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나님의 때
본문 : 전도서 3장 1-15절
우리가 계속해서 전도서를 살펴보고 있는데, 특별히 전도서에서 강조하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해 아래서’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태양 아래’라는 말이 아닙니다. 당시 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은 하늘에 거하시고, 사람은 땅에 살고 있다는 사고방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눈과 손길이 자신이 살고 있는 땅까지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을 하며, 자기 멋대로 살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사람의 시각으로 보며 살았다’는 말입니다. 솔로몬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깨달은 것이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허무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솔로몬이 ‘해 아래’라는 말을 30번씩 강조하면서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다 허무하며, 이 허무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해 위의 하나님을 의지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3장입니다. 3장 역시 ‘해 아래서의 인생은 허무하며, 오직 하나님 안에서 극복할 수 있음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세부적으로 나눠보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집니다. 1-8절에서 ‘인간의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고, 9-15절에선 ‘만사에는 목적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16-22절에선 ‘인생의 마지막은 죽음이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이 3장의 내용입니다.』 따라서 오늘도 솔로몬이 전하는 교훈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인생의 모든 때를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말씀으로 시작하는데, 이 말은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다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말씀이 나오는 것을 봅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이 땅에서 모든 시간들은 마치 우리 인간이 주도적으로 이루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내가 심는 것 같고, 내가 그 심은 것을 거두는 것 같습니다. 전쟁을 함으로 사람들을 죽이기도 하며, 반대로 다치거나 병에 걸렸을 때 내가 치료하는 것 같습니다. 웃는 것도 내가 하고, 우는 것도 내가 하고, 춤추는 것도 내가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깨달은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뜻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태어나고 죽은 것도 다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고, 헐 때와 세울 때, 심지어 웃는 것까지 하나님의 주권하에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자기가 노력해서 이뤄진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솔로몬 역시 자신이 가진 권력과 부와 지혜로 많은 것을 가지려고 계획하고 노력을 했지만, 얻은 것이 무엇이냐? 9절입니다.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이 말의 뜻은 ‘1-8절까지 말해왔던 14가지의 모든 결과가 다 사람의 계획과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으로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아무 유익도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당시 최고의 권력과 부와 지혜를 가진 자신도 이렇게 별로 이룬 것이 없는데, 하물며 일반 사람이야 말할 것이 있겠느냐?’ 이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주는 교훈이 무엇일까요? 인생의 결과는 다 허무하니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뜻일까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찾을 때와 잃을 때, 지킬 때와 버릴 때, 사랑할 때와 미워할 때, 전쟁할 때와 평화할 때가 있는데, ‘이 때’를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일생을 주관하시고, 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그 ‘때’를 이루어 가시고 계시니, 우리는 하나님의 때와 일하심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때와 뜻을 뒤로 한 채, 자기의 뜻과 때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6절과 7절입니다. 분명 아직 하나님의 때가 아닌데도, 사람들은 찾으려고 하고, 지키려고 합니다. 분명 잠잠할 때인데도 말을 합니다. 분명 사랑을 할 때인데 미워합니다. 그리고는 결과가 잘못되었다고 낙심을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 잘못일까요? 하나님의 때를 알지 못한 자입니다.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모르고, 자기의 힘으로 살려는 사람의 잘못입니다. 사실 제가 그랬습니다. 작년 말부터 교회재정이 참 어려워졌습니다. 몇 달째 제 사례비를 제대로 받지 못하니, 집사람이 힘들어 합니다. 이 달에는 교회 월세도 내지 못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이 참 답답하기도 하고, 초조해졌습니다. “이제 돈을 벌려 나가야 하나? 누구에게 돈을 빌려야 하나?” 그러다 생각난 것이 오늘 말씀입니다. 분명 우리 환경은 찾을 때인데, 하나님 보시기엔 잃을 때인 것입니다. 분명 우리 환경은 지킬 때이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버리는 것입니다. 분명 내가 해야 할 일을 돈을 벌러 나가야 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뜻은 기도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을 드립니다. 이 말씀은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기도만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때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막으시면,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안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사방이 다 막혔어도, 하나님께서 여시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여러분도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인해 모든 것이 다 풀리고, 해결되는 축복의 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11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아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자 이 말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입니다. 