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병
사람은 누구나 잊지 못하는 기억이 하나쯤은 있다. 그 기억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을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일상 속에서 그 기억이 드문드문 떠오르곤 한다.
열여섯, 길고 긴 장마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7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푹 찌는 더운 날씨에 창문을 열어두고 잠을 청했다. 한참을 뒤척이다 겨우 잠든 밤에 나는 꿈에서 요정을 보았다. 보자마자 무얼 했었지? 아마 소원을 빌었던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선물을 주세요.‘ 라고. 잠든 지 얼마나 지났을까, 언제나 떠나보내기 아쉬운 잠을 달아나게 만드는 요란한 알람 소리가 울렸다. 잠에서 깨면 방금 꾼 꿈을 잊기 마련이다. 나는 방금 전까지 나의 앞에 있었던 것만 같은 그 요정의 얼굴을 기억해내려고 애썼다. 일곱 시 삼십 분이었다. 알람을 두 개나 못 듣고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다. 늦게 일어난 탓에 여덟 시 이십 분에 준비를 마쳤다.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학교에 늦지 않기 위해 마구잡이로 달린 탓에 아침임에도 더웠다. 흐르는 땀을 손으로 마구 닦았다. 흐르는 땀 때문에 시야가 흐릿한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콧대에 걸리는 게 없었다. 안경을 두고 나왔다. 다시 되돌아가기엔 빼박 지각 확정인 셈이라 그냥 마저 뛰어 학교 정문을 통과했다. 나는 항상 아이들이 등교하기 전 고요한 운동장에서 문구점 싸구려 줄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산책하는 습관이 있었지만, 늦게 등교한 탓에 조용한 운동장이 아닌 등교하는 아이들로 북적대는 운동장이 나를 맞았다. 오늘은 맛있는 급식이 나오지도 않고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도 아닌데 오늘따라 아이들이 들떠있었다. 우리 반 창문에 붙어 기웃대는 다른 반 아이들의 뒷통수와, 반에서 열띤 토론이라도 하는 것인지 문이 닫혀도 시끄러운 소음에 벌써 집에 가고 싶어졌다. 잘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아이들을 헤쳐 문을 여니 왜인지 모를 소름이 끼쳤다. 반에 들어서자마자 그 불쾌한 감각의 근원을 찾을 수 있었다. 내 자리에 앉아 다른 아이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는 어떤 아이. 기시감이 들었다. 꿈에서 본 그 요정이었다. 금발의 머리, 짙은 쌍꺼풀, 긴 속눈썹, 반짝이는 녹안, 백옥같이 하얀 피부. 흐릿한 시야 속 그 아이만 선명하게 들이찼다. 틀림없었다. 꿈을 꾸고 있나? 나는 뺨을 두어 번 내려쳤다. 푸른 눈동자가 나를 빤히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다른 아이들도 그녀를 따라 나를 쳐다봤다. 별안간 내 얼굴에 여러 개의 시선이 겹쳤다. 나의 꿈에 나온 요정이, 지금 내 자리에 앉아 마치 본인이 자리 주인인 것마냥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를 빤히 바라봤지만, 그 아이는 비켜줄 생각이 없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이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시선받는 것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피하는 편에 더 가까웠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입이 자동으로 떨어졌다.
“거기 내 자리야. 비켜줄래?”
“아, 미안 민지야. 자리가 비었길래 앉아도 되는 줄 알았어.“
”내 이름을 네가 어떻게 알아?“
그 아이는 실소를 터트렸다. 그리고는 내 하복 셔츠 위 궁서체로 가지런히 박힌 강민지 이름 석 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강민지, 이름 예쁘네.”
지기 싫어 나도 그 아이의 명찰을 빤히 쳐다봤지만, 시력이 마이너스인 탓에 눈을 이상한 모양으로 찡그려도 보이지 않았다. 집에 두고 온 안경이 그리운 것은 처음이었다. 성인이 되면 라식 수술을 꼭 할 것이라는 생각은 덤.
걔는 정말 엉뚱한 아이였다. 내가 자리에 앉은 뒤에도 내 옆에 자리를 잡아 턱을 괴고 나를 천천히 뜯어보기 바빴다. 오 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나는 차라리 다섯 시간 동안 문제집을 푸는 게 덜 불편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종소리가 울리고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선생님이 반가운 적은 처음이었다. 그 아이는 선생님이 오시길 기다렸다는 듯 냉큼 앞으로 걸어나갔다. 선생님의 안부 인사 몇 마디가 끝나고 그 아이는 본인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자의식 과잉이지만, 그 아이의 녹색 눈동자가 향하는 종착지가 나인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사고쳐서 온 건 아니고, 외국에서 살다가 왔어. 혼혈이야. 한국 이름은 박시현. 외국에서 오래 살다 와서 한국말이 아직은 익숙치 않아. 이름은 부르고 싶은대로 불러 줘. 오랜 기간 동안 머물진 않겠지만 잘 부탁해.“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오바 섞어서 기립박수를 치는 애도 있었고, 혼혈이긴 혼혈인데 한국과 천국이 국적이라 혼혈이라는 터무니없는 소리를 뱉는 애도 있었다.
