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새린의 손을 끌고는 시연과 시원은 녹음실을 나왔다.
녹음실을 나오는 복도에서 큰소리로 시연이 새린에게 물었다.
“근데 나 꼭 물어볼게 있어. 진실로 대답해야 돼. 예전에 조명 떨어져서 도광이 다쳤을 때, 그 조명 떨어뜨린 거 혹시 너야?”
묻고 싶은 건 그 자리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는 성격인 시연이 시원하게 물었다.
의심하고만 있는 것이 시연의 성격은 아니었다. 바로 묻자 새린은 대답했다.
“아니야!”
새린은 시연의 질문을 듣자마자 두 손을 재빨리 저으며 강력하게 말했다.
“나 아니야! 진짜! 나 그런 짓까진 안해!”
새린은 눈까지 동그랗게 뜨며 팔을 세차게 저어댔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새린의 눈은 진심을 말하고 있었다.
믿어달라는 진심어린 눈빛을 시연은 보았다.
“믿어도 되지?”
“진짜야. 나 아니야. 그건 정말 아니야!”
새린이 그런 짓까지 할리없다는 건 시연은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옷 하나 찢으면서 벌벌 손을 떨던 새린인데, 그런 간 큰 짓까진 할리 없었다.
의심을 하긴 했었지만, 새린은 그렇게 큰 일을 꾸밀만한 여자가 못되었다.
괴롭혀도 소심하게 할 뿐이었다.
“CD는 뭐하려고 훔쳤어?”
“…말 못해.”
“말해!”
한시연의 뿔뚝성질 또 나온다.
듣고있던 시원과 새린은 시연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가수는 가수인가보다. 목소리하나는 끝내준다.
“사실.. 도광이랑.. 같이 불렀다고 해서.. 듣고 싶어서..”
“나중에 CD발매되면 들어!”
“알았어..”
시연은 그렇게 새린을 다그치며 데리고 나갔다.
시연과 새린, 시원이 녹음실 복도를 빠져나가는 걸 멀찌감치 뒤에서 바라보고 있는 한 그림자가 있었다. 시우였다. 경비가 시연이 왔다는 걸 인터폰으로 연락했고, 시우는 만나러 내려왔다가 모든 걸 지켜보게 되었다.
‘역시 한시연 답다.’
팔짱을 낀 채 자기 여자를 대견스럽게 생각하며 쳐다보았다.
시우가 했던 말대로, 시연은 새린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기 편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게 바로 시우가 말했던 시연의 마력이었다.
시연과 새린, 시원은 택시를 잡아탔다.
“평창동이요!”
쪼르륵 뒷좌석에 올라탄 세 사람. 가운데 새린은 두 남매에게 낑겨 샌드위치마냥 앉게 되었다.
“어디 가는 거야?”
“우리집!”
“집?!”
새린은 시연의 집에 간다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시연을 쳐다봤다.
“왜! 나 밥 먹다 말았다고 했잖아! 우리집 밥 맛있어! 가서 너도 먹어!”
막무가내다. 하여튼 막무가내. 새린은 그런 시연의 모습에 ‘쿡’ 웃음이 나왔다.
이제까지 밉다고 괴롭혔는데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대해준다는 것에 대해 고마움이 앞섰다.
틱틱거리는 것도 애정이 묻어난다는 걸 알고 있는지라 고마웠다.
새린이 살짝 미소를 짓자 시연은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웃다가 민망해진 새린이 시선을 돌리려는데 시연이 새린의 안경을 빼앗았다.
“어. 나 눈 안보여.”
“뺀 게 훨 나! 눈 이쁘다!”
시연의 말에 새린의 기분은 좋아졌다. 하지만 쑥쓰러운지 안경을 다시 빼앗아 썼다.
“이제 안경 벗고 렌즈 껴. 그리고 옷도 이쁜 거 짧은 치마에 훅훅 파진 섹시한 옷들 그런거 입고 다녀. 자꾸자꾸 가꾸고 이쁘게 만들어. 그럼 누구나 다 이뻐져.”
새린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집.
집에 도착하자, 시연의 엄마가 마중을 나와 시연과 시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택시에서 애들이 내리자 밝게 웃으며 달려와 맞았다.
“엄마, 왜 밖에 나와 있어? 추워, 얼른 들어가.”
시연이 기다린 엄마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괜찮아. 모자랑 다 찾은거야?”
“응. 어휴, 몸이 차갑다. 들어가요.”
“근데 누구?”
시연의 엄마는 조금 떨어져 있는 새린을 보며 물었다.
어리숙한 새린이 꾸벅 인사를 했다.
“아..안녕하세요.”
“내 코디예요. 강새린씨.”
시연은 새린의 손을 꽉 잡으며 엄마에게 인사시켰다.
새린은 얼굴이 붉어져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시연의 엄마는 밝게 웃으며 새린을 맞이했다.
“아유, 잘 왔어요. 시연이 데뷔하고 여자친구 데려오기는 처음이네. 반가워요, 시연이 엄마예요.”
“아..네..”
따뜻하게 맞아주는 시연의 어머니 손길에 새린은 더더욱 고개를 못들고 미안해졌다.
“우리 시연이랑 일하면서 힘들죠?”
“아..아니예요..”
시연은 새린의 손을 이끌어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시연의 집에 들어가자 따뜻한 기운이 새린의 온몸을 감쌌다.
시연과 시원, 새린은 식탁에 둘러앉았고, 시연의 엄마는 바쁘게 식사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 애가 워낙 성격이 불같아서 같이 일할 때 힘든 점도 있을텐데..”
“아니예요..”
“그렇다면 다행이네.”
시연의 엄마가 상을 차려주었다.
“어서 들어요. 찬은 얼마 없지만 그래도 밥이 따뜻하니까.”
고슬고슬하게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밥과 국이 상 앞에 놓이자 새린의 눈에는 서서히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새린 앞에 놓인 숟가락과 젓가락도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얼마나… 난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데….’
“새린씨, 빨리 먹어. 엄마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시연과 시원이 큰소리로 ‘잘 먹겠습니다’ 인사를 한 뒤 숟가락을 집는 순간, 새린의 눈에서 후두둑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죄송합니다….”
새린의 눈물에 시연과 시원, 엄마는 놀라 쳐다봤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세요..”
새린의 눈이 빨개지며 용서를 구하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정말.. 흐흑..”
식탁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자 모두 당황해 새린을 일으켰다.
“일어나요. 왜..”
시연의 엄마가 일으키려고 하자 새린은 더욱 몸을 조아리며 고개를 숙였다.
미안했으리라… 괴롭히려고 미워하려고 나쁜 짓을 하려고 했던 사람에게, 그 사람의 가족들에게 환영을 받고 따뜻함을 받으니 미안했으리라….
새린의 마음이 눈 녹듯 녹아 온몸을 눈물로 감쌌다.
잘못한 걸 사죄하는 새린을 일으키다 안되겠는지 시연의 엄마는 따뜻하게 안아주며 토닥거려주었다.
“울지말아요.”
“죄송합니다….”
어린애가 엄마에게 안겨 용서와 위로를 받는 것마냥 그렇게.. 한참동안 안겨있었다.
“괜찮아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새린이 죄송하다는 말 속에, 그녀의 눈물 속엔 큰 의미가 담겨있으리라 생각한 시연의 어머니는 그냥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
.
.
다음 날, 눈물의 밤이 지나가고 아침은 어김없이 밝아왔다.
시연은 토크쇼 준비로 잔뜩 긴장되어 있는 상태다. 컨디션은 최고였다.
어제 새린을 용서했으니 마음은 편안하고 가벼웠다.
시우와 매니저는 시연의 집에서 시연의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아침식사를 끝내고 바로 벤을 태워 시연을 미용실로 데리고 갔다.
시연의 긴머리는 깔끔하게 틀어올려졌고 화장은 밝고 깔끔하게 되었다.
토크쇼는 웬만해선 나가지 않는 시연이었지만, 시연이 꼭 참석해야 하는 큰 자리였다.
한일 양국간의 친일교류 목적으로 진행되는 토크쇼로 한국말을 능수능란하게 잘하는 일본인 남자 MC와 한국가수들이 한국말로 토크를 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그 자리엔 다음주에 있을 한일 콘서트에 초청된 가수들이 미리 모이게 되었다.
일본에서 단단히 눈독을 들이고 있는 시연과 PP들이 초대된 가운데, 채소아, 키위(여성 2인조 그룹), A-ONE이 함께하게 되었다.
일본과 한국에 생방송으로 나가게 되는 토크쇼는 빠르게 진행되게 되며, 한 팀 한 팀에게 질문을 하고 라이브로 무대를 보여주게 된다.
토크쇼에 들어가기 전, 대기실에선 참여할 가수들이 모여 시끌벅적하게 웃고 떠들며 얘기를 나누었다.
시연과 PP, A-ONE은 원래 대기실에서 같이 놀고 얘기하던 팀이라 스스럼없이 어울렸고, 키위는 주로 일본에서 활동하는 2인조 여성그룹으로 낯을 많이 가렸지만 시연에게 먼저 다가와 인사하고 살갑게 굴었다. 시연보다 조금 어린 여자애 둘인데, 아주 귀여운 아이들이었다. 대기실 안에서 우중충한 모습을 보이는 건 채소아 하나였다.
뭐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삐쳐있는 채소아였다.
시우가 사온 음식들을 풀어놓자 대기실에 있는 사람들 모두 모여 먹기 바쁜데, 채소아만 콧방귀를 뀌며 도도하게 자리에 앉아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대본만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리자 채소아는 모두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냄새 역하거든! 좀 딴데가서 먹어!”
