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프로그램과 광고의 경계는 불분명하고 또한 무의미하다. 무엇이 먼저고 무엇이 나중인지 그걸 따지는 것도 어렵게 된다. 그래서 광고 모델들이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해 연기를 하고 노래를 하면서 그들이 출연했던 광고 속의 이미지를 또 한 번 판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광고는 다른 대중문화 상품에 대해 리더십을 행사하고 있다. 예컨대, 광고와 드라마를 비교해보자.
한 편의 광고와 드라마에 들어가는 인력과 돈은 비슷하다. 돈과 제작 일정에선 광고가 훨씬 유리하다. 어찌됐거나 둘이 같은 조건에서 만들어진다고 가정했을 때 시청자에게 미치는 영향에서 드라마는 결코 광고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광고는 모든 자본과 인력과 테크놀로지를 15초 또는 30초의 시간에 집약시키는 반면 드라마는 30분 또는 1시간에 집약시키기 때문이다.
방송사나 광고대행사 모두 이익을 가능한 한 많이 올려야 한다는 자본 논리의 지배를 받지만 그 정도에서는 비교할 바가 못 된다. 광고대행사의 자본 논리가 방송사의 그것에 비해 훨씬 치열하고 집요하다. 광고는 인간의 심리에 관해 축적된 모든 사회과학적 연구 성과를 유감없이 활용해 제작된다. 반면 드라마는 광고보다는 훨씬 피상적이고 주먹구구식의 방법 또는 경험에 의해 제작된다.
물론 시청자의 느낌이나 인식에서 드라마는 광고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유리한 입장에 있다. 드라마를 일부러 보려고 하는 사람은 많지만 광고를 일부러 보려고 애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광고는 그 불리함을 상쇄하기에 충분할 만큼 몇 개월을 두고 끊임없이 반복해 방영된다. 반면 한 편의 드라마는 일회용이다.
드라마가 누리는 인기의 핵심은 스타 시스템이다. 그러나 스타 시스템의 철두철미함에 관한 한 드라마는 결코 광고를 넘볼 수 없다. 광고는 오로지 '스타의, 스타에 의한, 스타를 위한' 영상 이미지의 압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광고는 짧은 시간에 압축된 고농축 영상 이미지인 관계로 경쾌하고 간결하며 밀도가 높은 속도감을 자랑한다. 이는 바로 텔레비전 세대의 정서 구조의 핵심이다. 어린아이가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것 가운데 가장 즐기는 게 바로 광고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광고는 장르의 제약에서도 자유롭다. 그래서 드라마식 광고도 나오고 뉴스를 흉내 낸 광고도 나온다.
영국에선 드라마식 텔레비전 광고가 소설로까지 출간돼 곧장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한국에선 심지어 광고의 CM송이 가요로까지 만들어졌는가 하면 각종 매체들에 의해 광고의 인기도 조사가 정기적으로 행해진다. 개그맨들은 광고 카피를 흉내 내 인기를 얻고 예능 프로그램들도 광고를 소재로 삼기에 바쁘다.
미국에서 초기의 텔레비전 광고는 매우 조잡하게 만들어졌다. 방송사들은 그런 조잡한 광고가 프로그램의
흐름을 매끄럽게 만드는 데에 장애가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방송사들은 광고주들에게 광고를 더 세련되게 만들 것을 요구했으며 또 시청자들이 지루해 하지 않도록 가능한 한 광고를 자주 바꾸도록 요청했다.
그러한 요청에 부응하여 텔레비전 광고 제작자들은 점차 프로그램에 동화될 수 있는 '광고 같지 않은
광고'를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물론 그건 광고주에게도 이득이 되는 일이었다. 특히 리모컨의 등장으로 그런 광고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다. 행여 일순간이라도 시청자들을 짜증나게 만들었다간 채널이 획 돌아가고 말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텔레비전 광고는 직설법으로 상품을 선전하기보다는 보기에 지루하지 않은 영상 이미지로 시청자들의 잠재의식을 파고든다.
광고 제작자들은 광고를 하나의 '즐길 거리'로 만들기 위해 모델에 많은 투자를 한다. 텔레비전 광고는
현실 세계와 가공의 세계 사이의 경계를 점점 허물어뜨리고 있다. 대량 소비 시대에 상품은 더 이상 품질로 경쟁하지 않는다. 품질로 경쟁하는 상품이 전혀 없는 건 아니나 대부분의 상품이 느낌과 이미지와 품위와 스타일로 경쟁을 한다.
