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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강해(12) 2023. 10. 8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
느헤미야6:10-19
지금 중국의 항저우에서 ’2022 아시안게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원래 작년에 했어야 하는데, 코로나로 1년 연기). 우리 대한민국의 선수들이 땀 흘린 만큼 좋은 결과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 지난주 한국 롤러스케이트 대표팀이 아주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남자 롤러스케이트 스피드 3,000m 계주 결승에서, 결승선을 눈앞에 두고 1위로 달리던 정oo 선수가 양팔을 벌리며 미리 '금메달 세러머니'를 펼쳤고, 그사이 대만 선수가 '날 내밀기'를 구사하며 추월하는 바람에 금메달을 놓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불과 0.01초 차이로 금메달을 놓친 것입니다. 발만 조금 내밀었어도... 그의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은 성급한 행동으로 인해 금메달은 물론 본인과 후배의 병역특례마저 날려버리게 되었습니다(다음번 일본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서는 이 종목 제외).
경기 후 대만 대표팀의 황유린은 인터뷰에서 "한국 선수의 세러머니를 봤다. '당신이 방심하는 동안 나는 끝까지 싸웠다'고 말하고 싶다"고 일침을 날렸다고 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방심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해줍니다.
<삼발랏과 게셈의 음모>
숱한 고난을 이겨내고 드디어 느헤미야는 성벽을 거의 다 완성하는 단계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제 성벽의 문짝만 달면 됩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적대자들의 공격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감사한 것은 느헤미야가 마지막 순간까지 방심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에 최선을 다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산발랏이 느헤미야에게 사람을 보내 ‘오노’라고 하는 곳에서 평화 회담을 열자고 제의하였지만, 느헤미야는 그것이 자신을 제거하려는 음모임을 눈치채고 응하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는 “내가 지금 큰 역사를 진행하고 있는 중인데 그것을 중단하고 어떻게 너희에게로 가겠느냐”는 것입니다. 산발랏이 네 번씩이나 사람을 보내서 똑같은 것을 거듭 요구해왔지만, 느헤미야는 분명한 우선순위를 가지고, 성벽과 성문을 완성하는 일에 집중하였습니다.
그러자 산발랏과 게셈은 다섯 번째로 ‘봉하지 않은 편지’를 보내 ‘거짓 소문’이 퍼져나가게 하였습니다.
그 내용은, 첫째, ‘너와 유다 사람들이 모반하려 하여 성벽을 건축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느헤미야가 왕이 되려고 한다’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느헤미야와 아닥사스다 왕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음모입니다(이간질).
이것은 느헤미야에게 아주 치명적입니다. 만일 아닥사스다 왕이 느헤미야를 의심한다면 군대를 보내어 성벽공사를 당장 중단시키고 느헤미야를 소환해 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들의 압박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분명한 해명과 동시에, 하나님께 “이제 내 손을 힘 있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마지막까지 자신의 소명을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제사장 스마야의 배신>
오늘 본문에서는 또 다른 적대자 도비아의 음모가 드러납니다.
10절 “이 후에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가 두문불출 하기로 내가 그 집에 가니 그가 이르기를 그들이 너를 죽이러 올 터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 안에 머물고 그 문을 닫자 저들이 반드시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하기로.”
여기 등장하는 스마야는 ‘제사장’이었고,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 행세를 하던 인물이었습니다.
아마도 느헤미야와 가까이 지내던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두문불출’ 한 것입니다. 아마도 느헤미야를 자기에게로 유인하기 위한 계략이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느헤미야는 그의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느헤미야에게 마치 하나님께 계시를 받은 것처럼 예언을 합니다. “자객들이 오늘 밤에 당신을 죽이러 올 것입니다. 지금 당장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 안에 머물고 문을 닫자”고 합니다(내소 – 지성소, 외소 – 지성소 밖의 성전, 왕상7:50). 사실 이 말은 그럴듯했습니다. 그런 일이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곧바로 스마야의 말에서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11~13절 “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 하고/ 12 깨달은즉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바가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내게 이런 예언을 함이라/ 13 그들이 뇌물을 준 까닭은 나를 두렵게 하고 이렇게 함으로 범죄하게 하고 악한 말을 지어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
성전 안에는 본래 아무나 들어갈 수 없습니다. 거기에 함부로 들어갔다가는 하나님께 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민18:7 “너와 네 아들들은 제단과 휘장 안의 모든 일에 대하여 제사장의 직분을 지켜 섬기라 내가 제사장의 직분을 너희에게 선물로 주었은즉 거기 가까이 하는 외인은 죽임을 당할지니라.”
유다 왕 웃시아의 일화 – 역대하26:16~21(웃시야에게 나병이 생기다)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17 제사장 아사랴가 여호와의 용맹한 제사장 팔십 명을 데리고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가서/ 18 웃시야 왕 곁에 서서 그에게 이르되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은 왕이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 19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에게 화를 낼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긴지라/ 20 대제사장 아사랴와 모든 제사장이 왕의 이마에 나병이 생겼음을 보고 성전에서 급히 쫓아내고 여호와께서 치시므로 왕도 속히 나가니라/ 21 웃시야 왕이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었고 나병환자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져 별궁에 살았으므로 그의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백성을 다스렸더라.”
