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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심리 학자(연대 순) =
1, 플라톤(Platon, BC 427~347년)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교육자․ 심리학자. 원래 이름은 아리스토클레스이지만 덩치도 크고 내 생각에 '지식'도 있고 넓다는 의미를 가진 플라톤으로 불렸다. 아테네의 귀족으로 소크라테스의 제자이며 유랑하다 피타고라스 학파를 만나 영향을 받았다. 그 후에 아테네에 돌아와 아카데미아 학원을 개설하고 후진을 교육했다. 사실 플라톤은 귀족 중심의 국가주의를 가진 사람이었다. 나라에서 교육을 책임지되 인간들은 나라에 충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식은 환경에 의해 간섭을 받는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생득론)이라고 생각하고 인간활동을 정신과 신체라는 두개의 실체(이원론)로 보고 정신을 더 중요하게 보았다. '관념론자'이자 '이성주의자'이다.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와는 정반대이다. 82세로 사망.
2,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년)
플라톤의 제자로 20년을 살았지만 스승과는 사뭇 다른 이론을 전개했다. 지식은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습득하는 것(경험론)이고, 영혼없이 신체가 있을 수 없고, 신체없이 영혼이 있을 수 없다(일원론)고 주장했다. 이 연합의 법칙은 이후 행동주의 심리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62세로 사망.
3, 최초로 심리학 실험실 개설한 분트(Wilhelm maximilian Wundt, 1832~1920년)
‘심리학의 아버지’로 독일의 심리학자 ·철학자. 감각생리학과 영국 연상파의 심리학을 종합, 실험 심리학을 확립했다. 그는 심리학을 직접경험 학문이라 정의하고 의식의 내관(內觀)에 따라 분석적으로 포착되는 부분의 기술에 전념했다. 이것은 무의식의 추방을 뜻한다. 어릴 때 엄청나게 책만 보고 공부만 했던 분트는 외과의사가 되려고 했지만 중간에 사경을 헤맨 다음 철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생리학을 공부했던 것을 기반으로 영혼에 대해서도 과학적으로 접근, 의식을 요소로 나눠 탐구한다. 그래서 ‘요소주의 심리학’이라고도 부른다. 단순 감각과 단순 감정이 복잡한 정신 현상을 이룬다고 보았기 때문에 물이 수소와 산소로 분리될 수 있는 것처럼 복잡한 정신 현상도 단순한 감각과 감정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환원주의’라고도 한다. ‘경험론자’에 ‘연합론자’였던 분트는 ‘과학적 심리학’의 아버지 또는 ‘심리학의 이정표’라고 평가받고 있다. 특히 1879년 최초로 심리학 실험실을 개설했다. 85세로 사망.
4,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년)
미국 심리학의 제창자. 소설가이며 비평가인 H.제임스의 형이다. 생리학을 강의하다가 생리학적 심리학 강의를 시작했고 심리학교수를 거쳐 철학교수가 됐다.『심리학 원리』,『프래그머티즘』등의 저서가 있다. 예술과 과학, 심리학과 철학, 경험주의와 신비주의 사이의 갈등으로 우울증을 겪었다. 27살에 의사가 됐지만 그 이후에도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러나 르누비에의 책을 읽고 정신차려 생리학과 심리학을 연결해 공부했다. 그리고『심리학의 원리』라는 유명한 책을 저술했으며 ‘자극이 정서보다 먼저’라는 이론을 발표했다. 무서워 우는 것이 아니라 울기 때문에 무서워 진다는 이론이다. 의식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관심을 갖고 밝혀냈기 때문에 '기능주의' 또는 ‘실용주의’라고 한다. 68세로 사망.
5, 유럽과 미국 심리학의 다리 티취너(Edward Bradford Tichener, 1867~1927년)
영국 치체스터 출생으로 옥스퍼드대에서 철학·생리학을 공부했다. 1890년 독일 라이프치히대의 분트 밑에서 심리학을 연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892년 도미, 코넬대에서 심리학교수를 했다. 구성주의 심리학자로 분트의 실험심리학을 발전시킨 대표주자. 의식내용 중심의 요소론적 구성주의 심리학을 주장해 미국 심리학의 주류인 기능주의·행동주의에 대행했다. 유럽 심리학과 미국 심리학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했다. 60세로 사망.
