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 교육을 마치고 항공학교에 학술학처에 보직을 받은 나는 회전익 전환반 교육을 받기까지 항공영어, 군사영어, 항공관제 등의 과목을 맡아서 학술학 교관 생활을 했다. 여러곳으로 출장도 많이 다녔고, 보람도 있는 생활이었다.
-그러나 짧은 기간동안 보직이 여러번 바뀌었다.
.학술학처 교관-회전익 전환반 ㅡ계기학과 교관 -행정처장
-항공 감실 행정실장 -육대 -204대대 선임장교 .-15사단 항공 대장 -203 대대장.
‘79.12.12.수.
어언 일년이 지난 지금 항공 아파트 306호에 이사를 했다.오늘 육본에 갈 예정이다.오랫만에 항공 학교에 왔다. 지금부터 적극적으로 병과에서의 개인 발전과 병과의 발전을 위하여 최대한의 노력을 할 뿐이다.
‘79.12.19.수.
내일이 어머님의 생일인데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어 그냥 보내기시게 하다니 정말 한심하다.며느리를 보면 좀더 따뜻하게 식사라도 하시면서 사실 것 같았는데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으니 그냥 홀로 사시는 거나 조금도 다를게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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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1.29.
꼭 1개월 그러나 금년들어 처음쓰는 일기다.하루의 생활이 보람되게 그리고 필요한 일을 하는 것으로 체워져가기를 바라면서 80년대~~79년으 그 해묵은 채증속에 조용히 침전 되어 간 지난 70년대가 가고 영어공부와 육대 그리고 통신 대학 강좌 그리고 또 무엇을 할 것인가.
‘80.2.13.
신임 조종사 선발을 위한 육본 출장을 다녀왔다.
‘80.2.25 월
어제 아내와 같이 산부인과에 다녀 왔다.아내가 임신을 했다고 한다.2개월이 되었다고 ... 여자에게 임신과 출산의 중요성은 자신과 아기에게 모두 중요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지난 토요일 조종사 면장 시험을 치고 왔는데 결과가 궁금하다. 어제는 고교 동기인 정승보 소령과 같이 저녁을 먹고 왔다. 13년전에 함께 했던 교정을 떠난이후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80.2.26.
김형태 -멋 없는 사내.그가 왜 나와 같은 배를 타고 가게 되었는가
미워 하는자를 위해 기도 하지는 못하지만 모른체 하고 살아야지
4.23.수
회전익 10#선발을 위하여 서울로 출장을 가려고 마음을 먹고 있는데 잠이 들지않는다.1시가 조금 지나서부터 일어나서 라디오를 틀어두고 듣고 있다.가끔 남이 잠든 틈을 타서 이렇게 라디오를 듣는다 .어머님의 지금 생활을 생각하면 아내의 말대로 아들 딸의 구분보다 자신들의 생활을 찾는다는 것이 중요한 것같다.
4.28.월
회조종 7기, 500MD의 과정과 고군반 #14기 항공 영어 과목이 끝났다. 한 단원이 끝났다.
‘80.9.18.
지루한 하루 였다. 살포식 지뢰 교범을 번역하여 교수부장(신승언 대령)에게 결재를 득했다. 새로운 인간 관계가 계속되고 중단되고 ,
수색 및 구조에 관한 원고를 만들어 교지에 게재...
‘80.9.20.
고정익 조종 86기의 교육이 끝나 간다. 지난 11월부터 시작한 교육이 어언 1년여가 되어 간다. 고#85기, 회#6기,8기,9기, 고# 86기,
회전환 49기,고군# 14기~15기, 제법 연륜이 늘어가는 교관 생활,
지난주에는 교실에서 촬영한 사진을 그들(86기)이 가져왔다. 그것도 기념이 될 것이다.
‘80.9.30.
9월이 다 가고 있다.Kathlen,Paker라고 하는 San Antonio에 살고 있는 교포 아주머니로부터 편지가 왔다. 배추씨를 부쳐 드린 결과의 답장이었다.
1980.10.24.(음력 9월 16일)
자윤이의 남동생 정원(禎原) 이가 태어났다. 체중 4.1KG의 건강한 아들이다. 자윤이도 태어날 때 체중이 4.1Kg였었다.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를 바란다.
1980.12.26
로마인이 물었습니다.
“여왕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느냐?”
시녀가 대답했습니다.
“ 예 거룩하고 위대한 이땅의 마지막 통치자 답게
그렇게 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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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2.19.
‘80년 10월 27일부터 ’81.2.14일까지 16주간 회전익 전환반 50기 교육을 마치고 다시 항공학교 교관으로 남게 되었다.그간 갖가지 사연 속에 지난 16주간이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 2월 18일 청주에 가서 정관 절제 수술을 받았다. 아내와 자윤이의 옷을 하나씩 사왔다. 시뮤레이터 교관 요원으로 ,그리고 고군반 항공 관제과목 교관을 겸하고 ,다시 UH-1H ,계기비행 교관 요원으로도 근무를 하게된다.병과를 위해 모처럼 봉사할 기회이긴 한데 ,육대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또 한번의 고비가 있다.
<順天者 存이요 逆天者는 亡 >이란 말 대로 순리를 따를 뿐이다.
