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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민주투사도 아니면서 툭 하면 경찰서 보호실이나 유치장 신세를 지다가
급기야 2009년 10월에 실형을 살았습니다. 혜화 경찰서 유치장에 있으면서
'88년도에 노량진 경찰서 유치장에서 이틀 밤을 자고 송치를 기다릴 때가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나이 스물여섯에 ‘경찰 폭행 및 공무집행 방어‘로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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갔었는데 만약 오늘밤에 못 나가면 다음 재판 때 까지 교도소에서 징역을 살지도
모르는 어려운 상황에서 이번 한 번만 봐 주시면 근신 하겠다는 기도가 저절로
나옵디다. 지금 생각해 보니 울 주님께서 꼭 의인의 기도만 들어 주신 게 아니질
않습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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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 새는 건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수도방위
사령부 헌병32중대 13개월 차에 영창을 갔고 0뺑이 치다가(4.22-5.7) 복역을
끝냈으니 전출을 가야합니다. 제가 전출을 두 번 간 군인입니다. 출옥했는데
언놈 한명도 두부를 준 이가 없고, W백에 건강 기록부, 빨간 줄 영창 15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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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힌 군 기록부를 넣고 102보충대까지 택시타고 물어물어 갔습니다. 시바,
내 돈 내고 서울-경기도까지 갔다는 뜻입니다. 102보충 대대는 2016년에
해체되었는데 당시(1985)는 주1.000명 정도 신병이 입소하던 곳입니다.
참고로 1빠 논산은 주2600명의 신병이 입소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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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에서 3박4일을 송충이들과 대기 하다가 배타고 소양강을 넘어 3군단
휴양소로 왔을 것입니다. 3박4일 어느 날 밤하늘에 별이 어찌나 총총한지 엿
같은 팔자타령을 하며 별보고 울었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22세 입니다. 비행기
탈 때처럼 비상시 조끼 입는 방법 정도를 교육 받은 것 같고, 춘천 발 소양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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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에 도착했을 것입니다. 배 멀미를 하고 더워서 죽겠다는 신병들과 기관
병들에 끼어 3-4시간의 항해를 했을 것입니다. 항해시대 개척자들은 얼마나
고생을 하였을까요? 여유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경치는 분명 비경이었고,
만약 배가 파선 하더라도 죽을 것 같지는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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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선착장에 도착하자 헌병 인솔자가 배에 내리면서부터 군기를 잡더이다.
당시 군인 휴양소까지는 2돈 반 차로 2시간가량 간 것 같고 도중에 을지 검문소
(12시단관할)에서 근무자가 “050!”을 호명하더이다. 영창 가는 신세긴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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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왕족이나 되는 양 저는 의기양양했을 것입니다. 휴양소에 도착해서 3일
정도 대기했어요. 나중에 제가 선착장 신병 인도할 때 경유지를 살펴보았는데
기록을 안 해놓아서 가물가물합디다. 하여간 3군단 휴양소는 가리산 특공연대
근처에 있습니다. 물론 이 휴양소가 지금은 없어졌는데 원래 김 재규 중앙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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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의 별장이었다고 합디다. 휴양소에서 전출 신고를 제가 대표로 했는데
송충이들이 선배님, 선배님 하면서 어찌나 달라붙는지 정 들 뻔 했습니다.
둘째 날 저녁 이등병 100명 중에 섞여 있는데 헌병 백차타고 근무자가 왔어요,
나를 부르더니 담배 2갑이랑 크림 빵 3개를 던져주더이다. 연병, 낼 다시 픽업
오겠다면서.
2014.9.6.sat.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