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투게더 (Happy Together)#.13
옆좌석에 앉은 준수는 다리를 꼰 채 도도하게 앉아 운전하는 유천의 옆모습을 훔쳐보았다.
처음으로 데이트 마인드로 준수와 나들이에 나선 그는 상당히 긴장하고 있는 듯 보인다.
아까 전, 준수가 사이렌을 당장 뒷좌석으로 던져놓지 못하겠냐고 소리지른 후로는 더더욱
쫄았다. 그러나 와이셔츠 단추를 세 개씩이나 풀러놓은 그의 넘치는 야성미(...) 덕분에,
준수는 눈을 쉽게 뗄 수가 없었다. 와이셔츠 속으로 보이는 유천의 단단한 몸은 기대 이상
이었다. 온갖 운동과 고난과 역경으로 단련된 유천의 몸은, 단지 가슴팍의 단면과 살짝
드러나는 쇄골만 봤을 뿐인데도 남다르다.
" 어딜 갈까? "
" 응? "
" 뭘 그렇게 봐? "
멍하니 자신의 가슴팍을 내려다보고 있는 건 눈치까지도 못하고, 유천이 궁금한듯 물었다.
아까부터 조용히 말이 없는 준수다. 사실은 처음으로 제대로 된 옷을 갖춰 입고 나온 유천
의 등장부터 내내 설레였기 때문에, 자신의 두근거림을 쉽게 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 아무것도 안 보거든? "
" 그럼 말고. "
" 설마, 내가 네 몸이라도 보고 있을까봐? "
" ... 누가 그랬대? 왜 생색이야? "
제 발 저린 준수가, 괜히 더 신경질을 내며 고개를 훽 돌렸다. 차창으로 보이는 유천의
운전하는 옆모습이 근사하다. 저 남자... 처음 보았을 때는 정말 지방 촌구석에서 갓 상경한
노숙자인 줄 알았는데, 저렇게 제대로 입혀놓고 보니까 정말 그럴싸 하구나. 아마 언제나
저렇게 차려입고 다녔다면, 여자들이 가만 두지 않았을 거야. 갑자기 유천의 구린 옷차림과
괴팍한 말투, 연애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단순한 뇌세포가 마음에 든다. 그렇게 살아와서
지금까지 사랑 한 번 못해봤잖아. 그래서 내가 처음이잖아.
" 여긴 어디야? "
" 아, 오늘 뭐 먹을지 내가 많이 고민해봤는데, 죽이는 메뉴를 하나 골랐다. "
" 뭔데. "
또 잔뜩 들떠서 사투리 쓰는 걸 보니 심히 불안하다.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는 골목길을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데 준수가 생각하던 근사한 레스토랑은 전혀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돈까스나 팔면 다행이지.
" 따라 와봐. "
어두운 골목길에 경찰차를 주차시키자, 근처에 있던 담배 피던 고삐리 양아치들이 바퀴벌레
떼처럼 우수수 흩어진다. 형사와 같이 다니면 이런 점이 좋긴 좋구나. 차에서 내린 유천은,
담배 꽁초를 바닥에 버린 고삐리들을 쫓아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당연히 차 문을 열어
줄거라고 기대하던 준수를 내버려둔 채. 멍하니 차 안에 앉아있던 준수는, 자기가 차 문을
열고 나왔다(...).
" 이 씨팔 새끼들! "
씨, 와 팔, 에 악센트를 강력하게 준 유천이, 고삐리 너 댓명을 이끌고 준수가 서 있는
곳으로 끌고 왔다. 분명히 10초도 안 되서 뛰어간 것 같은데 괴물같은 달리기 실력이다.
고삐리들을 벽에 밀어놓고, 유천은 바닥에 침을 퉤엣- 뱉었다. 누가 보면 삥 뜯는 어른과
당하는 고삐리로 보겠다.
" 니네 고삐리지? 씨발, 니네 엄마가 담배나 쳐 피라고 골반뼈 빠지게 애 낳은 줄 알어?! "
" 저희 엄마 제왕절개로 저 낳았는데요. "
" 이 새끼가! "
곰발바닥 같읕 손바닥으로 고삐리의 대가리를 후려찬 유천이, 네 명의 머리를 순서대로
내리치며 갖잖은 훈계를 하기 시작했다. 중삐리 때부터 입에 담배를 문 자신이 하기에는
너무 양심없는 짓이긴 하다.
" 다시 한 번만 내 눈에 걸려봐. 그 땐 니 대가리에서 뇌수가 철철 넘쳐 흐르는 꼴을 보게
될 거다. "
" 저.. 박 형사. "
" 들었지? 형사야, 나. 씨팔! 니네 화상파랑 홍초파 이번에 잡힌 거 뉴스에서 들었지?!
그거 다 내가 잡았어! 나 TV에서 못봤냐?! "
" ....... "
준수에게 남자다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시작한 고삐리 훈계는, 어느새 점점 자신의
자랑으로 발전해가고...
