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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차 |
월/일 |
요일 |
일 정 |
이동 |
숙박 |
1 |
1/10 |
일 |
11:00 (01/10일) 인천 말레이시아항공 67편 16:50 (01/10일)쿠알라룸푸르 비행시간 06시간 50분 |
국제선 비행기 |
쿠알라룸푸르(차이나타운) |
2 |
1/11 |
월 |
● 10:40 (01/11월)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항공 740편 11:50 (01/11월) 양곤 ● 비행시간 02시간 40분 |
국제선 비행기 |
양곤 |
3 |
1/12 |
화 |
● 오전 6시 양곤-오전 7:20 낭우(버강)도착 버강 마차관광 |
국내선 비행기 |
낭우(버강) |
4 |
1/13 |
수 |
● 오전 7시 숙소출발 (차량렌트or 픽업트럭) 뽀빠산투어 ● 오후 1시∼5시 30 마차 또는 자전거 버강 유적지 관람 |
렌터카 마차 자전거 |
낭우(버강) |
5 |
1/14 |
목 |
● 오전7시 출발 오전 9시 국내선 만들레이 도착 ● 공항에서 차량렌트 (사가잉→잉와→숙박업소→선착장→선박이용 밍군→아마라뿌라→마하무니파고다→숙박업소 |
국내선 |
만들레이 |
6 |
1/15 |
금 |
● 오전 6시 삥우린 다녀오기→오후6시 만들레이 숙소도착 |
차량렌트 |
만들레이 |
7 |
1/16 |
토 |
● 오후 4시 버스로 만들레이에서 껄로로 출발 |
노선버스 |
버스 |
8 |
1/17 |
일 |
● 새벽 4시껄로 도착 1박 2일 트레킹 |
노선버스 |
껄로 |
9 |
1/18 |
월 |
● 껄로 트레킹 |
여행사 |
껄로 |
10 |
1/19 |
화 |
● 노선버스 쉔양-낭쉐-인레호수, 호수 주변에서 놀기 |
차량렌트 |
인레 |
11 |
1/20 |
수 |
● 전일 호수에서 수상관광 |
선박렌트 |
인레 |
12 |
1/21 |
목 |
● 혜호공항 국내선 양곤이동, 양곤관광 |
국내선 |
양곤 |
13 |
1/22 |
금 |
● 차량렌트 버고 →짜익티요 |
렌트 |
짜익티요 |
14 |
1/23 |
토 |
● 짜익티오-버고로 이동 버고 관광 |
렌트 |
버고 |
15 |
1/24 |
일 |
● 양곤이동 양곤관광 및 휴식 |
도보 및 택시 |
양곤 |
16 |
1/25 |
월 |
12:50양곤 말레이시아항공 741편 17:05 (01/25월) 쿠알라룸푸르 02시간 45분 |
국제선 |
쿠알라룸푸르 |
17 |
1/26 |
화 |
● 쿠알라룸푸르 1일 시내투어(쌍둥이 빌딩) ● 고려원에서 점심(부키트반탕) |
지하철과 모노레일 |
야간 비행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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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
1/27 |
수 |
00:05 (01/27수)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항공 9072편 07:25 (01/27수) 인천 06시간 20분 |
국제선 |
한국 |
여행소감
여행을 떠나기 3개월 전부터 마음 설레며 미얀마 여행을 계획하기 시작 했다. 미얀마에 관한 책도 몇 권 읽고 인터넷도 뒤지고 분주히 자료도 찾아보면서 개략적인 미얀마 계획이 세원 졌다. 여행 중 바꿀 수 있지만 거의 계획대로 진행 한 것 같다.
이번 여행의 멤버는 인도 여행에서 만나 남미배낭을 계획한 이교수님부부 김선생님부부 우리부부 6명이 함께 떠나기로 되어있다. 이교수님과 김선생님은 올 겨울 여행을 중국의 윈난성으로 계획하고 계셨었다. 그런데 우리부부는 지난여름 윈난성을 다녀와서 이번 여행을 미얀마로 가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더니 모두가 흔쾌히 동의했기 때문에 6명의 멤버가 남미여행의 전초전으로 미얀마를 가기로 했다.
미얀마에서 우리는 한류열풍을 실감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한국말 한가지씩은 한다. 아가시 오빠 아저씨 아줌마 할아버지(할아부지) 등의 호칭과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다녀가서 그런가 하고 생각했지만, 가이드 겸 뚝뚝이 운전사의 말은 그게 아니라고 한다. 일본인 관광객은 그렇게 많이 다녀갔지만 한국인 관광객은 아직 드물게 다녀갔다고 하면서 이유는 매일같이 한국 드라마를 보아서 그렇다고 한다. 드라마 ‘주몽’ ‘꽃 보다 남자’ 등에 나오는 ‘송일국’ ‘구준표’ ‘금잔듸’ 가수 ‘비’‘이병헌’ 등을 얘기하기도 한다. 내가 본 드라마는 커피프린스 심지어 지금 한국에서 방영하는 아이리스를 방영하는 것을 보았다. 실은 더 많은 것을 방영 하는데, 내가 드라마를 잘 보지 않고 젊은 가수와 탤런트 등을 잘 모르기 때문에 제목은 잘 모르겠다. 여하간 한국 사람에 대해서는 많은 호감을 가진다.
버마의 처녀와 아이들은 미소도 아름답지만 얼굴에 타나카 나무를 물과 함께 돌에 갈아 흰 가루로 얼굴을 화장한 모습이 정말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동남아의 다른 나라와 달리 얼굴은 까무잡잡하지만 얼굴이 갸름하고 눈이 크고 움푹 파인 것이 약간의 인도 풍으로 인형같이 예쁘다. 그리고 눈이 마주치면 묘한 미소는 마음이 포근함을 나타내고 있는 듯 기분이 좋다. 전에 잠깐 태국여행 때 따칠렉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미소가 아름답다. 같이 여행한 이 교수께서 미소가 아름답다고 연일 감탄한다.
택시와 버스는 몇십 년 넘은 아마 일제시대 버스들 같은 생각이 들 정도다. 버스터미널에 가보면 정말 폐차장을 방불케 한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버스를 탈 때 재미있는 것은 버스표에 비행기처럼 boarding time과 departure time이 있다. 출발시간 30분전이 boarding time이다. 그리고 언제나 외국인은 요금이 2배이다.
버어마의 신앙은 대단하다. 불교라고는 하지만 우리와는 전현 다른 모습이다. 수많은 파고다가 있고 누구나 한번쯤은 승려를 경험하는 것이 우리의 군대 생활 같은 것이라고 할까? 그리고 미얀마의 신앙을 이해하려면 꼭 쨔익티오를 가봐야 할 것 같다. 그것도 토요일 아침을 봐야한다. 쨔익티오 전진기지 조그만 마을(Kin pum village) 게스트 하우스에서 묶는데 새벽 4시에 갑자기 요란한 음악 소리이에 잠을 깼다. 조그만 소도시에 그렇게 많은 수 천명의 행렬이 쨔익티오 행 트럭을 먼저 타려고 몰려드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신앙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난 정말 신앙이 뭔지 의아하게 만든다.