그런데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율법을 잘 알고 있는 제사장 스마야가 느헤미야에게 성전으로 피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그의 말을 듣는 순간 그를 거짓 예언자로 알아보았습니다. 그래서 “깨달은즉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바가 아니라”(12)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사람인데,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말을 하는 자는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제사장 스마야의 제안을 받고는, 그가 도비야에게 매수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고 분명히 거절하였습니다.
<도비아의 음모>
제사장 스마야가 매수당할 수 있었던 분위기를 우리는 17-19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7~19절 “또한 그 때에 유다의 귀족들이 여러 번 도비야에게 편지하였고 도비야의 편지도 그들에게 이르렀으니/ 18 도비야는 아라의 아들 스가냐의 사위가 되었고 도비야의 아들 여호하난도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으므로 유다에서 그와 동맹한 자가 많음이라/ 19 그들이 도비야의 선행을 내 앞에 말하고 또 내 말도 그에게 전하매 도비야가 내게 편지하여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하였느니라.”
18절을 현대어 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도비야는 혈통으로도 암몬 족속이고, 신분으로도 산발랏의 종이지만, 그와 그의 아들이 유다 귀족 집안의 여자들과 결혼을 하였기 때문에 유다의 많은 유지들이 그에게 충성을 맹세하였었다.”
도비야와의 내통자들의 명단은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이 사람들은 바로 느헤미야와 함께 예루살렘 성벽공사에 함께 참여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도비야는 ‘아라’의 아들 스가냐의 사위가 되었는데 이 ‘아라’는 스룹바벨 제1차 귀환 때 같이 귀환한 족장이었습니다(7:10). 또한, 도비야의 아들 여호하난은 ‘므술람’의 딸과 결혼하였는데 이 ‘므술람’은 바로 성곽건축에서 두 구역이나 담당한 제사장이었습니다(3:4, 30).
느헤미야의 사역에 협력했던 사람들이 사실은 돈 많은 도비야와 혼인을 통해 사돈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심지어 느헤미야 앞에서 서슴없이 도비야의 선한 행실과 공로를 계속 칭찬했습니다(19). 아마도 그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데 많은 힘을 써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도비야에게 자주 편지를 보냈고, 도비야도 자주 답장했습니다. 유다의 내부 사정이 도비야에게 그대로 전달된 것입니다. 그 정보를 인용해 도비야는 느헤미야에게 편지를 써서 느헤미야를 협박하였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아마도 도비야는 유다의 유지들을 통해서 제사장 스마야를 매수했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그러니까 느헤미야는 외부의 적대자들과 그들과 내통하는 유다 유지들의 이중적인 공격에 직면해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느헤미야가 속아 넘어갔다면>
만일 느헤미야가 상황 판단을 못 했거나 또는 두려움에 스마야의 말대로 성전 안으로 숨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스마야는 산발랏 일당에게 그가 성전에 숨어있음을 알렸을 것이고, 암살자들의 명확한 표적이 되었을 것입니다.
더욱 큰 문제는 유다 백성들의 신뢰를 잃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우리는 유다 백성들이 성전을 대하는 태도를 알아야 합니다.
<성전의 의미>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성전은 그들의 정체성을 하나로 묶는 상징과도 같습니다. 성전이 무너지는 것은 곧 나라가 망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성전이 재건되었다는 것은 나라가 회복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비록 식민지 상태에 있다 하더라도, 성전을 재건함으로써 민족의 정체성을 회복하려 한 것입니다(포로기 이후 스룹바벨과 에스라의 노력). 왕정이 무너진 이후(제2성전기) 성전에서 예전을 담당하며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를 중재하는 제사장의 위치는 그만큼 중요해졌습니다. 성전 기능의 중요성은 바벨론 포로기를 70년으로 예언한 예레미야와 역대기 기자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렘29: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대하36:21 “이에 토지가 황폐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더라.”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 제국에 의해 이미 BC722년에 멸망했고, 남유다는 신바벨론 제국에 의해 BC586년에 망해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갔습니다. 예레미야가 예언한 바벨론에서의 70년 포로기에 대해, 남유다가 멸망한 BC586년부터라고 한다면 BC516년에 바벨론에서의 첫 귀환이 시작되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첫 포로 귀환은 에스라1:11에서 보듯이 ‘세스바살’(스룹바벨의 페르시아식 이름 : 세스바살)의 인도 아래 BC537년에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바벨론으로 끌려간 지 약 49년 만의 일입니다. 그렇다면 예레미야는 왜 바벨론에서의 포로 기간을 70년이라고 예언한 것일까요? 바벨론에서의 포로 기간 70년은 바로 성전과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예, 성전이 완공되는 시점이 바로 BC516년(다리오 왕 6년, 에스라6:15)인 것입니다. 솔로몬 제1성전이 신바벨론 제국에 의해 무너진 후 제2성전인 스룹바벨 성전이 완공되기까지 기간이 70년이었던 것입니다. 이 기간을 실질적인 포로기로 보았던 것입니다. 이런 만큼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성전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성전을 보호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바로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는 일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바로 이런 의미를 지니고 있는 성벽 재건에 헌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
그런데 느헤미야가 두려움에 성전으로 피신했다면, 유다 백성들은 그를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성전을 더럽힌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의 지도력에 큰 상처를 입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의 대적들이 스마야를 매수한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느헤미야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법도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제사장의 권유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면 거절하였습니다. 아무리 유다의 총독이라도 함부로 성전에 들어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와 거짓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이 있었습니다.
