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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저학년 운문
가방
구신선 ( 마산현동초 2-2 )
바람 되신 왕 할아버지
봄에는 꽃바람
여름에는 바닷바람
가을에는 향기바람
겨울에는 추운바람으로 오셔요.
나는 큰 바람가방 만들어
바람 되신 왕 할아버지
꼭꼭 닫아 옆에 두고 싶어요.
우리 곁에 두고 싶어요.
왕 할아버지
보고 싶어요.
초등 저학년 산문
노래
김수연 ( 용호초 3-3 )
나는 방과 후 학교에서 과학실험도 배우고, 요리도 배우고 음악 줄넘기와 컴퓨터도 배운다. 그리고 아파트 문화센터에서 우쿨렐레와 노래를 배운다. 내가 배우는 것 중에 제일 신나고 재미있는 건 우쿨렐레와 노래이다. 반주와 함께 노래를 부르면 일주일의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우리가족은 경기도에서 열리는 치킨대학에 참여하기로 했다. 가족 장기자랑을 준비해야 하는데 엄마랑 아빠는 우리에게 가장 자신 있는 게 무엇인지 물으셨다. 언니와 나는 당연히 우쿨렐레와 노래를 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그대 없이는 못 살아’를 골라서 “치킨 없이는 못 살아”라고 바꾸어 열심히 연습을 했다. 일주일 동안 언니와 나는 TV도 안 보고 시간이 날 때마다 맹연습을 했다. 엄마랑 아빠도 열심히 노래 연습을 했고, 동생도 “치킨 없이는 못 살아”를 자꾸 불러댔다.
드디어 경기도 치킨대학에 가는 날이 되었다. 멀어서 힘이 들기는 했지만 우리는 차 안에서도 열심히 연습을 했다. 게임도 하고 치킨도 만들고 맛있는 저녁도 먹었다. 이제 곧 장기자랑이 시작되었다. 우리 순서는 중간이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언니와 나는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엄마가 옆에서 크게 불러주어 우리는 더 자신 있고 힘차게 노래를 불렀다.
연극, 마술, 춤, 리코더 등 다양하게 장기자랑이 진행되었다. 다음 날 발표 시간이 되었다. 인기상과 우수상이 발표되고 최우수상만 남았다. 나는 떨려 죽을 것만 같았다. 두구~ 두구~ 최고상은 우리가 받게 되었다. 우리는 쌀 한 가마니를 받았다.
온 가족이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상까지 받으니 너무 기뻤다. 나는 앞으로도 노래와 우쿨렐레를 사랑할 것이다.
초등 고학년 운문
숨바꼭질
강민건 ( 호암초 4-8 )
“꼭, 꼭, 숨어라”
우리 친구들과의
신나는 숨바꼭질
“꼭, 꼭, 숨어라”
내가 숨고 싶을 때의
부끄러운 숨바꼭질
“꼭, 꼭, 숨어라”
혼자 있고 싶을 때의
나의 쓸쓸한 숨바꼭질
“꼭, 꼭, 숨어라”
실수했을 때의
숨고 싶은 숨바꼭질
혼자 있고 싶을 때나,
실수했을 때도
누군가 꼭 나를 찾아주기를
기다리는
나만의 숨바꼭질
초등 고학년 산문
이웃
권지유 ( 서진초 4-4 )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다양한 이웃나라들이 있다. 그것은 반도라는 특별한 지형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한국은 이웃의 나라들과 재미있고 특별한 관계를 맺어 나갔다. 싸움을 하기도 하고, 좋은 것들을 서로 공유하기도 하고, 어려울 때 서로 도와주며 지냈다. 생김새도 비슷하고, 의식주도 닮은 점이 있는 이 나라들은 가깝고도, 먼 이웃이다.
북한은 우리의 민족이고, 아픈 손가락이다. 헤어져있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통일의 시간이 빨라져서 아픈 과거들을 하루빨리 지워버렸으면 좋겠다.
또 다른 이웃나라 일본은 깨끗하고, 친절한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위안부 문제와 독도 이야기를 해결해야할 의무가 있다. 제대로 된 사과와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란 걸 일본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 하나만 해결된다면 좋은 이웃사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중국 또한 이웃사촌이다. 중국은 인구가 많고, 음식들이 맛있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중국은 우리나라에게 미세먼지를 보낸다는 설도 있다.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나를 너무 화나게 한다. 해결방법 없이 그 다음세대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이 너무너무 슬프다.