미얀마 하면 우리가 어렸을 적 국명이 ‘버어마’이고 생각나는 것은 유엔사무총장 ‘우탄트’‘아웅산 수치’ ‘전두환 대통령이 버어마를 방문했을 때 폭탄테러로 우리나라 수행원들이 많이 희생된 것’이 생각난다. 내 기억으론 45년 전 우탄트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이다. 우리나라는 요즈음 반기문씨가 유엔사무총장에 당선되었다고 대단한 영광으로 생각하고 반기문씨가 태어난 충북에서는 ‘반기문 영어대회’ ‘반기문 마라톤대회’등 의 행사도 한다. 아마도 그때의 버어마 국력은 우리보다 나았을 터인데 지금의 미얀마의 생활수준은 가히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열악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군사 독재를 한 탓에 북한과 미얀마는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되지 않는 것은 당영한 일인지 모른다. 항상 일사불란한 독재가 처음에는 잘 나가는 것 같지만 결국은 몇몇 권력자의 욕심을 채우는 일 밖에는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생각난다. 처음에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어지럽던 나라를 바로 잡고자 했고 빠른 경제성장으로 우리나라를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게 한 업적은 대부분 높이 평가를 한다. 나라가 안정된 후 국민에게 넘겨줘야 할 권력을, 초심과는 다르게 절대 권력의 달콤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은 비운의 대통령이 된 것이 생각난다. 반대파가 없는 일사불란함이 처음에는 발전 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독재로 변질되면서 나라는 후퇴하게 된다. 직장도 그렇고 노사도 정치도 반대파를 잘 포용하고 다스리는 지도자가 현대의 훌륭한 지도자임을 새삼 느끼게 한다.
태국과의 국경지대에서는 밀수업자, 반군, 난민, 정부군 등을 모두 조심해야한다. 특히 만달레이 북동쪽에 위치한 골든트라이앵글은 여행하지 않을 것을 권한다. 양곤, 만달레이, 바간, 인레호수 등 여행허가 지역 이외의 지역에서 가이드를 동반하라거나 혹은 통과증의 제시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여행 허가 지역으로 만 여행을 계획했으며 여행을 했다. 여행 허가 지역은 너무나 안전한 것 같다. 미얀마는 바간을 비롯하여 유적이 엄청나게 많은 나라로 관광자원이 풍부한 나라다. 문호만 개방한다면 관광 수입만으로도 엄청날 것 같다. 그리고 미얀마 국민들은 모든 정렬을 파고다 짖는데 기울이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집은 다쓰러져 가도 파고다와 수도원은 대형으로 아름답게 짖는 것 같다. 종교에 몰두 하게 하는 것도 정권유지에 일조 하는 것 같다.
먼저 비행기표를 예약하는데 가장 저렴한 비행기표는 방콕을 경유하는 타이항공인데 이를 놓치고 쿠알라룸푸르를 경유하는 말레이시아 항공을 예약했다. 하지만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1박을 하는 것이 문제였다. 비행기 티켓을 tax 포함 1인당 왕복 68만 원 정도에 구입했다. 기왕 쿠알라룸푸르를 들을 바엔 올 때는 하루 더 묶어 쿠알라룸푸르를 구경하고 오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미얀마 내의 이동이 만만치 않았다. 계속 버스를 타면 비용은 많이 절약된다. 배낭영행이 그렇듯이 버스를 타면 숙박비가 절약될 뿐아니라 대개의 공항은 시내까지 멀기 때문에 시내까지 택시비도 절약되는 이중 절약효과를 가져온다. 하지만 여행코스 중 양곤에서 바간, 바간에서 만들레이는 비행기, 만들레이에서 껄로까지는 야간버스를, 다시 헤호에서는 비행기를 이용했다. 3번의 비행기를 이용했고 미리 한국인이 운영하는 호텔인 ‘레인보우 호텔’에 예약을 부탁했다. 양곤-낭우, 낭우-만들레이, 헤호-양곤 3회의 비행기를 이용했는데 가격은 1인당 25만원 정도였다.
비자는 여행사에 부탁하면 45000원이었는데 이교수님 부부께서 우리 6명의 모든 비자를 20000원에 미얀마 대사관에 가셔서 1인당 25000원을 절약했다. 비자은 30일이 유효하기 때문에 너무 일찍 할 필요가 없고 출국 시간을 맞추어 발급 받아야 한다.
첫째 날 (1월 10일)
인천공항에서 9시에 3팀이 만나서 수속을 밟고 유쾌한 출발을 했다. 우리나라를 출발 할 때 서울의 기온이 영하 -12℃라고 했는데 쿠알라룸푸르(KL)공하에 내리니 30℃라고 한다. 무려 40도의 온도차가 있는 곳으로 6시간 만에 온 것이다. 쿠알라룸푸르(KL) 공항에 내리니 비가 억수로 온다. 스콜 현상이다. 동남아 여행 때 건기에 비를 한번도 보지 못했는데 비를 보니 이상하고 우산, 우비를 가지고 오지 않아 겁이 났지만 비는 바로 그쳤다. 입국심사가 참 느리다. 도대체가 줄이 줄지 않는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미리 예약해 놓은 차이나타운 내의 Regea guest house 로 가기위하여 택시나 6인승 밴을 타야 했다. 티켓을 끊어 타도록 되어있다. 6인승 밴의 경우 199RM(링깃)이다. 우리돈으로 환산하면 65000원이 넘는 비싼 가격이다. 거리도 60km라니 멀기도 하다. 올 때는 티켓을 구입하지 않고 오기 때문에 시내로 갈 때 운전사에게 부탁하니 150RM에 흔쾌히 허락한다. Regea guest house는 예약도 했고 예약금도 받았지만 먼저 오는 손님을 받는 상법에 어긋난 행동을 하고 있다. 미얀마에 갈 때도 들렀을 때도 올 때도 모두 방이 없거나 모자라는 것이라 다른 곳으로 전화해서 옮겨 주는 것이다. 이교수님이 항의해서 예약금도 되로 받아내고 방도 다른 호텔로 옮겨 주었다.
Regea guest house에서 캐나다 교포 2세를 만나 한국어는 어눌하지만 한잔 하면서 세상이야기를 했다. 학생은 중국에서 방송국에서 일을 하는데 휴가차 왔다고 한다. 학생은 영어는 물론 불어, 중국어, 한국어 4개 국어를 하고 있었다.
여행을 즐기며 느끼는 서양 문화가 부럽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나라 같으면 무서운데 어떻게 위험한 여행을 혼자 하느냐고 부모들로부터 말리는 문화인데 반해 여러 문화를 느끼면서 마음이 열리고 발전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르고 있는 것 같다.
Regea guest house가 운영하는 Bar에서 맥주와 저녁을 먹고 일찍 취침에 들어 차이나 타운을 느낄 시간도 없었다. 올 때는 이틀이 있으니 그때 보기로 했다.
