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상지 : 비슬산(1,083m)
2. 목 적 : 비슬산 등반
3. 기 간 : 2007년 4 월 21-22일(무박)
4. 참가자 : 45 명 정원
5. 코 스 : 비티재- 수봉산- 마령재- 상수월삼거리- 능선분깃점-
조화봉- 비슬산- 용연사 (약 22km)
6 탈출로 : 제 1탈출로 - 조화봉에서 유가사
제 2탈출로 - 비슬산에서 유가사
7. 주의사항 : 약 22km의 산행거리로 장거리 산행을 예상 체력안배에 신경써야하며,
선두그룹은 비티재에서 조화봉까지 산행로가 선명하지 않은 지점과 암릉구간을
야간에 산행해야하니 진행을 천천히 하면서 후미그룹과의 거리를 조절할것. 그리고
마침 22일이 참꽃축제를 여는 날이라 많은 인파가 몰릴것으로 예상되므로 화기와 흡연으로 인한 불미스러운 일이 없도록 주의를 요함.
■ 세부 운영 계획
1. 일 정
가. 22일 : 비티재 (03:30분)- 수봉산(4:30)-마령재(5:10)- 611m(삼각점있음. 5:20)-
원명고개(시멘트임도. 6:20) - 기맥분기점(상수월삼거리. 6:50) -능선분깃점
(조식. 7:20-8:00) - 989.7봉(8:50)- 조화봉(9:30)-비슬산(11:00)-용연사(13:00)
나. 산행 시간은 중간그룹을 기준으로 잡은 것으로 상황에 따라 가감 될수있음.
다. 21일밤 출발부터 22일 안산에 도착 할 때까지의 도로는 그날의 도로상황을 감안하여 결정할 것이며 당일 차내에서 공지.
라. 산행들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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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할 분담
선두 :
중간 :
후미 :
3. 비슬산 개념도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i.blog.empas.com%2Fcul6k2%2F29552352_520x771.jpg)
4. 비슬산 고도표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i.blog.empas.com%2Fcul6k2%2F29552696_520x234.jpg)
5. 식사 계획 ( 1 식 )
가. 장소 : 조식 : 조화봉 2km전 능선분기점(아침7시20분 8시까지)
중식 : 현지 매식. 산행전 예약완료.
나. 보온 도시락과 보온 물통 각자 준비
6. 장비 운영계획
가. 무전기 : 501 502 503 504 505
나. 약품 : 임 원
다. 고도계 : 임 원
라. 나침반 : 임 원
마. 지도 : 회원 각 1 장
바. GPS : 임원
7. 차량 운행 계획
가. 대기관광 1 대 ( 양순식 기사님 : 011 - 343 - 7870 )
나. 시화 산업은행( 토.밤 10시 10분 ) - 안산역 ( 밤 10시 30분 ) - 중앙역( 밤 10시 40분) - 다농 ( 밤 10시 50분 ) - 상록수 운동장 ( 밤 11시 10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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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예상 날씨 ( 4월 21일- 22일 )
가. 개 황 :
나. 기 온 :
다. 일출 시각 : 22일 05 시 45 분
라. 일몰 시각 : 19 시 04 분
9. 비슬산 관리 사무소
053-614-5481
10. 산행전 비슬산에 대하여
비슬산은....
무릇 산들은 산세에 걸맞거나 전설에서 비롯된 이름을 가지고 있다.
흰눈이 내렸을 때 경치가 절정을 이룬다하여 설악산(雪嶽山) 산명이 지어지고,
산중에 평평한 대(臺)와 같은 봉우리가 다섯 개있다 하여 오대산(五臺山)산명이 탄생한 것이다.
또한 치악산은 가을 단풍이 좋아 적악산(赤嶽山)이라 불리다가 뀡의 보은설화가 나오면서 '붉은 적(赤)'자가 '꿩치(雉)'자로 바뀐 것이다.
그렇다면 비슬산(琵瑟山 ; 1,083.6m) 은 얼마나 아름답기에 '비파 비(琵), 거문고 슬(瑟)'자를 이름으로 삼은 것일까?
비파와 거문고와 연관된 전설이 전해지는 것일까?
이는 산세를 떠나서라도 산등성이를 걸어봄으로써 답을 얻을수 있으리라.
정상부 바위가 신선이 앉아 비파 혹은 거문고를 타는 형상 같다하여 '비슬산'이라 이름 지어졌다 하지만
그런 설화 때문이 아니더라도 편안하게 뻗은 비슬산 주능선을 따르노라면 절로 비파, 거문고 타는 소리가 은은하게 울리는 듯한 착각에 빠지고 만다.
산세나 분위기나 비슬이란 산명이 잘 어울리는 산인 것이다.