‘81.4.27.월
학교에서 귀가 길에 한 경수 대령을 만났다.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78년도에 3군 본부 항공대에서 행정학교 유학장교반 교육을 가기전에 지휘관으로 모셨던 2개월여의 기간 동안의 짧은 기간인 데도 나를 인정 해준 분으로 늘 고맙고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겨우 그렇게 살고 갈 것을 ~” 하고 남에게 그런 소리는 듣지 않고 살아야 할 텐 데 ~~~
‘81.6월 15일. 월
오늘 항공 학교 행정 처장으로 명령이 났다고 한다. 오랜 세월 그렇게 말단으로 만 굴러 다니다가 이렇게 참모로 서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되었으니 책임을 느낀다.
그러나 주변에서의 모든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결정된 일이니까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81.7.12.
80만원을 주고 오토바이(125CC)를 샀다,여러사람들이 말렸지만 행정처장 근무를 하다보니 출퇴근 버스를 못타고 늦게 퇴근하고 일찍 출근하다보니 불편하여 사기는 했는데 안전에 대한 우려를 많이들 했었다.
‘81.7.30.
대전 교구에서 실시하는 Cursillo 남성 제 28차 교육을 왔다. 정구 라켓을 가지고 왔는데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짓궂은 선배들의 말을 듣고 놀림을 당한 것이다. 처음 강당에서 십자가의 길,묵상을 마치고
*~ 너 자신의 생활을 영화로 담아도 좋은가? 그리고 그 영화를 친구, 아내,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상영해도 좋은가?
염려말라 그 영상, 영화를 주님은 이미 다 알고 계신다. 시작도 끝도 없는 ~~긴 생활의 삶 시계도 없다. 그리고 생활 가정 ,명예욕,진급,출세도 다 잊고 며칠을 묵상하는 생활을 즐겨보리..
절대 침묵, 어렵고도 드물었던 생활이다.저녁 식사는 별미였다. 두 그릇을 먹고 묵주의 기도를 그리고 몇시?
화장실에서 냉수마찰을 하고 침대에 누워 일과를 정리한다.
‘81.7.31.
아침 일찍 눈을 뜨니 사방이 고요하다.세면,양치질후 샤워를 하고 성당에서 잠간 기도후 다시 침대에 누웠다.종소리에 기상,성당에 모여 1시간여 묵상,기도 후 지금 침실에서 식사시간을 기다리며 일기를 쓴다. 절대 침묵으로 일관한다. 그리고 조용히 성찰을 한다는 이런류의 생활은 처음이다.72시간의 침묵속에 진행되는 생활,저녁 아침 종일 바쁘게 보냈다.
.8.1.토.
학교에서 표창 심리가 ..마음이 편하다. 낮에 받은 편지
1.아내의 편지에 뜨거운 사랑을 믿음은 용기를 얻게된다.
2.또 천순마(504호)
장 마리아(509호)
김 인수(토마스)의 편지도 감사합니다.
율리안나 Thank you!
8.2. 일요일
7.30~8.2. 3박 4일간이 Cursillo 교육의 끝남.
새벽 잠속에서 들려오는 찬송가 (마냐니따?) 속에 잠을 깨니 신부님께서 예수님 상을 모시고 방으로 들어오셨다. 얼떨결에 꿇어앉아 성호를 긋고 그 발에 키스를 하고 문밖을 나서니 온통 촛불을 든 사람들이 도열하여
“ 잠을 깨세요, 일어 나세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그 속에 하나,둘,셋 지면이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 했다.
박신자 농구선수가 러시아와의 경기인가를 대구 수성극장에서 뉴스시간에 영화상영 전에 보면서 가슴에 차오르는 감흥을 어쩌지 못하여 눈물을 흘렸던 일 이후 처음이었다.
“주여 ! 나도 언젠가는 그들에게 다음 후배 꾸르실료를 받는 이들에게 이런 봉사를 할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81.12.13.
성당에 다녀왔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말처럼 천천히 그리고 빨리도 지나간다. 어머님이 연세가 62세인데도 무슨 염려가 그토록 많으실까?
그는 마치 정원이가 노는 것을 방심 못하는 나의 마음과 같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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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년 연말에 도미 군사 유학을 마치고 항공 학교에 전입을 와서 학술학처 교관으로 근무를 1년 정도 했는데 회전익 전환반 입교를 하였다. 그리고 교육이 끝나고 바로 교수부 소속 계기비행학과의 교관으로 보직을 받았는데 그 것도 겨우 4개월 정도 되었는데 다시 행정부 소속의 행정 처장 보직을 받았다. 행정처장이지만 그 밑에는 정작과와 인사과 그리고 경리과가 속하여 있어서 학교의 업무 중에서 3분의 1을 처리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행정처장으로 보직을 받은 지가 6개월이 체 되지 않았는데 다시 육군 본부 항공 감실 행정 실장겸 항공감 보좌관으로 명령이 났다. 일반적으로 장교가 한 부대에서 한 개의 보직을 받으면 최소한 1년 반에서 2년을 하는 것이 정상적인데 나의 경우는 다른 사람들이 하고 싶어 해도 가기가 어려운 보직이었던 행정 처장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 당시 내가 소속된 교수부와 가게 될 행정부 간에 나의 보직 변경에 따른 상당한 논의( 못 보낸다고 하는 쪽과 보내 달라는 쪽의 입장 차이 때문에) 가 있었는데 결국은 그렇게 결정이 되었고 그렇게 어렵게 이루어진 그 보직기간이 기간이 다 차기도 전에 다시 또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다.
