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2장, 33장, 34장
야곱이 브니엘에서 하나님의 만남, 에서와 야곱의 만남, 디나와 하몰의 아들 세겜
야곱이 에서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 준비합니다. 조금 전에 야곱은 외삼촌 라반과 평화롭게 헤어졌습니다. 이제 야곱은 자기와 사이가 나빴던 쌍둥이형을 만나기 위해서 준비합니다. 약 이십년 전에 야곱은 자기를 죽이려하는 에서를 피해 라반에게로 도망쳤습니다. 지금 야곱은 에서가 자기를 어떻게 맞이할지에 대해서 조바심을 갖습니다. 그러면서 야곱은 에서와 평화스럽게 화해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꾀를 지어냅니다.
32:1절~12절
32:1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2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3 야곱이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에게로 자기보다 앞서 사자들을 보내며 4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 주 에서에게 이같이 말하라 주의 종 야곱이 이같이 말하기를 내가 라반과 함께 거류하며 지금까지 머물러 있었사오며 5 내게 소와 나귀와 양 떼와 노비가 있으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알리고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 하라 하였더니 6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7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8 이르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 9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10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11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12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야곱이 라반과 에서를 만나는 사건들 사이에 위치한 것으로서, 이 절들은 매우 흥미롭고 신비로운 막간극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사자들(1절)이라는 표현은 이전에 벧엘에서 야곱이 꿈을 꾼 사건을 연상시켜 줍니다. 구약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의 사자들이라는 표현은 오직 이 두 절들에서만 나타납니다. 또한 '하나님의 군대'(또는 진영, 2절)는 야곱이 이전의 벧엘을 '하나님의 집'이라고 부른 것과 평행을 이룹니다.
진영은 한 곳에 있지만 군대의 이동을 따라서 진영은 이곳저곳에 세워집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군대 또는 진영이라는 야곱의 말은 하나님이 자신을 가나안 땅으로 안전하게 돌아가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천사들을 보내셨다는 것을 암시 해줍니다. 그리고 '마하나임'(2절)은 '두 진영'을 뜻합니다. 아마도 하나님의 진영과 야곱의 진영을 가리킬 것입니다. 나아가 '두 진영'이라는 모티브는 7절과 10절에서도 나타납니다(1~2절).
'자기보다 앞서 사자들의 보내며', 이절에서 '사자들'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명사 '말아킴'은 1절 에서 사용된 단어와 똑같습니다. '세일 땅 애돔 들'(또는 벌판, 3절), 이 벌판은 가나안 땅의 동쪽 트란스요르단 지역에 있습니다. 여기서 야곱이 에서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매우 공손합니다. 4~5절에서 야곱은 에서를 두 번이나 '내 주'라고 부릅니다. 이와 같이 야곱은 형 에서에게 '은혜받기를' 바랬습니다(3~5절).
'사백 명'이라는 규모의 사람들은 애서가 야곱을 공격할 계획을 세웠다는 것을 암시해줍니다. 창세기 24장에서 아브라함이 318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네 왕들이 쫓아가서 그들과 싸움을 해서 이겼다는 내용이 있습니다(6절).
에서를 두려워해서, 야곱은 자기의 가족과 소유를 '두 떼'로 나눕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판단할 때 야곱의 이와 같은 조치는 이해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행위는 하나님이 자기를 보호해주신다는 것을 야곱이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32:1~2에서 하나님이 야곱을 보호하시려고 자신의 사자들을 보낸다는 것과 관련하여 두 군데(진영)의 모티브가 이미 소개되었었습니다(7~8절).
두려워하는 상황에서 비로소 야곱은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먼저 야곱은 하나님에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야곱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언제나 신실하시며 또한 자기를 변함없이 사랑해 주시는 것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다고 겸손하게 인정합니다. 역설적인 표현으로서 하나님이 자기를 매우 형통하게 하셨기 때문에 야곱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두 떼'로 나눌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10절). 여기서 또 다시 두 군데(진영)의 모티브가 언급됩니다. '하나님 여호와여'(9절), 야곱은 이제 처음으로 하나님을 여호와라는 특별한 호칭으로 부릅니다.
'네 씨로 바다에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12절), 창세기에서 이 하나님의 약속이 야곱에게 언제 주어졌는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습니다. 벧엘에서 하나님은 야곱의 자손이 땅에 티끌 같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창세기에 소개되지 않는 또 다른 상황에서 하나님은 야곱의 자손을 바닷가의 모래와 비교하며 말씀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면서 맹세하셨기 때문입니다(9~13절).
