 보니 문화재청이 99 % 수준에서 복원하겠다는 데도
그게 짝통이지 어디 진짜냐 하는 신경질 적인 말이 나온다.
그러나 따지고 들면 그런 짝퉁이 하나 둘인가?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은 산산 조각 난 것을 주어 모았고,
이집트 아부심벨 신전은 아스완 댐으로 수몰되게 생기자 부분부분 잘라 내어
옮긴 뒤 이어 붙였다. 오사카 성도 2차 대전 후 콘크리트로 복원했다.
그 후 일본도 그것(콘크리트로 복원한 것)을 반성하고 있지만.
세계의 문화유산이라는 수원 화성도 대부분 근년에 복원한 것 아닌가?
그래도 유네스코에서 인정한 것은 현대 설계도에 필적하는 도면
즉 성역(城役) 할 때 만든 의궤에 기록과 그림이 정확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불 타기 전 숭례문도 기실 60년대 거의 새로 짓다시피 수리한 것이다.
다행히 정확하게 실측한 도면이 있으니 그에 따라 복원하면 그저 참아야지
뭐 어떻게 하나? 인생 다 그런데.
그러나 분위기는?
아무리 정확한 도면에 따라 복원해도 안 되는 부분이 시대 분위기다.
위 사진은 복원한 경희궁 숭정전 앞에 깔린 박석이다.
저 박석과 경복궁 근정전이나 창덕궁 명정전 앞 박석을 비교하라.
그라인더로 들들 간 것이 도저히 아니잖는가?
위는 광희문 옆 복원된 성곽이다. 그냥 봐도 옛날과 지금 돌이 다르다.
돌 색깔은 말할 것도 없고 다듬은 것을 보라. 엉뚱한 둘을 붙여 놓으니
그로테스크 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저건 아마 박통 때 복원한
대표적으로 무식한 경우로 요즈음은 나아 졌지만 시대 분위기 차이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사진 : 힐튼 호텔 옆 성곽. 위 박통 때 광희문 복원 보다는 좀 낫다.
문을 높인다고 (?)
복원 구상도에 기사가 또 붙어 있기를;
원래보다 1.5m 가량 올라와 있는 지표를 원상으로 회복시키는 일도
함께 검토하고 있다고….
이것이 무슨 이야기 인가? 남대문 성문 옆에 있는 다음과 같이
시굴 흔적을 전시하고 그 옆에 설명이 붙어 있다.
2005년 11월 숭례문 석축 하부에 대한 시굴조사를 했는데 현재의 지반
약 1.6 m 아래에서 석축의 지대석 성문의 지도리석, 박석이 발견했다.
즉 현재 숭례문의 바닥이 원래 보다 높아졌다는 것이다.
복원 구상도에는 1.5m, 남대문 현장 안내판에는 1.6m 다.
이렇게 1.5 와 1.6 차이에 대충 신경 끄고 사는 것이 우리의 특징이긴 하다.
원래 숭례문은 더 웅장했다(?)
따라서 위 구절의 요지는 전차가 성문을 지나가게 하느라고 지표를
원래보다 1.5m 더 높였으니 이걸 원상으로 돌리겠다-즉 까뭉개겠다.
주위를 까뭉개니 결국 문이 1.5 m 만큼 높아져 훨씬 웅장하게 보일 텐데
원래 원형대로다 그런 이야기다.
과연 전차 때문에 높아졌나?
인터넷 논객 중에 이 부분 아주 잘 정리한 분이 있다. 자세한 것은
본인의 양해를 구하지 못해 옮기지 못하나 요점은 전차로 인하여
특별히 바닥이 높아진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아래 사진은 구한말 즉 전차가 개통되기 전 남대문이다.
위 사진과 아래 일제 시대 1920년 대 남대문 사진을 비교하라.
두 사진은 전차 개통 전과 후로 아무리 보아도 거의 1대1 대응이 되어
전차 다닌 뒤에 남대문 주위가 돋궈 진 것 같지 않다.
그 논객은 이를 정교하게 논증하고 또한 문화재 청에 건의도 했는데
다음은 그 중 (문화재청에 보낸 건의) 일부다.