행정처장 보직 6개월 만에 육군 본부로 가게된 것은 인사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상당히 무리한 인사였는데도 항공 감실의 특별한 지시로 육군 본부의 인사 실무자가 자필로 그럴 수밖에 없다는 보직 변경 사유를 참모총장에게 보고하여 승인을 얻고 이루어진 인사 명령이었다. 도미 유학 기간 6개월여 아내와 떨어져 살았고 겨우 1년반 만에 또 서울로 혼자 가게되니 어린 자윤이와 정원이 그리고 아내와 떨어져 살게 되었다.그래서 주말이면 아내와 두 아이들이 있는 조치원으로 내려 갔다가 월요일 새벽에 서울로 올라오는 그런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1982.1.10. 일.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병과장 송 장군을 모시고 항공 감실 행정 실장 겸 병과장 보좌관 근무를 하게 되었다.
‘82.1.9.부터~~~Until the end of this year..
'82.1.25.월
어제 조치원에 갔다가 야간 열차로 서울로 왔다.지난 1월 9일부터 2주간의 육본 근무를 마치고 3주차 근무가 시작되었다.미묘한 관계로 며칠을 보내고 이제는 점차 본격적으로 업무를 수행 해야 하겠다. 육대 입시 준비도 해야 겠다. 아내에게 전화를 하고 나서 공부를 시작 한다.
‘82.1.26.화
오찬에 한경수 대령을 초청하여 감,여단장,31,61 여단 참모장, 배대령, 기획 ,안전 과장 등 10여명의 다령이상 이 모여 육군 회관에서 점심을 먹었다.전역 기념패를 만들고 식당을 예약하고 ....
아파트가 3월이나 되어야 가능할 것 같다는 말을 듣고 는 조금 고생 스럽드라도 참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몇 달을 위하여 두 번 이사를 할 수도 없고 .군사 영어반 시절에도 성남으로 5개월을 위하여 이사를 했을 때도 무척 고생을 했는데 ,아내의 입장에서는 무척 힘이 들었고 고생을 했는데 말이다.
‘82.1.27.수.
방공포 사령관이 왔는데 부관 편에 군영반 교육을 을 같이 받았던 정상쾌 소령의 소식을 들었다.저녁에는 아내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자윤이 목소리듣고 정원이 목소리를 듣고 그리고 다음에는 아내의 ~~
‘82.1.28 목.
회의, 회의 의 연속이다. 내일은 학교장 이.취임식이 있을 예정이다.
‘82.2.8.월
감실 근무 1개월이 되어 간다. 타향이라고 할 까? 하루 하루가 어렵게 되어간다. 자기의 결점을 .. 겸손하자,겸손하자 겸손,겸손,
건방지다는 말을 듣지말자.
‘82. 2,9, 화
자가용 정비를 했다.
*항공 학교 행정처장 근무를 하면서 출퇴근 버스를 타고 다니다가는 업무를 제대로 할 수가 없어서 오토바이를 샀었다. 그런데 갑자기 육군본부로 오게되는 바람에 그 오토바이를 6개월정도 타다가 다시 다른 동료에게 반값으로 넘기고 서울로 왔는데,육본에 와서도 마찬가지로 출퇴근 버스를 타고 다녀서는 감실 근무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아침에는 일찍 출근을 해야 하고 저녁에는 항상 퇴근 버스가 나간 다음에 늦게까지 일하고 나가다 보니 버스를 3번 네 번 갈아타고 퇴근 해야 했디.한 두달동안을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다가 도저히 힘이 들어서 ...
아내가 그당시 상계동에 군인 공제회에서 분양하는 작은 아파트를 분양을 받아서 분기마다 들어가는 할부금을 준비해 두었었는 데 그 할부금 1회 납입금을 가지고 출퇴근 용 중고 자동차(대우 맵시 1,300 CC)를 한대를 샀었다. 중고를 샀더니 여기저기 잦은 고장이 나서 고쳐 가면서 사용 할 수 밖에 없었다.
‘82.2.10. 수.
월급을 탔다.40만원 ~ ,생활이 그대를 속이드라도 ...
권투 중계를 보면서 국민 모드가 기뻐하고 .Peace in mind 하고 ..
‘82.2.15.월.
하루가 긴긴 날이었다. 새벽 3시반에 일어나서 새벽 열차를 타고 서울로 왔다. 퇴근이 18시 30분이었으니 15시간의 노동에 시달렸다.
중령이 되어야 그다음에 대령이 되겠지.
어머님의 편지와 아킬로 신부님의 편지가 함께왔다. 어머님은 편지를 자주 않는 아들이 서운하셔서 편지를 하셨나보다.
남소령,진소령, 송,김 그리고 ..그들은 제대를 준비한다고 한다. 천대위도 마찬가지다 진급이 어려우니 말이다.
‘82.2.23.화.
금일 참모 총장이 항공 여단을 다녀갔다.별로 큰 문제점은 없이 지나갔다고 한다. 우리 세대의 가장 큰 보람된 나날은 神의 창조 목적에 부합되는 삶을 사는 길 ,그것인데
‘82.3.2. 월
하루가 갔다. 덧없는 하루가 ..9만여원의 행방이 묘연하다. 5~7만원의 빵꾸도 어려운데 ..더구나 9만여원의 결손을 초래 하다니 (*감실 운영비를 관리하던 행정 실장이라서 ..공금을 사용하고 결산을 하였는데 ..)
‘82.3.17. 수.
오늘 특전 사령부에 다녀왔다. 감님과 김대령과 같이 .금년에는 진급 방침이 어떻게 될 것인가. 내년에는 경쟁이 더욱 심해 질 텐데...