" 내가 강력반 들어왔을 때부터 전설의 박 형사라고 소문이 자자했어! 성북동 연쇄 살인범
그 새끼도 내가 잡은 거야! 니네 알지?! 그 배때기 칼로 쑤시고 다녔던 졸라게 미친놈!!
그걸 내가 잡았다고! 걔만 내가 잡았냐?! 잠실 연쇄 살인범, 야! 니네 기억나지!? "
" 네... 네.. "
" 그 새끼도 내가 잡았거든! 육교 위에서 날려차기로 대가리 후려차고 정강이 총으로 파앙!
명중시켜서 그 자리에서 잡았거든! 하하! 피가 육교 위에 좔좔좔... "
" 대단하시네요... "
" 대단하지! "
이 새끼 뭐야? 정도의 표정으로 서있는 고삐리들은 보이지도 않는지, 유천은 자꾸만 뒤를
힐끔 바라보며 준수의 표정을 살피기 바빴다.
방금 들었어? 내가 이렇게 대단한 놈이야!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새끼가 나라고! 너는
제대로 걸린 거야. 내가 죽을 때까지 너 전용 보디가드 해 주면서 안전하게 지켜줄게!
" 박 형사. 그만 가자. "
" 한 번만 더 걸려봐! 강력반 취조실에서 키보드로 대가리 후두려 맞기 싫으면 정신 차려! "
고작 담배 한 번 핀거 가지고 강력반까지 나온다... 고삐리들은 황당한 표정으로 준수에게
끌려가는 유천을 보며 자기들끼리 숙덕거린다. 낮술 먹고 미친 놈인가봐-
" 진짜 구제불능이다. "
" 응? 뭐가? "
" 후우, 길거리에서 객기 부리고 다니지 말라고. "
" 난 강한 남자니까. 저런 고삐리들한테 괜히 쫄지 마. 앞으로는 다 나한테 말해. 내가
어디든 사이렌 울리면서 달려갈게. "
유천은 자신의 가슴을 탕탕 치며 씨익 웃었다. 에효, 이 개념없는 형사님을 어떻게 살살
구워줘야 하나- 준수는 한숨을 쉬며 거미줄 같은 골목길 안으로 들어갔다. 잘 가던 집인
듯 능숙하게 좁은 골목길을 요리조리 들어가던 그는, 낡고 낡은 해장국 집의 유리 미닫이
문을 열었다.
" 이게... 뭐야? "
" 선지 해장국집! "
" 선지... 해장국? "
" 뭔지 몰라? "
" 응. "
선지? 그게 뭐지. 준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일단 안으로 들어왔다. 쾌쾌한 냄새가 나는
음식점은, 손님들이 거의가 다 30,40대 중반의 아저씨들 뿐이다. 천장에 달려있는 코딱지
만한 TV에서는 뉴스가 한창이고, 뭔가 그윽하면서도 걸쩍지근한 냄새가 풍겨왔다.
" 이모! 여기 선지 해장국 3인분이요! "
" 야, 우리 둘이잖아. "
" 여기가 딥따 맛있다! 나는 여기 오면 2인분 먹는다! "
" 아.. 그러세요. "
이모, 라니. 이모, 라면 대한민국 남자 대학생들이 단골 술집 갈 때마다 부르는 아줌마들이
아니던가. 얼마나 자주 왔길래 이모타령이야. 이모라고 하기에는 유천과 너무 안 닮아 보이
는 여자가 호탕하게 웃으며 물컵을 탕! 소리와 함께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 박 형사, 오늘 장례식 갔다 왔어? 갑자기 왠 시꺼먼 정장? "
" 어울려요? "
" 그렇게 입으니까 무슨 모델 같다, 야! "
당연하지. 누구 남잔데. 자신있는 미소를 지으며 도도하게 턱을 치켜 올리는 준수다.
" 같이 온 사람은 누구야? 심 검사님은 어쩌고 남이랑 왔어? "
" 아, 이쁘죠? "
" 남자 맞지? 엄청 곱게 생겼네. "
당연하지. 얼마나 피부 관리를 열심히 하는데. 자신있는 미소를 지으며 턱을 더 치켜 올렸다.
그러다가 모가지 넘어가겠다... 선지 뭐시깽이를 기다리며 TV를 보는데 우연찮게도 창민이
나오고 있었다. 아직도 이슈가 되고 있는 마약 파티 사건이 뉴스에서 다뤄지고 있었다. 모두
벌금형을 물고, 보석으로 풀려난 듯 했다.
- 이번에 발견된 마약은, 국내에 없던 신종 마약으로 뉴욕이 주 원산지 입니다. 검찰은
현재 새로운 마약 루트를 찾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으며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 아! 준수 너, 뉴욕에서 유학생활 했다고 했지? "
" 응. "
" 한인 마피아라고... 들어봤어? "
" 응. "
물을 한 잔 마시고,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봤어?! 눈을 크게 뜬 유천이, 가방 안에서 형사
수첩을 꺼내며 펜 뚜껑을 열었다. 어디서든 증거 될 만한 자료가 나오면 바로바로 캐치
하는 것이 그의 버릇이었다.