둘째 날(1월 11일)
공항을 나서니 레이보우 호텔에서 픽업을 나왔다. 호텔은 예약했고 미얀마 국내선 비행기 표는 부탁했지만 픽업을 예약한 적이 없는데 과잉 친절(?)을 베푼다. 실은 우리가 택시로 찾아 가려고 했는데, 택시로 찾아가면 픽업비용보단 절약이 된다. 항상 픽업비용은 왕복 요금을 받기 때문이다. 또 미얀마의 공항은 재미있다? 짐을 찾아 공항 밖으로 나오면 짐꾼들이 달려 붙는다. 내가 들고 가려고 해도 막 무가내로 들고 간다. 택시 타는 데까지 10m, 아니 5m라도 짐꾼에게 1$을 주어야 한다. 그것도 여러 명이 달려든다. 그러면 몇 $을 빼앗기는 기분이다. 미얀마의 경제사정을 생각하면 이놈들은 너무 쉽게 돈을 번다는 생각에 화가 난다. 이런 강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국내선을 3번 타면서 언제나 그 모양이다. 여하간 친절을 호의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거리에 돌아다니는 차들은 거의 일제 도요타 고물차들이고 그 외에는 전 세계 중고차는 다 모아 놓은 것 같다.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호텔 가까운 숴다곤 파고다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 흙을 파올려 만들어졌다는 인공 호수공원 깐도지(호수) 보족 공원으로 산책 겸 구경을 나갔다. 호수는 그리 깨끗하고 아름답지는 않지만 연인들의 장소라서 모두가 쌍쌍이 애정 표현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입장료가 2000kyats(쨧)으로 현지인 보다 10배를 내는 것 같다. 돈의 가치는 버마 돈과 우리나라 돈의 비는 약 1 : 1.2정도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도 2400원 정도인데 그것도 부분별로 또 돈을 받는다. 저녁 6시 이후에는 모두가 공짜다. 2006년에 새로 개장한 호수에는 힌두신 비쉬뉴가 탔던 거대한 새 가루다(Garuda) 모양의 배‘꺼러웨익’은 미얀마식 저녁식사와 국립극단을 볼 수 있는 연회장인데 일인당 10$씩 주고 저녁식사와 전통극을 보았다. 원래는 예약을 해야 하는 데 모르고 용감하게 간 것이 통했다. 저녁식사는 정말 괜찮았으며 모두가 입맛에 맞는다고 한다.
호수에서 멀리 보이는 미얀마 최대 규모의 쉐다공 파고다의 야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오다가 택시에서 내려 잠깐 사진 촬영을 했다. 15일 후에 다시 양곤에 와서 볼 것이다.
셋째 날(1월 12일)
미얀마에서는 도시 입장료를 내기 때문에 사찰이나 파고다 입장료는 거의가 입장료는 무료다. 양곤의 쉐다공 파고다는 도시 입장료가 없기 때문에 5$인 것 같다. 뽀빠산은 굽이 굽이 계단인데 몇 m 간격으로 밀대(걸레)를 들고 계단을 닦는 아이들이 있는데 지나가면 손을 내민다. 앞길을 닦아 주었으니 적선(Donation)하란다. 처음에 모르고 6명이니 1000kyats 씩 주면 많이 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가면서 계속되니 달라는 사람마다 다주면 이건 아니구나 싶어 다음부터는 500Kyats 짜리 잔돈을 바꾸어 그것도 가끔 주었다. 올라갈 때 받은 놈이 내려올 때 또 달란다. 오면서 갈 때 소개해준 중국 식당에서 맥주를 반주로 점심을 먹었는데 모두가 볶음밥이 최고로 맛있다고 칭찬을 한다. 식당 주인 아줌마의 애교며 미모며 마켓팅 솜씨가 보통이 넘어 보인다. 오는 길에 마을과 민속마을(미난투 마을)을 구경하고 몇 군데 파고다를 둘러보니 대단한 사원과 파고다 군이라는 생각이 든다. 버강은 너무 건조하여 풀도 잘 자라지 않는 것 같다. 우기 때나 농사도 되고 풀이 자란다고 한다. 더구나 우기에도 비가 많이 오지 않아 사막화 되가는 것 같다. 일정을 마치고 예약 돼 있는 수영장이 있는 Golden Express 호텔에 짐을 풀고 짐도 줄일 겸 가져간 쿡커로 라면을 끓여 소주와 함께 모여서 저녁을 해결했다. 저녁에 수영장 가에 나와 밤하늘을 보니 별이 총총하다. 가져간 별자리판을 가지고 겨울철의 별자리인 오리온자리, 쌍둥이자리, 큰개자리 등 쉬운 별자리 몇 가지를 강의 했다. 아니 아는 척 했다.
넷째 날(1월 13일)
오늘은 바강에서 종일 마차를 빌려 수많은 파고다와 수도원이 있는 유적지를 보기로 했다. 마부가 추천해서 처음에 들른 파고다는 이름 없는 파고다라고 한다. 하지만 마음대로 올라가 볼 수 있어 좋다고 한다. 아슬아슬할 정도로 가파른 파고다를 올라가 보니 온통 크고 작은 여러 가지 형태의 수 천 개의 파고다들이 멀리 지평선 까지 계속 보인다. 미얀마인은 파고다를 짖는 일이 현세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공덕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버강에는 있는 파고다들은 미얀마 인의 극진한 불교에 대한 신앙심의 결정체인 것이다. 파고다 높이 올라가보니 사방으로 전경이 너무도 아름다워 절로 감탄한다. 사진으로 담아보지만 눈으로 보는 것에는 어림도 없다. 아마 바강의 사원군을 다 방문해 보려면 몇 년을 걸릴 것 같다. 이교수께서 ‘인도의 폐허의 유적지 오르차를 연상하게 한다’고 하는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사원들 폐허가 된 곳도 많다. 오천 몇 개가 있었는데 1980년도인가 대지진으로 인하여 많은 파고다가 파괴되었다고 한다. 세계문화 유산인 대개의 유적지는 전쟁으로 파괴 되었지만 버강의 유적지는 전쟁이나 피의 역사가 없는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라고 소개 된 것처럼 말이다.
마부가 추천하는 길가 허름한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너무 싸다. 맥주 한 병에 11000kyats 으로 가장 싸다. 두 마부가 신이 나서 식당 심부름을 한다. 점심 먹으라고 1000kyats씩 주었다. 아마 식당에서 외국인 손님을 여럿 데리고 와서 먹으니 그들은 그냥 점심을 주는 모양이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호텔에 도착하니 기막힌 일이 생겼다. 전날 공항에서 호텔까지 타고 온 봉고 운전사가 전날 교통비 6000kyats를 안 받았다고 우긴다. 그것도 미얀마에서 사업을 하는 한국인 통역사까지 대동을 했다. 혼동이 생긴 것은 호텔로 오는 동안 오후에 포파산을 갈 때 같은 차를 사용하기로 하고 40$에 흥정을 마쳤다. 하지만 오후에 다른 운전사가 오는데 영어도 못한다고 했다. 깔 때 분명히 돈을 지불했는데 하루가 지난 후에 6000kyats는 안 받았다고 달라니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40$과 함께 준다고 해서 안 받았다는 것이다. 아니 운전사도 분명 바뀐다고 했고 실제로 바뀌었고 어떻게 믿고 당신이 나에게 나중에 받아갈 거라 생각했느냐고 따졌지만 막무가내다. 한국인이 또 거든다. 같이 생활해 왔지만 그 운전사는 그럴 사람이 아니고 착실하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정말 내가 착각을 했나 할 정도로 어리둥절하다. 택시비는 영수증도 없고 난감하다. 일행들이 착해서 6000kyats 면 6000원 정도 도와주는 심대고 주라고 해서 주었지만 황당하다. 그 다음부터는 돈 주는 장면을 장난삼아 이교수님이 사진으로 남겼다.