다같이 먹고 있던 대기실 안의 가수들과 코디, 매니저가 채소아를 벙찐 얼굴로 쳐다봤다.
가만히 앉아서 책을 보고 있던 시라이 젠이 책에서 눈을 떼 채소아를 감정없는 눈동자로 쳐다보며 말했다.
“선배가 나가시죠.”
“뭐라구?”
“중이 절이 싫으면 떠난다고 했습니다. 선배가 이 자리 싫다면 당연히 나가셔야죠.”
“야!”
“왜!”
성질있는 시라이 젠을 보고 다들 놀랐는데, 거기에 맞대응하는 채소아에게도 놀라 눈이 커졌다. 시라이 젠도 속이 좋지 않아 먹지 않고 책만 들여다보고 있는데, 채소아가 내내 신경에 거슬렸던 모양이다. 시라이 젠의 지독히도 낮고 무서운 음성에 옆에 있던 시연도 놀라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젠의 옷깃을 잡으며 말렸다.
“분위기 망치지 말고 나가시죠.”
채소아는 자기 분에 못이겨 바로 문을 박차고 대기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쾅!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사람들은 한 숨을 돌리며 저마다 한마디 씩 했다.
“재수없어.”
“진짜.”
귀엽게 앉아있던 키위애들도 톡톡 한마디씩 던졌다.
시연이 젓가락을 내려놓은 것을 보곤 시라이 젠이 젓가락을 새로 뜯어 손에 쥐어주었다.
“먹어. 괜찮아. 다들 빨리 먹어.”
시라이 젠의 따뜻한 배려에 대기실은 다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On Air
“아!하! 한국 최고의 가수들이 모이셨습니다! 그동안 궁금했던 궁금증을 풀어보는 시간! 더불어 생생한 라이브로 노래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채널 고정하세요!”
일본인 MC의 발음은 조금 어색했지만 한국말을 소통하기엔 큰 문제는 없었다.
한국말로 얘기하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원기충전을 한 한국가수들이 무대로 쏟아져 나왔다.
한 팀씩 자리에 앉자 금새 스튜디오는 꽉 차 활기찬 분위기를 띄었다.
“아시아의 영웅들이라고 칭송을 받고 있는 PP부터 질문하도록 하겠습니다! 요새 각자 개인활동을 하고 계신데, 4집 계획에 대해 묻고 싶네요!”
리더 도광이 간략하게 말하기 위해 입을 뗐다.
“네, 4집은 이 달 말 정도에 나올 예정이구요, 열심히 작업하고 있습니다.”
“아! 기대해보겠습니다~ PP의 멤버 이 후군, 당당하게 연인을 밝히셨는데 전과 후가 달라진 점이 있다면?”
후와 유리의 연인관계는 공식적인 인터뷰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유리의 염려와는 달리 많은 사람들의 격려와 위로가 끊이질 않았다.
여우같은 유리였지만 시연에게 배운 당당함으로 팬들 앞에 섰고 그것이 좋게 내비쳐졌다.
“발표하기 전에 숨어서 데이트하고 숨기고 하는게 너무 힘들었고, 애기(후가 부르는 유리의 애칭, 이 부분에 방청객들은 ‘꺄’ 소리를 질렀다.)한테도 미안하고 팬들한테도 죄스러웠는데, 발표하고 나니까 그런 문제가 한번에 해결 된 것 같아요. 저희들을 좋게 봐주시고 위로해주셔서 큰 위안이 되었구요. 이젠 어딜가도 떳떳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후가 조금은 쑥쓰러워하며 두 볼이 발그래해져서 웃자 방청객들은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유리와 사귀기 전 팬들 앞에선 후는 도도한 이미지에 약간은 건방진 이미지였다면 지금은 착한 남자, (여전히 싸가지는 없지만) 그래도 멋진 남자친구 일순위로 손꼽히고 있었다.
“다른 멤버들은 후군같이 연인발표할 애인 없으신가요?”
MC의 말에 후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 저희들 다 애인있으면 팬들 속상해서 울거예요. 이런 질문 하지 마세요.”
역시 도도함에 직설적인 녀석, 후였다.
“아, 그런가요? 그럼 다음 질문으로 빨리 넘어갈께요. 시라이 젠군과 도광군, 그리고 아시아의 꽃 한시연씨, 이 세분께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일본MC가 씨익- 웃으며 질문하기 시작했다.
“세 분이서 함께 시연씨의 2집 작업을 한다는 걸 들었는데, 시라이 젠군과 도광군이 오로지 시연씨에게만 곡을 주는 이유가 있습니까?”
세 사람이 질문에 활짝 웃었다.
도광이 제일 미소를 크게 띄며 답했다.
“이쁘잖아요-”
그 소리에 방청객들 난리가 났고, MC가 손을 입에다 가져가 조용히 하라는 표시를 하고 질문을 이어나갔다.
“이쁘면 옆에 계신 채소아씨도 계신데, 곡을 주실 의향이 있으신가요?”
일본MC의 애드립에도 웃으며 도광이 답했다.
“글쎄요, 이쁘시긴 하지만 누님은 나이가 계셔서.”
도광의 발언에 방청객들과 가수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고 채소아의 얼굴은 홍당무같이 빨개졌다.
“재치만점, 아시아의 영웅 PP의 무대 보시겠습니다! 하하!”
일본MC도 웃으며 PP를 소개했고, 무대로 나간 PP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42]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시연씨의 패션이며 화장법을 따라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유행의 발산지! 아시아의 꽃 한시연씨!”
PP의 무대가 끝나고 바로 시연의 소개가 이어졌고, 시연은 작게 웃으며 인사했다.
카메라에 클로즈업 된 시연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질만큼 화사하고 예뻤다.
“지금 활동 중인 후속곡 노래부터 시연씨의 의상까지, 일본에서도 큰 유행인 거 아시나요?”
“아, 그런가요?”
“일본에서 굉장한 한시연 열풍에 시연씨의 활동을 기다리는 일본 팬들이 많답니다. 일본 활동을 하실 계획을 가지고 계신가요?”
“예, 일본에서도 활동을 곧 하게 될 것 같아요. 2집 발매 동시에 일본에서도 싱글이 나오게 되요. 그 때 만나요♡”
“꺄아-”
방청객들은 시연의 모습에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쉿.”
일본 MC가 또다시 방청석을 잠재웠다.
“여성들이 시연씨를 동경하는 이유 중 하나가 당당하고 멋진 여자라서 랍니다. 시연씨처럼 되려면 어떻게 해야한다 하는 조건이 있나요?”
“과분한 칭찬인데요. 조건이라기보다 절 예쁘게 봐주시니까 예뻐지는 것 같아요. 사람의 얼굴도 심성도 만들고 가꾸는 거라고 생각해요, 전. 누군가 사랑해주고 예쁘게 봐주면 당연히 사람은 멋지게 변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일본MC도 방청석에 앉아있는 팬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시연의 한마디 한마디를 귀담아 들었다.
“그럼! 시연씨가 이쁜 이유는 사랑을 하기 때문이군요?”
“그렇죠!”
“그렇다면 이쁜 시연씨 사랑을 한 적이 있나요? 아니면 사랑을 하고 있나요?”
일본 MC의 질문에 시연이 밝게 웃었다.
하얗고 고른 이가 가지런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숨기지 않는다. 사랑하고 있다는 걸 당당하게 밝히고 싶은 시연이었다.
사랑을 하는 것이 죄가 아니니까.. 연예인도 사랑은 할 수 있으니까..
그만큼 사랑은 소중하니까.
시연이 그렇게 생각하고 시우와의 사랑을 밝히려는데,
“그런 질문은 너무 식상해요!”
“맞아. 사랑 안하고 사는 사람들이 어딨어요!”
A-ONE의 멤버들이 웃으며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다음에 있을 자신들에게 돌아올 질문을 미리 막고 있는 것이었다.
누구랑 사귀냐, 사랑을 하고 있냐, 이런 질문을 미리 회피하기 위해 시연에게 물어본 질문을 자기네들끼리 막아버리고 있었다. 그리하여 시연에게 들어야 할 질문의 답은 다른 곳으로 새어나가고 있었다. 거기다 도광이까지 거들었다. 아직은 시연이 시우 형과의 관계를 밝히는 건 좋지 않다고 판단한 아래, 시연의 대답을 막아버렸다.
“한시연양은 사랑을 하고 있어요, 팬들을.”
익살스럽게 웃는 도광의 미소에 방청객들은 다시 한번 웃고 환호를 보냈고, 얼렁뚱당 질문은 넘어가 버렸다. 그런데, 가만히 앉아있던 채소아가 입꼬리를 쓰윽 올리며 비열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잔잔한 물에 돌을 힘껏 내던졌다.
“사랑하고 있을 거 같은데요? 숨기지 말고 얘기해봐요. 시연씨라면 양다리도 가능할 것 같은데. 호호호.”
가증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말하는 채소아를 보며 시연은 당황하기는 커녕 더 방긋 웃어보이며 말했다.
“사실 제 팬들이 딱 두명이라면 양다리가 가능한데요, 너무 많아서 양다리보단 더 하죠.”
시연이 가볍게 받아치자 분위기는 다시 업이 되어 시연의 쪽으로 기울었고, 일본 MC는 허허 웃으며 시연을 소개했다.
“당당한 여자, 아시아의 꽃 한시연씨 소개합니다! 여자니까!”
