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열이 명복(冥福)을 빌며 영전(靈前)에 올리는 글
아! 내 친구 상열아! 인생은 누구나 한번은 죽음을 맞지마는 천명(天命)을 다한 뒤에 죽는 것이야 아까울 것이 없다 하더라도 살아남은 우리 모두가 아직은 너를 보내려는 준비도, 각오도 되어 있지 않은데 너는 정녕 떠나려 하는가.
상열아, 우리는 어린 시절 남지 용산리 알개실이란 작은 동네에서 같이 자랐고, 10리도 더 되는 신작로 길을 걸어서 남지국민학교와 남지중학교를 언제나 손잡고 같이 다니지 않았던가. 지금도 생각하면 그 시절이 너무 그리운데 그 날의 그리움과 추억들을 이제 정녕 나 혼자 간직해야 한다는 말인가.
하얀 모래알을 밟으며 동화책을 같이 읽으며, 싱그럽고 푸른 나무처럼, 파란 하늘처럼 그렇게 꿈을 키우던 그 시절이 너무 그립지 않니. 내일(來日)날 우리도 어른이 되면 오늘보다 잘 살 수도,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며,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지금의 어려움은 나중에 보람으로 올 거라며 서로를 위로하고 부추기던 그 날들이 너무나도 눈에 선하다.
상열아, 우리가 학교를 졸업한 뒤에 급변한 사회가 우리를 자꾸 변화시켜 어린시절에 가졌던 각오와 꿈은 조금씩 바뀌기도 하고, 어쩌면 안주(安住)하려고 하였는지 모르겠다만 그래도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함께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지난해까지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직장이란 걸 갖고 가족들과 먹고사는 일에 젊음을 바쳤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만큼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니. 어쩌면 내 몸 돌보지 못하고 가족들을 위해 정성을 다했고, 정열을 다 바쳤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보람이었고 행복이었다.
상열아, 비록 너는 이제 눈감지만 네가 뿌린 씨이기도, 화신이기도 한 너의 가족들은 언제나 너를 그리며 네가 다하지 못한 유업(遺業)을 이루는데 온 정성을 다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들은 네가 살았던 세월을 결코 헛되이 하지 않을 것이고 네가 없더라도 언제나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너는 어릴 때 재주도 많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까지 넓었는데 그 재주, 그 아량(雅量)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고 원망하지 말거라. 사람이 지위(地位)높다한들 한 낮 물거품일 뿐이라는 것을 너는 이미 알고 있지 않느냐, 누굴 원망하거나 미워하지도 말고 조용히 영생을 누리거라.
마지막 길을 가는 네게 할말이 이것 밖에 없구나. 어허 슬프다.
죽마고우였던 친구 용호
(상열인 2007. 2. 23 새벽 4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산부민병원에서 유명을 달리했고 2. 25 가족․친지․친구들의 애도속에 고향인 알개실 선산에 안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