다섯째 날(1월 14일)
오후는 만들레이 힐로 가서 일몰을 보았다. 멀리 보이는 커다란 건물 군이 무어냐고 스님께 물으니 조그만 목소리로 감옥(jail)이라고 한다. 저 속에는 정치범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에 웬지 무시무시한 생각이 든다.
그러나 만들레이 힐의 일몰은 아름답다. 미얀마에서 볼 수 있는 한 일출과 일몰을 많이 보고 사진도 많이 찍었다. 일출과 일몰이 아름다운 이유는 한없이 펼쳐지는 평야로 인해 지평선이 멀기 때문에 미얀마에서의 일출과 일몰은 모두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내가 찍은 일출과 일몰 사진만 수십 장이다.
여섯째날(1월 15일)
오늘도 어제와 같은 차를 빌려 만들레이 북동쪽으로 60km 떨어진 고원도시 삥우린으로 향한다. 시원하지만 마을을 둘러 볼 것은 별로 없고 영국여왕이 기증했다는 시계탑 앞에서 사진을 찍고 점심에 반주로 마시려고 미얀만 산 와인을 한 병을 샀다. 떠 새로 지은 큰 파고다와 폭도를 구경했는데 폭포는 조그만 별 볼품 있는 정도는 아니다. 샛노란 대나무를 본 것이 인상적이다.
이때 운전사에게 12시경에 일식이 일어나니 검은색 필터을 구해오지 않으려면 유리판에 불로 그을음을 그을려 오라고 했더니 그런다고 선 듯 대답을 하여 의아했다. 정말 알아들은 것일까 의심이 갔다.
일식을 보려고 운전사에게 주문한 필터를 요구하니 선 듯 내 놓은 것이 병원에서 구해왔는지 다리뼈 사진이 선명한 x-ray 필터였다. 몇몇 버강에서 운전사가 역사를 전공한 대학 출신이라고 했듯이 이 운전사도 상당히 학식이 있는 운전사임에 들림 없었다. 우리는 x-ray 필름을 찢어 4등분해서 각자 일식을 보는 필름으로 사용했고 사진도 찍었다.
한국 사람만 보면 상점 점원들은 ‘아줌마’ ‘아저씨’ ‘할아버지’ ‘예뻐요’‘감사 합니다’ 등 한국말을 한마디씩 하면서 말을 걸어올 때면 즐겁게 맞장구를 쳐 주곤 했다. 만들레이에서 삥우린 가는 길에는 주유소 거리가 있다. 길 양옆으로 몇 km 정도 모두 주유소들이다. 주유소가 몰려 있다니 이해가 안간다. 그것도 모두 깔대기와 드럼통으로 주유를 한다. 참 한심스럽다는 생각도 든다. 1950년대에 와 있는 것은 아인가를 의심하게 된다.
돌아오는 길에 환전을 하려고 하니 양곤만 1$에 1000kyats 이고 만들레이는 950kyats 이고 그 밖의 곳에는 900kyats라고 한다. 무조건 환전은 양곤에서 해야 한다. 환율이 너무 형편이 없다고 운전사에게 불평을 여러 번 했더니 960kyats인 곳을 알려 준다고 한다. 가보니 비행기 티켓을 파는 여행사였다. 비행기 여행사는 언제나 양곤을 드나들며 환전을 할 수 있는 곳이니 당연히 그럴만도 했다. 그러니 이교수께서는 970kyats을 제안하니 얼마를 환전할 것이며 100$짜리냐고 물어 500$이며 100$짜리라고 했더니 선 듯 바꾸어 준다고 해서 환전을 했다. 몇몇 후진국을 여행할 때는 환율은 100$지폐와 10$, 20$지폐의 환율은 다르다. 나중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도 10$지폐를 환전할 때 환율을 낮게 적용하는 것을 보았다.
일곱째 날(1월 16일)
Sein Sein 중국인이 운영하는 중국식 호텔에서 보는 일출이 아름답다. 멀리 공사장 클레인에 걸린 일출이 아름답다. 28$ 호텔 괜찮다. 그리고 양심적이다. 예약했지만 방이 없어 방 하나를 옮기면서 3$을 깎아 25$이란다. 깎아주는 양심은 고맙다. 이교수님이 그방을 쓰신다고 키를 가져가니 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TV에는 윤은혠가 누가 나오는 케피 프린스가 방영 되고 있었다. 한류의 열풍을 실감 할 수 있었다.
강에서 본 밍군은 아름다운 산과 강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마을이다. 1838년 대지진으로 인하여 폐허된 모습이지만 어마어마한 그 옛날 왕들의 영욕을 느낄 수 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파고다를 지키는 수호신 사자가 모두 지진에 폐허되고 엄청나 엉덩이만 남아 있다.
밍군을 다녀 온 후 만들레이 궁으로 같다. 만들레이 궁전의 규모는 대한하다. 정사각형 모양으로 된 왕궁은 사방이 해자로 한 변이의 길이가 3km라고 한다. 사방 12km로 수심이 3m 폭이 10m 정도 되는 해자로 둘러쌓인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안에 궁은 목조 건축물로 그리 훌륭한 건축물은 아니지만 전망대(워치타워)에 올라보면 만들레이 사가잉 아마라뿌라 도심을 볼 수 있다.
지나오는 길에 산나모니 파고다군과 꾸도더 파고다 등을 볼 수 있었다. 인도나 동남아의 절에서는 목탁소리가 없다. 그리고 매일 새로운 흥미로운 광경을 보는 것이 미얀마가 인도보다도 신기한 나라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흥미롭다.
오후 늦게 깔로 행 야간 버스를 타기위하여 만들레이 버스 터미널로 간다. 버스 시간은 5시로 되어있으나 5시는 그야말로 버스를 타는 시간(boarding time)이고 30분 후에 출발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언제 어디서나 똑같은 식이다. 그래도 장거리 버스의 상태는 좀 낫다. 차안에는 미얀마의 유명한 가수라고 하는 아자니의 공연 모습을 비디오로 시끄럽게 틀어 주고 있었다.