시연의 무대가 화려하게 준비되어 있었고, 무대에 선 시연이 부드럽게 윙크를 하자 팬들의 함성소리와 함께 노래가 시작되었다.
파워가 잔뜩 실린 음색과 댄스는 시연에게서만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당당한 여자니까-♬”
시연의 목소리가 스튜디오를 가득 메웠고,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시연이 무대에서 노래를 하고 있는 동안, 시우는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스튜디오를 빠져나갔다. 비어있는 대기실에 들어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권시우 사장님?
강한 억양에 약간 비꼬는 듯한 말투에 시우의 눈썹은 치켜올라갔다.
“누구시죠.”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런데, 그걸 예언하기라도 한 듯이 상대방에서 말을 이었다.
- 요즘 키우고 있는 여가수, 한창 잘나가던데 기대되는 군요.
대체 뭐가 기대된다는 건지. 시우는 아무 대꾸없이 듣고 있었다.
- 백건파의 활약도 기대해 보지요. 후후.
위험하다. 시우의 머릿속이 복잡해져왔다.
시우가 백건파의 보스라는 건 비밀리에 부친 일인데, 시우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건 확실히 위험했다. 간단하게 말을 하고 있었지만 그 속에 들어가있는 의미는 모두 시우에게 전달되었다. 게다가 시연의 얘기까지 꺼내는 거 보니 그냥 지나칠 경고는 아니었다.
신중해야 했다. 시우가 말이 없자 스멀거리는 웃음소리를 내며 계속 말을 이었다.
- 조금만 기다리시면 저의 활약도 보여드리지요. 후후.
탈칵. 헛웃음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감히 협박을 해?’
그냥 간과해서는 안되는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벌벌 떨 일도 아니었다.
시우를 얕봐도 너무도 얕본 건 상대쪽이었다.
백건파의 보스는 시우였지만, 실질적으로 그쪽 일은 태혁의 몫으로 남겨두고, 시우는 드러내지 않고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사실, 검은세력이라고는 하지만 백건파는 작은 조직이 아니었다. 한국의 대기업과는 모두 연결되어 있었고 보이지 않는 영향력이 대단한 백건파였다.
한국의 거물급 기업들을 모두 뒤에서 백건파가 쥐고 있다고 해서 과언이 아니었다.
외국 자본을 유치하는 것도 돈 세탁을 도맡아 하고 있는 것도 모두 은밀한 일 중 하나였다.
백건파는 결코 보통의 검은세력이 아니었다.
보스가 크게 드러나지 않고 베일에 감싸두게 된 것은 시우가 드러내는 걸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시우의 형이 도맡고 있던 보스자리는 형이 죽고 난 뒤 자연스럽게 시우의 몫으로 넘어왔다. 하지만 시우는 드러내지 않고 은밀히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있었다.
그 이유는 연예계에 손을 뻗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태혁에게 자리를 넘길 것이라는 걸 미리 생각해두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조용히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고 있는 시우에게 걸려온 이 전화는 아주 위험한 오로라를 풍기고 있었다. 전화까지 해 협박할 정도면 모든 걸 계획하고 있다는 건데….
시우는 바로 태혁에게 전화를 넣었다.
.
.
마무리 인사를 끝으로 토크쇼는 끝이 났다.
생방송이었지만, 아무 탈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다만 채소아가 열이 잔뜩 받긴 했지만 말이다.
시연은 가수들과 인사를 하고 다음 스케줄을 위해 바쁘게 이동했다.
시연과 차에 타고 방송국에 가는 동안 시우는 단단히 일렀다. 시연이 불안하지 않도록….
“시연아.”
그만이 부르는 시연의 이름은 색달랐다.
부드럽고도 강한 무언가가 시연을 끌어당겼다.
시연은 바로 고개를 돌려 시우의 옆모습을 쳐다봤다.
“아직은 아니야.”
시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똑똑한 시연은 금새 알아차렸다.
오늘 토크쇼에서 그냥 말해버릴 뻔 한 것을 간신히 도광과 A-ONE 애들 덕분에 막았지만, 시연의 성격으로 얼마안가 모든 걸 공식적으로 발표할 것이다.
‘내 남자예요!’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꾹꾹 참아내고 있는 것도 용한데 아직 아니라는 시우의 말에 시연의 기운은 똑 떨어지고 말았다.
시연은 입술을 퉁 내밀고 뽀루퉁한 얼굴을 하고는 말했다.
“숨기고 거짓말 하는 거 싫은데!”
“알아. 숨기는 것도 거짓말 싫어하는 것도 아는데 이번만은 내 말 들어. 알리는 건 아직 안돼.”
빨간불에 신호가 걸려 차에 섰고, 시우는 불어있는 시연을 쳐다보며 말했다.
“난 네꺼고, 넌 내꺼잖아. 그런 거 일일이 얘기하지 않아도 돼. 달아나지 않으니까.”
그의 따뜻한 말에, 그리고 따뜻하게 쓰다듬어주는 손길에 시연은 조금 마음이 풀려서 시우를 쳐다보았다.
“그럼 한마디 더해서 내 마음을 녹여봐요!”
시우가 그녀의 말에 피식 웃었다.
시연 때문에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그의 입술이 열리며…
“사랑해.”
.
.
“사랑해요! 시연언니! 사랑해요!”
“언니! 여기 한번만 봐주세요!”
방송국 앞에 시연의 밴이 들어서자 팬들은 귀신같이 알아보고 달라붙었다.
팬들을 막고 있는 경호원들이 보이고, 시연은 차 문을 내리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시연의 얼굴을 보고는 더욱 열광하는 팬들의 함성은 대단했다.
“오늘 1위 하세요!”
“누나, 응원할께요! 사랑해요오-”
팬들의 기분좋은 말들에 시연은 더욱 힘을 얻었고 밝게 웃어주며 고맙다고 소리쳤다.
시우의 ‘사랑해’ 한마디 덕분이었을까, 팬들의 응원 때문이었을까 시연은 음악방송에서 ‘여자니까’로 1위를 차지했다. 채소아와 1위후보였는데, 큰 표차로 이겼다.
“이번주 1위 곡, 여자니까!”
시연과 이름과 노래제목이 불리는 순간, 시연의 눈에선 눈물방울과 함께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시연씨 소감 한말씀 해주시죠.”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MC들이 시연에게 마이크를 대어주고, 시연은 울먹거리며 소감을 말하기 시작했다.
“아, 먼저.. 먼저 우리 가족들, 엄마 아빠 시원이, 너무 감사하구요. 저희 팬들 너무나 감사드리고요. 아까 팬분들이 1위할꺼라구 파이팅 해줬는데 정말 1위했어요! 계속 응원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 일을 자신들의 일처럼 도와주고 응원해주는 피피들 너무 고맙구, 피피들이랑 친하게 지내서 피피팬들 속상하실텐데 그래도 응원해주고 이뻐해주는 거 감사드려요. 마지막으로 절 가수로 키워주신 사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시연은 수상소감을 끝내고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앞에 있던 팬들이 큰 플랜카드를 들리며 흔드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실감이 나는지 더욱 눈물이 앞을 가린다. 시연의 수상소감과 함께 또르륵 떨어지는 눈물에 시연의 팬들도 함께 울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백업댄서들이 무대로 나와 우는 시연을 토닥거려주었고, 시연은 댄서들과 돌아가며 진한 포옹을 했다. 그 모습은 더욱 아름다웠다.
시연이 울먹거리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팬들은 함께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들의 한 목소리가 방송국 안을 가득 메웠다.
하늘은 무심하지 않다.
노력하고 꿈을 가진 자에겐 길을 열어주신다.
시연에게 주신 행운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건 시연이 노력한 결실이고 열매이다.
착한 사람에겐 언젠가는 복이 돌아온다는 것을…….
계속 훌쩍거리는 시연에게 시우는 휴지를 건네주었다.
시연은 코를 힝 풀고는 또 울었다.
애기같이 우는 모습에 시우는 본능적으로 시연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의 큰 손이 시연의 얼굴을 감쌌다. 차가운 손이 뜨거운 열을 식혀주고 있었다.
“잘했어.”
시우의 말에 시연은 환한 미소를 띄우면서도 눈물은 계속 흘리고 있었다.
시우는 살포시 시연을 끌어 안아 자신의 품 속에 넣었다.
그의 심장소리에 시연의 마음은 편안해졌다.
“축하드립니다.”
운전하고 있던 태혁이 한 마디 건넸다.
그의 진실된 목소리도 시연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이제 그만 울어. 울면 약해져.”
“나 울어도 강해요.”
거의 진정된 시연의 눈이 반짝거렸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시우를 쳐다보았다.
“나요! 선물줘요!”
“선물?”
“찜질방!”
“찜질방?”
찜질방 선물이라니. 찜질방에 가는 것은 무리다.
예전에 시연이라면 가능했겠지만, 지금은 위험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아볼텐데…
“안돼.”
“찜질방 갈래요!”
“찜질방같은데 찜찜해.”
이럴 줄 알았다. 당연한 대답일거라 생각했지만 그냥 포기할 시연이 아니었다.
“오케이! 무조건 가는 거예요!”
자기 맘대로 오케이를 외치는 시연을 누가 말리겠는가. 시우는 졌다, 졌어. 하는 표정으로 시연을 바라보았다. 개구쟁이처럼 좋아하는 시연에겐 선물을 빼앗는 건 너무나 가혹한 일이 아닐까. 우는 아이를 달래 듯 시우는 고단한 하루가 될지라도 데리고 가야했다.