" 어때? 뭐를 알고 있어? "
" 뭐야.. 꼭 취조받는 기분이잖아. 기분 나빠. "
" 아! 말해주라! 이번에 강력반에서 한인 마피아 조사에 들어갔단 말이야! "
" 흐음... "
뭐가 있더라. 자세히는 모르지만, 뉴욕에 거주하는 한인들 사이에서 유명했던 조직들이
몇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했던 건,
" K 카르텔. "
" 응? "
" 자세한 건 나도 몰라. 유학생들 중에는 한국에 있어봤자 할 게 없어서 부모 등쌀에 밀려
온 녀석들이 많거든. 그 녀석들은 마약 같은 거에 쉽게 빠지곤 했는데, 가장 유명했던
마약 루트가 K 카르텔이라는 곳이었어. 마약 거래도 하고... 총 밀매도 하고... 아무튼,
한인들로 이루어진 마피아 사이에서는 가장 유명해. "
" 그 조직이, 한국으로 거처를 옮겼다는 소리 들어본 적 있어? "
" 아니? 내가 뭐 그런데 관심이 있냐? 몰라! "
자신을 앞에 두고 일을 하는 유천의 모습에 괜히 속이 상한다. 자신과 있을 때는 형사고
살인범이고, 일은 접어두고 오로지 자신에게만 몰두했으면 한다. 준수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물컵으로 탕탕- 소리를 내며 주방을 바라보았다. 빨랑 음식 내오라는 뜻이다.
" 선지 해장국이 무슨 뜻이야? "
" 먹어봐. 지인짜 맛있어! 특히 술 먹은 다음 날 해장으로는 최고다! "
" 난 분위기 있고 그럴싸한 곳으로 데려갈 줄 알았더니. "
" 아니.. 뭐, 내가 그런 데를 모르니까... "
그래도 내가 알고 있는 곳 중에서는 여기가 가장 맛있고 괜찮은데. 유천은 형사 수첩을
집어넣으며 준수를 바라보았다. 사실, 이 음식점과 준수는 무던히도 안어울린다. 마치
포토샵으로 합성한 듯한 분위기다. 귀티나고 뭔가 있어 보이는 준수에 비해, 음식점은
허름하고 무너질듯 초라했다. 준수가 했던 말이 다시 떠오른다.
엄청 촌스럽고 구식이야, 박형사.
" 준수야. "
" 왜. "
" 내가 원래 태어났을 때부터 이런 놈이거든. 내, 돈 벌어서 나 꾸미는 법도 모르고, 아직
차도 없고 통장도 별로 없다. "
" 근데. "
" 그래도... 니 좋거든. "
" 그래서. "
" 내.. 함 믿어봐라. 내, 막 화려하게 뭐 해주고 그런 건 없어도, 진심으로 니 아껴주고
잘할끼다. "
유천이 사투리를 쓰기 시작하면 왠지 귀엽다. 준수는 빙그레 웃으며 손바닥으로 유천의
얼굴을 감쌌다. 깜짝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모습도 좋다. 내가 뭘 하든, 하나하나
신선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유천의 순수함이 좋다.
" 그래. "
" ........ "
" 앞으로 나한테 잘해. "
" 응! "
뽀뽀해주고 싶은데 보는 눈이 너무 많다. 물을 마시던 준수는, 뭔가 생각났다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열었다.
" 아! "
" 뭐? "
" 아까 네가 말했던 그 한인 마피아 있잖아. "
" 응! "
" 보스가 아주 어리다고 들었어. 기껏해봐야 우리 또래일걸. "
" 진짜? "
"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대단한 미남이라던데. 베일에 싸여있어서 더 유명했어. 그리고.. "
" 그리고? "
" 듣기에는, 뉴욕에 사는 한인 불법 체류자들을 도와준다고 들었어. "
" 도와... 준다고? "
" 왜, 여권도 없이 무작정 불법으로 들어온 사람들 있잖어. 뉴욕에도 한인 유흥가가 엄청
크거든. 요새 더 번창하고 있고.. 아무튼 그런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불법
체류자라서, 미국 경찰들에게 걸리면 바로 한국으로 돌려보내지거든. 그런 사람들을
K 카르텔에서 보호해줬대. "
" ... 그래? "
" 그래서, FBI 쪽에서도 쉽게 해결할 수 없던 조직이라고 들었어. 불법 체류자들이 목숨을
걸고 그 조직의 거처를 숨겼거든. 그래서 마지막까지 FBI에게 당하지 않았던 유일한 조직
이야. 내가 아는 놈들 몇몇이 뉴욕 유흥가에서 아주 살다시피 했거든. 그래서 건너건너
들었어. 뭐... 내가 아는 건 여기까지. "
도와주는 마피아라-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고마워, 고개를 끄덕이는데 마침 해장국이
나왔다. 버얼건 물에 야채가 송송송...