중간에 버스표의 값을 물어봤더니 현지인은 우리의 요금에 딱 절반이다. 버스표를 호텔에 부탁했더니 호텔에서 구입해 준 것이다. 운전사에게 물어 봤더니 우리가 직접 가서 표를 끊어도 같은 값이라고 한다. 그 말이 무슨 말인지를 잘 몰랐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외국인요금인 것이다. 어디서나 외국인 요금은 내국인 요금의 2배를 받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껄로는 해발 1000m가 넘는 고원 지대이다. 그래서인지 길도 대단히 험하고 구불거린다. 거의 비포장이나 마찬가지다. 길 가운데 언제 포장 했던 흔적만 있을 뿐이다. 차에서 졸다가 유리창에 수번 부딪힌다.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서너 시간 가다가 저녁을 먹으라고 내려 놓는다. 도저히 저녁을 먹을 생각을 못하겠다. 밥을 파는 아줌마가 밥을 손으로 휘젖고 있다. 그러다가 퍼 주는 모습을 보니 모두가 먹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가게에 있는 봉지에 들어 있는 빵을 몇 개씩 사서 먹었다. 다시 몇 시간을 오니 새벽 2시가 조금 넘어 껄로에 내려 놓는다. 내리지 마자 한 놈이 따라 붙는다. 앞을 보니 만은 호텔은 눈앞에 보인다. 껄로에서는 숙소걱정은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괜히 예약을 한 것 같다. 별로인 호텔을 25$에 예약하는 바람에 나중에 안 일이지만 비싸게 들어간 것 같다. 3시부터 9시 껄로 트레킹이 시작하는 시간 까지 쉬기로 하고 하루 반을 30$에 하기로 했다.
여덟째 날(1월 17일)
점심으로는 인도식 난(개떡)에 카레를 싸 먹는 쨔파티 식단이다. 주인장이 네팔 포카라에서 온 50대의 인도계 네팔인이다. 딸이 일요일이라 서비스를 한다. 얼굴 색깔을 검은 것을 빼면 소피아마루소다. 예쁘다고 했더니 아버지가 한국으로 데려가란다.
아홉째 날(1월 18일)
인디언 식당(View Point)에서 하산을 한다. 오는 길에도 조그만 계곡에는 채소밭을 가꾸는 농부들이 일을 한다. 미나리와 아주 비슷한 채소밭에서 일하는 아낙네에게 다가 갔더니 한 묶음을 준다. 코리안 베지터블이라고 해서 정말 미나리 인줄 알았고 삶아서 무쳐 먹으려고 1$정도를 주니 안 받으려고 하더니 한 다발 더 준다. 억지로 던져 주고 와서 삶아 보니 이건 미나리가 니라 특유의 동남아 향이 너무 짙은 채소이다. 향으로 조금씩 요리에 넣어 먹는 향이라고 해서 조금만 맛을 보고 전부 호텔에 주었다.
미얀마에서 맥주는 미얀마 맥주와 만들레이 맥주가 대부분인데 알코올 4.5%의 순한 맥주와 스트롱 9%맥주 두 가지씩 있다. 산을 다 내려와 식당에서 9%의 맥주를 먹어 보았다. 미얀마에서는 식당의 수준을 우리는 맥주 값으로 어림했다. 3000Kyats이상은 고급식장 2000Kyats이상은 중급 1200Kyat이상은 보통 식당으로 우리 나름대로 분류를 해보았다.
오는 길에 Shwe Oo Min Cave 동굴을 들렸는데 온통 부처들이다. 각 부처마다 만든 사람(돈을 낸 사람)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시장에 들려 커다란 닭과 마늘과 생강 감자를 사서 가져간 쿡커로 한국식 닭죽을 끓여 남은 소주와 저녁을 먹었다.
열째 날(1월 19일)
재정이 변변치 않고 돈을 아끼느라 신혼여행을 가까운 온양 온천에 중급 호텔로 가고 나머지 돈으로 부모님 냉장고를 사드렸던 생각에 마음이 서글퍼진다.
이 호텔은 에어 바간에서 운영하는 호텔로써 비싼 호텔이다. 150$이상인 최고급 호텔이지만 55$에 예약이 되어 묶게 되었다. 대개의 손님들이 서양인들로 나이가 지긋한 우리보다도 많아 보이는 노부부가 주를 이루는 것 같다. 첫날은 52개의 방갈로 되어있는 방 모두가 full 이라 뷔페로 13$에 저녁을 먹었는데, 그 이튼 날은 우리 이외에는 손님이 별로 없어서 저녁 뷔페를 차리지도 않고 주문 식단으로 바꾸었다. 미얀마 수준으로는 55$도 대단한 수준이지만 대개의 에어컨과 2인실 저렴한 호텔은 15$정도 한다.
저녁 뷔페를 먹는 동안 미얀마 전통 춤의 공연이 있었다. 저녁을 먹고 들어와 보니 꽃과 함께 다음과 같은 편지가 베게 맡에 있었다. 또 한 번의 감동이다.
Room No 211 Tuesday 19th Jun 2010
Dear Mr. Koo An Seo & Mrs Nam Young Sook
You are everything that is, your thought
Your life, your dream come true
You are everything you choose to be
You are as unlimited as the endless universe
Have a good sleep!
Kya Kya Thin House Keeping Superviser.
열 하루째 날(1월 20일)
아침을 일찍 주문해서 먹고 어제 빌린 배가 왔다. 시원하게 달리는 배에서 보니 갖가지 광경들이 어우러져 아름답다. 표현력 부족이다. 정말 아름답고 신기하다. 드넓은 호수를 달리다가 좁은 수로를 달린다. 물이 참 맑다. 어떤 곳은 흙탕물인 곳도 있지만 맑은 곳은 명경지수다. 물위에 떠있는 밭 수상농장 사이로 난 부레옥잠과 물풀들이 손에 닿을 듯한 싱그러운 수로를 시원하게 달린다. 수상가옥에 순진한 어린이가 고양이를 앉고 손을 흔든다. 풍경이 너무 정겹다. 멀리 산엔 파고다들이 보인다. 좁은 수로에서 외다리로 서서 균형을 잡아가며 발로 배를 젓는 모습이 신기하다. 수상에서 사는 그들의 삶은 힘들지 모르지만 보트를 타고 달리는 우리는 쿨하고 상쾌하고 신기하다.
연구해 보니 외다리 노 젓는 법은 다 이유가 있었다. 수초가 많은 곳에서 유리하고, 또한 시야가 넓어 유리하다. 더욱 유리한 것은 양손으로 노를 저으면 그물을 칠 수가 없다. 그들은 뱃머리나 배 후미에서 한쪽 발로 균형을 잡고 다른 한쪽 발로 노를 저으며 노를 잡은 손과 함께 나머지 손을 이용해서는 그물을 놓는 것이다.
떠 있는
연 줄기를 자를 때 나오는 실로 옷감을 짜는 모습과 열료 과정을 보니 고려나 조선시대 생각이 나게 한다. 수로를 달릴 때 수많은 수상가옥과 사람 사는 모습이 보인다. 먼 곳을 이동할 때와 큰 짐을 이동하는 것은 경운기 모터를 단 배이지만 이곳의 근거리 교통수단은 집에서 집으로 잇는 다리도 있지만 대부분 통나무를 파서 만든 노를 젓는 배가 주요 교통수단이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해가 지고 있다. 또 아름다운 일몰이다. 멀리 2000m급의 산들이 아름답고 주변에 고급 호화 리조트들의 평화로운 풍경이다. 풍경자체는 한 폭의 그림이다.