시연은 눈물을 쓰윽- 닦아내고는 핸드폰 플립을 열어 단축키를 눌러 누군가에게 전화를 넣었다. 그 누군가는 도광과 곡을 작업하고 있는 시라이 젠이었다.
“나 1등 했어!”
- 알고 있어. おめでと (축하해.)
“선물 줘!”
- 선물?
“선물은! 찜질방 가자! 모두 모여!”
찜질방을 가자는 말에 시라이 젠은 걱정이 앞섰다.
시우 형도 막지 못하는 거면 시라이 젠도 어쩔 수 없이 허락해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옆에서 시연의 목소리를 듣고 있던 도광이 덩달아 펄쩍펄쩍 뛰며 가자며 좋아라하기 시작했고,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젠에게 가자고 보채며 잉잉대기 시작하는 도광이의 목소리가 핸드폰을 타고 흘러나왔다.
- 가자 가자 가자!
- 너희들가면 거기가 어떻게 될지 알고 이러는 거야?
“알아!”
- 알아!
철없는 건 도광이나 시연이나 피차일반이다.
안다며 소리를 꽥 지르는 녀석들은 얼마나 좋은지 더 펄펄 뛰기 시작했다.
도광이는 이미 가방을 챙기고 옷을 주워 입고 있었다.
- 옆에 형 있지? 형이 허락 한거야?
“응!”
- 알았어.
젠은 알았다며 장소를 정하고 찜질방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전화를 끊고 승리의 미소를 짓는 시연을 보자 시우는 또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에이- 찜질방가면 계란 사줄께요. 오케이?”
시우의 표정을 살피던 시연이 인심쓴다는 듯이,
“알았어요, 알았어. 식혜도 사줄게. 내가 일등했는데 선물은 사장님이 받네!”
씨익 웃으며 핸드폰을 열어 유리에게도 전화를 했다.
시우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 일등했어!”
유리와 후까지! 찜질방에서 잔치를 하기로 한 시연을 말리기는 힘들다.
연예인도 찜질방도 가고 사우나도 가는 사람이니까.
[43]
찜질방에 모인 멤버는 시연과 시우, PP멤버들과 유리.
누구 하나라도 정체를 들키면 찜질방은 아수라장이 될 것이 뻔하다.
그들의 은밀한 변장이 시작되었다.
시연과 유리, PP멤버들 모두 검은 뿔테안경에 수건을 머리부터 목까지 칭칭 감았다.
PP들은 미리 준비한 마스크까지 썼고, 어느 정도 가리니 사람들이 잘 알아보지 못할 정도는 되었다.
“너 유리 아니지!”
유리가 화장을 지우고 잠자리 안경을 쓰니 사실 전혀 딴사람처럼 보였다.
후가 우리 유리 어딨냐고 나오자마자 찾은 걸 보면 확실히 변장을 하긴 했다.
“유리라고 부르지 마라! 이제부터 내는 아지다! 아지!”
“맞다! 난 랑이야! 랑이!”
뭐가 그렇게 좋은 두 여자가 붙어서 킥킥대며 웃었다.
찜질방을 둘러보니 어른들이며 아이들, 학생들이 꽉 메우고 있었다.
걱정스런 눈빛으로 돌아보는 젠과 시우, 두 사람에게 다가와 시연이 소곤소곤 말했다.
“그렇게 있으면 더 티나! 두 사람도 이름을 바꿔요, 얼른.”
“나 저거 먹고 싶어.”
땀을 빼기도 전에 어린애가 마시고 있는 식혜를 가리키며 먹고 싶다고 말하는 유리다.
“안돼! 저건 땀을 빼고 나와서 먹는 거야! 참아!”
이건 시연의 룰이다. 오늘은 시연이 우승한 날이니 가만히 들어줘야 하는 건가보다.
시연은 유리의 손을 꼭 잡고는 한증막으로 쏙 들어갔다.
유리와 시연이 들어가자 가만히 서있던 시우와 시라이, 도광과 후도 쪼르르 따라들어갔다.
병아리 떼마냥 따라들어오는 남자들을 보고 시연이 피식피식 웃었다.
“딴방 가이소!”
“금새 또 내가 보고 싶어서 따라들어왔구먼!”
두 여자가 익숙하게 사투리를 쓰자 도광이도 얼른 사투리를 쓰며 말했다.
“같이 좀 있드래!”
사람들이 쳐다보자 시연은 얼른 손에 쥐고 있던 수건으로 도광의 얼굴을 감쌌다. 더군다나 더 숨이 막히는 공간에서 수건으로 얼굴을 감싸자 숨이 막히는지 켁켁대는 도광이다.
“땀을 더 빼고 싶어하니. 허허허.”
시연이 웃으며 말하자 사람들은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한 차례 땀을 빼고 나와 앉으니 세상을 다 가진 듯 편안했다.
나른해진 몸은 최고였다.
“이제 식혜 먹어요!”
시연이 시우에게 고개를 휙 돌리며 반짝거리는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시우가 일어서자 시연은 다시 소리를 쳤다.
“계란두-”
“알았어.”
베실베실 웃으며 말하는 시연에게 식혜와 계란을 사다줄 수 밖에 없다.
도광이 시우에게 같이 가자며 따라 붙었고 두 남정네는 계란과 식혜 등 먹을 것을 잔뜩 사가지고 돌아왔다.
덕분에 간식으로 배를 채운 식구들.
“이렇게 편하긴 처음이야.”
유리는 후의 다리에 머리를 대고 누워 눈을 꼬옥 감았다.
“편해?”
“너무나.”
후가 사랑스럽게 유리를 쳐다보고, 둘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도광과 젠이 계란이 목에 걸렸다며 켁켁 댔다.
“닭살!”
“닭살!”
도광이 시라이 젠의 말을 따라하며 둘은 서로 팔을 비볐다.
시연은 유리와 후의 모습을 보더니 계란을 먹던 손을 탈탈 털고 시우를 바라보았다.
그렁그렁 이슬이 맺힐 것 같은 눈을 하고 시우를 쳐다보는 시연의 눈.
닭살스러운 둘의 애정행각이 부럽다고 말하는 그녀의 눈을 보곤 시우는 그만 웃음이 났다.
어린애 같아도 이렇게 어릴까.
아무래도 가수로 뿐만 아니라, 여자로도 시우가 키워야 하는 가 보다.
시우는 옆에 앉아있는 시연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주다 자신에게 밀착시켰다.
시연이 시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자 그 때서야 환하게 웃었다.
이제 남은 도광과 젠만이 이 커플들의 애정행각에 부러워 죽을 맛이었다.
“닭살!”
“에잇!”
도광이 금방 샘이 난 건지 시우 옆에 있다 얼른 자신도 시우의 어깨에 머리를 갖다 대었다.
양쪽에 좌도광 우시연이 되어 시우가 두 사람에게 어깨를 빌려주고 있었다.
“뭐야! 기대지마! 내 사람 어깨란 말이다!”
“부러워! 너한테 못기댈 봐엔 차라리 형한테 기댈 거야. 나 두 사람 사이 방해 중이야!”
“너어-”
“둘 다 조용히 해. 조용히 안하면 난 봉사할 생각없다.”
시우의 말에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입을 꽉 다물었다.
시우에겐 시연도 도광도 소중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모양새가 조금 우스울지 몰라도 이들은 이대로가 편했다.
도광은 골키퍼와 친해지는 길을 택한 모양이었다.
찜질방에서의 스릴 영화가 끝나갈 때 즈음, 한 여학생이 시연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수건으로 가리고 있는 시연과 유리를 보며 계속 눈을 떼지 못하는 여학생들.
나가려고 하고 있을 때 이제야 학생들은 수군거리며 자기들끼리 속닥거리고 있었다.
시연과 유리도 느낌이 왔는지 서두르기 시작했고, 최후의 수단인 연기가 시작되었다.
“퍼뜩 안일어나고 뭐하노? 저녁하러 가야제!”
시연이 유리를 일으켜 세웠고, 유리도 장단을 맞췄다.
“가야제. 근데 광식이 이 노마는 대체 어디를 간기고? 빨리 나가야 하는디.”
“그니까 잘 챙기라 안했나. 애 잊어뿔면 어쩔라꼬.”
영락없이 지방에서 올라온 주부들의 말투로 이야기를 나누는 두 여자였다.
둘의 쿵짝을 가만히 보고 있던 남자들은 ‘풉-’ 웃음이 났다.
“웃지만 말고, 당신이 광식이 찾아서 데꼬 나오소. 내는 야랑 먼저 씻고 나갈텐께.”
시연이 시우를 쳐다보며 말했고, 유리도 방긋 웃으며 남자들에게 말했다.
“도련님들 그라믄 저희 먼저 나갈께예.”
둘의 연기 실력은 날로 늘어만 가니 시연과 유리에게 여우주연상을 척척 안겨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런지. 광식이라는 아이를 만들어 놓고 그 자리를 재치있게 빠져나가는 두 여자를 보고 감탄하는 남정네들이었다.
대단하다…!
.
.
“행복이란 게 많이 어려운 게 아니예요. 행복하다 행복하다 하면 정말로 행복해지는 것 같아요. 근데 우리 어디 가는 거예요?”
라디오 녹음이 끝나고 집으로 가야하는 차는 전혀 다른 곳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시연은 시우 옆에서 계속해서 병아리마냥 쫑알쫑알 거렸다.
“어디가요? 아! 혹시 서프라이즈 선물을 주려구?”
“응. 행복을 주려구.”
시우가 시연을 태우고 도착한 곳은 헬스장이었다.
