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은 마음의 창이요. 거울이라고 한다. 무계7g, 부피 6.5cm3, 지름 2.4cm의, 동그란 탁구공만한 사람의 눈알은 발생학적으로나 해부학적으로 보아 뇌의 일부분이다. 눈의 발생은 뇌의 일부분(前腦)에서 시작되어 안포(眼胞), 안구(眼球), 수정체(렌즈), 각막의 순서로 만들어진다. 뇌는 전체적으로 단단한 머리뼈(두개골)에 둘러쌓여 있으나 눈만이 바깥으로 뾰쪽이 튀어나와 있다. 분명히 눈은 유일하게 세상을 보는 뇌인 것이다.
두개골을 뇌를 통째로 들어낸다고 상상해보자. 그때 두 눈알이 같이 붙어나온다. 즉 눈은 뇌에서만들어진 것이므로 뇌의 일부분이고, 사실은 눈이 물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뇌(마음)가 세상을 보는 것이요, 반대로 그 눈을 보면 곧 그사람의 마음(뇌)을 읽을수 있는것이다. 다른 말로, '세상을 담는 창'이면서 '마음에 창'인 셈이다.
힘차고 예리하게 눈망울을 굴리는 의연한 젊은이가 잇는가 하면, 사람도 제대로 보지 못할 정도로 초점을 잃는 눈을가진 이도 있다. 우리는 사람의 눈을 보면 그 사람의 지능(IQ)도 대충 짐작할수 있다. 눈은 곧 마음의 창이요. 그 자체가 뇌의 일부이기때문이다. 희망과 기쁨으로 빛나는 눈, 만족과 고마움이 가득한 눈이 있는가 하면 수심과 낙망의 눈, 먹이를 찾는 늑대의눈도 있다. 온화하고 德氣(덕기)가 흘러 넘쳐 나도 모르게 빨려드는 눈이 잇는가 하면 독살스럽고 살기가 뻗쳐 고개를 돌리게 만드는 눈도 있다. 아무튼 눈에는 한 사람의 喜怒哀樂(희로애락)이 들어 있는 것이다.
세상은 보려고 노력하는 자에게만 보이는 법, 우스갯소리 같은 이야기를 하나 들어보시라. 영어에서 눈(eye)라는 단어를 보면 양쪽에 눈(e)이 두개가 있고 가운데 (Y)가 있어 상형문자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e' 가 두 개이니 망정이지, 'e'가 한개라도 빠지면 애꾸가 되고 , 그렇게 되면 물체를 입체적으로 보지 못하게 된다.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잘 관찰해 보면, 우리는 누군가와 스쳐 지나가거나 또는 상대방을 쳐다볼 때 상대방의 왼쪽눈을 먼져 보게된다고 한다. 이것은 우측 통행을 하는 서양 사람들이 관찰한 것이데, 좌측으로 통행할때는 아마도 오른쪽 눈을 먼저 보게 될것이다.
우리는 슬픔에 빠졌을 때 "눈시울이 젖는다"고 한다. 속눈썹이 붙어 있는 부분을 눈시울이라고 하고, 눈물이 씻어 모은 먼지나 세균 덩어리인 눔꼽이 끼는 곳을 눈구석, 그리고 눈구석에는 퇴화된 얇은 근육인 분홍색 瞬膜(순막:깜박막)이 붙어 있다. 조류나 파충류뿐만 아니라 낙타도 이 순막이 발달하여, 눈을 감으면 반투명의 막이 눈알을 덮고, 뜨면 열리게 되어 있어, 커튼이나 와이퍼(wiper)처럼 눈을 보호하는 역활을 한다. 또 물고기의 순막은 물안경 역활을 하지만 사람의 경우에는 순막이 퇴화되어 흔적기관으로 남아 있다.
눈구석의 반데쪽 끄트머리인 눈꼬리는 "눈초리가 매섭다"라고 말할때의 그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서양인에 비해 눈꼬리의 끝이 가늘고 좁아져서 위로 뻗는 것이 특징인데, 눈은 아래에 솟아오른, 발달된 광대뼈 때문에 밀려 올라가서 그렇다. 눈은 비록 밖으로 나와 있지만 그둘레에 약간 튀어나와 있는 뼈의 보호를 받는다. 또 지방이 많이 든 눈두덩이 눈 위를 덮고 있어서 외부에서 가해지는 충격을 많이 완화시킨다. 몽고족은 윗눈꺼풀에 지방이 많아서 쌍거풀이 잘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칼질을 하여서라도 서양인을 닮겠다고 발버둥을 친다. 아무리 칼질을 하여도 유전인자는 바뀌지 않을 텐데말이다.