열이틀 째(1월 21일)
어제 호수 트레킹을 한 배로 8$에 호수를 나와 도요타 봉고를 타고 35$에 양곤으로 이동하기 위해 헤호 공항으로 간다. 헤호 공항에 도착하니 차가 공항 마당에 들어갈 수 있음에도 문 밖에서 통제를 한다. 공항이라고 해야 조그만 건물에 정원 하나 있다. 짐꾼들이 인력거를 가지고 3명 따라 붙는다. 하는 수없이 1인당 1$씩 주었다. 미얀마 시장에서 식료품을 사보면 느끼지만 1$은 미얀마에서는 작은 돈이 아니다. 우리가 충분히 들고 갈 수 있는데 돈도 아깝지만 다른 사람들에 비해 너무 쉽게 돈을 버는 그들이 얄밉다. 차를 공항 마당에 못 들어가게 하는 이유는 이들 짐꾼들에게 돈을 벌게 하려는 것 같다. 일자리 창출 아니면 이들이 조직 폭력배 무리들인지도 모른다.
오늘은 양곤에서 쉬기로 하고 저녁에나 아름다운 쉐다곤의 야경이나 볼까 했다. 내일 계획으로 짜익티오를 고속버스로 가기로 상의 했으나 의견 일치가 되지 않았다. 김선생님 부부는 쨔익티오를 갈 생각이 없다고 하신다. 아마 사모님은 껄로를 버스로 갈 때 고생하신 것을 생각 했을 지도 모른다. 김 선생님 부부는 양곤시내와 주변을 보신다고 하셔서, 이 교수님 부부와 우리 부부만 짜익티오를 다녀오기로 하고 양곤역 주변 여행사에 버스표를 예매하러 갔다. 지금부터는 우리가 표를 구입하고 현지 가서 호텔도 정하기로 했다. 양곤역 주변에는 여행사들이 많았는데 여행객을 모집하는 것이 아니라 버스표를 파는 것이 고작인 것 같다. 여기에서 외국인과 국내인의 요금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국내인보다 2배였다. 내국인은 4$ 외국인은 8$이었다.
열사흘 째 날(1월 22일)
짜익티오를 가려면 아웅밍글라 버스터미널로 가야한다. 시내에서 꽤 멀기 때문에 택시 요금도 6$이다. 새벽 일찍 비교적 먼 거리 택시를 탈 때는 전날 탄 택시기사와 흥정을 한 뒤 호텔로 오라고 하면 된다. 길에서 그냥 흥정하는 것보다 편리하고 바가지를 쓸 염려가 적다. 그리고 외국인은 내국인 보다 조금 더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새벽 일찍 예약한 택시가 왔다. 아웅밍글라 터미널은 시내에서 아주 멀리 있다. 들어서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면 정말 폐차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차들이 형편없다. 하지만 우리가 예약한 차는 그래도 Express Bus 이니 만큼 크고 괜찮은 편이었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어떤 사람이 와서 표를 보자고 한다. 보여주니 표를 자기가 가진 표로 바꾼다고 한다. 어리둥절하여 안 된다고 했더니 이것 보라며 똑같은 것이라고 한다. 똑 같은 차와 좌석번호가 쓰여 있었다. 표는 항공권마저도 영어가 없고 모두 미얀마어로 쓰여 있어 우리가 알아보기 힘들다. 여하간 그 표를 가지고 타라고 해서 버스에 탔다. 생각해 보니 표를 바꾼 이유는 외국인 요금을 우리에게 받고 내국인 표로 승차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여행사는 반이 순이익이 되는 것이다. 7시 Board time 에 승차하여 7시 30경에 출발 했다. 차는 생각보다 잘 포장된 고속도로를 달린다. 예매할 때 에어컨이 없어서 걸정했던 것은 기우였다. 정말 상쾌하게 고속도로를 달린다. 주변에 보이는 것은 넓고 넓은 푸른 평야가 펼쳐지니 마음까지 시원하다. 길가 수로와 논에는 수 십 마리 물소들이 풀을 뜯는 모습, 물소를 이용하여 써레로 모내기 준비를 위하여 논을 다듬는 모습. 학생들이 녹색 론지 치마에 힌 불라우스 모양의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모습이 평화롭고 정겹다. 또한 아이를 안고 차를 타는 아낙의 짐과 아이를 받아 번쩍 안아 뒷자리까지 데려다 앉혀 주는 모습이 또한 정겹다. 한참 가다가 고속도로는 좁은 시골 길을 접어든다. 널고 넓은 이에와디강을 건넌다.
도착하니 이상하게 생긴 바위에 모자를 씌워 놓고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향해 숭배를 한다. 수많은 참배객들이 절을 하고 금박을 붙인다. ‘종교가 무엇인가?’ ‘신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진화론 생물학자이자 저술가인 옥스퍼드 대학의 도킨스 박사는 ‘신은 만들어 진다.’는 신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허상이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과학적으로 조목조목 신을 부정하고 있다. 정말 종교는 좀 미개할수록 맹신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다. 이 교수가 노란 바위를 손으로 짚었더니 금박이 노랗게 묻어났다고 노란 손바닥을 보여준다. 미안해서 500Kyats을 도네이션 했다고 한다.
열나흘 째(1월 23일)
오늘이 휴일인 토요일이기 때문에 보통 때 보다 훨씬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정말 미얀마 인들의 신앙심을 이해하려면 휴일에 불교성지인 짜익티오를 가보라고 하는 말이 올을 것 같다. 아니 짜익티오를 가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얀마인의 신앙심에 대해 말도 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오늘은 버고로 간다. 원래는 버고를 구경하고 양곤으로 갈 예정이었으나 양곤의 무덥고 습한 날씨가 싫어 버고에서 하루 지나기로 해서, Sea Sar 호텔에서 자문을 구했더니 호텔추천과 버고의 관광에 대해서 안내를 해 주었다.
버고행 버스를 타려고 하는데 한 70대 정도의 미국인이 접근하여 말을 걸어왔다. 그분은 한국인 입양 아이들이 있다고 사진을 보여 준다. 지금은 12살 14살 아주 총명하다고 강하고 총명하다고 자랑을 한다. 같이 사진도 찍었다.
함께 여행하는 여자가 당신의 부인이냐고 물었더니, 여자가 웃으면서 아니라고 펄쩍 뛴다. 자기 부인은 병이 나서 병원에 누워 있어 여행 중 만나서 함께 여행을 하고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여자라고 한다. 늙었지만 함께 여행하면 말동무도 되고 호텔 요금 택시요금 절약되니 그런 커플들을 가끔 발견할 수 있다. 버스 뒤에 타서 그들을 보니 대화하는 모습이 참 다정하다.