중국도 우리나라도 빨리 해결방법을 찾으면 좋겠다. 중국도 일본도 북한도 우리나라도 다 같이 사과하고, 화해를 한다면 우리사이는 더더욱 가까워 질 것이다.
우리사이가 더, 더, 더욱 가까워졌으면 좋겠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이웃이다.
중등부 운문
봄바람
이경원 ( 마산삼진중 3-3 )
59년 전 그날에도 봄바람은 불었나요
아니면 혹시 봄바람을 기대하고 있었나요
내가 지금 쐬고 있는 봄바람은 따스해요
이 봄바람 혹시 그대들이 주고 갔나요
내가 지금 쐬고 있는 봄 햇살은 따스해요
이 봄 햇살 혹시 그대들의 열정인가요
내가 지금 맞고 있는 봄비마저 따스해요
이 봄비 혹시 그대들의 눈물인가요
그들의 겨울을 뚫고 나온 그대들의 봄은
더욱 더 찬란하게 우리 앞에 흘러요
그대들은 이제 봄꽃이 되어 피어요
그대들이 이룬 봄바람이 그대들을 감싸겠죠
59년 전 그날에도 봄바람은 불었나요
아니면 혹시 봄바람을 사랑하고 있었나요
중등 산문
박수
김은경 ( 칠성중 3-1 )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엔 나 혼자였다. 아침이면 티비소리와 함께 사라지던 엄마가 틀어두고 간 영어동화 씨디가 오래되어 잔뜩 더러워진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그래서 나는 라디오가 싫었고 유치원 선생님의 마중이 싫었고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와 마트로 가는 친구가 싫었다. 내 손에 잡히는 것이 막대사탕과 곰돌이 젤리가 아닌 엄마의 차가운 손이길 바랐다.
엄마의 손은 차갑더라도 내 손은 따뜻했으니까 괜찮았다. 그러던 어느 여름밤 저녁, 일찍 돌아온 엄마와 함께 저녁을 먹던 날 나는 거짓말을 했다. 내 앞에 놓인 엄마가 발라 준 가시 하나 없는 고등어구이를 먹으면서 자랑스러운 양 웃으면서 유치원 수학문제를 모두 맞았다고 그것도 나만 그렇게 해서라도 엄마의 박수가 듣고 싶었다.
늘 피곤하다고 했던 엄마가 웃어주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그렇게 돌아 온 엄마의 미소와 손바닥이 마주치며 내는 그 박수소리가 너무 좋아서 아직도 그때 그대로가 마냥 생생하다.
그 이후로 나는 수학문제를 열심히 풀었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받아쓰기를 열심히 연습했고, 엄마가 좋아하는 책을 읽기위해 도서관에 자주 들렀다. 그리고 그런 내가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지만, 어색한 손짓과 웃음으로 무마하는 내가 되었고,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혼자 우울하다.
괜히 피곤한 엄마에게 짜증을 내는 내가 되었다. 하루하루를 그렇게 보내다 어느날 “풍요롭기보다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말을 듣자마자 많은 생각들이 내 폐부를 하나둘 찔러왔다.
엄마는 과연 무엇을 위해 온 몸이 아프도록 일했을까? 엄마는 정말 여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엄마에게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을 때
아픈 엄마를 얼른 낫게 만들어 줄 간호사가 아니라 똑같이 힘들게 일해도 공장보다 돈을 더 많이 받는 간호사가 되라고 했다.
내가 돈을 많이 벌면 엄마가 행복할까? 집에 돌아가면 박수로 맞이해 줄까?
이런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마구 파고들었다. 엄마는 엄마가 아닌 나를 위해 살았다. 그래서 엄마의 행복이 무엇인지 몰랐다. 엄마가 습관처럼 뱉었던 “엄마 보고 싶다”라는 말이 사랑받고 싶다는 말인지 몰랐다. 그래서 미안했고 속상했다. 엄마도 누군가의 딸이라는 서실을 잊고 있었다. 엄마도 엄마의 엄마에게 나 같은 존재라는 걸 생각하면 자꾸만 마음이 쓰라려온다. 외할머니 댁에만 가면 밝아지는 엄마의 얼굴이 집으로 돌아갈 때쯤이면 유독 슬퍼 보이는 그 표정이 속상하다.