6, 크레펠린(Emil Kraepelin, 1856~1926년)
독일의 정신의학자. 근대 정신의학의 아버지. 각 정신질환을 계통적으로 분류, 현재 사용되고 있는 정신의학의 진단과 개념의 기초를 확립했다. 분트의 첫 번째 제자로 적성검사 중에 아라비아 숫자가 나열된 숫자판을 더해 나머지를 쓰고 만약 그 나머지가 10이 넘을 경우 끝자리만 기록하는 테스트를 개발했다(나중에 일본 사람 우치다가 보완, 우치다-크레펠린(UK) 정신작업 검사라고 불린다). 정신의학을 집대성해 그의 저서『정신의학 개론』은 정신과 의사의 ‘바이블’로 여겨진다. 70세로 사망.
7, 맥도걸(William McDougall, 1871~1938년)
사회심리학의 대표주자. 행동은 목적적이며 그 기저에는 본능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사회적 행동은 타인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생각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이 두 흐름을 묶은 것은 레빈. 맥도걸은 영국 태생으로 의학을 배운 후 심리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08년『사회심리학 입문』을 집필했고 이 저서를 통해 사회심리학의 창시자라는 말을 듣는다. 사회심리학 최초의 실험은 1898년 트리플렛(Triplett)이 행한 사회적 촉진실험(아이들이 혼자 릴낚시를 감을 때보다 여럿이 감을 때 더 빨리 감는다는 연구)이지만 본격적으로 사회심리학이 심리학의 한 분파로 시작된 것은 맥도걸이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옥스퍼드대 심리학 강사를 거쳐 1920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 교수로 있다가 후에 듀크대 교수가 됐다. 군의관으로 1차 세계 대전에 참여했고 이때의 경험을 살려 1926년 『이상심리학 개론』을 발간했다. 67세로 사망.
8, 비네(Alfred Binet, 1857~1911년)
프랑스의 심리학자. 영국의 경험철학과 연상심리학을 읽고 흥미를 느껴 심리학 연구에 몰두했다. 의사 T.시몽과 협력, 정신박약아를 검출하기 위한 심리검사법을 발표했다. 이것이 유명한 ‘비네-시몽 검사법’으로 최초의 실용적인 지능검사이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법학을 공부하다가 의학, 그 후에 심리학을 연구했다. 프랑스 교육 당국의 요청으로 학습 지진아를 선별하기 위한 지능 검사를 개발했는데 이것이 1905년 세계 최초 체계적 아동용 지능검사인 ‘비네-시몽 지능 검사’이다. 심리학에 기여한 바가 크다. 44세 때 뇌일혈로 사망.
9, 로르샤흐(Hermann Rorschach, 1884~1922년)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취리히 출생. 로르샤흐 검사의 창시자이다. 논문 <반응성 환각과 유사현상>(1912년)을 써 취리히대에서 학위를 받았다. 1911년 잉크의 얼룩에 의한 연상실험을 시도했고 1917년부터 10장의 도판에 의한 잉크의 얼룩 실험을건강한 사람과 정신병자에게 행해 그 결과를 1921년『정신진단학』으로 간행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의 영향과 융의 유형학에 영향을 받았고 프로이트에게 영향을 준 브로일러와 함께 연구도 했다. 로르샤흐는 405명을 대상으로 정상인과 정신분열증 환자의 반응자료를 수집, 잉크반점 검사를 했다. ‘형태 해석 검사’라고 불렸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사망, 제자들이 완성하고 그의 이름을 따 로르샤흐 검사라고 명명했다. 47세로 사망.
10, 파블로프(Ivan Petrovich Pavlov, 1849~1936년)
러시아의 생리학자. 개가 주인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침을 분비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조건 반사'로서 뇌의 작용에 대해 연구했다. 소화와 신경지배의 연구로 1904년 노벨생리 ·의학상을 수상했다. 가난을 등에 업고 산 학자이다. 두 번째 아이 출생으로 어려워 제자들이 돈을 모아 주었는데 그 돈을 몽땅 실험용 동물을 사는데 썼다고 한다. 성격이 대쪽같아 러시아(구 소련)의 공산주의를 못마땅해했다. 그러나 결국 공산정부를 받아들였으며 소련 정부도 파블로프에게 침묵의 탑이라는 실험실을 지어주는 등 공을 많이 들였다. 파블로프는 50세가 돼서야 심리학 연구에 관심을 가졌다. 동물 실험을 통해 학습 과정을 처음으로 연구(조건화된 반사)한 사람이라는 영광은 그가 존경하는 손다이크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87세로 사망.