" 맛있게 먹어! "
" 뭐... 그러도록 노력해볼게. "
준수는 얼굴을 찡그리며 수저를 들었다. 한 입 떠먹어 봤는데, 꽤... 그럴싸하다. 뭔가가
비릿하기도 하지만 얼큰하기도 하고, 한국의 맛이 느껴진달까. 몇 입 떠먹은 준수는 처음
맛보는 맛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유천에게 물었다.
" 맛있네? "
" 그치! "
테이블에 질질 흘리며 허겁지겁 떠먹느라 정신이 없는 유천이다. 어머머. 빌려온 하얀
와이셔츠에 선지 국물이 튀었다. 밥까지 말아서 수저에 한웅큼 떠먹는 유천을 보고,
준수는 생글거리며 국물만 냠냠 먹었다.
준수, 너 선지가 뭔지는 알고 먹는 거뇽.
* * *
" 뭐하는 거야? "
" 코디. "
오늘 자로 모든 강의가 종강했으며, 재중은 논문을 제출했다. 이제 졸업이다. 홀가분하면
서도 왠지 모르게 씁쓸한 기분이다. 자신의 마지막 학생 시절이 마감되었다는 기분에, 집
으로 돌아온 재중은 내내 말이 없었다. 그러던 중 윤호가 연락없이 등장했고 손에는 종이
봉투를 들고 있었다. 재중을 거울 앞에 세우더니, 하얀 목도리를 목에 두르기 시작했다.
" 예쁘다. "
" 샀어? "
" 네 피부색이랑 잘 어울려서. "
오, 갑자기 왠 로맨틱한 척이야. 재중은 털 감이 좋은 목도리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씩
웃었다. 그리고 그가 내미는 새로운 핸드폰.
" 이건 또 뭐야. "
" 네 핸드폰. "
" 나 핸드폰 있는데? "
" 내 번호만 저장해. 나한테만 연락하고, 아무에게도 번호 알려주지마. "
" 야, 나 아직 논문 평가도 못 받았고 학교에도 몇 번 더 가야해! 친구들도 만나야 되고- "
" 그럼 졸업할 때까지만 이 핸드폰이랑 두 개 같이 써. 졸업 하면, 네 핸드폰 해지시켜. "
" 왜 그래야 하는데? "
" 왜, 싫어? "
" 정윤호. 가끔 너 진짜 제멋대로인 거 아냐? "
이 남자가 이런 식으로 나오면 뭐라고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세상과 단절된 채 자신하고
만 연락하며 살아가라니. 지금이 무슨 조선 시대도 아니고, 아내를 구속하는 속 좁은 남편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 왜 싫은데. "
" 내가 무슨 네가 만든 개집에서 사는 애완용 강아지냐? 나도 나만의 일이 있고, 나만의
세상이 있는 거야. "
" 넌 그러면 안 돼. "
" .... 뭐? "
" 네가 조직원이 된 이상, 세상에서 네 흔적을 하나씩 지워야 한다는 뜻이야. "
무슨 말이야... 윤호의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한 재중이, 목도리를 푸르며 침대에 앉았다.
윤호는 진지한 표정이다. 그는 요새 무얼 하고 다니는지 통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주
늦은 새벽에,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면 재중이 살며시 문 밖으로 나가고는 했다. 그러면
윤호가 탄 차가 중앙 저택으로 들어가고, 중앙 저택의 모든 불이 환하게 켜졌다. 저 남자는
분명 대단한 위치의 간부임이 틀림없다.
" 우리 조직원들을 비롯해, 나는 뉴욕에서 불법 체류자였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야.
우리에게 국적이란 없어. 나는 주민등록증도, 그 아무것도 없어. 의료보험도 없고,
가지고 있는 여권도 전부 다 가짜야. "
" .......! "
" 그래서 검찰은 우리를 쉽게 찾아내지 못하지. 아무런 흔적도 없으니까. 우리는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무슨 뜻인지 알겠어? "
그 정도 였던가. 이 자들의 치밀함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니. 대한민국 어디
에도 이 남자가 정윤호라는 증거는 없다. 자기 자신이 확신하지 않는 이상, 정윤호가 누구
인지는 아무도 몰라. 모든 조직원들이 그렇다. 지문 인식을 해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고,
DNA 검사를 해도 일치되는 것이 하나도 없어. 이 사람들은 그 어디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으니까.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
" 너만 유일해. 너만 이 세상에 흔적들이 너무 많아. 네 이름으로 가입한 인터넷 사이트도
많겠지. 모두 다 삭제해. 의료보험을 비롯해, 은행의 통장부터 시작해서 모든 걸 지워.