엄마를 마중하던 외할머니의 덤덤한 말투에 생각이 많아진다. 나를 걱정하는 엄마의 말에 짜증나는 게 아니었다.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나도 엄마를 위하는 사람이 되어 주고 싶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 집에 돌아가면 꼭 말해야겠다. 감동적인 영화의 끝마무리처럼.
여태 입 속에 묻어왔던 그 말을 전해야겠다. 그날의 저녁식탁 위처럼 엄마에게 사랑과 희망을 전해주는 박수가 되고 싶다.
고등부 운문
봄, 3.15
추서현 ( 창원대암고 1-7 )
눈을 감아보시오. 무엇이 느껴지시오? 누렇고 매운 숨 하나가 들이켜지지 않소? 어렵사리 뜬 눈 앞이 온통 뿌옇게 얼룩지지 않소? 다시 보시오. 이번에는 무엇이 느껴지시오? 이리저리 방정맞게 죽죽 늘어진 팔다리들이 발에 채이진 않소? 푸르딩딩한 낯에 시뻘건 울음이 젖어가는 것은 보이시오? 지루한 영화에서 튀어나온 밀랍인형처럼 걸어 다니는 저들은 어떻소? 귀때기 세게 내려치는 총의 고성과 젊은 아낙들의 눈물 하모니는 어떻고. 잡아가지 마소, 맨발로 뛰쳐나와 애원하는 사람들은. 자, 다시금 보시오. 얇은 천 쪼가리 게워 입은 듯 이리저리 구겨진 옷에 어릴 적부터 사랑했던 노란 스카프를 두른 여인과 이마에 흰 수건 두른 까까머리 사내. 거무죽죽한 옷에 땋은 머리를 한 소녀와 빛바랜 교복에 짧은 머리를 한 소년이 있지 않소? 저들의 눈을 좀 보시오. 누런 것들과 고성이 가득 들어 찬 지옥 불구덩이를 맨발로 들어서지 않소? 머리에 큰 구녕 하나 생겨 야트막한 숨 하나 못 쉬고, 어깨는 비척 수그러들어 하이얀 가루들로 범벅이 될 것이 눈에 선함에도 저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소. 어찌 느껴지시오? 통탄하고 애리시오? 가슴께가 지릿지릿 저미시오? 그렇다면 이제 눈을 떠보시오. 두 눈을 다 뜨시오. 인제 그네들이 보고 있는 것들, 만지고 있는 것들을 말해보시오. 꽃분홍의 바람이 불지 않았소? 새초롬한 꽃들이 피어나지 않았소? 역겹고 지루한 것들은 이제 없소. 고통에 신음하고 울음 짓지 않아도 될 시대를 찾았소. 그 젊은 청춘들이 다 먹어치우고 되찾았다는 소리요. 앞으로 그네들이 마주할 봄들을 품에 끌어안고 한 몸 부수어 이끌어놨다는 것이오. 마지막으로 다시 보시오. 그들이 그토록 염원하던, 영원히 바랐던 자유가 꽃들에 맺혀있지 않소?
고등부 산문
그 날
임지은 ( 마산여고 2-3 )
새벽 찬 공기 속에서 들려오는 뒤척이는 소리, 울음소리에 잠을 깼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그곳은 할머니 방이었다. 식은땀에 젖은 이불과 할머니의 뺨 옆 눈물들. 처음으로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시는 할머니셨다. 살려달라고 소리치시는 할머니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응급차를 부르는 일밖에 없었다. 몇 분이 지나 응급차가 왔고, 곧바로 할머니는 응급실로 향하셨다. 할머니께서 병원으로 가신 다음, 난 다시 잠을 청하지 못했다. 내 앞에선 아픈 내색 한 번도 안 하셨던 할머니였는데……. 얼마나 아프신 걸까. 설마 이때까지 참고 계셨던 걸까. 할머니에 대한 걱정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병원으로 오라는 연락에 급히 집을 나섰다. 병원으로 가는 5분이 꼭 50분 같았다. 병원에 도착하고 할머니가 계신 병실로 향했다. 1503호 옆에 적힌 할머니의 이름이 보였다. 벌써부터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아픈 사람 앞에서 눈물을 보이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눈물을 꾹 참고 병실 문을 열었다. 다행히도 할머니는 환히 웃고 계셨다. 왜 이렇게 늦게 왔냐며 농담하시는 할머니의 말씀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한지 몇 분 지나지 않고 난 엄마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그 얘기는 다시 날 울게 만들었다. 생각보다 할머니의 허리는 안 좋아 지셨고, 어쩌면 수술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자신의 몸이 심각하다는 것을 아셨는데도 나에게 오히려 웃음을 보이셨다. 괜히 내가 걱정 할까봐 아무렇지 않은 척하셨다.