“뭐예요. 서프라이즈 선물이 아니잖아.”
“행복을 지키려면 기본이 되어야지. 피곤해도 오늘부터 딱 한시간씩만 운동하는 거야.”
“나한테 이런 거 필요없어! 잠이 보약이구, 얼마나 튼튼한대!”
시연이 주먹을 쥐고 시우를 향해 원투,원투 날려주자 시우가 두 손을 가만히 잡아내리며 말했다.
“건강해야 돼. 건강하면 정신도 몸도 튼튼하니까 좋아.”
스케줄이 비는 날이면 시우는 어김없이 시연에게 검도를 가르쳐 주었었다.
그런데 이젠 헬스까지 시키다니!
“날 가수가 아니라 운동선수로 만드려는 거죠? 그쵸?”
“날 사랑해?”
뜬금없이 사랑하냐는 말에 시연이 화들짝 놀랐다.
은근히 대담한 그다. 그런데 대담하긴 그녀도 마찬가지다.
“사랑해!”
“그럼 운동하자.”
전혀 말이 맞지 않아!
“사랑하면 운동해야 된다는 게 무슨 말이예요?”
“난 널 지켜야 돼. 사랑하니까, 그러니까 운동도 해야 돼.”
알 수 없는 그의 속삭임에 시연은 입술을 들썩거렸다.
“사랑하니까 운동한다. 응.”
“그 상태 좋아.”
시우가 시연의 손을 꽉 잡고 헬스장 안으로 들어갔다.
주로 연예인들이 운동을 하러 오는 헬스장이었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트레이너를 마다하고 시우가 직접 시연을 코치했고, 시연에게 스트레칭부터 천천히 운동을 가르쳐주었다.
“무리하는 건 좋지 않아.”
시연이 런닝머신에 올라가 시우의 코치대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한창 운동을 하고 있는 중에, 시연의 옆에 남자 개그맨이 옆에 다가와 음료수를 건넸다.
“한시연씨 팬이예요. 열심히 하세요.”
시연은 감사하다며 꾸벅 인사를 하고 음료수를 받았다.
개그맨은 음료수를 전해주고 가면서 또 뒤돌아 보고 또 뒤돌아 보며 시연을 쳐다보다 헬스장을 나갔다. 시연은 음료수를 들고 어정쩡한 웃음을 지으며 시우의 얼굴을 살폈다.
“에이- 질투난 건 아니겠죠? 내 팬이라잖아.”
시우는 시연의 손에 들려있는 개그맨이 주고 간 캔을 빼앗았다.
캔을 따고 벌컥벌컥 마셔버렸다. 질투쟁이-!
“맛없어. 시원하지도 않아.”
시우가 질투하는 모습이 사랑스러운지 시연이 기분좋게 웃음을 터트렸다.
“난 음료수를 백개를 줘도 당신이랑 안 바꿔. 그 백개랑 비교할 수도 없지만.”
#일본, 나리타 공항
도쿄에서 열리는 한일 콘서트가 개최되어, 한국의 가수들은 모두 공연을 하러 일본으로 건너왔다. 저번주에 토크쇼를 했던 멤버 그대로 비행기를 타고 일본에 도착했다.
같은 시각, 같은 비행기를 타고 나리타 공항에 도착하자, 수많은 기자들과 팬들로 공항은 인산인해를 이뤘고, 작은 사고도 있을만큼 이 현장의 열기는 대단했다.
시연의 인기는 물론 대단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응원하는 일본 팬들이 목놓아 소리쳐댔다.
“시연! がんばれ!(힘내세요!)”
“시연! 愛してる!(사랑해요!)”
시연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내미는 일본팬들.
손을 한번 잡아달라고 내미는 손을 보니 놀랄 뿐이었다.
아직 일본에서 음반을 선보인 적도 없고, 한번 와보지도 않았는데 큰 주목을 받고 있었다.
유리의 영화가 일본과 한국에서 동시 개봉을 했고, 시연이 부른 영화 ost가 일본에서 히트를 쳐 일본팬들을 사로잡은 것이었다.
말로만 듣다 대단한 반응을 직접 몸으로 느끼니 시연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시연은 진심으로 기뻐서 손을 흔들어주었다.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고맙습니다.)”
시라이 젠에게 배운 일어실력이 술술 나왔다.
시연이 일본말을 하며 웃자 팬들은 기뻐서 어쩔 줄 몰라했다.
경호원의 보호를 받으며 시연은 준비되어 있던 차에 올라탔다.
시연뿐 아니라, 다른 가수들도 공항을 빠져 나오느라 진땀을 뺐다.
일본의 최고급 호텔에 도착하자 공항에서의 피로는 싹 가셨다.
일본 측의 예우에 시연은 감사했고 기분이 좋았다.
안내받은 방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누군가 시연을 불렀다.
“야.”
뒤를 돌아보니 채소아가 서있었다.
건방진 얼굴은 여전했고, 얼굴보다 큰 선글라스는 참 언밸런스했다.
아까 공항에서 시연의 일본팬들이 꺅꺅거리던 것이 샘이 난 모양이었다.
“요즘 좀 잘나간다고 티내지마.”
언제 무슨 티를 냈다는 건지, 참.
“감사합니다.”
뭐 잘나가는 건 잘나가는 거니까. 시연이 이렇게 나오자 채소아는 더욱 열이 받았는지 얼굴이 빨개져 시연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건방떨지마. 네 코를 납작하게 해줄테니까.”
“그러시던가요.”
시연은 시큰둥하게 대답을 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화가나서 한 말을 받아쳐주지도 않고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받는 시연을 보고 더욱 열받는 채소아였다.
싸움은 양쪽에서 불이 붙어야 하는 것인데, 이건 아예 무시하기로 한건가!
“열받아! 으으!”
채소아의 소리가 방에서 까지 들리지만 시연은 개의치않고 방을 둘러보았다.
특급 귀빈대접이다.
시연은 커튼을 쫘-악 쳐 노을빛을 받았다.
쏟아져 들어오는 작은 빛방울들이 시연의 방으로 떨어져 들어왔다.
시연은 짐을 대충 풀고 옷을 간편하게 갈아입은 후, 리허설을 하러 도쿄 부도칸으로 향했다.
일본 매니저와 경호원들이 보호하는 가운데 시연과 시우가 공연장에 도착하자마자 리허설은 바로 시작되었다.
시연은 콘서트에서 총 3곡을 부르게 되고, 하이라이트인 엔딩을 맡았다.
“시연씨 시작하겠습니다.”
일본스탭이 띄엄띄엄 한국말로 시연에게 말해주었다.
시연의 첫 곡은 발라드로 시작되었다.
음악이 나오며 마이크를 통해 시연의 신비스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중앙무대에 서있는 시연은 꾸미지 않아도 빛이 났다.
그녀의 촉촉한 목소리에 맞는 따뜻한 음악이 스탭들의 넋을 빼놓았다.
시연 혼자만의 리허설이 몇 번 더 반복된 후, 백업댄서들이 모두 무대로 올라왔다.
짜여진 안무와 자연스러운 안무가 합쳐지며 시연과 댄서들의 리허설은 신나게 시작되었다.
라이브에 댄스까지, 시연은 리허설은 본무대같이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시연이 한참 리허설을 하고 있을 때, 채소아가 매니저와 공연장으로 들어왔다.
시연의 무대를 부러우면서도 시기하는 눈빛을 담아 부담스럽게 올려다보는 채소아.
리허설이 끝나고 쉬는 타임에 시연은 땀을 닦으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리허설인데 그렇게 땀 빼면서까지 하는 건 어리석은 짓인거 모르니?”
시연이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아무말없이 채소아를 쳐다봤다.
“전 리허설도 이렇게 해야 찜찜하지 않던데. 선배도 시원하게 땀 흘려보세요. 그 맛 아시게 될 거예요. 얼마나 시원하다구요.”
“야, 한시연!”
돌아서 가려는 시연을 불러 세우는 채소아.
[44]
채소아가 불러 뒤를 돌아본 시연의 시야엔 시우의 뒷모습이 잡혔다.
채소아와 시연의 사이를 가로막아 선 시우가 채소아를 보며 말을 건넸다.
“볼일 있나.”
“사장님…”
“채소아씨 리허설도 공연의 일부입니다. 한국대표로 왔으니 더 열심히 하도록.”
“네….”
시우라면 꼬리를 쓰윽 내리고 대답하는 인형이 되어버리는 채소아다.
“가자.”
시우가 시연을 이끌고 나가려는 순간, 채소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장님..”
채소아가 시우를 부르자 시연의 속 안에서 무언가 끌어올랐다.
시연은 시우의 옷깃을 꾸욱 잡아당겼다.
‘나만 봐.’
시연의 마음이 통한 건지 시우는 그 자리를 그냥 걸어나왔다.
채소아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시연을 이끌어 공연장을 나와버렸다.
자신의 부름에도 한번 뒤돌아보지도 않고 냉정하게 떠나는 시우의 뒷모습을 보고 채소아는 약이 바짝 올랐다.
‘나는 왜 안되는 건데!’
..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
당신이기에 믿습니다…….
나만 봐, 권시우.
..
시연은 시우와 PP멤버들과 저녁을 먹고 방으로 올라왔다.
방 앞에는 조금 늦게 일본에 도착한 진영과 새린이 시연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
“꺄- 지금 도착한 거예요?”
든든한 두 사람이 오자 시연은 기운이 났다.
새린도 이젠 믿을 수 있는 지원자가 되었으니 말이다.