이단과 거짓 선지자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 - 영이라고 다 따르면 안 됩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오시는 성령님만이 참된 하나님의 영입니다. 초대교회에서 다른 영을 전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경계했습니다.
요한4:1-6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2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 / 6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않는 영은 다 미혹의 영입니다.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직 우리는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만을 따라야 합니다. 이 영은 곧 성령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느헤미야>
뇌물을 받고 대적들과 내통하며 공모하는 자는 스마야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14절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곧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들의 소행을 기억하옵소서 하였노라.”
대적들은 느헤미야를 제거하기 위하여 유다 백성 안에 내부의 적, 반역자들을 여럿 만들어 놓았던 것 같습니다.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상당히 많은 종교지도자가 뇌물에 매수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들을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하는 일 같은 것을 하지 않았습니다. 행정 책임자인 느헤미야는 수사권을 이용해 도비야와 내통한 사람들에게 보복을 하지 않았습니다.
심증은 있지만 확실한 물증이 없기 때문입니다. 잘못하면 성벽을 완성하기 전 내란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오직 하나님께 맡길 뿐이었습니다. 그는 다만 “내 하나님이여, ...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들의 소행을 기억하옵소서”하며 기도했던 것입니다.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느헤미야는 기도함으로 자신이 겪는 문제보다 훨씬 크신 하나님의 도움을 체험했습니다.
찰스 스펄전은 ‘작은 믿음은 천국 가지만 기도하는 믿음은 천국을 이 땅 위에 끌어내린다’라고 했습니다.
한편, 우리는 제사장 스마야를 비롯한 유다의 종교지도자들에게 큰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스마야는 느헤미야와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그런 사이가 아니었다면 ‘두문불출’한다고 집으로 찾아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뇌물을 받고 느헤미야를 해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발람 선지자도 모압 왕 발락에게서 뇌물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민22:17, 37).
가룟 유다는 은 30냥을 받고 예수님을 팔아넘겼습니다(마16:15).
아마도 적지 않은 돈을 보니 눈이 뒤집힌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느헤미야 한 사람만 배신한 것이 아닙니다.
성벽을 쌓기 위해 생업을 포기하면서까지 수고한 모든 백성을 배신한 것입니다.
오늘날 주의 일을 감당하는 사역자들에게 각성을 주는 내용입니다. 물질의 유혹, 명예의 유혹, 성적 유혹으로 인해 넘어지지 않도록 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십이 일 만에>
우여곡절 끝에 오십이 일 만에 성벽이 완공되었습니다.
15~16절 “성벽 역사가 오십이 일 만인 엘룰월 이십 오 일에 끝나매/ 16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느헤미야가 대적들의 모든 위협과 음해공작을 이겨내며 더욱 더 성벽수축공사에 몰두한 결과 마침내 성벽이 완성되었습니다. 그 역사가 “오십이 일 만에” 끝났다고 전합니다. 그것도 연중 가장 더울 시기에, 끝났다는 것은 믿기 힘든 일입니다. 이것은 기적입니다.
자신들의 방해에도 유다인들이 성벽을 완성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대적들은 다 두려워하며 낙심하였습니다. 그동안 산발랏과 도비야는 갖은 협박을 통해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을 두려워하게 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들로 하여금 두려워하며 크게 낙담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이것이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보기보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적들조차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셨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일꾼’으로 스스로 자처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의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귀신들에 의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 인정받았습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위대한 승리에는 위대한 싸움이 있습니다.’
오십이 일 만에 성벽을 완성한 것은 그냥 앉아서 된 일이 아닙니다. 목숨을 건 영적 싸움이 있었습니다. 생명을 건 모험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직위와 생업을 포기한 헌신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승리는 더욱 값진 것이었습니다.
꼭 기억합시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게 하시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쌓듯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가는 일에는 많은 난관과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일군으로 쓰임 받는 우리가 느헤미야와 같이 오직 믿음으로, 오직 기도로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간다”(빌3:13~14)고 고백하였습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에 충성하여, 세상 사람들의 입에서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셨다’고 말하는 고백을 듣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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