할머니의 짐을 챙기기 위해 난 일찍 집으로 갔다. 옷이랑 수건을 가방에 담았다. 반찬을 꺼내기 위해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내 손녀 깍두기’ 반찬 통에는 할머니의 삐뚤한 글씨가 써져 있었다. 할머니는 수술까지 해야 할 허리로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계속 만드셨다. 할머니의 사랑이 가득 담겨 있는 것 같았다. 항상 자기보다 남을 더 생각하시는 할머니였다. 할머니의 약값을 아끼시면서 우리 가족에게 좋다는 약이나 보약, 홍삼에는 돈을 아끼지 않으셨다. 이런 사랑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 왔기에 할머니의 사랑이 이렇게 클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다. 할머니는 내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나를 사랑하셨다.
짐을 가져다 드리기 위해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엄마와 아빠는 밤까지 있을 수 없어서 그날 밤은 내가 할머니 곁을 지켜드리기로 했다. 할머니 침실 옆 간의보조침대에 몸을 누웠다. 10분 정도 지나서 할머니는 나에게 말을 거셨다. 불편하면 여기 올라오라고 하셨다. 계속해서 올라오라는 할머니의 말에 난 할머니 옆으로 누웠다. 몇 년 만에 할머니와 함께 자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나보다 키도 작고 왜소하지만 항상 나에게는 큰 존재이자 기댈 수 있는 존재였다. 난 할머니의 작은 품에 안겼다. 내가 잠이 들 때까지 자장가도 불러주셨다. 마지막엔 아프지 말거라. 그거면 됐다며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할머니는 내가 잠든 줄 아셨지만 난 깨어있었고,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할머니의 품속에서 잠든 그 날. 누군가에게는 스쳐가는 하루였지만, 난 아니었다. 오랜만에 할머니의 자장가를 들었고, 할머니의 사랑을 알게 되었다. 할머니의 기억 속에서도, 나의 기억 속에서도 잊지 못 할 날이다. 수술을 하신 후 건강이 많이 회복되셨지만 예전의 할머니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편찮으신 할머니를 보면 항상 그 날이 생각난다. 할머니의 눈물을 처음 보고, 할머니의 사랑을 느꼈던 날. 길었다면 길고 짧았다면 순식간에 지나간 날이었다. 난 늘 그 날을 생각하며 할머니께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마음을 품고 산다. 다시는 오지 않았으면 하는 기억이지만, 잊을 수도 잊어서도 안 되는 기억이다. 그 날은 내 365일 중에 조그마한 날이었지만, 내가 살아 온 인생에서 제일 슬프고 잊지 못할 날이다.
대학 일반부 운문 장원
동백꽃
하주리 (창원시 마산회원구)
코끝을 타고 들어와
칼이 되어 온 몸을 휘젓는
바람이었다.
옷깃 사이로 얼굴을 파묻었다.
그러나
맹렬하게 다시 차고 들어왔다.
눈가가 달아올랐다.
바람 때문이라 하고 싶었다.
그래서 고개를 들었다.
아, 그래
저기, 동백꽃이다!
어찌나 빨간지
눈을 비비지 않아도 보였다.
빨간 몸을 펴들고
노란 얼굴을 감싸 안아
무수한 칼바람을
오롯이
고고하고도 외로이
맞고 있었다.
계절의 끝이라 생각했는데,
결실의 최후라 생각했는데,
동백꽃은
결실을 시작하고 있었다.
오롯이 고고하고도 외로이.
달아오른 눈가가
뜨거워짐을 느꼈다.
어느새 나는 고개를 들고
웃음을 흘렸다.