아니, 네가 싫다고 해도 우리가 알아서 다 삭제할거야. "
" 뭐...?! "
" 너도 나와 같아져야지. 누구도 네가 김재중임을 알 수 없을 만큼, 철저하게 숨겨야 해.
너는 처음부터 대한민국에서 살아온 사람이니 흔적을 모두 없앨 수는 없겠지만, 주민
등록증과 네가 다닌 학교의 기록 정도만 남기고 모든 기록을 말소할 거다. "
"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
" 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
이 남자의 말은 진짜야.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주체할 길이 없다. 생각보다 나는, 정말로
위험한 길에 접어든 걸지도 모른다. 그것도 정윤호에게 끌리는 내 심장만 믿고. 세상에서
말소된 기록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니. 나중에 내가 이 남자와 틀어지기라도 하면, 나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건가.
"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 "
" 그래야 해. "
" 그럼 내 일은...? 내 생활은...? 나한테는.. 아무것도 없어? "
" 조직이 있고, 내가 있잖아. "
" ... 그게 다야? "
" 그래. 앞으로 네 삶은 그게 다야. "
오로지 나와, 나를 위해서 일할 조직을 생각해. 윤호는 단호히 말했다. 김재중에게 다른
생각을 심어주고 싶지 않다. 오로지 나만 생각하고, 나만을 위해서 살아가게 하고 싶어.
그러니 내 뜻대로 해.
" 뭔가가.. 틀린 것 같아. "
" 뭐가. "
"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아. "
" ....... "
" 나... 나갈래. "
무언가가 두려워졌다. 이 남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 거지. 알 수가 없어. 지금
제 정신으로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인가? 나를 어떻게 만들고 싶은 거야. 세상에서 내 기록
을 말소시키고, 나를 없는 사람처럼 만들고 싶다고...? 그게 사람이 사는 거야?
" 어디가. "
문을 열고 나가려는 재중의 손목을 낚아챘다. 순간 정말로 두려움이 들어서, 재중은 차갑
게 그 손을 뿌리치고 뛰어나갔다. 현관 문을 열려는데 윤호가 뒤에서 그의 허리를 안아서
끌었다.
" 놔! "
" 갑자기 왜 이래. "
" 네가 날 무섭게 만들잖아! "
" 장난이라고 생각했어? "
" 네가 그랬잖아...! 너희 조직에서 단순히 고문 변호사 일을 하면 되는 거라고...! "
거칠게 몸을 빼며 빠져나가려는 재중을 바닥에 엎드리게 했다. 완전히 그를 눕혀놓고,
윤호는 재중의 허리 위로 타고 올라가 바둥거리는 두 팔을 바닥으로 짓눌렀다. 아파..!
그가 소리질러도 놓아주지 않았다.
" 네가 빨리 자각했으면 좋겠어. "
" 놔아! "
" 내 옆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뜻인지. "
" 아...! "
재중이 입고 있던 와이셔츠의 목덜미를 아래로 잡아당긴 윤호가, 드러난 가느다란 목과
양 옆으로 벌어진 날개뼈에 입을 맞췄다. 강하게 입술로 빨아들이며 한 손을 재중의 바지
안으로 밀어넣었다. 한 손에 가볍게 잡히는 마른 둔부를 손바닥 안에 넣고 천천히 매만졌다.
이 남자가 지금 또 무얼 하는 건지. 이런 몸놀림 따위에 골골거리고 싶지 않아서, 재중은
최대한 힘을 주어 몸을 틀었다.
" 아파...! "
손바닥 하나로 재중의 들려진 어깨를 다시 짓누르고, 바지 안으로 들어가 있던 손바닥을
앞으로 돌렸다. 한 손에 꽈악 잡힌 자신의 분신에, 재중이 넘어갈 듯한 숨소리로 답했다.
빳빳해지는 허리를 아랫배로 누르고 재중의 검은 머리칼에 고개를 묻었다. 그리고 속삭
였다. 잘 들으라며.
" 우리 조직은 앞으로 수면으로 드러날 거고, 검찰은 우리를 찾으려 발을 구를 거야. 많은
조직원들이 잡혀갈지도 모른다. 그 때마다 네가 나서서 조직원들을 구해. 착한 거짓말로
변호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가 저지른 살인과 범죄를 네가 구제해. 그 때마다
사람들이 말하겠지. 김재중이 누구야, 고문 변호사 김재중이 도대체 누구야. "
그의 말처럼 느릿한 손놀림에, 빳빳했던 허리가 나른해지며 재중이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었다. 놓아줘, 라는 말이 나오질 않는다.
" 세상 사람들이 너를 궁금해 할거야. 아무리 너를 알려고 해도, 알지 못할 거다. 기본적인
자료들만 남기고, 모든 걸 지워버릴 테니까. 너도 나처럼 그림자같은 존재가 되는 거야.
분명히 눈에 보이지만, 실루엣만 보이고 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자처럼... 아무것도 알지
못하도록.. 너도 숨길 거야. "
싫다... 그런 건.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 말라는 정윤호의 말이 먹먹하다.