“도착해서 방에 짐풀고 시연씨 보러 온거야.”
“얼마나 보고싶었는지 알아요?”
시연이 새린과 진영을 꼬옥 안고는 자기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언니들 저녁 먹었어?”
시연이 진영과 새린에게 묻자 기내에서 먹었다며 활짝 웃는 두 사람이다.
새린은 몰라볼 정도로 변해있었다.
안경을 벗고 대신 렌즈를 끼었고, 옷도 이쁘게 입고 시연이 말한대로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고 나타났다.
“정말 이뻐! 꾸미니까 이렇게 이쁘잖아!”
“고마워. 다 네 덕분이야.”
“내 덕분이긴. 원래 이쁘니까 조금만 꾸며도 달라보이는 거지.”
“진짜 달라졌어. 공항에서 보고 새린씨 아닌줄 알았다니까.”
진영이 빙그레 웃으며 말하자, 새린은 쑥쓰러운 듯 웃어보였다.
자신의 달라진 모습을 느낀 것이었을까. 조금은 당당해진 모습의 새린이었다.
“피곤하지?”
어느새 세 사람은 수학여행 온 여학생들마냥 꺅꺅대며 수다를 떨었다.
이젠 편한 친구같은 세 사람이다.
“아! 내일 기자회견할 때 입을 정장 가지고 왔어.”
진영은 챙겨온 정장을 시연의 옷장에 넣어주다, 옷장 안에 준비되어 있는 유카타를 보고 짧은 탄성을 질렀다.
“이야~ 이 유카타 너무 이쁘다! 시연씨 입으면 진짜 이쁘겠다!”
여러벌있는 유카타 중 한벌을 꺼내어 시연에게 내밀었다.
시연도 처음보는 유카타를 보고 너무 좋아했다.
“진짜 이쁘다!”
소매가 넓고 하늘거리는 핑크빛 유카타를 보고 여자 셋은 꺅꺅대기 시작했다.
“난 유카타 좋더라.”
“몇벌 있으니까 우리 다 입어보자! 언니들 다 입어요!”
시연이 옷장에 걸려있는 유카타를 꺼내 새린과 진영에게 각각 나눠주었다.
서로 허리끈을 매어주어 유카타를 제대로 입었다.
시원하면서도 부드러운 감촉이 몸에 달라붙었다.
“신기하다.”
세 여자가 거울 앞에 서서 밝게 웃고 있었다.
“이럴 게 아니라, 우리 온천갈래요? 호텔 안에 있다던데!”
반짝거리는 눈으로 온천에 가자며 말하는 시연이다.
“그럴까? 몸이 찌뿌둥하긴 한데,”
“맞아. 비행기에서 몸이 좀 불편했는지 나도 몸 좀 풀고싶어.”
“가요, 가!”
유카타를 입은 세 여자는 방을 나와 온천으로 내려갔다.
시연과 진영, 새린 이 세 사람은 천천히 물에서 몸을 풀었다.
시연은 일본에 오기 전 찜질방 갔던 게 생각났다.
“풋-”
작게 웃자 진영과 새린이 시연을 쳐다보았다.
“아뇨. 저번주에 저 1위했던 날, 애들하고 찜질방 갔던 게 생각나서요.”
“찜질방? 갔었어?”
“네.”
“안들켰어? 사람들이 못알아봤어?”
걱정이 앞서는 두 사람을 안심시키는 시연이다.
“얼마나 재밌었는데요. 알아볼까 조마조마하긴 했는데 그래도 스릴있고 좋던데요. 히히.”
“사장님 보호아래 같이 간 거였지?”
“네, 어떻게 알았어요?”
“사장님이 철저하게 보호했으니까 아무 탈없이 넘어간거야. 그렇지, 새린씨?”
“맞아요. 사장님이 알게 모르게 시연씨 엄청 보호하잖아.”
“찜질방을 통째로 빌린 걸 수도 있어.”
새린과 진영의 말을 듣고 있던 시연은 입가에 헤벌쭉 미소가 걸렸다.
헤실헤실 개구쟁이처럼 웃는 시연을 보고 뭔가 감이 온 진영이 외쳤다.
“아! 시연씨 설마.. 사장님이랑 사귀거야? 맞지?”
“아! 어머, 어쩐지! 어쩐지! 진짜야?”
새린과 진영이 더 흥분하여 물었다.
시연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진짜.”
시연의 입술에서 진실이 나오자, 진영과 새린은 동시에 입을 쩍벌리며 부러운 듯 바라보았다.
“사장님 진짜 남자로써 괜찮지. 얼굴 돼, 몸매 돼, 거기다 능력까지. PP도 데뷔하자마자 단번에 톱스타로 올려놓고 시연씨도 제대로 탑이잖아. 부럽다, 시연씨. 일도 사랑도 한꺼번에 잡는 구나!”
진영이 말을 줄줄 이으며 부러운 눈길을 멈추질 않았다.
“헤헤.”
“시연씨도 뭐 하나 안빠지니까 사장님이 좋아하는 거지. 사실 내가 만나 본 여자연예인 중에 시연씨 발톱만큼도 따라오는 여자 없어.”
진영의 칭찬에 시연은 부끄부끄 손으로 물을 휘휘 저었다.
“칭찬에 몸둘바를 모르겠어요.”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웃는 시연의 모습은 천상 여자다.
“사장님 어디가 좋아?”
“다 좋아요. 어디가 좋아서 좋은 게 아니라, 그 사람이라서 좋아요.”
시연이 웃을 때 생기는 애교미소가 여자인 새린과 진영이 봐도 부러웠다.
“사랑이란 거 처음이라서 어떤 건지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 모르겠는데요.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옆에 그 사람이 없다면 전 울지도 못할꺼예요. 왜냐면… 저도 없을 것 같거든요.”
.
.
세 사람은 온천에서 놀다 씻고 옷을 입으러 나왔다.
옷장에 있어야 할 시연의 유카타는 보이지 않았다.
“어, 내 옷이 없어요.”
“없어? 잘 찾아봐.”
울상을 지으며 유카타를 찾아보았지만, 없다.
큰 타올로 온몸을 가리고 있지만 이 채로 나갈 수는 없지 않는가.
“누가 훔쳐간 거 아니야?”
“그런가봐. 어떡해.”
“둘이 여기 있어. 내가 방에 올라가서 옷 가지고 내려올께.”
진영이 새린과 시연을 남겨두고 얼른 옷을 챙겨입고 나갔다.
누군가 장난을 친 거라면 정말 화날 일이었다.
“금방 올거야, 괜찮아.”
예전의 새린이라면 잊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지금의 새린은 정말 시연의 언니같이 시연을 진정시켜주고 있었다. 그녀에게 배운 것 중 하나인 것이기도 했지만, 새린은 천성이 착했다.
시연이 속상할까 유카타를 입지 않고 똑같이 타올로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그녀의 세심한 배려에 시연은 고마웠다.
“언니, 많이 이뻐.”
“배웠어, 시연이 너한테 많이. 얼굴보다 마음이 예뻐야 한다는 거. 고마워.”
“내가 뭘 했다구.”
“난 어렸을 때부터 나랑 나이차이도 많이 나고 똑똑한 오빠랑 언니들 사이에서 외톨이로 자랐어. 같은 식구면서도 난 똑똑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구.. 매일 구박 받고 찬밥취급 당하고.. 그래서 혼자만의 피해의식에 갇혀 살았었어. 오빠랑 언니들은 다 의산데, 왜 나같은 애가 이렇게 머리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나.. 매일매일 고민하면서..”
새린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 둘씩 털어놓았다.
“그렇게 매일 자신없이 살아가던 때 내가 나는 못 꾸미지만 누군가를 꾸며줄 수 있다는 걸 알고 처음으로 기쁨을 느꼈어. 그 때부터 이 일에 죽기 살기로 뛰어들었어. 그런데 쉽지는 않았어. 집안에서도 밖에서도 늘 찬밥신세였거든. 그래도 난 기뻤어. 내 손으로 뭘 할 수 있다는 게. 그리고 그걸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좋았어. 연예인들은 얼굴도 이쁘고 재주도 많아. 그런데 인간성은 부족하더라. 코디라고 멸시하고 종 부리듯 하면서 기분나쁘게 대해서 몇번이고 그만두고 싶었어. 차츰차츰 지쳐가고 있을 때, 도광이가 내 앞에 나타났어. 처음 만난 날 떨어진 의상들을 주워주면서 웃어줬어. ‘어깨펴고 인상펴고 웃어요.’ 그 따뜻한 한마디가 힘들어도 이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되어버렸어.”
도광의 선한 웃음으로… 그의 한마디로 힘든 걸 견딜 수 있다는 건 도광이 새린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있는지 절실히 말해주고 있었다.
“시연이 너처럼 당당한 애를 처음 봤어. 미워하면서도 널 동경했어. 내가 괴롭히고 미워했어도 한결같이 대해준 건 너 밖에 없어. 가족들한테도 받지 못했던 신뢰를 너한테 받았어. 너를 통해 알게 되었어, 믿음이란 거. 고마워, 믿어주어서…”
시연은 새린을 꼬옥 안아주었다.
“그리고 미안해. 괴롭혔던 거.. 컨셉 유출해서 정말 미안해. 나 많이 반성하고 있어.”
“잘된 일이잖아. 더 좋은 컨셉이 나와서 성공했잖아. 난 그 일 다 잊어버렸어.”
“고마워.”
“성공 못했다면 언니를 가만 두지 않았겠지만. 하하하!”