“음… 시현이 자리는 어디가 좋을까?”
“제가 시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요. 그리고 햇빛 알레르기가 있어요.“
”그럼 민지 옆에 앉으면 되겠다. 동의하지?“
”네.“
옆자리가 비어 있는 몇몇 아이들이 아쉬움 섞인 탄성을 내뱉었다. 기분이 묘했다. 학교에서는 항상 투명인간 취급을 받던 내가 아이들의 부러움 섞인 시선을 한 몸에 받다니. 나는 혼자가 편하단 말이야.
박시현은 쉬는 시간만 되면 짝이라는 이유로 나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나는 반장도 아니고 학습부장도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그 애가 물어보는 것에는 모두 답해 주어야 할 것 같았다. 화장실의 위치라든지, 정수기가 어디에 구비돼 있는지까지. 급식 시간이 되어서는 나에게 밥을 같이 먹자며 붙어왔다. 그 아이는 나에게 급식으로 나온 사과 파이를 먹지 않는다며 밀어 주었다. 먹는 둥 마는 둥 점심 식사를 끝낸 박시현은 속이 많이 안 좋았던 것인지 수업 시작하기 오 분 전에 먹은 것을 몽땅 게워냈다. 뒤돌아서는 버거워하다가도, 다시 사람을 마주하면 멀쩡한 척을 했다. 인형 같은 얼굴을 하고는 정말 인형처럼 행동하는 그 애를 보니, 정말 애쓴다 싶었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박시현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일이 되면 내가 아닌 다른 친구와 노는 것이 더 즐겁다는 것을 깨닫겠지. 다음 주가 되면 인사만 하는 사이가 되겠지. 다음 달이면 남남이겠다. 하지만 나의 생각과는 달리 그 아이는 다음 날에도, 그다음 주에도 여름이라 찝찝할 만도 한데 꼭 내 옆에 붙어왔다. 나는 사람을 잘 믿지 않는다. 나와 천성이 다른 사람에게는 더 그랬다. 어렸을 때부터 이기적이라며 손가락질을 당해왔던 탓에 나도 모르는 새 혼자 더 파고드는 성격이 되었던 것인지 나는 끊임없이 나와 다른 사람을 비교했다. 당연히 나는 모든 인간관계를 어려워했다. 가끔씩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들마저 내 주변에 오랜 기간 동안 머물지 않고 떠나가는 것을 보고도 성격을 고칠 줄을 몰라 포기해야 했던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항상 박시현의 주변에는 사람이 들끓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아이의 일상에 본인의 흔적을 남기길 바랐고, 그 아이는 기꺼이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사람이라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그 아이는 나의 일상에도 마음대로 발을 들여놓고 뺄 생각을 안 했다. 나도 박시현의 바운더리 안에 들어가고 싶은 욕망을 누르고 눌렀다. 누구 탓이냐고 묻는다면, 영원한 건 없다는 말을 인생 모토로 삼는 나의 탓이라고 말할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혈연관계 이외에는 영원한 것 따위는 없었다. 박시현은 체육 시간에만 항상 수업을 빠졌다. 항상 반에 남아 운동장에서 배드민턴을 연습하는 나를 지켜보곤 했으니까. 몸이 약한 것은 더러 알고 있었다. 내가 조금만 빠르게 걸어도 속도를 못 쫓아 목을 잡고 가쁘게 숨을 내뱉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나는 느리게 걷는 습관이 생겼다. 박시현은 보건실을 제 집마냥 들락날락거리고, 점심을 먹은 후에는 항상 이름도 모르는 약을 복용했다. 걔는 끼니를 거르는 날은 있었어도 약을 거르는 날은 없었던 것 같다. 그 모습을 볼 때면 안쓰러운 마음이 범람해 정을 주지 않겠노라 결심했음에도 자주 그 다짐이 무너졌다. 나는 처음 생긴 친구라는 존재를 어색해했고, 걔는 그런 나를 다 이해한다는 듯이 기다려 주었던 것이다.
그 애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노래 부르는 것이었던 것 같다. 공부를 잘하는 나와 달리 걔는 공부에는 영 젬병이었기 때문에 공부하자는 말에 장난스럽게 미간을 구겼고, 호흡기관이 좋지 않은 그 아이에게 무리해서 놀기란 사치였으니까. 사실 박시현은 노래를 부르는 것마저도 벅차서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곤 했다. 그래도 걔는 가끔 학교가 끝나고 나를 데리고 근처 노래방에 데려가 마이크를 쥐여줬다. 노래 취향만큼은 나와 기깔나게 잘 맞았다.