대학, 일반부 산문
불 꽃
강신혜 (함안군 가야읍)
눈앞에 시뻘건 불꽃이 타오른다.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 거세게 타오르는 불길은 내가 사랑하는 존재마저 삼켜 버린다. 망막에 잔인하도록 붉은 불꽃이 명멸한다.
‘할아버지……!’
불꽃 속으로 스러지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에 맺히며, 나는 잠에서 깨어난다. 왠지 모를 한기를 느끼며 팔을 쓸어 본다. 어느새 팔에는 소름이 돋아있다. 오늘도 나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바깥으로 나와 물 한 잔과 함께 창밖을 본다. 창 밖에는 어느덧 완연한 봄을 알리고 있다. 겨우내 앙상했던 가지에는 화사한 봄의 향연을 위해 꽃망울이 맺혀 있고, 집 앞 길옆으로는 개나리가 노란 차양을 드리우고 있다. 버드나무는 여린 연녹색 잎을 단 버들가지를 낭창이고, 그 아래 당 위에는 보얀 쑥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온 세상이 생명력 가득한 가운데, 나는 시린 마음으로 서 있다. 분명 눈으로 봄이 보이고, 코로 봄 향기를 맡고, 손으로 여리지만 생동감이 넘치는 봄의 잎들을 만질 수 있건만, 내 마음 속에는 뼈 속까지 저린 한기와 그 한기를 더욱 도드라지게 하는 불꽃이 있다. 그 불꽃은 내가 가장 사랑했고, 나를 가장 사랑해주었던 할아버지를 삼켰다.
할아버지는 유난히 나를 사랑해주셨다. 첫 손녀이기에 특별했던 것인지, 할아버지는 그 많은 손녀·손자들 사이에서도 유독 나를 사랑해주셨다. 명절날 대가족이 모이는 날이면, 인원이 너무 많기에 한 번에 모든 사람이 식사를 하지 못해서 할아버지를 위시한 남자 어른들이 먼저 식사를 하고 난 후에 아이들과 여자들이 식사를 해야만 했다. 가부장적인 사회의 모습이 남아 있는 식사 방법이지만, 내가 어릴 적에는 그것은 당연한 법도였고 꼭 지켜야 할 규율이었다. 그러나 나만은 그 엄격함 속에서 예외였다.
밥상이 차려지고 할아버지께서 먼저 상석에 앉으시면, 할아버지는 당연한 듯이 나를 큰소리로 부르셨다. “신혜야, 어서 밥 먹으러 오너라”. 그때 나는 나를 부르시는 할아버지의 그 목소리에 얼마나 큰 애정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 채, 할아버지께서 채 수저를 들기도 전에 나부터 챙기신다는 게 얼마나 큰 애정을 표현하신 것인지 알지도 못하고, 당연한 듯이 할아버지의 옆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고 앉아 밥을 먹었다. 나는 그랬었다.
할아버지는 산책을 가실 때도 나와 함께 하셨다. 집 앞 공원을 둘러보러 가실 때면, 내 손을 꼭 잡고 가셨다. 날이 따뜻할 때도 가볍게 손을 잡고 가셨고, 날이 추운 날에는 유달리 손이 시린 내 손을 할아버지의 따뜻한 손으로 꼭 쥐시고는 할아버지의 점퍼 주머니에 넣으시곤 손을 녹여주시며 가셨다. 나는 거칠고 투박하지만, 할아버지의 따뜻했던 그 손이 좋았다. 할아버지의 따뜻한 손이 내 차가운 손 때문에 온기를 나눠주느라 식어가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그저 따뜻해서 좋았다. 나는 그랬었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댁에 내가 찾아갈 때면, 항상 골목 어귀까지 나와서 기다리고 계셨다. 바로 집 앞까지 차를 몰고 가는데,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집 대문 앞이 아니라 골목 어귀에 나와 서 계셨다. 도대체 얼마나 기다리신 건지, 얼마나 내가 보고 싶으셨기에 그렇게 기다리신 건지 생각지도 못하고, 나는 그저 창을 내려 할아버지를 향해 손 인사만 했다. 나는 그랬었다. 할아버지는 늘 같은 냄새를 품고 계셨다. 약간은 퀴퀴하고 쿰쿰한, 오래된 책이나, 묵힌 된장에서 나는 냄새와 비슷한 그런 냄새였다. 그러나 나는 그런 할아버지의 냄새가 좋았다. 내가 입는 옷에는 조금만 음식 냄새가 나도 벗어 던지면서도 할아버지의 냄새는 좋았다. 할아버지의 냄새는 분명 좋은 냄새가 아니지만, 할아버지의 것이기에 좋았다. 나는 그랬었다.
