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벗농원 길종각 대표 @이지연 기자 | 강원도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농촌에 익숙한 삶을 살았던 길종각(45ㆍ길벗사과농원, 이하 길벗농원) 대표가 귀농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92년 녹색평론과 대구한살림에서 주최하는 귀농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막연한 생각이 현실이 됐다. 농촌에 대한 환상이 아닌 생태적 삶에 대한 그의 진지한 고민이 귀농을 해야 하고, 또 친환경농사를 짓겠다는 의지가 됐다. 귀농학교를 다니며 만나게 된 지인의 도움으로 이곳 홍천에 터를 잡았다.
지역 주산물은 애호박과 오이였다. 귀농 후 1년은 준비기간으로 이웃의 오이밭에서 농사일을 시작했다. 그때 하우스농사와는 맞지 않는다 싶어 작목을 고심한 끝에 까다롭지만 소득이 낫고 비교적 여유가 있다는 과수를, 그중에서도 사과를 선택하게 됐다. 02년 첫해 홍로 700주를 처음 재식한 이후 지금은 집 앞 3천5백평에 650주, 인근 2천5백평의 밭에는 400주를 보유한 제법 큰 규모의 사과농원이 됐다.
친환경 농법을 지향하는 그는 화학비료 대신 우분을 사용하기 때문에 퇴비용으로 소를 기르고 있다. 처음 3마리로 시작했는데 암놈이 쑥쑥 새끼를 잘 낳아줘 11마리로 불어났다. 소 사육도 성공한 셈이다.
“가족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
7년 전인 2001년 봄, 그가 잘 나가던 대기업 홍보실을 그만두고 귀농을 한다했을 때 대부분의 귀농인들이 그렇듯 주변인들의 반응이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수입이 일정한 화이트칼라 직장인이 육체노동이 과중한 농부로 살기는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귀농을 결심한 후 맞닥뜨리게 된 첫번째 과제가 가족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도시에서 떠나 외지로 가게된 데 막연한 두려움을 갖던 가족들이었지만 이곳에서의 생활에 적응하면서 지금은 누구보다도 만족스러워 한다.
홍성 풀무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들은 시골생활이 훨씬 좋다고 말하고, 그중 올해 대학에 입학한 큰아이는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며 든든한 조력자로 나섰다. 농사를 짓다가 오래도록 도시생활을 무료하게 보내던 부친은 귀농한 지금은 텃밭이든, 양봉이든 먼저 나서며 누구보다 농촌생활을 즐기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힘이 된 것은 그의 아내 박미숙(43)씨다.
길 대표는 “가족의 도움이 없었다면 귀농은 꿈으로만 머물렀을 것”이라며 아내를 비롯해 가족들의 도움이 그를 지탱해주는 지지대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 스스로가 좋아 선택한 귀농이고 사과농사지만 주산지가 아니라는 이유로 갖은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한다. 주산품목은 지자체에서도 지원이 많은데 독농가에는 그런 지원이 그림의 떡이라는 얘기다. 처음 지역기술센터나 주민들도 그에게 배나 포도농사를 권했다. 사과는 홍천에서 그가 처음이라고 한다. 그로서는 모험을 한 셈이다. 겨울이 길고 추운 강원도의 특성상 동해가 심각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동해를 견뎌내는 사과를 키워보자는 것.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길벗농원의 사과는 다른 지역에 비해 병해충이 적고 사과는 훨씬 더 아삭하고 당도가 높다. 농원의 위치가 해발 400m의 준고랭지로 일교차가 큰 산간 지대인 것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했다. 그의 선구적 재배로 “홍천에서도 사과가 된다”는 소문이 돌면서 이제는 두세 농가에서 시도하고 있다고.
그가 정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사람들도 많았다. 그는 홈페이지에 틈틈이 농원소식도 전하고, 또 감사의 말도 올린다. 귀농을 준비하면서 느낀 어려움과 단상들을 2001년 일간지에 기고했을 정도로 글을 잘 쓰는 덕에 그의 홈페이지에는 그의 글을 찾아 읽는 매니아들이 많다.
사과사랑동호회, 유기농사과 재배 농가 등 농사를 지으며 알게 된 사람들과 주변 귀농인 등 그가 어려울 때마다 힘을 보태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 이들이 있었기에 지금껏 탈 없이 “버텨낼 수 있었다”. 그가 하나하나 시행착오를 겪으며 체득한 주옥같은 경험들은 온전히 사과농사에 대한 그의 소중한 데이터로 축적이 됐다.