무언가 위함한 물체가 눈가에 스치면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는 "눈깜박이반사"를 한다. 이는 대뇌와 상관없이 중뇌가 담당하는 반사인데, 응급실에서 중환자의 눈꺼풀을 벌려 전등을 비춰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눈동자가 수축 반응을 보이면 일단 뇌를 크게 다치지 않았다는 판단이 서는 것이다. 반면에 무릎을 망치로 때려보는 것은 "등골반사"를 보는 것으로 , 반응이 없으면 척추에 큰 탈이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
우리는 2~10초에 한 번씩 눈을 깜박이는데, 이때마다 윗눈꺼풀 안쪽에 있는 눈물샘에서 눈물이 조금씩 흘러나와 눈알의 운동을 원활하게 하고, 눈알에 묻는 먼지나 병균을 모으고 죽이는 일을 한다. 눈물을 단순히 0.9%의 염화나트륨(NaCI) 용액으로만 해석할 일이 아니다. 구 속에는 염분 외에도 세균의 가염을 방지하는 항균성분(라이소자임,lysozyme)이 들어 있어 눈을 보호한다. 그래서인지, 실컷 울고 나면 눈이 깨긋해지는 것을 물론이고 콧속까지 청소가 되는 것을 느낄수 있다.
눈물샘에서 나온 눈물이 눈구석 쪽으로 모여 넘쳐흐르면 '닭똥같은 눈물'이 되고 , 눈물의 일부는 눈구석에 뚫려 있는 작은 바늘구멍만한 구멍(淚點, 누점,아래눈꺼풀을 까고 비추면 보인다)을 통해 鼻淚管(비루관)을 타고 콧속으로 흘러 내려가게 되므로 , 알고 보면 눈물과 콧물이 석여 '코눈물'이 된다. 나이를 먹으면 누구나 이 관이 통째로 막혀서 눈물이 코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으로 흘러버리게되니, 그것이 시도 때도 없이 흐르는 '늙다리 눈물'이다. 속된말로 '나와야 하는 물은 안 나오고 쓸데없는 눈물만 흐른다' 고 노인들은 불평을 한다. 하지만 눈물이 부족하면 눈알의 운동에도 지장을 받으니 눈물은 '많아도 탈' 부족해도 탈인 것이다.
그대 갈색 눈동자 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동양인이나 서양인이나 모든 인종의 눈동자(동공)는 새까맣다. 따라서 갈색 눈동자 라는 표현은 틀린 것이다. 나증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눈망울의 저 안쪽에 있는 網膜(망막)은 검고 그 검은색이 눈동자에 비치기 때문에 누구나 눈동자가 검다. 그리고 이 눈동자 둘레에는 눈조리게(紅彩,홍채)라는 근육이 있어서 이것의 수축과 이완으로 눈동자가 작아지고 커짐에 따라 빛의 양이 조절되는데, 이 눈 조리개의 색깔 때문에 동양인과 서양인의 눈 색갈이 다른 것이다. 특히 백인들은 멜란닌(melanin)색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이 홍채도 푸르스름한 색을 띠므로 "프른눈"을 갖게 된것이다. 마찬가지로, 동양인은 결딜수 있는 빛에서도 백인들은 눈이 부시기 대문에 색안경을 자주 쓰는 것이다. 한마디로 눈의 색을 결정하는 것은 이 홍채의 색갈이며 따라서 갈색눈동자 가 아니라 갈색 홍채가 맞는것이다.
홍채의 양쪽에는 흰자위가 있는데 이것은 눈알을 둘러싸고 있는 鞏膜(공막)의 일부가 밖으로 나와 보이는 것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오직 사람의 공막만이 희다는 것이다. 당자이라도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의 눈을 들려다보기 바란다. 놀랍게도 눈자위가 흰동물은 사람뿐이다.