22절~32~절
22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23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29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32 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야곱이 브니엘에서 하나님을 만남, 이 단락에서는 한밤중에 하나님과 야곱이 만난 사건이 소개됩니다. 이 놀라운 만남을 통해서 비로소 야곱은 온전히 변화됩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것이 이 점을 입증해줍니다
얍복 나루 야곱은 이제 얍복 강에 이르렀습니다. 얍복 강은 요단골짜기 서쪽 방향으로 흐르며 사해와 북쪽으로 약 3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22~23절).
'어떤 사람이....씨름하다가', 갑자기 예상하지 못했던 한 사람이 나타납니다. 그는 밤새도록 야곱과 씨름을 합니다. 이 씨름이 거의 끝나가는 무렵에 야곱은 자신과 씨름했던 대상이 바로 하나님이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전에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다(18:1~15)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사건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이 절에서 히브리어 표현에는 흥미로운 언어유희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곧 하나님은 야곱(히, '야아콥')과 씨름하셨다(히, '에이베크'). (24절)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어긋났더라'(엉덩이뼈가 어긋나게 되었다), 야곱이 엉덩이뼈를 다친 것은 상대방의 힘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또한 야곱이 그를 이기려고 모든 힘을 다했다는 것을 드러내줍니다(25절).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심지어 야곱은 엉덩이뼈가 어긋날 정도가 되었지만 야곱은 상대방을 좀처럼 놓아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에게 복을 받으려고 야곱은 필사적으로 매달립니다(26절).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것이니, 전후 문맥을 살펴볼 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그가 하나님과 겨루다' 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가능한 해석은 '하나님이 싸우다'입니다. 하지만 이 해석은 이 문맥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는 것은 야곱이 다른 사람들과 싸우는 그의 인생 여정에서 그 정점을 이룹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마침내 야곱은 하나님에 의해서 복을 받는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지난 세월 동안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은 야곱을 변화시켰습니다. 아버지의 하나님이 이제 야곱 자신의 하나님이 되었습니다(28절).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니 내 생명이 보존되었다 함이더라', 히브리어에서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야곱은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나중에 모세는 하나님께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 하십니다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자가 없느니라" (출 33:20), 이 대화에 근거해서 살펴볼 때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것은 매우 특별한 예외이거나 아니면 '대면하여'라는 말은 비유적인 표현으로서 하나님과 대단히 친일한 관계에 있다는 것은 나타낼 것입니다(30절).
야곱이 에서와 화해함, 브니엘에서 야곱이 하나님을 만났다는 이야기 다음에 야곱이 에서와 화해하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야곱은 대단히 겸손한 자세로 쌍둥이 형 에서에게 가까이 나갑니다. 그러자 에서는 동생 야곱을 매우 따뜻한 마음으로 맞이합니다. 이 장면은 두 형제 사이의 화해가 이루어짐을 확인해 줍니다
1절~11절
33:1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지라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2 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3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5 에서가 눈을 들어 여인들과 자식들을 보고 묻되 너와 함께 한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
6 그 때에 여종들이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7 레아도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그 후에 요셉이 라헬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니 8 에서가 또 이르되 내가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야곱이 이르되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9 에서가 이르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 10 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11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예서가 자기를 향해서 오고 있는 것을 보자, '야곱'은 자신의 아내들과 자식들을 자신이 판단하기에 중요한 순서대로 배열시킵니다. 야곱은 '라헬'과 '요셉'을 가장 영예스럽고 안전한 위치에 있게합니다. 여기서 야곱의 아들들 가운데 오직 요셉만 언급됩니다. 나중에 창세기에서 야곱이 요셉을 특별히 사랑한다는 주제가 다루어집니다(참조, 창 37장). (1~3절)
야곱은 천천히 '에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일곱 번이나 땅에 엎드리며, 야곱은 애서에게 절을합니다. 자신이 에서에게 복종한다는 것을 나타내려는 의도에서 야곱은 분명히 이와 같이 행동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전의 여호와가 "큰 자가 어린 자의 섬기리라"(25:23) 라고 말씀하신 것을 고려할 때 야곱의 이 행위는 주목할 만합니다(3절).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아무런 거리낌 없이, 에서는 야곱을 껴안고 입을맞춥니다. 이러한 모습은 에서가 야곱에게 아무런 적대감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드러내줍니다. 아마도 이 두 형제가 서로 화해하는 모습은 예수님의 비유에서 집을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아들과 그의 아버지가 서로 만나는 장면을 설명하는 데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참조, 눅 15:20). (4절)
'내가 만난 바 이 모든 때'는 야곱이 애서에게 선물로 보내는 다양한 가축의 때를 가리킵니다(8절).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야곱 자신이 이전에 하나님을 만난 것과 지금 에서를 만난 것을 대조시킵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맞아 주신 것과 같이 에서는 야곱에게 분에 넘치는 호의를 베푼다는 것입니다(10절).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는 복이라는 단어와 똑같습니다. 여기서 야곱이 에서에게 주는 선물은 가축입니다. 이전의 야곱은 에서에게서 장자권을 빼앗았습니다. 지금 야곱은 이 특별한 복을 에서에게 다시 돌려 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베푸신 복 가운데서 장자권 대신에 다른 것으로 갚으려고 합니다(11절).