바고에 도착하니 뚝뚝이 운전사가 달려들어 흥정을 한다. 그 이름은 Khim 영어로 Kind의 뜻이라고 한다. Khim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33살에 두 아이를 둔 아버지로서 참 영리하다. 학교는 못 가보았다고 하는데 영어와 일어를 잘한다. 영어 회화는 잘하지만 학교를 못 갔기 때문에 글은 쓸 줄 모른다고 한다. 뚝뚝이 운전사라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Khim이 따라 붙은 것이다. 오히려 뚝뚝이 운전사보다 수입이 많다.
외국인과 영업을 하려면 영어가 필
Khim의 안내를 받아 800명의 스님들이 동시에 식사를 한다고 하는 Kyaik Kat Way Monastery로 갔다. 이곳은 아침 몇 시간만 개방한다고 해서 호텔도 정하지 않고 짐을 실은 채 갔다. 부엌 구경을 하니 거대한 밥통과 카레 통에 나무를 걸쳐 양쪽에서 어깨에 메고 가는 모습과 신도들이 양쪽에서 수 백명의 지나가는 스님들에게 밥을 퍼서 담아주는 탁발식을 거행하고 있다. 그리고 밥을 먹는 모습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신기한 모습이다.
호텔을 예약하고 짐을 푸니 가이드 Khim이 지금부터 3시까지 푹 쉬고 3시에 만나 구경을 시작하자고 한다. 3시에 다시 만나 쉐떨냐웅 와불상, 짜익푼(짜익-부처, 푼-4 파고다, 사면에 부처가 하나씩 있어서 부쳐진 이름)파고다를 거쳐 미얀마에서 높이가 가장 높다는 쉐모도 파고다를 구경하고 일몰을 보기위하여 코프라 뱀이 있는 사원으로 갔다. 엄청나게 큰 코프라 뱀이 사원 안의 작은 시멘트 못에 있어 무시무시했다. 길가에 많이 있고 동틀 무렵이나 저녁노을에 아름답게 보이는 멀리 보면 느티나무처럼 가까이 보면 잎은 자귀나무를 닮은 나무가 Rain Tree 이고 미얀마 말로는 Cacaoo(까까오)라고 한다고 알려 준다. 아름다운 일몰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커다란 수박을 1$주고 샀다. 집에 돌아와 호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맥주를 마시면서 Khim과 같이 얘기를 했는데, 깨여있는 젊은이였다. 현 정부를 비판하고 있었다. 미얀마는 자원도 만고 땅도 넓어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데 안타깝다고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항상 말조심을 하기로 했는데, 그런 말을 해도 괜찮으냐고 했더니 No problem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던 학용품 등과 여행의 마지막이니 남은 여행용품도 애들을 주라고 그에게 주었다. 만약 한국 사람이 왔을 때 이걸 보여 주면 당신을 믿고 가이드로 선택 할 것이라고, 친절하고 영리한 가이드라고 한국말로 신용장까지 써 주었다.
열닷새 째(1월 24일)
방을 정한다음 쉐다공 파고다로 갔다. 정말 대단한 규모에 놀랄 수밖엔 없다. 피곤해서 건물 안에 돗자리를 펴고 한숨씩 잣다. 파고다 안에는 맨발로 가는 것 빼고는 자유롭다. 부속 건물에서 밥도 먹고 누워 있기도 하고 자유롭다. 입장료가 6000쨧인데 달러로 내면 5$이다. 그 것도 오후 8시가 넘으면 공짜다. 달러로 내는 것이 훨씬 이익임을 알 수 있다. 여행에서 경비는 달러가 이익인지 현지 돈이 이익인지를 항상 따져서 내야한다. 주변 Excell Tower 건물에서 마사지를 5$에 한 시간 이상을 해준다.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경험삼아 가 보았는데 미모의 아가씨들이 어깨와 팔까지 포함해서 강도 높은 발 마사지를 해 준다. 마사지를 하면서 한국 드라마 얘기를 할 정도로 한류 열풍을 확인할 수 있다.
야간에 다시 쉐다공 파고다의 야경을 보러 갔다. 야경도 아름다웠다.
열엿새 째날(1월 25일)
12시경 쿠알라룸푸르행 비행기를 타려고 양곤공항으로 갔다. 양곤공항에서는 공항 TAX를 10$씩 받는다. 다른 나라에서는 낸 기억이 없고 공항이용료는 비행기티켓에 다 포함되었을 텐데 미얀마는 이상한 나라임은 틀림없다. 여행자들에게서 들어오는 수입으로 정권 유지에 쓴다는 말도 있으니 이해가 간다.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내리니 또 비가 오다가 금방 그친다. Stop over 시간이 24시간이 넘어 직접 짐을 한국으로 부치지 못해서 짐을 찾아 내일 까지 공항에 Baggage Keeping을 하려하니 너무 비싸다. 24시간만 넘으면 이틀이라서 더하다. 하는 수 없이 공항에서 봉고 밴 티켓을 199RM(링깃)에 사서 밴을 타고 미리 예약해 놓은 Rea Gea 게스트 하우스로 가는 길에 운전사가 여자였는데 잠시도 입을 다물지 않는다. 하하 호호 웃다가 혼자 떠들다가 심심하지는 않다. 쌍용 밴인데 말끔한 새 차다. 미얀마에서는 한국차를 거의 볼수 없었는데 쿠알라룸푸르에 오니 한국 차가 많다. 기분이 좋다. 내일 다시 공항으로 올 때 150RM 픽업을 해달라고 하니 처음에는 안 된다고 하더니 OK이다. 거절은 그냥 더 받으려고 해본 소리다
쿠알라룸푸르는 동남아 대부분의 나라에 많은 타이거 맥주다. 말레이시아는 회교도 국가인 만큼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인지 맥주 한병 값이 우리 돈 4500원 정도로 비싸다. 더욱 이상한 것 수퍼마켓에서 더 싸지 않다는 것이다. 맥주절약하려고 수퍼마켓에 갔더니 14링깃으로 떠 비싸다. (참고로 1RM은 약 340원 정도)
열일곱째 날(1월 26일)
오늘은 쿠알라룸푸르 관광을 하고 자정 비행기로 한국으로 가야한다. 먼저 전철을 타고 쌍둥이 타워로 갔다. 아침 일찍 예약을 해야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약을 하고 예약표를 받아가지고 모노레일을 타고 신도시 부키트 빈탕으로 갔다. 부키트 빈탕에는 명품들을 파는 곳이 많다. 우연히 들어가 점심을 먹은 곳이 고려원 한국 식당이었는데 된장찌개와 불고기를 8000원정도에 먹었는데 모두가 만족이다. 서비스가 아주 좋고 반찬은 무한 리필 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와 주말마다 만나 산과 여행을 하는 후배 황박사의 사촌형들 집이라니? 전에 한번 쿠알라룸푸르에 사촌형이 운영하는 음식점이 있다고 산행 길에 들은 적은 있지만 그럴 줄이야.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 터인데!