" 자신 있어...? 그렇게 살아가는 거. "
자신 없어. 넘어갈 듯한 숨소리를 삼키고, 재중이 중얼거렸다. 점차 빨라지는 윤호의 손을
견디지 못하고, 재중이 허리를 강하게 비틀며 사정했다. 자신의 흔적이 묻은 손가락을, 재
중의 입 안에 밀어넣었다. 젖어버린 입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넌 더 강해져야 해. 더 나한테 어울리도록, 그렇게 내가 만들거다. 싫다는 말은 하지 마.
너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어. "
" ....... "
" 내가 만약에 보스라면, "
윤호는 그 말을 하며 웃었다. 내가 보스야... 넌 아직 모르지만.
" 너는 이 조직의 안주인이나 마찬가지야. 알아? 이 조직의 두 번째 보스라는 뜻이다. "
" ... 그런 말을 나에게 왜 해. 설마, 나보고 지금 보스의 안주인이라도 하라는 뜻은 아니지.
만약 그런 말을 하면 널 죽여버릴 거야. "
" 설마. "
" 네가 보스라는 소리는 하지 마. 그런 엄청난 남자 옆에서 살아갈 자신 없어. 지금의 너도
나에게는 벅차. "
" ..... 그래. "
이래서 네가 아직 안 된다는 거야. 우리 약한 재중이는, 아직 보스의 옆자리이자 이 조직의
안주인이 될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네.
" 언제까지 누워있을 거야. "
온 몸의 힘이 빠져서 누워있는 재중에게, 윤호가 웃음기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죽여버려..!
재중이 그렇게 소리쳤다. 진짜 이럴 때마다 너 죽여버리고 싶어! 그 소리에 윤호가 또 웃어
버린다.
" 그래, 그 기운으로 살아. 그리고 날 죽이려면, 나중에 침대에서 죽여주게 해봐. "
" 이... 개새끼야! "
- Rrrr Rrrrrr
핸드폰을 받으며 윤호가 구두를 신었다. 풀린 다리를 간신히 세워서 일어난 재중이, 바지
를 추켜 올리며 눈을 매섭게 떴다. 오늘따라 왜 저렇게 미워보이지. 내가 한 선택을 후회
할 정도로 얄밉다.
" 그래. 지금 갈게. "
" 내 집에 마음대로 들어오지 마. 이 새끼야! "
" 내 집? 이 집은 내 거야. 너도 내 거고. "
윤호는 재빨리 현관문을 열고 나와버렸다. 뒤에서 무언가를 집어던지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아무튼 한 성깔 한다니까. 윤호는 피식 웃으며 자신을 맞이하는 옆 집의 조직원에
게 웃음으로 인사했다. 하긴, 그 정도의 성깔은 있어야 우리 조직의 안주인 노릇을 하지.
" 가자. "
" 아, 그리고 보스. 어제 찾아갔던 우연회 말입니다. 말을 통 듣지 않는데요. "
" 뭐라는데. "
" 죽어도 마약 루트를 내주지 않겠답니다. "
" 그래? "
시간 끌 필요는 없지. 윤호는 조직원에게 검은 구두와 코트를 준비하게 시켰다. 이제는
사람들을 피에 절일 시간이다. 피가 튀지 않도록 조심하자. 아직까지 내 김재중은 피비
린내를 맡기엔 너무 어리니까.
" 그럼 죽여버려. "
그의 결단은 언제나 단호하고, 빠르다. 그것이 정윤호가 가진 최대의 장점이기도 했다.
곧 그를 맞이할 차가 도착했고, 언제나처럼 뒷좌석에 올라 탔다. 윤호는 자신의 뒷춤에
준비 된 매그넘을 습관처럼 만졌다. 흔한 총이었지만, 윤호가 새겨넣은 글씨가 손잡이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K 카르텔. 윤호의 조직의 이름이.
* * *
" 우웨에에엑-!!! "
" 괜찮어? "
" 우웨에에에에엑-!!!! "
" 아.. 아.. 약 좀 사다줄까? "
미친 듯이 토해내고 있다. 선지가 소의 피를 굳혀서 만들었다는 소리에, 얼굴이 새하애
지더니 바로 근처의 전봇대로 뛰어간 준수였다. 자신이 그토록 맛있게 먹은 해장국이
결국엔 피가 주 원료라는 소리에, 준수는 방금 먹은 그것을 모조리 게워버렸다. 모르고
먹는 음식이 더 맛있는 법을 왜 몰랐을까. 싱글벙글 웃으며 '소 피!'라고 외친 유천은,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준수의 등을 두드리느라 바쁘다.
