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민들은 참 지지리도 지도자복이 없는 것 같다. 진정으로 민족을 사랑했던 위대한 지도자들, 참된 민족주의자(Statesman)들은 대부분 비명에 가고, 권모술수에 능한 현실주의자(politician)들이 득세하는 통에 참된 민주주의 발전은 반복적으로 지체되고 그로 인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 했던 것은 우리 국민이었다. 주먹세계를 통일했던 한 전설적인 풍운아를 주인공으로 하여 한국 현대사의 한 장을 다루었던 한 드라마에서도 확인하였듯이, 우리는 민주화를 이룰 수 있는 기회들을 지속적으로 상실해왔던 것 같다. 독재정권을 교체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화라 할 수 있는 대통령 선거에서 두 번씩이나 민주진영의 대통령 후보들이 심장마비로 혹은 암으로 쓰러지는 장면들을 목격하며 탄식을 금치 못했다. 게다가, 학생들의 위대한 용기와 행동, 그들의 수많은 피와 희생을 지불하고 얻은 기회마저 군부에 의해 무참히 짓밟혀 온 우리 현대사의 질곡은 정말 탄식을 넘어 절망에 가까울 지경이었다. 손바닥만한 국토가 이념으로 나뉘고, 지역주의로 나뉘어 이전투구를 반복하는 우리의 현대정치사를 보노라면, 왜 우리에겐 등소평과 같은 지도자가 안 나오나 하는 한탄이 절로 난다. 광대한 중국의 땅과 사람을 평정한 등소평은 오척 단구의 왜소한 몸이었지만, 그가 숙청되었던 기간에 물지게를 나르면서도 틈틈이 중국의 25사(史)를 비롯한 엄청난 양의 독서를 했다는 사실은 상기되어도 좋을 듯하다. 결국 책 읽는 사람이 세계를 이끈다는 말처럼 등소평의 리더쉽은 풍부한 문화적 교양과 독서에서 잉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문화정책은 문화예산이 전체예산의 1%도 안 된다는 현실에서도 드러나듯이 한심할 지경이다. 그동안 문화부장관 자리가 낙하산 인사였음은 물론, 거쳐 가는 역과 같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도층들의 문화적 안목이나 소양이 열악하다 보니 문화정책이 무엇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있을 턱이 없다.
그저 기득권을 가진 자들의 이해관계에 의한 이합집산이 반복될 뿐이니 민생치안인들 제대로 이루어질까? 동대문과 남대문 의류상가의 여성상인들의 새벽 귀가길에 강도가 출몰하는가 하면 자살자들은 자꾸만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신문을 보기가 겁난다. 아예 보기 싫을 때도 많다. 말도 안 되는 사건들은 물론 온통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기사들이 줄을 잇기 때문이다. ‘먹음에 배부름을 구하지 않고 거처함에 편안함을 구하지 않는다’ 는 청백리(淸白吏) 전통은 잘 보이지 않고, 신문의 정치면은 온통 비자금과 뇌물스캔들로 임리하다. 한 재벌의 최고 경영자가 국가권력에 이용당한 끝에 버림받아 투신자살한 최근의 사건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게다가, 태풍이 몰아쳐 수많은 이재민들이 생사를 넘나들 때 대통령과 그 비서실장 가족들은 뮤지컬을 보고 경제부총리는 골프를 쳤다는 기사에 이르면 실소를 금치 못한다. 진정 문화에 대한 관심을 표하자고 했다면, 삼청각이 아니라 대학로나 신촌으로 갔어야 했다. 국민들이 수재복구를 돕느라 땀방울을 흘릴 때 국민의 공복인 그들이 한 행동은 정말 낯이 뜨거운 일이었다.