1월 9일부터 서울로 올라 왔는데 지금까지 아내가 있는 조치원에 10번을 오르 내렸다.1월에 3번 (16일 ,23일,30일)
2월에 4번(6일,13일,20일,27일), 3월에6일,13일 ....생활이 무엇인가.
사랑이 무엇인가.
‘82.5.13.목,
하루가 덤덤하게 지나간다. 방송 통신 대학 1차 숙제가 대학 신문에 공시가 되었는데 그것을 모르고 근무를 열심히 한답시고 나날을 보냈으니
5,16일 이사를 예정 해놓고 이제 3일 후면 이사를 할 텐데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지낼 것인가 앞일을 항상 렴려 하면서
‘82.5.28. 금
배가 몹시 아프다.3~4일이 경과 했는데도 부대내의 약방에서 약을 사먹고 어제는 본사 의무실에 다녀왔는데도 ~가끔 가끔 아픈 배의 이 통증은 자꾸 마음에 두려움 같은 것을 준다.
왜 사냐면 웃지요 생을 즐겁게 영위 할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요?. 분수를 알고 자족 할 줄을 알면 마음이 근심이 없어지겠지.
‘82.9.4. 토.
시간과 같이 잘 간다고 어울리게 할 수 있는 것은 ?
지금 36세의 소령 ( 송장군의 손으로 기록된 ) 잠재 역량 평가서가 오늘 인사 참모부 진급과에 제출 되었다. 차감과 감님의 추천으로 선발이 되어 감실로 오게 된 것은 정말 잘된 일이다. 항공 학교에서 보낸 2년 간의 생활 ,교관 1년, 행정처장 7개월.그리고 계기학과 교관 겨우 3개월,
금전적인 문제로 가끔 아내와 묘한 신경전을 벌린다. 가엾은 여인 ,그대들의 인생은 타이로 정해지는 경우가 많은 데 내가 많이 양보를 한다. 책을 읽자.
‘82.10.15.금.
어제 이정부 중령의 부인이 운명 했다고 한다.5~6개월을 병고에 시달리다가 바로 우리집 아래층에서 살았는데 .신말업 장군의 방에 다녀왔다. 옛날 30사단 G-3시절 내가 군단장을 모시고 가서 만나고 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일반 대학 야간 위탁교육을 받을 길이 있게되기를 희망하는데 대학,그리고 대학원도 꼭 했으면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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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1.14.금
선현들의 유언을 읽었다.“당신은 조국과 민족 앞에 어떤 유언을 남기겠는가?” 뜻깊은 말이다. 생을 관조하고 멀리 앞을 내다보는 것 그것이 없이 그냥 하루의 생활 그 자체만에 심정을 다 쏟는 철없는 생활을 하는 자도 죽음을 앞두고는 철이든 말을 하고, 날 짐승도 죽을 때는 고운 소리로 지저귄다 하는데
가족들의 모든 것이 다 내 한 인간에게 달려 있다는 생각이 주제넘은 것인가 그들 모두에게 하느님이 가호가 있어야 마음에 든든한 위안을 찾을 수가 있는데
‘83.2.3.4.
<바다 >
밤 하늘에 별 빛나고
멀리 서치라이트 민족의 비애를 되씹고
병사는 BMNT, EENT를 이해 하였음을 말하더라
그대여!
이몸은 10년하고도 3년전 울진 ,부구,죽변등대 아래
밤 파도 소리 벗하며 1년 이상을 M-16소총을 품고
모래 톱을 거닐면서
실의와 회한을 악물고
백사장에 천지,단군,화랑이라는 태권도 무예곡선을 그렸던 사람이라네
논산 훈련소 5중대 2소대 훈련병이었던 나이 젓가락 군번 <1 1 9 6 2 3 6 5 >
병사여 ! 그대 가슴의 그 Dog-Tag Number는 나의 군번 뒤에 100만명쯤 지나간 다음의 군번이라네
홍소령 김대위 김중위 박소위
소곱창 안주에 진로 소주
중대장은 소대장이 넷이나 딸린 Commander라네 박소위!
밤길
항공 정비병 생활에 추억을...
한잔의 커피 윤용웅 중령
慈允이의 신을 사고 싶었던 나는 그것을 해냈다.
2박 3일 고잔,17사단 102연대 1대대 3중대 3소대
해안경계 동참 근무후.-‘83.2.6. 최 해 필 .-
‘83.2.8.
눈이 내렸다.
새벽 뇌성과 함께 내린 흰눈
첫 눈은 아니었지만
전화 그리고
서울에 오래 있고 프다는 생각?
인간의 일생은 만남과 헤어짐 석별에의
정,추억-기쁜 것 ,슬픈 것
첫눈이 오는 날은 예측 못하리
인간의 만남 이별도
‘83.2.12. 토,
음력 설이 내일인데
이제는 설날의 기다림도 설빔에 대한 희 망도 식어져 버린
옛날의 추억에 지나지 않고
늘봄- 항상 봄을 연상케 하는 일
나이는 들어도 마음은
身老 心不老?
옛 사람의 말이 느껴지는 구나
神曲의 저자 단태 나 그리고
그 주인공 -Beatrice.
한용운,조국애
날카로운 님의 키스는 내 운명의 ,인생의 무게를 Return
나에게는 그런 정열도 없다네...
‘83.2.13.
음력 설날 어머님 모시고 오랜만에 같이 보내는 설날이다. 자윤이 정원이도 무척 즐거운가 보다. 이제 세월이 흘러서 설빔을 기대하는 시절도 지나가고 항상 필요 할 때 옷을 사입고 음식을 장만하여 먹는 때가 되었다.