둘은 서로를 보며 크게 웃었다.
그렇게 웃고 있을 때, 진영이 옷을 가지고 들어왔다.
“시연씨 옷 가져왔어~”
진영이 가져온 옷을 입고 시연은 호텔로 올라왔다.
새린과 진영은 한층 아래인 곳에서 묵게되었다.
“그럼 내일봐요, 잘자!”
“시연씨두!”
“잘자!”
서로 인사를 하고 시연은 윗층으로 코디들은 아래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연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시연의 방문 앞에는 채소아가 팔짱을 껴고 거만하게 서있었다.
아무말없이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채소아의 비웃음이 섞인 말소리가 시연의 귀를 거슬렸다.
“용케도 왔네. 하긴 옆에서 시중드는 하녀 둘씩이나 있으니 옷 하나쯤 없어져도 힘들진 않았겠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시연의 눈은 번뜩거렸다.
옷을 감춰버린 게… 당신?!
그러나 장난친 것 보다 더 거슬린 건 진영과 새린을 비하시킨 발언이었다.
하녀라니, 항상 도와주려고 애쓰는 언니들을 하녀라니!
시연의 불뚝성질이 갑자기 솟구쳤다.
진영과 새린의 얼굴이 떠오르며 분노의 눈동자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아, 근데 나한테 컨셉 빼돌린 니 코디, 걔 아직도 니 옆에 두는 이유가 뭐야? 착한 척이라도 하고 싶어서?”
“……”
“웃겨 증말.”
시연은 더 이상 참기 힘들었다.
채소아가 자기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시연도 그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뭐야?”
채소아의 방에 무작정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시연의 행동에 놀라기도 하면서 무서운지 뒷걸음치며 제대로 소리도 못내는 채소아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지만 무서운 눈을 하고 있는 시연을 보니 저절로 입이 다물어졌다.
“너..너 왜이래?”
시연이 바짝 다가서자 채소아는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시연을 쳐다보았다.
꼿꼿이 서있는 채소아를 뚫어져라 쳐다보다 시연의 주먹이 채소아에게 향했다.
반사적으로 채소아는 질끈 눈을 감았다.
..
채소아는 맞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아무 느낌이 없자 한쪽 눈을 살며시 떴다.
시연의 주먹이 자신의 코 앞에 다가와 정지되어 있었다.
“뭐..뭐야..”
그걸 보자마자 몸서리쳐지도록 더욱 무서워졌다.
다리에 온 힘이 풀리고 스르륵 주저 앉았다.
“제가 이 정도로 참고 있다는 것만 알아두세요.”
시연은 길고 짧은 소리 없이 한마디가 남기고 방을 나가버렸다.
얼마나 그녀가 참고 있는지 보여주는 결과였다.
[45]
아침엔 유명한 일본잡지에서 인터뷰를 했고, 점심 땐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일 가수들이 서로 인사를 나눈 뒤 기자들과 이야기를 했고 농담도 하고 부드러운 분위기에 인터뷰를 마쳤다.
기자회견 후 일본가수들과 한국가수들이 잘해보자는 의미에서 점심식사를 같이 했다.
일본말이 능수능란한 시라이 젠이 가장 말이 잘 통하고, 말을 많이 할 것 같았지만 그는 거의 말이 없었다. 사실 시라이 젠은 꽤 과묵한 편이었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은 상황이라 그런지 꽤 조용한 분위기에 식사는 계속 되었다.
한 일본 남자가수만 입을 나불대며 주저리 주저리 말을 늘어놓기 바빴다.
“자꾸 나보면서 뭐라고 그러는 거야?”
시연을 보며 쉴새없이 이야기하는 일본남자가수를 보며 시연이 옆에 앉아있는 시라이 젠에게 물었다.
“별 말 없어. 노래 좋다구. 감성이 풍부한 것 같다고.”
“아..”
시연이 고맙다며 인사를 하자 더 흥이 나 말하는 일본남자가수.
“시라이 나 저기 물 좀.”
“응.”
젠이 옆에서 물을 건네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도광이 이에 질새라 시연에게 음료수를 얼른 내밀었다.
역시 이 둘은 시연에겐 가족같았다. 젠은 오빠같았고, 도광은 남동생같았다.
#도쿄 콘서트장.
콘서트장 밖에는 일본인들 뿐 아니라 아시아 각국에서 모인 팬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하나둘씩 입장했고 콘서트장은 사람들도 가득 메워졌다.
시연은 엔딩을 맡았지만 그것이 더 긴장되게 만들었다.
대기실에서 계속해서 춤동작을 맞추며 열심이다.
“동작을 더 크게 해도 좋아.”
도광이 대기실에 놀러왔다 시연의 춤을 봐주며 말하고 있었다.
“무대가 많이 넓으니까 몸을 크게 움직여도 상관없어. 더 크게 해도 돼. 난 큰무대에 올라가면 내가 거인이다 라고 생각하고 춤을 춰. 오, 지금 좋아! 잘했어, 제자님!”
칭찬을 하자 시연이 방긋 웃어보였다.
“시연이 넌 한 사람인데 무대를 꽉 채우는 신비한 아우라가 있어.”
도광이 은근슬쩍 다가와 시연의 팔에 매달렸다. 놀자, 놀자! 원숭이새끼마냥 매달리는 도광을 밀어내려고 하고 있는데, 대기실의 문이 열리며 시우가 들어왔다.
“형! 우리 뽀뽀할려고 그랬어요! 갑자기 들어오시면 어떡해요!”
무표정으로 도광을 바라보는 시우다. 질투가 솟구치는 걸 참고 있는 저 눈빛.
“뽀뽀했다면 그 입술, 가만두지 않았을거다.”
시우의 말에 도광이 방실방실 웃으며 말했다.
“뽀뽀했다면 어떻게 하실껀데요? 네?”
“……”
“네?”
“내 입술로 네 입을 막아버렸겠지.”
“합!”
시우의 도발적인 발언에 도광이 얼른 입술을 손으로 막았다.
“조심해. 난 그냥 두지 않아. 키스하고 싶다면 말해, 내가 해줄테니.”
지나가는 말이 아니다.
도광에게 다가와 눈에서 레이저 빔이 나올 정도로 뜨겁게 쳐다보며 말하는 시우다.
“힝!”
도광이는 얼른 시우에게서 몸을 빼내어 대기실을 뛰쳐나갔다.
시연이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다 결국 너털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푸하하. 장난이 너무 과했어요!”
“장난아니야. 뽀뽀하면 난 도광이 입술에서 한시연을 찾아올꺼야.”
.
.
한일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MC들이 각각 일본말과 한국말로 오프닝을 열어줄 가수를 소개했다.
차례대로 일본가수, 한국가수가 번갈아가며 무대를 채웠다. 팬들의 열띤 응원도 대단했다.
시연은 심호흡을 하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인들과 함께 하는 콘서트라 그런지 민족애가 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아무리 미운 채소아라도 속으로 응원하고 있었다.
실수가 많은 여잔데 실수하지 말라고 빌어주고 있었다.
그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었다.
채소아의 차례가 무사히 끝나고 이제 엔딩이 다가오고 있었다.
“잘할 수 있어.”
새린이 시연의 머리를 매만져주며 말했다.
“방금 대기실 들어오다 보니까, 일본남자그룹 MAX, 모토라는 애가 채소아한테 치근덕거리더라.”
“치근덕거려?”
정의에 불타는 시연의 성질이 화르륵 올랐다.
“엉덩이를 만지는 거 있지.”
“아니 그런 변태가!”
“채소아는 말도 안통하고 그러니까 무안하지 않게 웃으면서 대기실로 뛰어들어가버리던데.”
“채소아가 그런 걸 그냥 뒀다구요? 그 성질에 왜 가만히 있어.”
시연은 진영이 입혀준 드레스를 거울을 통해 보았다.
악세서리까지 완벽하게 코디를 마쳤다.
“시연상, 스탠바이 해주세요.”
“네!”
드디어 시연의 차례가 돌아왔다. 엔딩.
두근두근 거리는 마음을 안고 무대에 올랐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밑에서 무대로 천천히 올라와 모습을 드러낸 시연의 등장…
그녀가 무대에서 서자 ‘와아아아아!’ 팬들의 찢어질듯한 함성이 들려왔다.
붉은장미가 크게 박혀있는 하얀 드레스는 시연을 충분히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시연의 맑고 구슬픈 음색이 들려오자 팬들은 쥐죽은 듯 조용히 시연의 노래를 경청했다.
“떠난다고 하는 당신의 뒷모습이… 아파요….”
영화에 삽입되었던 노래라 그런지 더욱 팬들의 가슴 속을 울렸다.
시연의 첫 번째 노래가 끝나고, 갑자기 ‘빰! 빰! 빰!’ 음악이 바뀌어 무대 양 사이드에서 불꽃이 터져나왔다. 시연의 드레스가 벗겨지며, 드레스 안에 입고있던 짧은 하얀체크 치마와 검은멜빵으로 된 의상으로 바뀌었다. 시연의 ‘여자니까’가 신나게 시작되었다.
“다같이! come! come! come!”
시원스런 목소리가 콘서트장을 가득 메웠고, 팬들도 하나같이 봉을 흔들며 응원했다.
큰 무대는 시연 하나만으로도 꽉 찰 정도로 작게 보였다.
백업댄서들과 어울려 춤추는 시연은 환상적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나비같아 보였다.
자유롭게 훨훨 나는 나비. 틀에 짜여져 인형같이 움직이는 다른 여가수들과 다른 시연이었다.