11, 손다이크(Edward Lee Thorndike, 1874~1949년)
윌리암 제임스의『심리학의 원리』를 읽고 감명 받아 심리학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하버드에서 콜롬비아로 갔는데 그 이유는 실연당했기 때문이라 한다. 그러나 다시 그 여인과 만나 뉴욕의 아파트에 살면서 원숭이를 구해 실험했고 대부분의 연구업적이 거기서 나왔다. ‘시행착오와 우연적 성공’을 통해 올바른 행동을 학습하게 되며 통찰이 아니라 점증적인 학습에 의해 이것이 이뤄진다는 것. 75세로 사망했다.
12, 요절한 천재 비고츠키(Lev Semionovich Vygotsky, 1896~1934년)
유태인이라 많은 기회를 박탈당했지만 가정 환경은 매우 문화적이고 지적이었다. 비고츠키는 천재라 불릴 정도로 우수했지만 비고츠키의 강의는 매우 어려웠고 이해하기 힘들었다. 루리아는 비고츠키의 독창적인 강의를 필기했으나 일년이 지나서야 그 내용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28세부터 사망전까지 10년 동안 비고츠키는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강연을 하거나 연구소 설립을 돕고 평론과 논문을 써 책으로 출판하기도 했다. 열정적이었던 10년. 결국 연구를 완성한다고 입원을 거절하다 결핵으로 38세에 사망.
13, 크레치머(Ernst kretschimer,1884~1964년)
독일의 정신의학자 ·심리학자.『민감관계망상』,『체격과 성격』등을 저술해 유럽의 정신의학 및 심리학 분야에서 지도적 역할을 한다. 특히 독일 정신의학에 환경요인에 입각한 역학적 사고를 도입, 성격의 체질학적 기초를 밝힌 점이 높이 평가된다. 성격심리학의 대표 학자다. 체형과 성격의 관계를 파헤쳤다. 81세로 사망.
14, 왓슨(John Broadus Waston, 1878~1958년)
미국의 심리학자·행동주의 주창자. 의식심리학의 내관법(內觀法)에 반대했다. 자극과 반응의 계통화만을 대상으로 하는 자연과학적 방법의 철저를 강조했다. 또 본능이나 유전에 대해 환경의 요인을 강조했다. 비교심리학 ·발달심리학 연구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주요 논문으로 <비교심리학>(1914년), <인간심리학>(1919년), <심리학원리와 인간개조론>(1925년) 등이 있다. 행동주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80세로 사망.
15,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년)
오스트리아의 신경과 의사, 정신분석의 창시자. 히스테리환자를 관찰하고 최면술을 행하며 인간의 마음에는 무의식이 존재한다고 했다. 꿈 ·착각·해학과 같은 정상심리에도 연구를 확대해 심층심리학을 확립했고 소아성욕론을 수립했다. 프로이트의 엄마가 어릴적 프로이트를 안고 있는데 어느 노파가 “큰 인물이 되겠다”는 예언을 했고 엄마의 기대는 매우 컸다고 한다. 그래서 훗날 프로이트는 “내가 위대한 인물이 되려고 열망한 것은 어머니와 가족들의 기대 때문일지도 모른다”라고 했다. 유태인이었으며 많은 차별을 당했다. 브로이어와 함께 정신분석학을 연구했고 그 업적은 코페르니쿠스와 다윈과 더불어 인간 중심의 지성사에 길이 남고 있다. 애연가로 하루에 스무개비 이상 시가를 피우던 프로이트는 후두암이 발병한 후 사망할 때까지 17년 동안 33회의 수술을 받았다. 결국 후두암으로 83세 사망. 주요 저서로는『히스테리의 연구』(1895년),『꿈의 해석』(1900년),『일상생활의 정신병리』(1904년),『성(性) 이론에 관한 세 가지 논문』(1905년),『토템과 터부』(1913년)『정신분석입문』(1917년),『쾌감원칙의 피안(彼岸)』(1920년),『자아와 이드』(1923년) 등이 있다.