세계 여성들의 요란한 눈 화장의 의미를 조금만 짚고 넘어가자. 눈꺼풀에 여러가지 색을 칠하는 것은 어떤 효과를 노리는 것일까. 눈망울의 가운데는 검고 다음에 하얀 흰자위, 다시 눈 바깥에 색을 덧칠한다는 말인데, 이렇게 하면 눈이 더욱 또렸하게 보이게 된다. 여기에다 긴 솔잎 같은 가짜 속눈섭을 붙이고 그 위에다 초승달 모양의 눈섭을 올려 그리니, 눈이 전체적으로 확 드러나는 형상이 된다. 그런데 듣자하니 요즘에는 그 눈썹 그리는 것이 귀찮다고 땀이 나면 지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먹물(탄고가루)을 바늘로 찔러 넣은 문신을 한다고들 한다. 결론 부터 말하면, 할머니가 되어도 눈썹하나는 무성하고 , 죽어서도 새까만 눈썹을 갖는다니. 어쩐지 마음이 한 번 찌른 먹물이 지워지지 않은 것은 탄소 알갱이가 하도 커서 몸안의 거대 백혈구(대식세포)도 이를 먹어치우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레이져 광선을 쏘아 잘게 가루를 내서 백혈구가 먹어 없애버릴수 있게 하는 것이 레이져 수술인것 이다. 눈에 대해 무심히 생각할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상식정도는 알아야 하겠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흰또끼(집토끼)의 눈은 왜 붉을까? 흰토끼의 털이 흰것은 검은 색소인 멜라닌을 만드는 유전인자가 없기 때문인데(일종의 돌연변이로, 사람도 피부에 색소를 만들지 못하는 백화병), 색소를 생산하지 못하므로 눈의 망막이나 홍채도 까맣게 될 수없다. 홍채는 물론이고 눈동자까지 모두 붉은 것은 망막에 분포한 핏줄이 반사되어 눈전체가 붉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산또끼는 어떨까. 놈들은 털 섹깔이 회갈색으로 , 색소를 만드는 유전인자가 있기 때문에, 눈의 망막이나 홍채가 붉은 색을 띠지 않는다.
동물마다 눈에서 느낄수 있는 밫의 파장은 제각각 다르다.(벌은 파장이 짧은 자외선도 보인다). 사람이 볼수 있는 가시광선이 파장 범위는 400~700mm(나노미터, 1nm는 10억분의 1m)로, 눈앞에 있는 물체에서 반사된 빛은 각막-눈동자-수정체-유리체-초자체)를 지나 망막에서 초점이 맞아 影像(영상)이 거꾸로 맺힌다. 그러면 그림자의 모양이나 위치에 따라 망막의 시신경을 자극하고, 시신경에서 생긴 일종의 전기신호는 시신경을 타고 대뇌 後頭葉(후두엽)의 시각중추에 전달되어 그곳에서 입력된 신호를 판독하게 된다. 이때 걸리는 시간이 짧게는 0.04초, 길게는 0.3초이다. 바로 이 시간이 '순간'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수정체(lens)는 양쪽에 붙어있는 모양체의 수축, 이완으로 얇야졌다(먼 것을 볼때) 두꺼워졌다(가까운 것을 볼때)하는 신축이 일어나서 망막에 물체의 초점을 맞춘다. 이 수정체의 단백질이 응고되어 빛이 난반사를 일으키고 탄력성이 줄어드는 노인성 백내장에 걸려, 어마니가 만들어주신 것은 녹여버리고 인조 플라스틱 수정체를 대신 박아 넣는다. 그래서 왼쪽눈이 '개눈'이 되어버렸지만 실제로는 생눈과 별차이없이 깨끗하게 잘 보이는 신비한 경험을 하였다. 아무튼 이렇게 망막에 맺힌 상은 거꾸로 곤두선 倒立像(도립상)인 것이다.
그런데 시신경이 모인 부분에는 상이 맺혀도 시각영상을 전달하지 못하므로 이곳을 盲點(맹점)이라고 한다.
사람이 갓 태어났을 때는 말도 못하고 걸음마도 못하는 것처럼, 눈도 처음에는 거의 시력이 없지만 5~6세가 되면 어른과 같이 완전한 시력을 갖게된다. 젖먹이들의 눈은 遠時(원시)라서 가까이 있는 것을 보지못하기 때문에 장나감을 눈으로 보지 않고 입으로 가져간다. 그래서 이 시기를 빠는 시기라고 하는데, 눈으로 알아차리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 가려내는 시기인것이다. 알고보면 장난감을 천장에 달아주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그런데 유아들은 자연적으로 가까이 있는 물체와 많이 접촉하기 때무에 그것을 보려고 시도한다. 그럴 때 가만히 보면 아이의 두눈이 안쪽으로 모인는 것을 볼수 있다. 바로 斜視(사시)가 된다는 말인데,아이를 키우면서 그눈을 흉내내다가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자우자재로 '사시눈'을 만들 수 있다.
