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고려대학교 장애학생지원센터 사무실에서 1급 시각장애인
김수미(20·영어교육학과 2년)씨가 허공을 응시한 채 두 손을 바삐 움직인다. 앞에 앉은 조교 김지영(30)씨가 이름과 전화번호를 불러주면 김씨가 왼손으로 휴대용 사각 점자판(가로 32칸, 세로 6칸)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송곳 모양의 점필(點筆)로 종이를 꾹꾹 눌러가며 점자(點字)를 쓴다.
일반 명함 위에 시각장애인용 점자를 새겨넣은 점자명함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김수미씨가 만들어준 이 점자명함은 요즘 고려대 교직원이라면 지녀야 할 필수품의 하나가 돼가고 있다.
벌써 150명 이상이 사용하고 있다. 신청자도 이기수 총장부터 학교 앞 의사까지 다양하다.
요즘도 매주 10명 넘게 신청이 들어온다고 한다.
고려대는 장애인을 돕고 점자도 보급하기 위해 지난해 4월부터 점자명함 제작사업을 시작했다.
점자를 잘 아는 김씨에게 도움을 청했고, 김씨는 돈 버는 일은 아니지만 흔쾌히 나섰다.
점자로 인쇄된
EBS 수능 교재만으로 공부,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으며 지난해 고려대 정시 특수교육대상자 전형으로 영어교육학과에 합격했다.
김씨는 시각장애인이지만 학교생활 적응이 빨랐다.
1학년 두 학기 학점도 모두 4.3(4.5 만점)을 넘었다. 문서 파일을 점자로 변환해주는 미니 노트북 크기의 점자 단말기로 시험 공부를 하고 점자 소설책도 읽는다. 김씨는 "여섯개의 점으로 글자를 만드는 점자는 단순히 기호가 아닌 평생의 친구"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학에서 시각장애인의 불편이 없을 수 없었다.
학기 초엔 강의실을 찾아다니느라 어려움을 겪다가 직접 점자 스티커를 만들어 교내 건물과 강의실에 붙이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를 전해듣고 고려대 장애학생지원센터는 건물에 점자 안내문을 붙이고 점자명함 제작사업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