달성쪽에서 보면 곰이 앞발 들고 벌떡 일어선 듯 위압적이고,
산정에서 바라보면 거대한 독수리가 달성쪽으로 쏜살같이 내려앉은 듯한 형세를 보여주는 비슬산은
대구 앞산에서 남으로 낙동강까지 뻗어내리는 산줄기의 주산이다.
정상인 대견봉(大見峰)을 중심으로 북으로 청룡산(794.1m)과 산성산(653m)을 솟구친 다음 대구 앞산(660.3m)까지 뻗고,
남으로 창령-밀양 열왕산(662.5m)을 지나 서쪽으로 갈래를쳐 관룡산(739.7m)∼화왕산(756.6m)줄기를 솟구치고,
남으로 낙동강에 줄기를 가라앉힐 때까지 힘차게 뻗어내린다.
이 커다란 산괴에서 가장 힘차고 높게 솟구친 산이 비슬산이다. 산세는 주능선을 경계로 동서가 확연히 다르다. .
달성 쪽은 가팔라 장벽을 이루고 있는 반면 청도쪽은 아늑하면서도 묵직한 육산(陸山)의 전형을 보여준다.
때문에 등산로도 달성쪽은 가파른 반면 청도쪽은 완만한 편이다 달성 쪽은 바위와 너덜지대가 많이 있으면서도
바위산이라 나무가 적으리라는 예상을 뒤엎고 수림도 무성하다. 특히 유가사 북쪽 일원은 송림숲이 잘 발달해 있다.
품이 큰 탓인지 비슬산에는 예로부터 고찰이 많이 들어서 있다.
지금은 모두 퇴색해 부속사암이 사라지고 말았지만, 동쪽의 용천사(龍天寺)는 50개에 이르는 부속사암과 1천여 명의 승려가 있었다. 전하는 대찰이었다.
또한 정상 북쪽, 200여 칸의 당우와 500여 승려가 수도했다는 용연사(龍淵寺)는 여러 차례 거듭된 화재로 당우가 많이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당우가 남아 대찰로서의 위용을 간직하고 있다. 비슬산은 창녕 화왕산에 견줄만큼 진달래꽃으로 이름난 산이다.
정상 일원과 조화봉 북릉 서쪽 사면은 어른키를 넘는 진달래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차, 봄이면 붉게 물들면서 천상 화원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달성군은 매년 4월 말에서 5월초 개화시기에 맞취 참꽃(진달래)축제를 열고 있다.
이 기간중에는 등반대회, 참꽃사진 및 그림대회, 백일장, 풍물놀이,노래자랑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문의 달성군 관공문화재계 전화 053-650-3224)
그렇다고 비슬산이 참꽃 외에 볼거리가 없는산은 아니다.
산기슭은 아름드리 소나무를 비롯한 나무들이 우거져 있어 늘 고즈넉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고,
정상인 대견봉(大見峰)에서 조화봉(照華峰 : 1,058m 청도쪽에서는 1,058mm봉을, 달성쪽에서는 대견사 뒤 1,034mm봉을 일컫는다)으로
이어지는 산등성이는 참꽃이 떨어지고 여름이 다가오면서 초원이 깔려 생기가 넘치고, 가을이면 초원이 누렇게 변하면서 찬란하게 빛난다.
그리고 겨울이면 흰눈이 덮이면서 험난하면서도 기운찬 겨울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게다가 사계절 어느 때건 멋진 낙조를 볼 수 있는 산이다.
주능선을 비롯하여, 서쪽 사면 어디서든 저녁 무렵이면 시뻘겋게 달아오른 둥근 해가 낙동강 물로 빠져드는 광경을 볼 수 있다.
특히 당나라 황제가 세숫대야에 비친 아름다운 산수에 흠뻑 빠져 신하들을 시켜 찾아냈다는 전설이 전하는 대견사지는 '낙조 전망대'라 이름 붙여도 전혀 손색이 없다.
비슬산은 구마고속도로와 대구∼청도간 지방도로가 산 동서쪽으로 지나가고,
또한 산중 고찰로 이어지는 도로가 잘 나 있어 산행기점도 다양하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달성군 유가면 양리에 위치한 유가사 기점 코스들이다.
수도암과 도성암을 거쳐 북서릉을 타고 정상으로 오르는 길. 유가사에서 병풍듬을 거치는 정상직등로,
그리고 수성골을 타고 남릉을 거쳐 정상으로 오르는 길 외에도 여러 가닥의 산길이 나있다.
준족들은 정상인 대견봉에 오른 다음 남릉을 타고 조화봉을 거쳐 자연휴양림까지 잇지만,
대개 도성암 코스로 올라 병품듬 또는 수성골로 내려서는 원점회귀 코스를 많이 이용한다.