16, 아들러(Alfred Adler, 1870~1937년)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 ‘개인심리학’을 수립했으며 인간의 행동과 발달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존재에 보편적인 열등감 ·무력감과 이를 보상 또는 극복하려는 권력에의 의지, 즉 우월의 요구라고 했다. 출생 순위에 따라 성격이 달라짐을 발견했다. 부유한 유태인 집에서 태어났지만 유태인처럼 생기지 않아 프로이트처럼 많은 차별을 당한 건 아니었다. 프로이트에게 영향을 받았지만 1911년 결별했다. 67세로 사망.
17, 융(Carl Gustav Jung, 1875~1961년)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 정신분석의 유효성을 인식하고 연상실험을 창시, S.프로이트가 말하는 억압된 것을 입증하고, ‘콤플렉스’라 이름붙였다. 분석심리학의 기초를 세우고 성격을 ‘내향형’과 ‘외향형’으로 나눴다. 프로이트가 유년기 어머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과는 달리 융은 아버지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수학을 특히 싫어했고 체육도 싫어했다. 김나지움 생활 도중 친구의 장난으로 길 위의 돌에 부딪혀 의식을 잃었는데 그 이후 소아 신경증적 발작이 발병하고 그 이후 꾀병아닌 꾀병을 부리며 발작을 습관화했다. 그러나 발작을 극복하고 그 경험이 심리학자의 길을 가도록 만든 계기가 됐다. 의사가 됐지만 철학을 놓지 못하고, 심리학을 연구하게 되면서 프로이트를 만나게 되고 프로이트의 각별한 사랑을 받는 제자가 됐다. 그 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자신의 이론을 첨가, ‘집단 무의식이론’을 발전시켰다. 86세로 사망.
18, 프롬(Erich Fromm, 1900~1980년)
유대계 미국 신프로이트학파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심리학자. 프랑크프루트학파에 프로이트 이론을 도입, 사회경제적 조건과 이데올로기 사이에 사회적 성격이라는 개념을 설정하고 이 3자의 역학에 의해 사회나 문화 변동을 분석하는 방법론을 제기했다. 저서에『자유로부터의 도피』,『선(禪)과 정신분석』등이 있다. 신경증 증세의 부모를 비롯, 주변에 건강하지 못한 성격의 사람들이 항상 존재하는 유년기를 보냈다. 올포트의 성숙한 성격, 매슬로의 자아를 실현하는 사람과 비슷한 개념인 생산적인 지향이 건강한 성격을 가진 사람의 특징이라고 주장했다. 80세로 사망.
19, 고졸 학력의 에릭슨(Erik Homburger Erikson, 1902~1994년)
어렸을 때는 왕따를 당했다. 유태인이면서도 유태인과는 다른 외모를 가졌다는 것 때문에.
방황하는 예술가 기질로 고등학교 졸업 후 유럽횡단여행을 하고 예술학교에 등록하지만 흥미를 잃고 목적없이 이탈리아 전역을 방황했다. 프로이트의 딸인 안나 프로이트가 세운 학교에서 유치원 교사로 초청돼 정신분석에 가담하게 된다.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았고 공통점이 많지만 프로이트가 개인적인 정신분석학이라면 에릭슨은 사회-문화적 정신분석학이라 할 수 있다. 92세로 사망.
20, 모레노(Jacob Levy Moreno, 1892~1974년)
루마니아 태생 미국의 정신과 의사. 신경증을 치료할 목적으로 환자들에게 시키는 즉흥극인 사이코드라마와 집단의 구조와 집단 안의 개인의 지위를 밝히기 위한 방법인 소시오메트리 등의 창시자로서 알려져 있다. 이 방법은 집단 내의 각 개인에게, 누구를 좋아하고 누구를 싫어하느냐와 같은 대인관계에 관한 질문을 토대로 하고 있다. 그는 복잡한 집단조직도 간단한 형태의 것부터 차차 형성된다는 입장의 미시적 사회학을 수립했다. 82세로 사망.
21, 베르트하이머(Max Wertheimer, 1880~1943년)
독일의 형태주의 심리학을 창시했다. 가현운동(파이운동) 발견-실제로 운동이 없는데도 운동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으로 시작. 독일의 구성주의에 반발해 생긴 학파라고 볼 수 있다. 베르트하이머의 제자로 쾰러와 코프카가 있으며 그 3명이 형태주의 심리학파를 구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분트의 요소론적 심리학에 반대하고 의미있는 전체를 중시한다. 의식은 요소의 단순한 결합이 아니며 부분에서 전체를 구성하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여기서 유의미한 전체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형태. 즉 게슈탈트(Gestalt : 형태)이다. 63세로 사망.