‘83.3.1.
정원이 자윤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세월의 빠름을 새삼 느낀다. 결혼 6년이 지난 지 4개월 ,<過則 勿憚 改-허물을 알면 고치는 것을 꺼리지 말라> 쉽지만 어려운 말이라고 생각된다. 하늘의 새도 먹고 자고 할 수 있게 하시는 하느님,너희들을 먹이고 입히지 않으시겠는가?
‘83.4.20.
육군대학 입교와 진해로 이사를 ..
아침에 동빙고에서 통운 차 2 1/2톤트럭으로 진해로 왔다. 여좌동 101번지에 방한칸을 얻어 가족을 옮기고 나는 라 관사 19호 B에 짐을 풀었다.
人生如轉也
열심히 공부를 하고 그리고 다시 새로운 생활을 해야 겠다.
‘83.5.9.
제 3주차 육대교육 첫날이다. 길게 느껴지던 도미 유학 첫날의 느낌이다.미지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무한한 호기심과 욕망과 그리고 인간관계 아내의 고생, 철부지 아이들, 자윤(慈允)이와 정원( 禎原)이 그들에게 진해 생활에 대한 추억은 어떤 것일 까? 오늘이 자윤이의 5주년 생일인데 시험 때문에 음력으로 4월 3일 (15일)에 하겠다는 아내의 마음에 감사를 느낀다. 어머님은 지금? 바쁜 나날을 보내시겠지. 준영이 귀주 3남매의 성장 너무나 군인의 생활과 인정, 가족, 멀기도 하다 가야 할 공부의 길이
‘
‘83.5.15.
過則勿憚改?
자윤이 의 생일이 83.5.9.5주년인데 음력 4월 3일 오늘이다. 생일을 그냥 넘겨 버리지 못한 아빠의 마음 자윤아 오늘 너에게 꼭 약속을 지키고 싶엇다.정원이는 잠을 안자고 아빠를 아쉬워 하는데 공부를 한다고 부대에 들어와서 이렇게 하루를 반추하고 있다, 이사운 소령과 같이 점심을 하고 왔다.
‘83.5.16.
저녁을 먹고 21시 50분경에 부대로 공부를 하러왔다. 애내와 자윤이,정원이가 자는 모양을 보고 있노라니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
.‘83.5.21.토.
제 5주차 교육이 시작됬다.11주라면 이제 1/3은 니난 셈이다.
“과즉 물탄개(過則勿憚改) 허물을 알았으면 고치는데 서슴치 말고 잘못을 고쳐야 한다.”
信仰 生活,
人間事, 進級,
삶 그리고 모든 것 ,어느 신부님이 --“ 할말이 없습니다.” 그게 유언이었다고 하니 그런 삶은 뉘우침이 없는 삶이었을까?
‘83.6.2. 목
1-1과정 시험 결과가 나왔다.B 학점 서열이 상이었다.(164명중에 서열이 27등이었다.) 항공 가족 부부동반으로 진해에서 수복 식당에서 하고 왔다. 열심히 해야 겠다.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
‘83.6.26.일. *정원이가 이마를 다쳤다.
예정대로 늘 일요일에도 10시까지 BOQ에서 공부를 하다가11시경 아내가 아이들과 살고 있는 밖에 있는 집으로 가는데 , 14시 30분경 아내가 비오큐로 왓다. 점심 시간이 지났는데 오지 않아서 왔다며.아내와 같이 집으로 가니 정원이가 길바닥에서 울면서 졸고 있었다. 점심을 먹으려 하는데 정언이가 마당에서 SingSing이라는 놀이기구를 타고 놀다가 평상 모퉁이에튀어나온 못에 이마를 부딫쳐서 1센티가량 깊이로 상처를 입어서 급히 택시를 타고 성모병원에가서 3바늘을 꿰메고왔다. 안전, 어린이들이 자라고 놀때의 환경이 정말 중요하고도 어렵다. 하느님 펠릭스의 건강을 지켜 주십시오.
‘83.8.4.
어제 Last.Exam이 끝났다.9일 종합시험을 보고나면 끝이다. 정말로 기인 여름,어쩌면 나의 생애에서 가장 길었던 여름이 될 것 같다. 끝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 하다고 생각한다.
‘83.8.6.
서울에 다녀오다. 곽상하대령(61단장)을 만나고왔다.육대 졸업후 가야할 보직 문제인데 무엇디든지 ,어디로든지 --- 여단장과 송장군 방대령 등의 사이가 좋지않아서 불편 했던 탓으로 내가 여단장의 미움을 받고 잇다고 .. 그러나 김철응 대령과 양상현 중령은 나를 좋게 평가를 한다는 소식은 반갑다.
人間 萬事 塞翁 之馬 라고 했지.
‘83..8.29.월
8월 19일자로 1항공 여단 61항공 단 204 항공 대대로 명령이 낫다.22일 날 홍천으로 왔다. 23~25 3일간 시간을 내어 서울에 갔다가 다시 26일 동빙고에서 홍천으로 이사를 했다. 동빙고에서 진해로 이사를 갔다가 다시 동빙고 아파트로 올라왓다가 다시 홍천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를 오던 날 돍잔치를 하는 부대 간부집에 갔다가 토요일 하루 출근하여 근무를 하고 오늘 첫 출근을 했다.