귀농해 자리잡기까지 최소 7년 걸려, 초기투자비용 아껴야
길종각 부부 @이지연 기자 | 선배 귀농자인 그는 후배 귀농인들에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충고를 전한다. “97년 IMF 때 귀농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었는데 3년안에 90%가 올라갔다고 한다. 귀농이유야 여러 가지지만 일단 귀농했다면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것 아닌가”며 “안정화 단계까지는 7년 정도가 필요한데 그때까지 살아남으려면 먼저 최대한 투자비용을 아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귀농자들은 살집을 마련하는데 돈을 많이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고 따끔하게 지적한 뒤, “대신 창고나 농기계 등에 투자하라”고 충고한다. 농사는 날씨 등 예측불가능한 변수가 많고, 특히 귀농자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자력구제해야 하는 등 초기투자비가 크기 때문에 현금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길 대표도 한달 반 짧은 기간에 소박하고 튼튼한 집을 지었다. 가장 싸다는 침목을 재료로 인부도 몇 명 쓰지 않고 주변인들의 조언을 받아가며 스스로 지어 비용을 아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유현금이 없어 초기에 빚을 많이 졌다”며 후배 귀농인들은 그런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두 번째로 그는 “작은 땅이라도 내 땅을 갖고 나머지는 임대할 것”을 권한다. 되도록이면 주산지에서 주산작물로 승부를 거는 것이 실패할 확률이 적다는 충고도 덧붙인다. “독농가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어도 뜻하는 바가 있어 이를 극복했지만, 만약 그 고비를 넘지 못했다면 실패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귀농자들이 가장 바라는 목표인 “빨리 수익을 내고 쉽게 안정화 단계에 이르기” 위해선 그의 충고가 중요한 귀농 지침이 될 것이다.
생계에 대한 부담만큼이나 도시생활에서처럼 여유로운 자금으로 생활하기는 힘드니 그에 대한 각오도 해야 할 듯싶다. 길 대표도 "도시에서보다 반 이상이 준 생계비로 살고 있다"고 한다. 물론 순수 생활비 이외에 자녀교육비같은 지출은 없다는 전제하에.
길벗농원은 현재 육천여 평정도지만 앞으로 만 평 정도 규모로 늘릴 수 있게 되길 길 대표는 희망한다. 흔히 말하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려는 목표가 아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손에 익었고 멀지 않은 미래 큰아들이 함께 사과농사를 짓게 될 때가 오게 될 터라 가격을 높이지 않는 대신 생산량을 늘려 수익을 개선하자는 생각이다. 우리가 매일 먹어야만 하는 농산물은 믿을 수 있는 품질이어야 하고, 무엇보다 가격이 높지 않아야 한다는 그의 농업철학은 그가 귀농 때부터 지켜온 믿음이다.
그러나 심각한 인력난으로 인해 무작정 경작지를 늘리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더구나 적과, 적화, 전지 등에는 숙련자가 필요한데 “인력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는 해결방법으로 외국인 노동인력을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길벗농원은 최소한의 방제만 하는 친환경농법을 지키고 있지만 기술을 보충해 궁극적으로는 유기농 사과를 재배할 생각이다. 사과는 특히 병충해가 많아 유기농이 힘들다고 하지만 귀농을 결심하게 된 목적을 생각한다면 그로서는 반드시 해결해야할 과제이다.
길벗사과 단골들 해거리 소식에 크게 아쉬워해
길종각 대표가 자신의 사과 농장을 둘러보고 있는 모습 @ 이지연기자 | 앞으로 우리나라 최대 농산물수입국인 중국과의 FTA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농산물 가격경쟁은 더욱 힘들 것으로 보인다. FTA 체제하에서 소규모농가는 직거래가 가장 효율적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길벗농원은 귀농자가 가장 걱정하는 유통에 대한 걱정은 덜었다. 도시생활동안 쌓아온 인적교류의 힘이 컸다. 주산단지 품목이 아니라는 이유로 기존 판로를 뚫을 길이 없는 국내 농업유통상의 문제점은 비켜간 셈이다.
사과농사가 길이 들 즈음 그는 지인의 권유로 자투리 밭에 오미자를 심었다. 오미자 액을 추출하거나 메주· 된장 등을 짬짬이 만드는데 용돈 할 정도 벌이는 된다고 한다. 토종꿀도 부친의 힘을 빌어 조금 한다. 10통이 안 되지만 분봉을 하게 되면 짭짤한 부수입원이 될 것이다.
귀농 2년째 내 작물을 심고 2005년 첫 수확을 하는 기쁨을 누렸으며 작년 처음으로 수익다운 수익을 냈던 길벗농원은 올해는 지난해보다 월등한 생산을 기대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5월 꽃눈이 오지 않아 해거리를 하게 됐다.
길 대표는 “7년간 농부로서 살아왔지만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독농가로 운영하다보니 치르게 된 비용 같은 것”이라며 아쉬움을 달랬지만 실망감은 어쩔 수 없다. 일년 생계가 달려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삭하고 당도 높은 길벗사과를 먹지 못하게 된 길벗사과 매니아들의 탄식도 길 대표에게는 송구스런 마음으로 남게 됐다.
물론 해거리를 한다고 농사를 손 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내년을 위해 사과나무도 계속 관리해줘야 하고, 오미자와 해거리 때문에 대체해 심은 맷돌호박도 돌봐야 한다.
올해는 “껍질째 먹는 길벗사과”를 맛볼 수 없지만 대신 소박한 양이지만 길벗농원표 유기농 호박이나 꿀, 오미자, 된장은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안타까움을 가슴에 묻은 채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는 길벗농원 식구들의 노력을 본다면 내년, 사과나무에서는 올해 격실된 만큼 더 풍성한 결과물로 만날 수 있게 되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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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참고되는 글이네요
정말로 고생한 보람이 언젠가 오리라 믿읍니다
현실적인감동이있네요 !저도걱정입니다.65년생인데 지금어떻게준비해야될지...부럽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