22, 쾰러(Wolfgang Kohler, 1887~1967년)
베르트하이머와 함께 형태주의 심리학의 대표학자. 침팬지 술판이 그의 연구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의 연구는 ‘아하! 경험’과 통찰학습. 침팬지 외에 닭으로도 실험을 했는데 다른 조도로 빛을 비추고 닭이 움직이는 실험으로 동물이 상대적으로 인지함을 밝혀냈다. 80세로 사망.
23, 코프카(kurt koffka, 1886~1941년)
독일의 심리학자. 근접, 유사성, 공동 운명, 폐쇄, 좋은 연속성의 요인 등 게슈탈트 법칙을 발견했다. 형태심리학(게슈탈트심리학) 창시자의 한 사람으로 특히 지각 · 기억의 연구가 있다. 이 학파의 업적을 영어권으로 소개하는 데 공헌했다. 형태주의 심리학자 3명중 가장 먼저 미국으로 망명, 톨만과 만나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 그의 주저로『게슈탈트 심리학 원론』(1935년)이 있다. 55세로 사망.
24, 레빈(Kurt Lewin, 1890~1947년)
독일 태생의 미국 심리학자. 나치스의 핍박을 받아 미국으로 이주, 사회적 장(場)의 역학적 합성 및 인과 관계를 설명하는 방법으로 집단행동 등 게슈탈트 심리학을 이용했고 정의(情意)·욕구를 연구해 위상 심리학을 제창했다. 3명의 형태주의 심리학자에게 영향을 받아 형태주의를 발전시켰다. ‘장 이론’ 발달, 갈등 이론 발달, 벡터심리학, 아동심리학, 사회심리학, 집단역학 등에 공헌했다. 저서에『인격의 역동설』이 있다. 심장마비로 57세 때 사망.
25, 헵(Donald Olding Hebb, 1904~1985년)
캐나다의 심리학자. 경험주의적 학습이론을 강화, 신경망이 성장하면서 경험을 통해 학습이 이뤄진다고 보았다. 1947년 집에서 애완동물로 키운 쥐가 실험실에서 사육된 쥐보다 더 뛰어난 학습 능력을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톨만, 반듀라와 같은 심리학자에게 영향을 주었고 인지적 과정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81세로 사망.
26, 톨만(Edward Chace Tolman, 1886~1959년)
헐, 스키너, 스펜스와 더불어 신행동주의를 대표하는 톨만. 그러나 자극-반응 사이에 유기체를 넣은 모델을 채택해 단순히 자극이 주어진다고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행동 결정인자가 있으며 행동이 환경적 자극(S), 생리적 충동(P). 유전(H), 과거의 훈련(T), 연령에 따른 성숙도(A)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머릿속에 인지도가 있다고 생각했으며 이 인지도를 기호로 생각, 그의 이론은 기호-형태론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행동을 거시적으로 봤던 독특한 인지론적 행동주의 심리학자 톨만은 반항아라고도 불렸다. 주류 심리학이었던 왓슨에 반대했고 충성서약을 쓰라는 대학당국과도 마찰을 일으키는 등 반항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73세로 사망.
27, 헐(Clark leonard Hull, 1884~1952년)
미국의 심리학자. 동물에 대한 실험을 통해 자극과 반응의 관계를 수량적으로 연구, 학습 이론을 체계화했다. 심리학을 연구할 때 사용하는 ‘가설-연역 방법’을 제안했다. 장티푸스와 소아마비에 걸렸던 헐은 가난과 불구를 딛고 연합의 법칙을 발전시켜 강화와 습관강도에 대한 이론을 전개시켰다. 저서에『가설 연역법』,『행동의 원리』따위가 있다. 동맥경화증으로 고생하다가 심장병으로 68세 때 사망.
28, 스키너(Burrhus Frederic Skinner, 1904~1990년)
공식적인 반항아였고 소설가를 꿈꾸었으나 작가로 실패하고 파블로프의 조건화된 반사를 보고 감동받아 심리학 공부에 몰두했다. 대학원시절 스키너는 하루에 15분 이상 무계획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스키너 상자 실험으로 톨만과 헐에 이은 조작적 행동주의의 절정기를 맞았으며 조작적 조건형성학습을 설명했다. 86세로 사망
29, 피아제(Jean Piaget, 1896~1980년)
스위스의 심리학자. 임상적 방법으로 아동의 정신 발달 과정을 설명하고 과학적 인식의 역사적 발전에 대해 공동 연구를 추진했다. 발달심리학과 교육심리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저서에『발생적 인식론 서설』,『아동의 세계관』등이 있다. 천재임에도 불구하고 천수를 누렸다. 84세로 사망.