자연휴양림 코스는 역시 휴양림이 들어서면서 찾는 이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휴양림에서 계곡길과 지능선길을 따라 대견사지에 올라선 다음 정상을 향해 준마의 허리처럼 뻗어 오른 주능선을 타거나
혹은 수성골을 거쳐 유가사로 내려선다.
가장 짧은 등산로는 대견사지에서 서릉을 타고 다시 휴양림으로 내려서는 코스다.
청도 쪽으로도 산길이 여러가닥 나 있다. 대구와 경계를 이루는 헐티재와 혹은 신라고찰 용천사에서 북동릉을 타고 정상으로 오르는 산길,
용천사에서 서쪽으로 깊게 파인 골짜기를 타고 북동릉으로 올라서는 산길,
각북면 덕촌리 낙성 마을에서 조화봉으로 오르는 산길들이 대표적인 등산로다.
대구 산악인들은 앞산에서 비슬산 정상까지 잇는 종주산행을 가장 좋은 코스라 일컫는다.
하지만 준족들에게도 10시간 이상 걸리는 코스이기에 해가 긴 철에나 가능하다.
정상에서 2시간쯤 못미처서쪽 용연사로 내려서는 코스는 종주산행중 시간이 모자라거나 체력이 떨어졌을 경우 탈출로도 이용한다.
비슬산 주변의 문화유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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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비슬산암괴류(達城琵瑟山岩塊流)
지정번호 : 천연기념물 제435호
지정연월일 : 2003년 12월 13일
소 재 지 :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 용리
산1번지
규 모 : 989,792㎡
비슬산 암괴류는 지금으로부터 약 1만년 전~10만년 전인 주빙하기 후대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중생대 백악기의 화강암 거석들로 구성되어 특이한 경관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 발달규모가 대단히 큰 것으로 화강암 지형에서는 보기 드물고 가치가 매우 높은 지형이다.
암괴류 상부는 비슬산 대견사지(大見寺址) 근방, 하부는 고도 450m 부근인 소재사(消災寺) 남쪽 근방이다.
토르가 잘 발달한 대견사지 부근에는 부처바위 등 기묘한 모양의 바위들이 분포하고 있고 칼바위는 애추(崖錐,talus 혹은 scree)
(풍화된 암설(岩屑)이 중력의 작용으로 급사면에서 떨어져 내려가 퇴적한 반원추형(半圓錐形)의 지형)의 형성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비슬산 암괴류와 그 주변에는 다양한 종류의 지형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어 중요한 학술적 연구대상이 된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i.blog.empas.com%2Fcul6k2%2F29552406_250x200.jpg)
대견사지삼층석탑
지정 번호 : 문화재자료 제42호
지정년월일 : 1994년 4월 16일
소 재 지 : 대구 달성군 유가면 용리산 1
시 대 : 신라 헌덕왕
비슬산 주봉에서 남쪽으로 약 2km 해발 1,000여m에 위치한 이 탑은 중국 당나라의 황제가 절을 짓기 위하여 찾아 헤매다
9세기 신라 헌덕왕 때 이곳 비슬산에 절과 삼층석탑을 건립하고 대국에서 본 절이라하여 대견사라 이름 지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현재 절은 임진년 조일전쟁 때 허물어져 버리고 빈터에 주춧돌과 석축만이 남아있으며
삼층석탑도 허물어져 있는 것을 달성군에서 1988년도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i.blog.empas.com%2Fcul6k2%2F29552319_520x390_thumb.jpg)
상세설명
소재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나 자세한 연대는 알 수 없다.
사기(寺記)에 의하면 1358년(공민왕 7년) 진보법사(眞寶法師)가 중창하였으며 그 후 몇차례의 중수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사찰은 비슬산을 배산하여 서향으로 좌정하고 있으며 일주문을 비롯해 대웅전, 명부전, 산신각, 요사채 등이 배치되어 있다.
대웅전은 전면 3칸, 측면3칸의 다포계 맞배집으로 평면은 정면과 측면의 어칸을 협칸보다 넓게 잡아 통칸으로 구성하고 어칸 뒤편에 불단을 배치하였다.
창호는 정면 어칸은 4짝 여닫이문, 양 퇴칸은 2짝 여닫이문, 측면과 배면 양 퇴칸에는 2짝문을 달았던 흔적이 남아있어 조선 중기의 창호구성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 건물은 여러 차례의 중건, 중소와 해체 보수로 부재의 일부가 교체되기는 하였으나 사찰의 일반적인 법당형식을 잘 갖추고 있고
외관 구성이 단정하며 부재의 결구 등 보존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특히 이 건물의 창호구성이나 다포양식으로 꾸민 두공의 형태 및 구성수법, 정면성을 강조하는 외관 구성수법 등에서
조선 중기의 시대적 상황과 양식적 특성을 살필 수 있어 건축사의 자료적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