눈알에는 세 쌍의 動眼槿(동안근)이 있어서 눈물망울을 굴리기도 하고 상하좌우로 움직일수도 있다. 만일 한쪽의 근육이 약해지거나 강해지면 균형을 잡지 못해 눈알이 한쪽으로 치우쳐 역시 사시가 된다. 눈알이 제대로 박혀 있는 것만도 무한히 행복한 일이이라.
원래 사람의 눈은 활자를 읽도록 만들어진 구조가 아니라 , 적을 피해 도망가고 감자를 캐고 짐승을 몰이하는 데 쓰이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눈도 부모의 유전형질을 그대로 이어받아 살아간다. 그래서 다른 동물이 쓰지 않는 안경을 쓰지도 하는 것인데, 강의시간에 농담삼아 아직 안경을 안쓴 사람은 독서를 적게 한 탓으로 창피한일이니 도수가 없는 가짜 안경이라도 당자에 쓰라고 비꼼말을 하기도 한다. 일리가 잇는 말이다. 사람은 외부 자극이 약 90%정도 눈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개만해도 귀나 코에 의존한다)눈이란 생존자체에도 긴요한 몫을 한다. 맹인들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개눈이라도 '잘보인다는 것을 행운 중의 행운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양 눈썹 사이를 눈살(眉間, 미간)이라고 하는 데 많은 사람들이 이 눈썹 사이에 '내천(川)자를 누비며 살아간다. 이마 위에는 가로로 천지인(天地人)을 상징하는 '석삼'(三)자를 푹 찍어놓고, 눈 못지 않게 얼굴근육의 생김새도 사람의 마음가짐이 그대로 드러난다. 오랫동인 양미간을 찌푸리고 살아온 사람은 나이깨나 먹으면 눈살이 굳어 축협마크를 달게된다. "자기 얼굴은 자기가 책임진다"는 말이 백번 지당하다. 아양과 애교가 깃든 媚笑(미소)든, 소리없이 웃는 미소(目笑)든, 자꾸웃어서 눈웃음이 얼굴에 절로 베게 하자. 웃는 낮에 침 뱉지 못한다. 그리고 "소가 웃는다"고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것을 비꼬는 말이고 ,사람 말고는 동물도 웃지 못한다. 얼굴 근육을 "웃음"쪽으로 조절해놓고 살아보자. 울다보면 슬퍼지고 웃다보면 즐거워진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무슨일이 벌어진담. 길가던 골목대장 놈들끼리 싸움이 붙었다. 알고보니 "꼴쳐봤기" 때문이란다. 사실. 쳐다본다는 것은 도전의 뜻을 갖는다. 집에서 키우는 개의 눈을 뚫어져라 내려다보면 단방에 고개를 숙이고 돌려버린다. 두나라 수상이나 대통령이 만날때도 제일 먼저 서로의 눈을 꿰뚫어보아서 심리적으로 제압하려든다. 그러니 눈싸움에서 지면 그 회담의 결과는 뻔한 것이다.
모두 "눈빛'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어릴때 서로 노려보는 '눈싸움"은 어떤 의미에서는 생존의 한 전략이 될수도 잇는 것이다.이렇게 눈도 잘 쓰면 애정의 표현이 되지만 잘 못쓰면 싸움의 원인이 된다.
끝으로 ,눈에는 건강이 들어있다. 눈에 핏기가 도는 것은 뇌가 피곤하다는 것이고, 뇌가 고되다는 것은 바로 전신이 힘들다는 뜻이 아닌가. 건강한 사람의 눈과 병자의 눈은 단번에 알 수 있다. 피곤하면 눈 뜰 힘도 없어진다. 게다가 눈에는 건강 말고도 아름다움이 들어 있으니 그것이 예쁨인 것이다. 얼굴 꼴이 잘 생긴것은 단지 뼈와 근육이 잘 조화를 이룬 것일뿐 절대적인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없다. 눈에 총기가 넘쳐야 참말로 아름다운 것이다. 총명과 명민함이 빠진 미인은 가게 앞에 서 있는 아름다운 '마네켕'에 불과하다.
지나친 것이나 모자란 것이나 모두 좋지 않음을 일컬어 '過猶不及(과유불급)''이라 하였던가. 아무튼 죽으면 제일 먼저 마음의 창인 '눈장위'가 꺼지면서 그 창이 닫아버린다. 인생은 눈뜸으로 시작하여 , 눈 닫음으로써 끝이난다.
첫댓글 눈에 총기가 넘칠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음...마음이 이쁘야 눈도 이쁘겟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