30, 자살한 콜버그(Lawrence kohlberg, 1927~1987년)
미국의 심리학자. 처음에는 임상심리학자가 되려고 했으나 피아제의 인지발달에 영향을 받아 도덕적인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 새로운 단계이론을 탄생시켰다. 1958년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이 이것이다. 그러나 생의 마지막 20년 동안 열대병과 도덕적 이상주의와 현실간의 괴리 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렸다. 결국 60세 때 자살했다.
31, 올포트(Gordon William Allport, 1897~1967년)
고교시절에 모범생이었으나 왕따를 당했다. 그러나 대학에 가 새로운 삶의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23세 때 프로이트를 만나 강박증 소년이 “바로 당신이 아닌가요”라는 말을 듣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올포트는 건강한 성격에 중점을 둔 미국 최초의 성격심리학자로 자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또 건강한 성격의 사람들의 특징을 7가지로 구분했다. 70세로 사망.
32, 매슬로(Abraham Harold Maslow, 1908~1970년)
미국의 심리학자·철학자. 인본주의 심리학의 창설을 주도했으며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에서부터 사랑, 존중 그리고 궁극적으로 자기실현에 이르기까지 충족돼야 할 욕구에 위계가 있다는 요구 5단계설을 주장했다. 유태인으로 어린 시절 백인들 사이에서 고독하게 도서관에서 지냈다. 법학을 전공하다가 이게 아니라고 생각, 위스콘신대로 전학해 심리학을 공부했다. 실존철학에 영향을 받아 본능적인 욕구위계를 만들었다. 62세로 사망.
33, 머레이(Henry Alexander Murray, 1893~ 년)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성격이론가. 성격의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연구를 지칭하는 ‘성격학'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내었다. 성취동기이론과 TAT(주제통각검사)를 개발했다. 심리학 수업이 지루하다고 뛰쳐나갔으나 그 뒤에 융을 만나 감동을 받고 다시 심리학을 연구. 다양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역사가이며 문학비평가이고, 생물학자, 화학자, 의사이기도 하다.
34, 반듀라(Allbert Bandura, 1925~ 년)
미국의 심리학자로 사회학습이론의 주창자, 현대 교육심리학 분야의 석학이다. 아이오와대 시절 학습이론가인 스펜스(Kenneth Spence)의 영향을 받아 행동수정이론·관찰학습·자기효능 등에 관해 연구했다. 1977년 현대 교육심리학 분야의 역저로 꼽히는『사회학습이론』을 출간했다.
35, 셀리그먼(Martin E. P. Seligman)
‘긍정 심리학’의 대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심리학과 교수.『완전한 행복』『긍정 심리학』등의 책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지난 30년 동안 ‘우울’을 연구해 온 그는 “왜 모든 문화권에서 구매력이 늘어나고 전쟁에 의한 사망률이 줄어듦에도 불구하고 행복 지수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것일까”란 의문을 가지게 됐다. “마치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처럼, 우리가 부(富)를 잘못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아이스크림을 처음 베어 물게 되면 기가 막힌 맛이 나지만 일곱 번째쯤 되면 그저 그런 맛일 뿐이다. 오래 가지 못할 쾌락보다는 긍정적이고 의미 있는 몰입이 좀더 영속적인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생각을 바꿔 행복해지는 십계명’을 제시했다.
36, 시먼스(Donald Symons)
미국의 진화심리학자. 캘리포니아대 인류학과 교수. UC버클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현재 치열한 쟁점이 되고 있는 인간의 성 특성의 진화론적 해명에 유달리 관심을 가지고 줄곧 연구해왔으며 인간 심리의 생물학적 특성에 대한 탐구인 진화심리학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37, 버스(David Buss)
미국의 진화심리학자. 텍사스대 심리학과 교수. 인간의 성, 감정, 짝짓기 전략 등에 대한 연구 업적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욕망의 진화』를 비롯해『진화심리학』『성과 권력의 갈등』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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