남이야 어찌 되든 말든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인간 본성의 한 측면이라지만, “나의 행복은 남의 불행을 딛고 서 있다”는 불경(佛經)의 말씀이 생각나는 요즈음이다. 소시민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국민의 공복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좀더 행동에 신중함을 보여야 할 것이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개인의 가산을 처분하여 천신만고 끝에 만주로 간 그들, 낯선 이국땅의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민족의 독립을 위해 군사를 양성했던 이시영 형제 일가처럼, 권력이든 재산이든 가진 자들이 이젠 좀더 각성하여 지도층의 책임을 다하는 ‘노블리지 오블리제’의 정신을 지녀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신라시대 경덕왕의 부탁으로 충담사 지었다는 「안민가」에 보면 지금 우리나라의 지도층들에게 정확하게 적용되는 경구로 가득하다. 시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임금은 아버지요 신하는 사랑하는 어머니요 백성은 어리석은 아히로구나 하실른지 백성이 사랑을 알 것이다 꾸물대며 살손 중생(인생) 이것을 먹여 다스려 이 땅을 버리고 어디에 가고자 할지. 나라를 지닌 (혜택)을 알지다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한다면 나라 안이 태평하리이다.
임금(대통령)은 백성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이니 어른다운 품위와 넉넉한 덕을 지녀야 할 것이다. 신하(관료)들은 사랑하시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니 아픈 자식들이 없도록 골고루 사랑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왜 많은 한국의 젊은 부부들이 해외로 이민을 가려고 하는가? 정치다운 정치가 행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자신의 이름에 걸맞게 사고하고 행동한다면 나라 안이 태평할 거라는 충담사의 메시지가 더욱 절절하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임금이 문화의 힘을 믿고 충담사에게 정치에 도움이 될 만한 노래를 지어달라고 했다는 것도 우리의 열악한 문화계의 현실을 생각하면 의미심장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문예 진흥원의 각종 지원금 수혜자 선정을 위한 심사문제나, 문화계의 편중 인사문제 등은 형평성을 잃고 있어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타당성과 공정성을 의심케 하는 모호한 선정기준이나, 특정부류의 인사들로 문화행정의 포스트를 채움으로써 균형감각을 상실하고 있는 것은 우리 민족의 고질적인 병폐의 하나인 ‘패거리정치’의 부정적 측면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아 깊은 우려를 금치 못한다. 누구에게나 납득이 갈 보편성 있는 기준과 명분이 올바로 서야 뒷말이 없을 것이 아닌가? 우리나라의 지도층들에게는 정녕 만해 한용운 선생이 역설한 것처럼 평등한 마음으로 그 어떠한 것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의 정신을 지닐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인가? 좀더 열린 마음으로 투명하고 공정한 문화행정을 펼 수는 없는가?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려고 나라를 세웠다는 우리의 건국이념은 세계를 이끌어갈 만한 21세기의 보편적인 지도이념이 될 만한 위대한 정신이다. 우리가 그러한 건국이념을 지닌 단군 나라의 후손들이라면, 이젠 정말 그 알량한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지 말고 그것을 공평무사하게 행사하여 소외되는 사람이 없이 모두를 아우르는 균형감각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당쟁에 밀려 유배지에서 오랜 기간을 보낸 송강 정철이 「사미인곡」에서 간절히 원했던 것도 정치의 맑은 빛(淸光)을 온 세상에 골고루 비춰서 심산궁곡까지도 대낮처럼 환히 비추는 선정(善政)에 대한 갈망이었다.
21세기는 문화전쟁의 시대이다. 자동차 몇 십만 대 파는 것보다도 우수한 영화 한편이 더 많은 경제적 이득을 가져오는 요즈음이다. 디지털 기술이 아무리 발달한다 한들 그 속에 담을 문화적 콘텐츠가 없다면 문화전쟁의 시대에 어떻게 세계와 경쟁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의 애니메이션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급입니다. 하지만 시나리오가 없습니다” 라고 한 한 애니메이션 전문가의 말은 ‘알맹이’가 부족한 우리 문화산업의 현주소를 여실히 증명해주는 말이라 아니할 수 없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문제는 창조적인 문화콘텐츠를 생산해낼 수 있는 폭넓은 인문학의 정신을 회복하는 일이다. 날로 위축되어가는 인문학을 복원하고 오로지 눈앞의 현실적인 이익 앞에 굴복하고 마는 실용주의 일변도의 교육현실을 극복하여 국가의 백년대계인 교육을 좀더 폭넓은 문화적 안목으로 바라볼 줄 아는 지도자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