숭례문 성벽복원 및 숭례문 지반제거계획에 대한 의견을 올리고자 합니다.
남대문에 전차선로가 부설되기 이전과 이후의 관련사진자료들을 모아놓고
이를 비교해보면, 전차가 다니기 이전이나 이후나 지표면의 높이는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말하자면 전차가 다니기 이전부터 남대문 통로의 지표면이
이미 높아져 있었던 것입니다. …
그럼에도 문화재 청은 (한번 따져 볼 가치는 분명히 있는 주장임에도)
거들떠 보지도 않고 1.5m 높이는 것을 기정사실화 한 듯 하다.
이 과정을 보며 거대 콤플렉스가 생각난다.
거대 콤플렉스 (?)
아침에 컴퓨터 키고 열어 보면 잔뜩 들어있는 스팸 메일 중 상당수가
페니스 확대 이야기다. 또 유방 확대 광고는 사방에 널려 있다.
아가씨들 안달하는 쌍꺼풀 수술도 결국 눈을 크게 보이려는 것이다.
무슨 뼈를 어떻게 잘라 붙여 신장을 키우는 계획도 있다.
민초들의 이런 저속한 주제 외에 내로라 하는 먹물들의 고상한 구라도 마찬가지다.
…우리민족의 역사 또한 전관(全觀)하여보면 저 광활한 대흥안령 동쪽의
평원을 주름잡다가 끊임없는 저주와 방랑 속에 자신의 영토를 축소해
가면서 한반도라는 조그만 다이애스포라로 밀폐되어온 역사였다….
우리 역사가 광활하지 못하여 엄청 쪽 팔린다 이런 내용이다.
누가 썼느냐 하면 바로 도올 김용옥으로 ‘요한복음강해 ‘ P 46에 있다.
또한 같은 책에 써 있기를
옹졸하기만 한 좌절의 역사
생각해보라! … 조광조의 지치주의(至治主義)도 너무 옹졸하고 조광조에
계보를 대는 향후 사림들의 파벌의식도 너무 협애한 느낌이 든다.
저 광활한 대륙의 기상이 이제 태백산 줄기에도 못 미치는 소백산의
골골에 웅크리고 앉아 …. (도올: 요한복음강해 중)
나는 역사관 때문이 아니라 제목대로 요한복음 때문에 읽다가 이 구절을 만났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이것이 과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석학의 역사관인가?
(대표적 개그맨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스스로는 석학을 자임하지 않나?
그리고 필자도 이전까지는 도올을 상당히 평가하는 축이었다)
해서 바로 반론을 쓸까 하다가 위 수술 후 기운이 없어서 못 했다.
써 보아야 도올이 읽지도 않을 것이고 읽어도 ‘9급이 9단한테 감히!” 할 테지만.
어쨌던 위 도올과 같은 역사관을 가진 사람은 우리 사회에 널려 있다.
널린 정도가 아니라 우리 모두 가슴 한구석에 그런 생각을 가진 것 같다.
얼핏 식민사관을 탈피하는 것 같지만 결국 식민사관의 또 다른 형제에 불과하다.
“옹졸하기만 한 좌절의 역사” 를 버리고 대일본제국 천황폐하의 적자(赤子)가
되자는 것이나, 우리 민족의 웅혼한 역사를 한껏 날려 보자는 것이나
세상을 보는 눈은 서로 같은 것이다.
조선일보에 칼럼 쓰는 사람 있는데 이 양반도 무슨 제국과 황제 나오면
정신을 못 차린다. 고려가 황제를 칭했으면 뭐 어쨌고 북위 황실의 비가
실은 고구려 계통이니 뭘 어쩌자는 말인가?
필자는 도올의 저 광활한 대흥안령 운운 이나 페니스 확대술 이나 다같이
거대 콤플렉스의 산물로 본다. 문화재청이 근거 있는 지적을 무시하고
숭례문을 1.5m 높이려고 밀어 붙이는 데는 거대콤플렉스가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크기로 따지면 우리가 중국을 어떻게 당하나?
우리의 길은 따로 있지 않나?
1.5m 까뭉개던 말던 결정 전에 제발 조사만이라도 충분히 시간을 두고 하자.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