" 나한테 뭘 먹여?! 소 피?! 야! 너 진짜 개념 태웠냐!? "
" 마, 맛있다며! "
" 웨에에에엑-! "
다시 구역질을 시작하며 허리를 수그렸다. 입에서 위액이 주욱, 흘러내렸다. 근처 가게에서
얻어온 휴지로 준수의 입술을 열심히 닦고 있는데, 그는 차갑게 유천을 밀어내고는 혼자서
타박타박 걷기 시작했다.
" 다, 다음에는 니가 좋아하는 스테이크 먹자! "
" 됐어. "
경찰차 앞에 서서 발로 문을 탕탕 쳐댔다. 저러다가 정말로 문이 까일까봐 안절부절 못하는
유천이다. 차에 올라탄 준수는, 아직도 비릿한 입 안에 사탕을 집어넣고 열심히 빨았다.
몸 안에서 소가 울부짖는 듯 하다. 워어, 보신탕보다 더 큰 충격이야. 세상에 그런 음식이
존재했다니.
" 집으로 빨리 가. "
" 벌써? "
" 그럼 뭐 하게! "
" 아니... 어디서 좀 얘기나 하면서, "
" 됐으니까 빨리 가. "
단단히 화난 준수의 표정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나는 도대체 맨날 왜 이런 거지? 처음부터
준수에게 밉보이고, 오늘까지 이 지랄이라니. 왜 같이 있으면 늘 기분 나쁘게 만들까. 아오,
진짜 죽어라. 이 화상아.
" 아.. 미안하다, 진짜. 난 니가 그렇게 싫어하는 줄 몰랐다. "
" ..... "
" 화 그만 내라.. 무섭다.. "
창밖을 보며 아무 말이 없다. 유천은 핸들을 돌리며 마음 속으로 자기 자신을 여러번이나
사격했다. 빨간 신호등이 걸리고, 유천은 핸들에 머리를 박아버렸다. 아... 속상해, 진짜.
" 멈춰. "
말없이 차를 운전하고 있는데, 준수가 갑자기 멈추랜다. 그래서 멈췄다. 끼이이익-!
" 길 한 복판에서 멈추면 어떡하냐! "
" 니가 멈추라며... "
" 길 가에다 세워야지! 아! 박 형사!! "
" 아, 응. "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는데. 준수와 함께 있으면 내 머리가 바보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준수의 말 밖에 아무 것도 들리지 않으니...
" 왜 멈추라고 했어? "
차에서 내린 준수는, 가벼운 타박타박 걸음걸이로 어디론가 향했다. 어디로 들어가는가
싶었더니 신발 가게다. 뒤따라 들어온 유천이 유리문 바깥에서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
안을 들여다 보았다. 무지 비싸보이는 가게다. 유천은 한 번도 이런 곳에서 신발을 사 본
적이 없었다. 늘 평화시장에서 새벽에 떨이로 파는 칠천 오백원짜리 운동화만 사봤지.
" 들어와, 박 형사. "
" 나? "
" 그럼 여기 박 형사가 너 말고 또 있냐? "
있을지도... 주위를 살펴 보고 있는데 준수가 소리를 바락 지른다. 황급히 신발 가게 안으로
들어온 유천이 어색하게 주위를 둘러 보았다. 점원이 반갑게 웃으며 자신을 맞이하고,
갑자기 자신의 닳고 헤진 운동화가 부끄러워지는 지금 이 순간.
" 발 사이즈 몇이야? "
" 285. "
" 곰 발 같으니. 285 사이즈로 이 구두 하나만 갖다 주세요. "
날렵하게 잘 빠진 앞 코가 예쁜 구두다. 내 안목은 틀림 없어. 준수는 고고하게 직원을
바라보며 의자에 앉았다. 유천은 어디에 앉아야 할지 몰라서 두리번 거리다, 아무데나
앉았다.
" 저 손님... 그건 신발을 쌓아 놓은 박스라, 안으시면 안 되요. "
" 아! 의자에 앉어! 의자에! "
내 눈에 지금 의자가 들어오냐! 예쁘게 앉아있는 너만 보이는데. 유천은 투덜거리며 의자
에 앉아 애가 지금 뭘 하고 있나 쳐다보았다. 곧 직원이 구두를 가져왔고, 준수는 구두를
유천에게 내밀었다.
" ... 뭐야? "
" 신어봐. "
으응. 유천은 운동화를 벗고 구두를 신었다. 맙소사. 무릎의 절반까지 올라오는 스포츠
양말이다. 저 하얀 양말에 정장을 신었단 말야...? 준수의 머리가 아찔하다. 구두는 유천에게
잘 어울렸다. 이제서야 한 벌 양복을 입은 것 같다. 흐음, 역시 내 안목이란. 준수는 만족한
미소를 띄우며 유천에게 한 번 돌아보라고 말했다.
" 이렇게? "
멋있어. 음, 갈 수록 괜찮아져. 어느새 선지 해장국의 악몽은 까맣게 잊고, 자신 앞에서
정장을 입고 멋진 새 구두를 신고 돌고 돌고 있는 유천에게 흠뻑 빠져버렸다.