“너 혹시 이 노래 알아?”
“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야.”
“정말? 우연이네. 나도 이 가수 정말 많이 좋아하거든.”
나는 박시현이 부르는 노래를 잠자코 앉아 듣는 것을 정말 좋아하지만, 한편으로는 증오하기도 했다. 몸이 약한 박시현은 노래를 부르다가도 자주 숨이 막혀 힘들어하다가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라는 말 하나에 나조차도 제목을 모르는 그 가수의 수록곡들을 외워오곤 했으니까. 가사를 읽으면서 갸우뚱하는 그 애에게 정이 들었다. 사실 나는 가끔 걔가 거의 완벽하지만 아직은 조금 어눌한 한국어 발음으로 나에게 생소한 단어들의 뜻을 물어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 애가 자주 하는 말이 뭐더라? 아마도 “너는 정말 멋진 사람이야.” 였던 것 같다. 그 아이는 항상 자존감이 낮은 나에게 너는 세상 누구보다 멋진 사람이라며 뇌에 각인시켜 주곤 했으니까. 나는 박시현에게 내가 받은 만큼 돌려주지 못해 줄곧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마음을 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끔 학교 갈 생각에 마음이 넘실댄다는 것.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비집고 나온다는 것. 또 한 번의 계절이 바뀌었다. 지금 날씨에 반팔을 입기엔 조금 춥기 때문에 여름 교복은 옷장 깊숙한 곳에 넣어두고, 인사한다. “내년에 다시 보자.” 대신 긴팔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메었고, 먼지 하나 없는 마이를 입은 후 집을 나섰다. 가을에는 등교할 때 음질 나쁜 싸구려 이어폰으로 귀를 막지 않았다. 대신 바스락대는 낙엽을 BGM 삼아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옆에는 항상 박시현이 있었다. 너의 저주 받은 몸도 가을을 타는지, 증세가 더더욱 악화되었다. 나는 끽해야 그냥 몸이 약한 아이겠거니 싶어 별말 없이 넘어갔던 지난 날들을 조금 후회했다. 박시현은 이제 걷다가도 다리에 힘이 풀려 자주 넘어지고, 느린 속도지만 버거워 가쁜 숨을 내뱉는 일이 잦아졌다. 그렇게 힘들어하면서, 내 앞에서는 여전히 멀쩡하다는 듯 구는 걔에게 크게 서운함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말이 예쁘지 않은 모양으로 튀어나갔다.
“너는 내가 그렇게 못 미더워?”
이렇게 말하면 너는 항상 곧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항상 그 아이의 부모님께 궁금한 것이 있었다. 왜 이렇게 착한 아이가 아픈 몸으로 살게 되었는지, 아무 걱정 없이 뛰어놀 수는 없는 건지. 정말로 물어볼 패기는 없어 마음속으로만 삼키고 삼켰던 말이었다. 지구 온난화가 심하긴 한가 보다. 가끔 TV에 나올 때는 먼 세상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넘겼는데, 어렸을 때의 초겨울과 달리 지금의 11월은 너무나 따뜻한 편이었다. 나는 얼른 겨울이 오기를 바랐다. 겨울 방학에 박시현과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떠다니는 단어들을 조합해 버킷 리스트를 만들면 박시현은 좋다는 듯 엄지를 치켜세워 주었다. 우정 반지 맞추기, 눈 오는 날 눈사람 만들기, 파자마 파티 하기. 겨울은 분위기만으로 사람들을 들뜨게 하기 충분했다. 방학에 놀겠다는 집념 하나만으로 공부를 엄청 열심히 했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겨울이 왔다. 절대 오지 않을 것 같던 눈이 내렸고, 꽤나 많이 쌓여 오들오들 떨면서도 눈을 만지며 장난을 치는 학생들로 운동장이 붐볐다. 박시현은 요즘 근심걱정이 많아 보였다. 밤에 눈을 감아도 잠이 잘 오지 않아 걱정이라고 했다. 장난으로 수면제는 복용하지 말라고 했더니, 눈에 띄게 당황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박시현의 이런 점이 정말 싫었다. 혼자 꾹 참다가 혼자 무너지는 것. 나는 할 수만 있다면 나의 폐를 떼서 박시현에게 붙여 주고 싶었다.
박시현은 나에게 다음 생을 믿느냐고 물었다.
“민지야, 너는 다음 생이 있다는 것을 믿어?”
“음… 그러게. 있지 않을까? 왜?“
”우린 다음 생에도 꼭 만날 거라고. 그냥 말해 주고 싶었어.“
”그렇구나. 무맥락이네.“
”사실 할 말이 있어서.“
”…“
”솔직히 조금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헤어짐 앞에 겁이 많은 나는 이별 선고를 잠시 뒤로 미룬다.