‘83,9,12,월
정원이가 자라는 모습이 날로 다르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것은 같은 이치인데 내려가듯 흐르는 정을 거슬러 흐르게 하겠는가
책과 사색과 삶과 신앙을 위주로 살자.
‘83.10.22.토( 음력 9.17)
오늘 내 37주년 생일이다.장도호 이은상의 송별회식이 그리고 백만불이라는 생맥주집에서 회식. 인생의 길이 이렇게 허무할 xpse 10월 27일 ~ 11월 4,5일 간 소령 중령 진급 심사기간이다. 내 인생의 방향이 그 결과에따라 정해진다.whethere I can be selected or not as a LTC. Oh God ! less me and my family !
'83.11.4.
요한 비안네가 중령 진급이 되었다.
단 인사과장 이은상 소령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진급이되었다고 .
‘83.11.6.
하느님 지금부터 열심히 근무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가질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 그리하여 제가 처한 조직이 즐겁고 능률적으로 구성원 전체의 목적 달성에 기여 할 t 잇는 그런 구성원으로서의 필요한 자질과 소양을 쌓는데 개을리 않도록 열심히 살게 하여 주소서 아멘!
‘83.11.15.화.
병과 대령 진급 발표가 있었다. 내일은 서울에 다녀 오기로 햇다.
‘83.11.18. 금
엊그제 수요일 서울에 다녀왔다. 61단장,1항공 여단장을 만나고 감실에 들어갔는데 글세 그 배라는 사람 그 배라는 놈은 사람이 기분을 망치는 불량배였다. 지금부터 그놈을 망각의 그늘에 묻어버리자,어렵던 엣날을 생각하면 오늘의 모든 것은 별것이 아니리, 열심히 모든 것을 위해 노력하자 .UH-!H 에 관하여도 열심히 노력하자.
‘83.11.25. 금
황혼이라는 한국영화 걸작 선을 보앗다. 지금 세대를 정말 잘 표현한 영화였다. 어머님 께서는 지금 무엇을 하고 게실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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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1.1. 일
오늘 신정,무엇을 하던, 성당에 가도 어디를 가도 인간이 근본적 감성은 천부적이라 고칠 수 없는 것이겠지만 외과의사의 처방으로 수정, 치유가 가능 한것일까?
조용히 한해를 바추하면서 새해에는 무었을 ~임이 부르시면 말없이 가오리다.무엇을 하면서 ~창작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여 나의 화술을 계발하고 명상을 거쳐 지상의 아름다움을 기할 수 있는 작업을 시도하자.
‘84.1.17. 화.
**부하를 다스리는 길
-4 輕.
1.땅은 말을 가볍게 여기고
2.말은 수레를 가볍게 “
3.수레는 사람을 가볍게“
4.사람은 전쟁을 가볍게‘
-2 重
1.용감하게 싸우는 자에게 중한 상을 내리고
2.비겁하게 도망가는 자에게 중한 벌을
-1信
상기 2중을 믿음직스럽게 행하면 순리
5 美德
1.은혜를 베풀면서 낭비하지 말것
2.수고를 시키면서 원망을 받지 않는 것
3.가지기를 바라면서도 욕심을 내지 않는 것
4.태연 하면서도 교만하지 않는 것
5.위엄이 있으면서도 사납게 굴지 않는 것
* 훈련을 철져히 시키고 적재 적소에 배치하라.
‘84.1.18.수.
20사단 시범 지원을 다녀왔다.금년진급자 (중령)9명중에 대부분 새로운 보직으로 옮겨가고 나만 혼자 남았다. 내년 4~5월까지만 있다가 갔으면 차라리 낫겠다. 배창렬이그자식 이 장난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모르겠다.
忍一時之 怒면 免 百日 之憂 라
사람의 한평생이 그렇게 변하게될 까? 내일은 또하나의 변화가 있겠지 .그리고 새로운 생활의 변화.21일 출석 수업,30일 귀대 31일 용인으로 이동-점검관으로 근무.
새로운 환경에서 변화하는 모든 것에 대처하는 의연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를 용서 하자.
‘84.1.19. 목
동계 내한 훈련을 위하여 부대 전 병력이 출동 하였다. 나는 잔류 대장으로 남았다. 저녁을 먹고 부대에 남아서 훈련 현황을 관찰하고 내일 모래 출발을 하는 휴가--
동생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8년 결혼 생활동안 모아둔 돈 전부를 빌려 달라고 하는 내용이었다. 아내는 돈의 많고 적고가 문제가 아니고 남의 돈 전부를 빌려 달라는 것은 지나치다고 했다. 철부지들 같으니라고, 모든 것은 생각대로 되지를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가.
‘84.1.21~23.
방송 통신 대학 출석 수업차 경주에 왔다.
‘84.2.6. 월
기인 출장끝에 귀가.인심의 향방이 의 심스러울 때가 있다.아내와의 언쟁은 없는 방향으로 지내자.피로와 아이들의 교육문제로 자주 아내와 의견대립.
장교들의 단견에 마음이 따갑다. 내가 대위 시절에는 그렇게 근시안적인 장교는 아니었다. 3성 장군의 전속 부관으로서의 생활에 최선을 다했는데.
시간의 활용--성공의 비결.
‘84.2.14.화
장교들의 사고 방식이 자꾸 소극적이고 개인주의 적으로 변하고 있다. 원주 정비 비행을 다녀왔다. 지난 1월에 PIC-pilot in command.명령이 내려왔다. 그리고 SOLO,야간비행,그리고 오늘 정비 비행을 다녀왔다.10여년만에 UH-1H 조종사로서 구실을 다했다. 의의를 찾는가? 완급을 ...