" 그만 돌아! "
언제까지 돌 참이냐. 준수가 그만 돌라고 말하기 전까지 빙글빙글 돌고 있는 유천을 세워서
자리에 다시 앉혔다.
" 씨팔! 돌라며! "
" 욕 집어넣어. 이거 계산해 주세요. "
준수의 카드 안에서 나오는 골드 카드를 보고 눈이 휘둥그래진다. 갑자기 구두 선물이라니.
자신은 준수에게 제대로 된 선물도 못 해봤는데. 뭔가 창피해서 구두를 황급히 벗고
운동화로 갈아 신으려는데, 준수가 손가락 끝으로 운동화를 집어다 직원에게 내밀었다.
직원도 받기 싫어하는 닳고 헤진 운동화.
" 이거 버려주세요. "
" 준수야! 멀쩡한 운동화를 왜 버려? "
" 저게 멀쩡하냐? 앞 코에 빵꾸나서 네 양말 색깔 다 보이거든? "
" 그래도 여름에는 통풍 잘 되서 신기 편하다! "
" ... 시끄럽고, 그 구두 선물하는 거니까 잘 신어. "
" 왜! "
왜... 냐니. 그 질문에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좋아하니까 사주지. 사주고 싶으니까 사주지.
너는 바보냐? 그렇게 물어보면 내가 어떻게 대답해.
" 일단 나와. "
구두를 신은 유천이 준수에게 끌려나왔고, 경찰차 앞에 서서 어색하게 자신의 새 구두를
내려다보았다. 이렇게 제대로 된 구두를 가져본 것이 얼마 만인지.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멋있는 것 같기도 하고.
" 사주고 싶어서 사줬다, 왜. "
" ..... 왜 사주고 싶은데. 나 운동화 신고 다니면 쪽팔려서 그래? "
박 형사는 촌스럽고 구식이야- 이 말이 다시 유천의 귓가에서 맴돈다. 그런 마음으로
사준 거라면 받고 싶지 않다. 차라리 맨발이 나. 같이 다니는 내가 창피해서 산 거라면
안 받을래. 나 창피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슬프다.
" 그런거 아니야! "
" 왜 또 소리질러. "
" 좋아하니까 사주지! 사주고 싶으니까 좋아하지! 아, 아무튼! 좋다구! 박 형사! "
이렇게 직접적으로 듣는 고백은 처음이라서, 유천의 얼굴이 싸아악 굳었다. 저 김준수가
지금 나에게 뭐라고 말 한 거지? 아까 전까지만 해도 선지 해장국 먹였다고 죽일 놈 보듯
쳐다보았던 녀석이..
" 그냥 내 마음이야! 잘 받고! 잘 신어! 그리고 양말은 냄새나니까 빨아! "
" ...... "
" 아니면... 내가 빨아줄까. "
푸욱, 고개를 숙이고 준수가 창피하다는 듯 말했다. 믿을 수가 없어서, 유천은 한참이나
준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와아... 이렇게 기쁘다니.
" 아! 잠깐만! "
다짜고짜 끌어안고 입을 맞추려 하는 유천을 밀어내고, 준수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지만 불안하다.
" ... 빨리 우리 집으로 가자. "
" 응! "
" 가서 마저 하자. "
" 응? "
" 이런이런 거에서 저런저런 거까지. "
흥. 넌 못하니까 내가 알아서 해줄게. 준수는 차 문을 열고 멋지게 타려고 했지만.. 차 문이
잠궈져 있는 관계로 실패.
" 빨리 열어줘! "
" 응! "
유천은 차 문을 열었다. 그리고 옆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준수를 번쩍 안아올렸다.
" 엄마야! "
" 흐... 우리 예쁜 준수. "
쪼옥, 볼에 와 닿는 유천의 도톰한 입술이 좋다. 에라, 누가 보면 어때. 어차피 한 번 보고
말 사람들. 유천의 목을 끌어안고 입술에 찌인, 하게 쪽쪽이를 날리고 차 안으로 밀려...
" 아악! "
" 헉... "
" 던지면 어떡하냐! 내가 택배냐?! "
마지막까지 앙칼진 준수다. 오늘 밤은 무사하게 넘길 수 있으려나. 유천은 서둘러 운전석
으로 올라탔다. 그리고 누구보다 빠르게 오피스텔로 날아가기 위해, 뒷좌석에서 뒹굴고
있던 사이렌을 꺼내 차 위에 올렸다. 삐뽀삐뽀- 김준수 잡으러 가는 사이렌 소리가 경쾌하다.
" 가자! "
신호등 개무시. 횡단보도 개무시. 경찰차가 미친 듯이 달린다. 아무도 없는 밤 거리를.
* * *
코멘없이가면곽공주랑뽀뽀~♥
첫댓글 아아아, 이제 빨리빨리 읽혀진다 ?? ㅇㅈㄹㅋㅋㅋㅋㅋㅋㅋㅋ 잼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