그 앞에 ‘모든 것을 지으시고’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인간과 세상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10절에 나오는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 같지만, 결국에는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때를 따라’는 히브리어로 ‘에트’라고 하는데, ‘정해진 때, 가장 적절한 시기’를 말합니다. 즉 지금 우리는 죽을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우리도 아름답게 축복하신다는 말입니다. 둘째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고’입니다. 여기서 ‘영원’이란 히브리어로 ‘올람’이라 하는데, ‘영원한 세상, 먼 미래의 세상’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을 찾게끔 하셨고, 또 영원한 세상을 찾도록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연어가 남대천에서 태어나면 먼 대서양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몇 년을 살다가 다 자란 후에, 알을 낳으러 다시 머나먼 바다를 지나 한국 남대천까지 다시 돌아온다고 합니다. 이는 연어의 뇌 속에 귀소본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의 뇌 속에도 귀소본능을 주셨습니다.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찾고, 하늘나라를 찾도록 말입니다. 문제는 셋째인데, ‘일의 시종을 사람이 측량할 수 없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일의 시종’은 앞에서 말한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고’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우리들이 때를 따라 아름답게 되기를 원하시고, 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 그곳에 가길 원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어떤 말이 나옵니까? ‘사람이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이 말의 뜻은 ‘사람으로 하여금 측량, 즉 찾을 수 없게끔 하셨다’는 말입니다. 저는 이 말을 이렇게 해석을 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선 모든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 아름답게 만들어 주시고, 또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 그곳에 다 가길 원하시는데, 그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이런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시다. “너희가 나를 하나님을 섬기고, 내 말대로 산다면, 너희에게 복을 줄 것이고, 천국에 가게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에이, 그런 것이 어디 있어? 어떻게 믿을 수 있어?” 하며 자기 멋대로 산다고 할 때,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그렇습니다. ‘일의 시종을 사람이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는 복을 주시고,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음에도 이를 자기의 것을 만드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원하실까요? 오늘 여러분 모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아름답게 되는 축복도 받으시고, 영원한 나라도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3. ‘그럼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12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새 번역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 나는 깨달았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 솔로몬이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주위의 수많은 나라 왕들이 와서 머리를 조아리고 예물을 바칠 정도의 어마어마한 권력을 가졌습니다. 그가 얼마나 부했느냐? “솔로몬이 마시는 그릇은 다 금이요, 솔로몬의 시대에 은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또 지혜는 얼마나 대단한지 시바의 여왕이 수많은 금은보화를 가지고 찾아와서 많은 질문을 하였지만, 대답하지 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그가 지금 뭐라고 말을 합니까? “내가 이제 깨달은 것이 있는데, 사람이 사는 중에 기쁘게 사는 것과 선한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는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아무리 높은 권력과 많은 부를 가졌어도, 또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기쁘게 사는 것보다 못하고, 선한 일을 베풀며 사는 것보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이 살아가야 할 목적이라’ 생각을 합니다. 많은 것을 가져서 기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심에 기뻐하는 우리 말입니다. 이 땅에서 잘 살아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행복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이유를 알기 때문입니다. 자 에베소서 2장 10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이유가 무엇이라고요? 선한 일을 행하도록 말입니다. 선한 일이 무엇일까요? 물론 많은 것도 있겠지만, 저는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제 아들이 어디를 가든지 자기 아빠를 자랑한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어디를 가든지 착한 행실을 하고 다녀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다면, 얼마나 대견스럽겠습니까? 따라서 이제 우리가 사는 목적이 바꿔져야 할 줄 믿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에서, 어떻게 하면 잘 살 것인가?에서, 이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할 수 있는 선한 일을 무엇인지?로 바꿔야 할 줄 믿습니다. 여러분이 늘 하나님을 자랑하며 살고, 또 선한 일을 베풀며 살 때에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13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선물을 주실 줄 믿습니다. 하여 여러분들도 이 땅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깨달아 행하여 하나님의 선물을 받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