‘84.2.20.월
서울 비행장에 작전 대기를 다녀왔다.곽대령 관사에 다녀왔다.저녁엔 원통-미시령-속초-원주-귀대의 장거리 야간 항법을 했다.
<적게 말하고 많이듣도록 신은 2개의 귀를 주고 1개의 입을 ,
그것도 귀는 늘 열려 있고 입은 다물게 제조(?)되었다>고
‘84.4.12.
옛날 고등학교 선생님으로부터 회갑 기념문집 한권이 부쳐왔다. 재학생 시절 보다 졸업후에 1년간 청강생으로 있으면서 그 분으로부터 많은 정신적 위안을 받았던 분이었다. 겸손하고 자상하셨던 그분의 생활을 본받고 싶었다. 책을 읽는 습관을 계속 기르도록 노력하자.
‘84.4.14.토
만상이 고요한 가운데 나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지금 새삼스레 옛날 사춘기적 센티멘탈리즘에 젖는 것도 아닌데
고요하게 하루를 반추해 본다. 사람들은 일하기를 싫어한다. 더구나 남을 시키는 것도 그래도 군인의 경우는 싫어도 해야 한다. 일을 감독하는 자의 입장에서 전후 사연을 다 고려하여 시작하는 것이 좋으며 ..
새벽 고요속에 오늘하루를 보내면서 나는 무엇을 원하는 가
아내의 작은 무례를 탓하려는가 서로의 못마땅한 점을 나무라기를 원하는 가? 그냥 용서하자.그리고 잊어버리자. 무기력 자기 비하- 그런 나에게 옛날 청운의 꿈을 불사르던 시절이 있었노라고 한다면 남들이 웃겠지 .오직 정원이 자윤이 가 잘 자라는 것이 마냥 반갑고 고마울 뿐이다.
‘84. 5.8.
어버이 날이다. 자윤이의 생일인데..
또 한해가 가고 금년도 ..어제 예천 공군 기지에 갔다가 정일권 중령을 만났다.
‘84.6.17.일.
명령이 났다는 말을 김정식 소령으로부터 들었다.처음 시작하는 마음,13년만에 지휘관으로 견장을 다는 마음은 겸손하고 후회 없는 인생을 위한 최선을 다하는
경험..
‘84.7,1,
보병 제 15사단 항공 대장으로 보직을 받고 아침 9시에 홍천을 출발하여 춘천에 있는 군단 항공 대장 김천문 중령을 을 만나고 .. 홍천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새 생활을 시작하는 출발점에 와잇다. 사단 인사 참모가 국접섭중령이라는데 포병학교 구대장과 교관을 했던 분이라니 반갑다, 이취임식을 하려는데 이은천 중령은 별로 ,,,비협조적이었다.
‘84.7.3.화
사단장 신고를 하고 14시에 이취임식을 했다.연병장에서 하려다가 비가 오락 가락해서 대대장 실에서 간략하게 치렀다.사단참모 및 직할 대장들이 모두다 참석을 해주어서 흐뭇하게 치렸다.
7.6. 금
사단에서 취임 후 첫 회의가 있었다.
‘84.8.1. 목
어제 저녁 국전섭 중령이 전출을 간다고 송별회식을 사단 목용탕에서 했다.사단장이 군단에 가시고 없어서 송두영 부사단장 주관하에 실시했다.
‘84.8.5. 일
화천에 있는 7사단 성당에 다녀왔다.
8.11.토.
업무 보고를 했다.1개월간의 준비 기간이 지나고 오늘
사단장 홍순철 장군을 모시고 보고를 했다.
‘84.8.23,
사단 T.O.C.가 기존 건물에서 자하골로 이동을 했다.09;30에 T.O.C.회의 가 있었다.전술토의가 진지하게 이루어졌다.식견이라는 것이 상황에따라 그리고 겸손이라는 것이 있다. 엊그제는 504대대에서 임성택소령(3#)과 이제문 대위가 야간 훈련을 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인간으로서 한번을 가는 길이라지만 젊은 나이에 ..
‘84.8.28화
101야전병원에서 504대대 임소령과 이대위의 영결식이있었다.
‘84.9.19. 수
어제 저녁 6명의 조종사들과 소주를 한잔 했다.가족적 분위기의 유지발전 그리고 人和의 원리로 잘 다져졌을 때 모든 것이 발전적으로 될수 있다고 생각한다. 같이 놀 동무가 없다는 정원이의 말이 무척 마음을 아프게 한다.1년만 지나면 유치원에가게 될 텐데 그때가 되면 좀 나으리라 생각한다.
‘84.9.28.
34년전 9월28일 서울 수복을 했던 날이다.부대를 꾸려 간다는 것이 무엇인가.사람의 마음속 그리움이 있어 언제나 저하늘
마음엔 태양을 사모하고 추운 겨울날 봄을 노래 하듯 7월3일 항공 대장직을 인수하고 지금 3개월째인데 10월10일이 취임 100일이되고 10월3일이 결혼 기념일인데 7살짜리 딸과 5살짜리 아들의 아버지, 그들이 나의 생활의 과반이 되고 부하들의 공부도 그리고 부대의 무사고 도 ..
‘84.11.18. 일.
사단 명월성당에 다녀왔다.동기생이라고 반가워서 보안대 운용과장 정대열이에게 들렸는데 그의 태도가 영 마음에 걸렸다.아내에게 미안 할 정도였다.