그런 경쟁을 위해선 상품의 연상적 전이(transfer) 효과를 노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느낌과 이미지와 품위와 스타일을 웅변으로 역설하는 건 어리석다. 이미 그런 느낌과 이미지와 품위와 스타일을 풍기는 기존의 모델 또는 상황을 빌려다 쓰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인해 광고는 끊임없이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관계를 맺으려고 애쓴다. 광고는 드라마, 쇼,
코미디, 토크쇼 등 각종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인물과 상황을 그대로 빌려다 쓴다. 이러한 프로그램 양식 가운데 가장 강력한 광고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역시 드라마다. 드라마는 그 어떤 프로그램 양식보다 지속적이다. 따라서 이미지가 분명해 순간적으로 그 이미지를 알아챌 수 있다. 그 때문에 시청자의 시선을 붙들어 매는 데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텔레비전 광고에 등장하는 모델 가운데 드라마 배우들이 가장 많은
것도, 또 드라마 속에서의 상황이 가장 많이 모방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드라마라는 가공의 세계는 현실 시장에서의 상품 선택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더 이상 가공의
세계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광고되는 상품에 부여되는 드라마 세계의 후광은 소비문화를 낭만적이고 고상한 것으로 꾸민다. 상품의 선택은 그 상품에 부여된 텔레비전 속의 느낌과 이미지와 품위와 스타일에 의해 결정된다.
광고는 대중문화를 어떻게 지배하나 – 대중문화의 겉과 속, 강준만, 인물과사상사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스타급 연예인의 가장 큰 수입원은 광고 모델 수입이다. CF 한 편당 수억 원대의 모델료를 받는 스타는 수십 명에 이른다. 2012년 현재 금융권의 연간 광고 모델료만 보자면, 한화생명보험 모델인 김태희 10억 원, 우리은행 모델 장동건 7억 5,000만 원, KB국민은행 모델 이승기 7억 원, 현대해상보험 모델 송승헌 6억 5,000만 원, 삼성화재해상보험 모델 공유 6억 원, 메리츠화재 모델 한석규 5억 원, LIG손해보험 모델 김명민 5억 원 등이다.
수입 1위 스타는 피겨 여왕 김연아가 차지했다. 김연아는 CF 한 편당 12억 원대의 고액 출연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2012년 상반기에만 8편 정도의 광고에 출연해 상반기 CF 수입만 무려 100억 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었다. 최다 출연 CF 스타는 소녀시대로 지난 1년 동안 무려 26편의 CF를 찍었다.
광고 제작자들은 왜 그렇게 스타 모델에 집착할까?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이유는 간단하다. 어느 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연속극에서 자신과 아이들을 두고 떠나려는 남편에게 애원했던 여배우가, 이와 똑같이 진지하고 개성 있는 음성으로 보험에 들거나 향수를 쓸 것을 광고를 통해 다시 애원하고 있다."
대중문화와 광고가 한동안 뜨겁게 연애하더니 드디어 결혼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걸 잘 보여주는 게 바로
PPL(Product Placement)이다. PPL은 돈을 받고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 속에서 특정 상품, 협찬 업체의 이미지, 명칭, 장소 등을 내용물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소화시켜 홍보하는 간접광고 기법을 말한다. 이 기법은 원래 영화 제작 시 필요한 소품을 확보하기 위해서 기업에 협찬을 요청한 데서 유래되었는데, 1945년 영화 <밀드레드 피어스(Mildred Pierce)>에 등장한 버번 위스키가 그 시초이나 1950년대 <이유 없는 반항>에서 제임스 딘(James Dean, 1931~1955)이 사용한 빗이 젊은이들의 필수품이 되면서 PPL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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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H4>
유윤정, 「한화생명 광고모델 김태희 몸값 '김연아 뺨치네'」, 『조선일보』, 2012년 12월 21일
안샛별, 「CF 수입 1위 김연아 등극 … 상반기에만 100억 원 추정」, 『뉴스웨이』, 2012년 7월 4일.
어네스트 반 덴 하그, 「대중문화에 대한 희망과 절망」, 강현두 엮음, 『대중문화론』(나남, 1989), 83쪽.>김상훈, 「통합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전략(IMC)에서 더욱 중요한 PPL」, 『MBC ADCOM』, 2005년 7·8월, 45쪽 출처정보 펼침 집필자 소개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사회에 의미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 대표 저서로는 <강남 좌파>, <한국 현대사 산 /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사회에 의미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 대표 저서로는 <강남 좌파>, <한국 현대사 산책>(전 23권), ;미국사 산책;(전 17권) 등이 있다 /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사회에 의미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 대표 저서로는 <강남 좌파>, <한국 현대사 산 도서 소개 : 한국인을 위한 최고의 대중문화 입문서로 최신 대중문화 현상의 전반적인 작동 방식을 분석한다. 케이팝부터 웹툰까지 대중문화에 관한 모든 것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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