“시현아, 잠시만. 잠깐만 생각할 시간을 줘.”
“…”
“미안해, 말해도 돼. 받아드릴게.”
박시현은 웃는 낯을 하며 담담하게 고백했다.
“내가 희귀병이래. 안 지 조금 오래됐어.“
”…“
”완치가 불가능한 병이래. 이름도 제대로 안 붙어 있어. 웃기지?”
”사실 조금 예상했었어. 너는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할 수 있는 일도 버거워했으니까.“
”어차피 치료할 수 없는 거, 힘들게 투병하면서 격리된 채로 살아가기보다 내가 원래 태어났던 고향을 한 번이라도 더 와보고 싶었어.“
”그렇구나.“
”너는 꼭 아프지 마. 아프면 제재받을 게 너무 많거든. 밥도 꼬박 잘 챙겨 먹고, 이도 꼭 하루 세 번씩 닦아.”
“응.”
“울지 마.”
“안 울어.”
“사실… 한국 들어오는 날 비행기에서 깊게 잠에 들었는데, 꿈을 꿨어.“
”…“
”꿈에 처음 보는 내 또래 아이가 나왔다?“
”…“
”웃기지. 검은 긴 생머리에 보조개가 있고 웃는 게 예쁜 아이였어. 누군지 알겠어?“
”…“
”민지, 너야.“
어떤 문장을 빚어도 생각하는 감정을 온전히 담기엔 무리가 있다. 박시현은 숨을 불규칙적으로 쉬었고, 자꾸만 기침을 했다. 박시현은 이내 홀가분한 표정으로 자리를 떴고, 남은 방학 기간 내내 연락이 없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방학도 끝이 나고, 한 달 동안 입지 않아 조금은 어색해진 교복을 입고 등교했다. 옆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천천히 걸었고, 여전히 이어폰도 끼지 않은 채였다. 나는 쌓아왔던 습관을 원래 자리로 되돌려 놓는 데에 익숙해져야 할 터였다. 운동장을 세 바퀴 정도 돌아 아침 산책을 끝낸 뒤 들어간 교실에서는 익숙한 금색의 머리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안녕.“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응. 너는?“
”보시다시피. 살은 빠졌는데, 얼굴은 더 좋아졌어. 아, 요즘은 잠도 잘 자.“
”다행이다. 걱정했었어.“
“곧 졸업이네.”
“그러니까.”
하나 둘 학생들이 들어오고, 다시금 학교가 시끄러워졌다. 같은 반 친구들에게 잘 지냈냐고 안부 인사를 건네니, 의외라는 듯이 나를 보고 뭐 잘못 먹었냐고 물었다. 반 년 동안 너무 많이 성장해 버린 나를 보며 그 애는 안도의 웃음을 지어 보였다.
졸업식 날이 다가왔다. 학교 앞에 본인의 아들 딸을 보러 온 부모님들로 득실거렸고, 꽃다발을 품에 한아름 안고 있는 학생들로 가득했다. 교장 선생님의 따분한 훈화 말씀도 운동장을 가득 메우는 소음도 아름답게 들렸다. 나는 박시현에게 다가가 그저께 고심해서 골랐던 꽃다발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 애는 여태 본 것중 가장 행복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고마워.”
“난 네가 어디서나 행복했으면 좋겠어.”
“나도 마찬가지야, 우리 사진 찍을래? 기억은 닳지만 사진은 영원히 남으니까.”
“그래.”
짧은 셔터 소리가 울리고, 인화된 사진이 혹여나 닳을까 무서워 재빨리 지갑 깊숙한 곳에 넣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이후에 다시는 박시현을 만날 수 없었다.
‘시현아, 나는 앞으로 더이상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을 것 같아. 기억을 잃고 다시 태어난대도 말이야.’
나는 나의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박시현이 신기루만큼 신비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소원으로 빌었던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선물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선물은 다름 아닌 나의 열여섯 여름과 겨울 사이에 잠깐 존재했던, 감히 값어치를 붙일 수 없는 그 아이를 만나 쌓아올린 잊지 못할 기억일 테니까.
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다음 생에 박시현을 만나기 위해 밤새도록 눌러 적은 이름 위에 다시금 펜촉이 닳도록 펜을 움직였다. 나는 마지막까지 그 아이에게 전하지 못한 말을 곱씹었다. 떠나지 말라는 말은 아무리 또렷하게 전해도 흐트러지고 그 아이도 결국 나의 그리움이 되었지만 함께 하는 모든 순간 행복했던 기억뿐이었다고 입이 닳도록 말해 주고 싶었다. 시현아, 걱정하지 마. 다음 생에는 너를 박해하는 이름 없는 병과 함께 다시 태어나더라도, 내가 꼭 그 병을 고치는 방법을 찾아 병명을 지어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