예약한
말레이시아 독립광장이 메르데카 광장을 구경하니 옛날 메르데카 컵 축구대회가 생각난다. 높은 국기 게양대에 세계에서 몇 번 째 간다는 엄청나게 큰 말레이시아 국기가 걸려있다.
이제 모든 여행일정은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공항에 예약한 밴이 제시간에 오지 않는다. 워낙 일찍 공항에 가려고 했으니 여유는 있다. 20분 늦게 어제 그 아줌마 운전사가 왔다. 늦었다고 불평을 하니 호텔 측에서 전화를 잘못 해서 먼저 예약한 레게 게스트 하우스에서 기다렸다고 하며 핑계를 많이 댄다. 여하간 잘 떠들어대고 유쾌하며 마켓팅에 귀재라는 생각이 든다.
수속을 밟고 비행기를 타니 기내식도 마다하고 잠만 자다보니 인천이 가까워진다고 방송한다.
열여덜 째날(1월 27일)
한국 인천이다. 이 교수님 김 선생님 이별을 하고 공항버스에 몸을 싣고 ‘집에 가서 김치찌개를 먹을까 된장찌개를 먹을까?’ 고민하다 잠이드니 청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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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여행기가 언제쯤 올려질까 기다렸는데 처음으로 읽어보니 영광입니다. 마치 옆에서 이야기 나누듯 쓰신 여행기를 읽으니 미얀마도 미래에 방문할 여행지로 꼽아놓아야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즐겁게 사시는 모습 부럽습니다. 2010년 여름 방학 여행 계획도 벌써 구상하고 계시겠네요.
칭찬 감사합니다.
과연 배낭여행의 달인답게 이번에도 초고속 속필로 기행문을 완성하셨군요
같이 여행을 했었는데도 벌써 기억이 가물거리던참에
글을 읽어가면서 아, 맞아 그랬었지,- 새삼 기억이 나는 일도 많습니다
미얀마 꿈-에서 깨어날 즈음 , 다시한번 미얀마로 떠난듯한 즐거움을 맛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양곤의 레인보우 호텔의 어이없는 영업 행태를 비롯, 여행중에 이런저런 맘 상했던 일 등
위 기행문에 미쳐 올리지 못한 절제된 얘기거리들은 직접 만나서 회포를 풀지요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18일 영원히 잊지 않겠지요. 함께 한 것만으로도 행복이지요. 제가 기억이 안나고 교수님이 생각나는 것 있으시면 상기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기행문 솜씨도 대단하십니다. 역시 여행을 많이 한 분은 느낌도 기록도 멋져요. 저희 부부도 언제간 꼭 가보고 싶네요. 미얀마.
사진과 기행문 잘보았습니다. 글을 읽으니 아련히 생각나요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등등 ...좋은 여행 많이 하세요
선생님의 기행문 잘 읽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개인적으로 일이생겨 그제부터 겨우 사진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2월 9일,10일 경에나 홈에 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선생님! 고생 많이하셨습니다 <김내곤>
여행은 무척 즐거웠는데 날씨때문에(너무 더워서) 조금 힘들었습니다. 어제 학교에 가다가 라디오를 들으니 우리의 만남 하나하나는 결코 우연이 아니람니다. 그런 만남으로 오랜시간 여행을 하니 아직도 미얀마를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럽습니다. 저도 미얀마 꼭가고 싶었는데--- 언젠가는 꼭 배낭여행으로 가리라고 다짐합니다.
그런데 비용은 어느정도나 들었는지요?
앞으로 계획에 도움이 많이 될것 같습니다.
비행기 표 값이 크게 좌우할 것 같아요. 국제선 양곤 직항은 없고 60~70만원 잡으면 되는데 미얀마에서 국내선을 4번 정도 타야하는데 버스로만 이동한다면 훨씬 절약되고요 숙박비는 저렴한곳을 이용하면 10~15$정도 이니 절약형으로 다니면 1인당 120정도(2인기준 1인당) 비행기를 이용하면 140~150정도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4인이 가면 교통비(택시)에서 유리하고요. 저의는 비행기를 3번 이용했고 6명이라 벤을 렌트해서 다녔어요.
비행기 표 값이 크게 좌우할 것 같아요. 국제선 양곤 직항은 없고 60~70만원 잡으면 되는데 미얀마에서 국내선을 4번 정도 타야하는데 버스로만 이동한다면 훨씬 절약되고요 숙박비는 저렴한곳을 이용하면 10~15$정도 이니 절약형으로 다니면 1인당 120정도(2인기준 1인당) 비행기를 이용하면 150정도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친절한 답변 고맙습니다. 꼭 실천해서 여기에 올려야 되겠네요
그때를 기약하겠씁니다.
아~~~부럽습니다..
그리고 몸건강하게 다녀 오심을 축하드립니다..
기회되면 꼭 다녀오고 싶은...고생많으셨습니다...
선생님의 어행기 잘 보았습니다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늘 건강하고 즐겁게 신나게 나날이 좋은날 되시고요 올 여름방학 여행기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언제나 격려해 주시고 관심을 가지시는 야생마님 정말 감사합니다.
구선생님의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잘 해드리려고 애썼는데, 참 많이 노력했는데 워낙 시즌이고 방이 훌이고
손이 미치지 못해 룸이 좋지 않았던 점 인정합니다.
사모님 모기 물려서 컴플레임 나왔던 것 사과합니다
좋았던 점도 기억해 주셨으면 하는 바램도 잠깐 해 봅니다.
봄맞이 님 저는 아무런 저의 없이 격려의 말씀을 드렸을 뿐인데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드리고 당연히 저의 답글을 내리겠습니다. 외국땅에서 고향집 같아 좋았습니다.
올리신 글 중에 양곤 공항에 픽업 나간것은 서비스였던 것으로 지금 기억납니다
계산되었다면 리셉션에서 픽업비를 받은 것입니다
픽업시에는 통역겸 가이드가 함께 나갑니다 왕복 택시비를 벌기 위함이 아님을 분명 말하고 싶습니다
치사하게 돈 벌려고 공항에 차를 보내지 않습니다
보내주신 미얀마 도메스틱항공료도 제가 손해보고 받은것 선생님께만 살짝 말씀드렸던 것을 아실 것입니다.
오시면 달라 그래야지.. 선생님이시니까 얘기하면 주시겠지.. 막상 오셨는데 말씀 못 드렸습니다
결코 적은 돈이 아닙니다 픽업비의 3배나 되는 큰 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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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애썼는데..
고마운걸 알지 못하는 참 어이없는 손님으로 참 맘이 아프게 영업하는 때도 있음을 이번에 겪었습니다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청출어람님 이 좋은 공간에서 더 이상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단지 큰 상처를 받았을 뿐입니다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주 후에 미얀마갈 예정입니다. 많은 도움되겠습니다.
인레 Treasure hotel은 어디서 예약하셨는지요
도움이 되신다면 너무 감사합니다.
turbo님! 인레 트레져리조트는 양곤의 레인보우호텔에서 추천, 예약해 드렸습니다
부럽습니다. 저도 가고 싶은 곳이 미얀마인데....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미얀마 흥미있는 유적의 나라입니다. 꼭다녀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