디나가 부끄러운 일을 당함, 야곱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자마자 한 가지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야곱의 가족 전체가 신변의 안전을 위협받게 됩니다. 하몰의 아들 세겜이 야곱의 딸 디나를 강간한 사건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된 행위입니다. 하지만 시므온과 레위의 보복행위는 그 범죄행위에 대한 적절한 형벌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자신들의 보복 행위에 잘못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를 주저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들의 행위로 말미암아, 자기 가족 전체가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는 현실을 직시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축복의 수단으로서 할례를 배풀라고 지시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 할례는 사람들을 죽이는 수단으로 악용되었습니다. 그리고 34장에서는 하나님이 전혀 언급되지 않은 채, 모든 일들이 일어납니다.
1절~31절
34:1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더니 2 히위 족속 중 하몰의 아들 그 땅의 추장 세겜이 그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고 3 그 마음이 깊이 야곱의 딸 디나에게 연연하며 그 소녀를 사랑하여 그의 마음을 말로 위로하고 4 그의 아버지 하몰에게 청하여 이르되 이 소녀를 내 아내로 얻게 하여 주소서 하였더라 5 야곱이 그 딸 디나를 그가 더럽혔다 함을 들었으나 자기의 아들들이 들에서 목축하므로 그들이 돌아오기까지 잠잠하였고 6 세겜의 아버지 하몰은 야곱에게 말하러 왔으며 7 야곱의 아들들은 들에서 이를 듣고 돌아와서 그들 모두가 근심하고 심히 노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야곱의 딸을 강간하여 이스라엘에게 부끄러운 일 곧 행하지 못할 일을 행하였음이더라 8 하몰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 세겜이 마음으로 너희 딸을 연연하여 하니 원하건대 그를 세겜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라
9 너희가 우리와 통혼하여 너희 딸을 우리에게 주며 우리 딸을 너희가 데려가고 10 너희가 우리와 함께 거주하되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여기 머물러 매매하며 여기서 기업을 얻으라 하고 11 세겜도 디나의 아버지와 그의 남자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로 너희에게 은혜를 입게 하라 너희가 내게 말하는 것은 내가 다 주리니 12 이 소녀만 내게 주어 아내가 되게 하라 아무리 큰 혼수와 예물을 청할지라도 너희가 내게 말한 대로 주리라 13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과 그의 아버지 하몰에게 속여 대답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그 누이 디나를 더럽혔음이라 14 야곱의 아들들이 그들에게 말하되 우리는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할례 받지 아니한 사람에게 우리 누이를 줄 수 없노니 이는 우리의 수치가 됨이니라 15 그런즉 이같이 하면 너희에게 허락하리라 만일 너희 중 남자가 다 할례를 받고 우리 같이 되면 16 우리 딸을 너희에게 주며 너희 딸을 우리가 데려오며 너희와 함께 거주하여 한 민족이 되려니와
17 너희가 만일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우리는 곧 우리 딸을 데리고 가리라 22 그러나 우리 중의 모든 남자가 그들이 할례를 받음 같이 할례를 받아야 그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거주하여 한 민족 되기를 허락할 것이라 23 그러면 그들의 가축과 재산과 그들의 모든 짐승이 우리의 소유가 되지 않겠느냐 다만 그들의 말대로 하자 그러면 그들이 우리와 함께 거주하리라 24 성문으로 출입하는 모든 자가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의 말을 듣고 성문으로 출입하는 그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으니라 25 제삼일에 아직 그들이 아파할 때에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버니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몰래 그 성읍을 기습하여 그 모든 남자를 죽이고 26 칼로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을 죽이고 디나를 세겜의 집에서 데려오고
27 야곱의 여러 아들이 그 시체 있는 성읍으로 가서 노략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누이를 더럽힌 까닭이라 28 그들이 양과 소와 나귀와 그 성읍에 있는 것과 들에 있는 것과 29 그들의 모든 재물을 빼앗으며 그들의 자녀와 그들의 아내들을 사로잡고 집 속의 물건을 다 노략한지라 30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31 그들이 이르되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 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다는 언급은 아마도 부정적인 의미가 들어 있을 것입니다. 곧 야곱이 이 땅의 딸들 가운데 하나를 아내로 맞이하는 것을 반대하며 리브가는 이 표현을 사용합니다(1절).