‘84.12.5.수,
육군 항공의 역사에 길이 기억 될 날이다.보병15사단 항공 대에 500MD 헬기 한 대가 들어왔다.오랜 육군 항공의 숙원이던 회전익 화의 시작이다.미군으로부터 고정익을 대여받아 운용하던 육군 항공이 지금은 고정익에서 회전익 시대로 진입했고 장차 병과 발전은 물론 항공 장교들의 위치를 굳히는 데도 필요한 조치가 된 것이다.
‘84.12.31,
세모. 진정 금년에 나는 무엇을 했는가? 사단항공 대장으로 보직,T/S'84에 참석. UH-1 정조종사.사단 항공 대 500MD편성 시작.지금 병사들은 무엇을 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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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1.1.
사단 항공 대장 직을 맡은지 6개월. 신년을 맞았다. 새로운 각오로 근무를 시작하자고 병사들과 같이 떡국을 먹고 1년의 계획을 나누고
武運長久 우리 부대 .弼
신년사
<새해에는 모든 악함이 저 멀리 가고 우리의 모든 조직속에 웃음이 항상 머물지니라 .못다한 미련도 그리고 사연도 다 버리고 ,자녀들아 부모 은공 잊지말고
어머님 지금 떡국이나 드셨는지요 그리고 잠은 잘 주무셨는지요?
지난해는 정말 다사다난했다.금년도 조용한 내실을 다지는 한해가 되었으면
'85.2.6.
12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데 오늘 3명의 부재자 선거를 하고 ...
거의 여당을 지지하도록 계속적인 암시와 교육을 실시....
이 정도면 여당이 압도적 승리가 될 텐데..내일부터 접수된 것은 기표를 중지하라고 ,,별도 지시 대기..
'85.2.12.
12대 총선 일자.전국적으로 4년의 중간 결산에 해당되는 해이기도 .. 엄정한 군기강 확립 그리고 신상필벌. 10여개월 후면 보직이 만료 될 것이다.
`85.3.6.
사단장 홍순철 장군의 연두 순시가 있었다.500MD B/L탄약고 신축 문제등...
자윤이가 어제 입학식을 하고 이제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내일부터는 정원이가 유아원에 다니게 된다.
'85.7.2.
취임 1주년,그런데 조금 분주하긴 했다만,1년간 큰 대과 없이 지낸 것이 구성원 모두의 공이라고 생각된다. 최선을 다하는 생활을 해야겠다.
`85.7.10.
홍천 11사단 항공대장으로 취임하는 박노동 소령에게 축하를 하고 왔다.아내와 같이 그리고 사단에가서 군무를 배우고 왔다. 저녁에는 김정식소령이 7사단으로 전입을 왔다.
`85,7,31,
방송 대학 출석 수업. 어렵게 다니는 공부 계속되면 언젠가는 끝을 보겠지.
열심히 최선을 다하리
'85.8.27.화.
지난 수 개월간 부대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헬리패드 작업을 했다. 이는 FOD방지 그리고 즉각출동 준비에 기여 할 수 있는 이점이 있고 지상차륜 운용에 유리하고 또 하나 성취감이 있을 수 있다.
탄약고를 지었다. 본래 500MD B/L탄 보관을 위하여 탄약고가 있어야 하는데
면적은 30 평방미터, 공사기간은 7.24~8.24.까지 1개월간, 투입 인원은 공병 1개분대와 항공 대 인원 , 그리고 탄약고 주변 정리정돈 탄약 이송등 연말 대비 바쁜 일정을 보냈다.
`85.8.30.
항공 병과장 이취임식에 다녀왔다.
`85.9.5.
병사들에게 정신 교육을 시켰다
지난 8.31부로 <육작항.303.1(육 수시 1850호) >에 의거 군단 항공 대에서 500MD 실무 기종전환 교육 지시에 의거 군단 항공 대에서 O.J.T.교육을 위해 지난 월요일 부터 교육을 받고 있다. 약 4시간 정도 탔는데 비슷하게 되고 있다.
" to learn is to teach"
이는 " To teach is to learn"의 도치된 표현이라고 도 할 수 있다.
`85.11.13.
이제 9일이 남았다. 임기중에 못다한 사연을 무엇으로 ..전 후임이 마음이 맞아야 할 탠데 ...세상이 다 그렇고 그런거지..
`85.11.14~22.
- 14일; 가족들과 같이 송화 식당에서 송별 식사를
- 15일; 7사단 지역 동기생들과 송별식사
- 16일 사단 정구장에서 송병정구와 회식
- 17일 사단 성당에서 송별식사를 다목리레서 오찬으로 했다.
저녁에는 사단장 공관에서 전초대대장 석중령과 같이 송별식사를 했다.
- 18일 직할 대대장들과 송별식사를 ,황대위 진급 누락으로 위로주를 ..
- 19.15사단 동기생들이 삼거리 미락 식당에서 송별 식사를
- 20일 ;춘천에서 재춘 지역항공 영관장교들이 송별 식사를 ..
아 ~ 길고긴 송별 행사의 장정이다
- 22 금. 오늘 드디어 내인생의 한장을 짚고 넘어가는 사단 항공 대장직을 이임하는 날이다 이제 새로운 무대를 향하여 힘찬 전진을 하리라
이임식을 하고 집에서 17개월간의 피로를 풀려고 관사에 있는데 14시경 전화가 걸려왔다.11월 28일 203대대장으로 취임식이 예정되어 있다고 하는 행정 장교 최대위의 전화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