그토록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나도 할아버지께서 사랑해 주시기에 할아버지를 좋아했는데, 한 순간에 할아버지를 마음 한 구석으로 밀어냈었다. 계기는 정말 사소한 일이었다. 멀리 떨러져 할아버지를 자주 뵙지 못해, 전화 통화만 하던 때였다. 그 날도 하루를 끝내고 잠에 들기 전 할아버지와 통화를 했다. 평소와 같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일상을 묻고, 보고 싶다는 얘기를 하고 통화를 끝내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날, 이상하게도 할아버지는 통화 말미에 부모님에 대한 서운함을 말씀하셨다. 그것도 그냥 지나가는 말이 아닌 강한 어조로 부모님을 힐난하듯이 말씀하셨다. 그에 나는 할아버지께 너무 서운해 생전 처음으로 할아버지께 화를 내고 서운함을 토로했고, 할아버지께서도 삼십 년 만에 처음으로 내게 큰 소리를 내시고 전화를 끊으셨다.
그 단 한 번이었다. 그 통화 한 번이 그토록 긴 시간동안 할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사랑을 잊게 했다. 그 한 번이 할아버지의 사랑 대신 서운함만이 가득한 기억이 되었다. 그때까지 나는 할아버지께 사랑만을 받았기에 할아버지의 역정 가득한 그 통화는 내게 큰 상처가 되고 말았다. 그 뒤로 나는 할아버지께 연락을 드리지 않았다. 나는 그랬었다.
그리고 내가 할아버지를 만난 건, 할아버지의 마지막이었다. 할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다는 엄마의 연락을 받고 고속버스에 오르면서도 나는 한순간도 그것이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보러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그때까지도 치졸하고 이기적인 생각만으로 할아버지께 서운함을 품고 있었다.
그 생각은 몇 시간 뒤, 도착한 할아버지의 병실 안에서 부서져 버렸다. 할아버지는 거기 누워 계셨다. 말 그대로 그저 누워만 계셨다. 병실 침대 위에 누워 계신 할아버지는 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가 아니었다.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시다 나를 보면 살며시 웃음 짓던 그 얼굴이 아니었고, 할아버지의 품에서는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가 날 뿐 정겨운 그 냄새가 나지 않았고, 할아버지의 손은 마르고 서늘해 투박하지만 크고 따뜻했던 온기를 잃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할아버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아무리 크게 소리쳐 불러도 할아버지의 “신혜야”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것이 끝이었다. 그렇게 나는 할아버지를 보내야 했다. 사흘간의 장례식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화장터로 올라가는 길에 단풍이 너무 고와서, 하늘이 너무 맑아서 눈물이 났다. 할아버지와 한 번만 더 이 좋은 풍경을 보며 손잡고 걷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기에 하염없이 눈물만 났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삼켜 버린 불꽃만이 내게 남았다.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뒤, 몇 달의 시간이 흘렀건만, 나는 아직도 그 불꽃의 잔상에 쫓겨 잠이 깬다. 그리고는 창밖을 쳐다보는 것이 내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아마 할아버지를 보내고 나서야 그만큼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은 다시없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 찾아온 상실감 때문이리라. 그 사랑에 제대로 보답해 드리지 못한 데서 찾아온 죄책감 때문이리라.
그러나 봄이 오면 이 마음을 바꿀 것이다.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고, 벚꽃이 푸른 하늘을 하얗게 수놓는 봄이 오면, 슬프고 가슴 아린 할아버지의 마지막 불꽃이 아니라, 시린 내 손을 따스하게 녹여 주시던 할아버지의 사랑의 불꽃을 피울 것이다. 그리고 그 불꽃은 내가 할아버지께서 주신 사랑을 다시 나의 자식과 손자들을 위해 피워낼 때까지 내 가슴 속에 고요히, 그러나 따스하게 타오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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