'히위 족속 중 하몰의 아들 그 땅의 주장 세겜,(개역개정 성경의 이러한 번역은 잘못된 것입니다. ESV, NIV, 및 NRSV 등에는 '히위 족속 중 그 땅의 추장 하몰의 아들 세겜'이라는 의미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분명히 하몰은 세겜 지역에서 중요한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지위에 근거해서, 나중에 하몰은 성읍 사람들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설득합니다. 하몰의 아들 세겜은 처음에는 욕정에 이끌려 디나에게 접근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세겜은 디나를 꼭 자기의 아내로 맞아들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2~4절).
세겜이 디나를 강간한 것에 대해서 야곱의 아들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합니다(7절). 하몰은 원래 야곱과 의논하려고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야곱의 아들들이 아버지를 대화에 참여하지 못하게 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야곱을 대신해서 야곱의 아들들이 하몰 및 세겜과 대화하기 때문입니다(8~9절).
디나의 가족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세겜은 티나를 신부로 데려오는데 치러야 할 값과 예물을 대단히 관대하게 제공하겠다고 제안합니다. 고대 근동에서 이것은 혼인을 성사시키기 위한 과정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세겜은 야곱과 야곱의 가족이 요구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주고자 하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11~12절).
'속여 대답하였으니', 여기서 사용된 히브리어 명사('미므라')는 속이는 것을 뜻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속인다는 점에서 야곱의 아들들은 그들의 아버지를 닮았습니다. 왜냐하면 야곱이라는 이름은 비유적인 의미에서 '속이다'를 암시하기 때문입니다(참조, 25:26). 하지만 이 장에서 야곱의 아들들이 하게 될 행위는 야곱이 이제까지 행한 모든 행위보다 정도가 더 지나친 것입니다(13절).
디나와 세겜이 결혼하는 전제 조건으로서, 야곱의 아들들은 세겜 남자들이 모두 할례를 받을 것을 요구합니다. 따라서 할례를 받은 사람들은 아브라함을 자기의 조상으로 인정합니다. 두 족속이 한 민족이 되려면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야곱의 아들들의 주장은 옳습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이야기가 밝혀 주듯이, 그들의 의도는 다른 데 있습니다(14~17절). '이 사람들은 우리와 친목하고', 하몰과 하몰의 아들 세겜은 야곱의 아들들에게 완전히 속습니다(21절).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버니 시므온과 레위가', 야곱의 아들들이 모두 나서서, 하몰과 세겜을 속였습니다. 하지만 할례를 받은 모든 남자들을 죽이는 일에는 오직 시므온과 레위만 관여합니다. 그리고 야곱의 모든 아들들이 그 성읍을 약탈하는데 가담하지만 세겜 사람들을 죽인 것과 관련해서, 나중에 야곱은 특별히 시므온과 레위 잘못을 책망합니다. 이 책망은 나중에 49:5~7에서 야곱의 유언에 반영돼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야곱의 유언에서 시므온과 레위는 지도권을 받지 못합니다. 따라서 그 지도권은 그들의 동생 유다에게로 넘어갔습니다(25절).
야곱의 비난은 시므온과 레위의 행위가 지닌 도덕적인 문제점보다도 오히려 가족에게 미치게 될 해악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 성읍의 남자들을 죽이고 부녀자들을 사로잡으며 또한 재물을 빼앗은 것과 관련해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은 머지않아 야곱의 가족을 공격할 것입니다(3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