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13. 밑줄 친 (가)에 들어갈 정책으로 옳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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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장단 적소에 있을 때 면포 상인의 왕래가 끊이지 않는 것을 보았는데, 길가는 사람들이 (가)의 효과라 하였습니다. 작년 겨울 서울의 면포 가격이 이 때문에 등귀하지 않아 서울 사람들이 생업을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 (가)에 대한 채제공의 평가, 승정원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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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균역법 ② 대동법 ③ 호포법 ④ 신해통공
정답: ④
* 신해통공(1791)
조선은 고려보다도 상업 활동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여 허가받은 시전 상인으로부터 점포세와 상세를 받고, 왕실이나 관청에 물품을 공급하는 국역을 부과하고, 대신에 특정 상품에 대한 독점 판매권을 부여받았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 사상(私商)들이 종루, 칠패, 배오개(이현), 송파 등지에서 활동하면서 시전의 상권을 잠식하자 시전상인들은 국역을 담당하는 대가로 난전을 단속할 수 있는 권리인 금난전권을 행사하였으나 사상(私商)의 성장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정부는 영세 상인들을 보호하고 물가상승을 야기하는 시전도고 상인들의 폐해를 막고 난전을 양성화하여 수세(收稅)를 확대함으로 국가 재정을 확보하기 위하여, 정조 때에 채제공의 건의로 통공 정책을 실시하여 육의전을 제외한 시전들의 금난전권을 폐지하였다(1791, 신해통공).
① 군역의 폐단을 시정키 위해 영조 때에 균역법이 시행되어 농민은 1년에 군포 1필만 부담하면 되었다(1750).
② 공납의 폐단인 방납의 폐단을 해결하고, 농민들의 부담을 줄이고자 공물을 현물 대신 토지의 결수에 따라 쌀, 삼베나 무명, 동전 등으로 납부하는 대동법을 광해군 때에 경기도에서 시범적으로 실시하였다(1608).
③ 균역법 실시에도 불구하고 군역의 폐단은 사라지지 않자, 흥선 대원군은 호(戶)를 단위로 군포를 징수하는 호포제(동포제)를 실시하였다(18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