확실히 무대를 이끄는 시연이었다.
‘여자니까’ 노래가 다음 바로 신나는 댄스곡이 이어졌다.
“私は 한시연です! yo, say!”
“yo yo!”
작은 거인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시연의 노래와 춤은 콘서트장을 열광적인 분위기로 만들었다. 현란한 춤과 폭발적인 무대매너는 시연만이 뿜어낼 수 있는 에너지였다.
‘팟!’
팬들이 열정적인 시연의 무대에 푹 빠져 필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콘서트장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시연이 있는 무대가 한순간에 컴컴해졌다.
음악도 멈춰버렸고, 노래를 하던 시연도 놀라 멈춰 섰다.
긴급상황에 당황한 스탭들이 무대 밑에서는 소리를 쳐댔고 팬들은 ‘뭐냐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사고에 시연도 당황한 건 마찬가지.
댄서들도 놀라 춤을 멈추고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팬들의 술렁임에 잔뜩 긴장한 시연이 어쩔 줄 몰라하다 마음을 다잡고 눈을 한번 감았다 떴다.
‘무섭지 않다. 무섭지 않다.’
무섭지 않다는 말을 계속 속으로 되뇌였다.
컴컴한 어둠이 당연히 무서웠지만 시연의 머릿속엔 팬들을 안심시켜야 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팬들은 오죽할까 싶어 먼저 이들의 마음을 다독여줘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목소리를 가다 듬었다.
시연이 크게 소리를 내질렀다.
“みな-さん! (여러분!)”
시연의 생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落ち着いてください! (진정하세요!)”
그녀가 목이 터져라 크게 외치자 술렁거리던 팬들은 점차 조용해졌다.
“ちょっと 停電されたようです。(잠깐 정전이 된 것 같아요.) 驚かないでください。(놀라지 마세요.) みんな 集中してください。(모두 집중해주세요.)”
시연이 ‘휴’ 숨을 한번 내뱉고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첫키스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시연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천천히, 천천히… 그녀의 맑은 음색은 울려퍼졌다.
봄날의 따뜻함이 입술에서 느껴져요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달콤한 당신의 촉촉함
커피향이 나는 당신입에 체리맛 사탕을 드릴께요
차가운 입술에 달콤한 키스를
별처럼 반짝이는 짜릿함이 느껴져요
kiss me
사랑하는 당신과 따뜻함을 나누고 싶어
사랑하는 당신의 따뜻함을 느끼고 싶어
천천히, 아기를 달래주려고 하는 노래처럼 부르는 첫키스는 관객들의 마음을 진정시켰다.
시연이 계속해서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조명이 켜졌고 무대는 다시 밝아졌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 준 시연에게 감동받은 팬들이 끝없는 박수를 보냈다.
마지막으로 한국가수들과 일본가수들이 모두 무대로 올라와 인사를 하는 것으로 콘서트는 끝이 났다.
한국과 일본으로 생방송 된 이 콘서트는 시연의 행동을 그대로 담아 내보냈다.
.
.
.
콘서트를 무사히 끝내고 상쾌한 마음으로 시연은 시우와 드라이브를 했다.
시우의 차는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도로를 달렸고 노오란 달빛은 길을 안내했다.
“아까 무서웠어요. 갑자기 캄캄해지니까 나도모르게 다리가 떨렸어. 내려갈까 했는데 발은 안떨어지고.. 내가 내 마음 다스리려면 노래라도 해야겠다 싶었지요. 그래서 떨리는 마음 가다듬고 노래하니까 진짜 거짓말처럼 무서움이 달아다버렸어요. 지금 우리 따라오는 저 달빛처럼 마음이 밝아지더라구요, 신기하게도.”
시연이 노래를 시작했을 땐, 그랬다. 자기가 안정을 되찾기 위해 노래를 했다.
시연에게 있어서 노래는 하늘에 떠있는 달빛같았다. 어두운 마음도 빛으로 밝혀주는 달빛.
“나 할말 있어요.”
“할말?”
운전을 하고 있는 시우를 쳐다보며 외쳤다.
“내 옆에서 떨어지지 마. 나만 봐, 권시우.”
그녀의 말이 들리고 몇 초 후…
“풉.”
시우는 작게 웃음을 흘렸다.
“웃지마요.”
“난 나보다 어린사람한테 반말은 처음 들어봐. 그리고 명령도 처음이야.”
작은 여자애에게 명령과 반말을 한꺼번에 들으니 처음엔 머릿속이 멍해지다 그 뒤론 웃음밖에 나지 않았다. 어떤 여자도 시우에게 이렇게 대범하게 행동하거나 말하지 못했다.
색달랐다. 그녀의 입술에서 나온 말은 달콤했다.
“내가 권시우한테 건 주문.”
주문을 걸었어요. 나만의 주문을….
콘서트장에서 갑자기 캄캄해졌을 때, 이런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이렇게 캄캄한데, 옆에 시우가 없다면… 정말로 캄캄할 것 같다는 생각.
그래서 미리 주문을 걸어놓은 것이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시우는 웃음소리를 털어버렸다.
그가 옆에서 기분좋게 미소짓자 시연도 덩달아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웃을 때 옆에서 보면 되게 근사한 거 알아요?”
“몰라.”
“그럼 이제 매일 알려줄께요. 옆에 앉아서 웃는 거 우는 거 보고 다 말해줄께.”
..
드라이브를 마치고 시우는 시연을 방까지 데려다 주었다.
“잘자.”
“사장님도 내 꿈 꿔요. 내 얼굴만 가득 나오는 꿈.”
역시 시연은 시우를 미소짓게 하는 마력이 있다.
그의 작은미소에 시연은 이쁜 미소를 보여주고 방으로 들어갔다.
시우는 닫힌 방문을 보고 있다 자신의 룸으로 돌아갔다.
시연은 씻고 나와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
잠이 들려고 하는데 복도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채소아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이래…!”
그리고 들리는 일본남자의 목소리. 꼭 싸우는 듯한 분위기였다.
시연은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보았다.
“……!”
싫다고 밀치는 채소아와 채소아를 어떻게해서든 끌고가려는 느끼한 일본남자가수(대기실에서 새린이 말해주었던 MAX의 모토였다.)의 모습이 시연의 눈에 포착되었다.
“뭐하는 거예요!”
시연이 나오자 채소아가 뒤를 쳐다보며 애원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술이 조금 취한 일본남자는 비틀거리다 시연을 게슴치레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정말 구해주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한민족으로 이어진 피가 무섭긴 했나보다.
시연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고 바로 그녀의 발차기가 날아가 남자의 가슴팍에 꽃혔다.
짧은 욕설과 함께 바닥에 나뒹구는 남자.
채소아는 경악을 금치 못한 표정으로 바닥에 엎어진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더 이상의 공격은 필요치 않았다. 남자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주..죽은 거 아냐?”
“이런 걸로 안 죽거든!”
시연이 이번엔 채소아에게 다가갔다.
채소아는 갑자기 다가오는 시연을 보자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왜…이러는 거야?”
“싫다고 말 못해요? 말이 안되면 주먹이라도 쓰지. 끌려가면 어쩔 뻔 했어! 바보같이 이런 일본놈한테 무슨 일 당했으면 어쩔 뻔 했냐고!”
시연이 버럭 성질을 내며 소리치자 당황한 채소아도 똑같이 소리쳤다.
“네가 뭔 상관이야!”
“뭔 상관이냐구? 하! 같은 한국여자가 이런 짱나는 상황에 처했는데! 어떻게 상관을 안해? 어떻게 가만히 있냐구! 자기 몸 하나 간수도 못하면서! 도와줬더니 왜 상관했냐고 어디다 소리를 질러? 뭘 잘했다구!”
“나도 놀랐는데 어떡해!”
“나한테는 악독하게 잘만 하드만!”
‘띵-!’
두 여자가 씩씩대며 서있을 때, 엘리베이터가 열리며 쓰러져있는 일본남자가수 매니저와 호텔 매니저, 경호원들이 나타났다.
엇,그럼 어떻게 되는거죠?시연이는 망하는건가..
ㅜ ㅜ...이거 다음편볼라믄 언제까지기달려야 하는건가염? 안나오는거??? ㅜㅜㅜㅜ
다음편은 어찌 된것인지요??ㅜㅜ 보고 싶ㅇ요~~~
아.. 진짜 오랜만이네요 ㅠㅠ
다음편 보고싶어요ㅠㅠ
다음편보고싶어요~~~~~~~~~ㅠ
다음편이요~!!!
아직도 다음편 안 올라왔네요~ㅜㅠ
악!담편
담편담편!!!!
다음편 빨리보고싶어요ㅜㅜㅜㅜㅜ
완전빠져들어서 ㅠㅠ재밋게 봐써여 다음편 기대되네요
완전빠져들어서 ㅠㅠ재밋게 봐써여 다음편 기대되네요
너무재밌다 ㅠㅠ
하잉 오랜만에 와서 올라온 새글 보니 기분이 넘 좋아요
오, 재미있어요~
흫미 진진![완소](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0724/texticon_90.gif)
경호원이...;;;;;
반짝반짝 +ㅁ+
시연이 정말 착하네요!
딱 절묘한데서 끊겼어!! =ㅁ=;;;;
오해받으면 안되는데ㅜㅜㅜㅜㅜ
a-one 이라뇽..ㅎ? 처음엔 s-one 아니였나여?
설마 채소아가 마지막까지 싸가지없이 행동하지는 않겠죠?
다음편이 기대되요 + _+
음음 그냥지나갈꺼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