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꽃미남 뢰브의 축구미학
요즘 축구 때문에, 특히 독일 축구 때문에 잠을 못 이루고 있다. 독일 TV와 신문을 독일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이 보고 있는데 순전히 축구 때문이다. 10년을 넘게 독일에 살면서 독일 축구를 보아왔지만 이번 월드컵처럼 감동적인 때는 없었던 것 같다. 혁명, 이것은 독일축구사에 일종의 혁명이다.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크든 작든 하나의 조직은 일단 리더가 중요하다. 지금 독일국대를 이끌고 있는 뢰브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요하임 뢰브, 그는 어떤 사람인가?
독일이 숙적 영국을 4대 1로 대파할 때 까지만 해도 뢰브 감독의 비판자들은 긴가민가하며 회의의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그러나 뢰브가 기고만장한 언사로 독일의 자존심을 건드려 놓던 마라도나의 코를 무참히 뭉개버렸을 때 모든 비판자들은 비판의 언사를 거둬들였다. 독일의 축구 해설가 중에 가장 논리적이고 똑똑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 귄터 네쩌(Guenter Netzer)가 외쳤다. "뢰브가 나조차 이겼다." 네쩌는 그동안 뢰브의 축구를 가장 심도 있게 비판해 온 사람이었는데 아르헨티나전 이후 깨끗이 항복을 선언한 것이다.
독일 축구계의 가장 날까로운 혀 네쩌와 축구 황제 베겐바우어
지금 독일 뿐 아니라 세계 축구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이 요하임 뢰브라는 사람, 인문학도인 내게도 꽤 흥미로운 사람이다. 그 이유는 조금 뒤에 밝혀질 것이다. 뢰브(정확하게 발음하면 뢰프에 가깝다)는 한국에서도 꽤 인기가 있는 모양인데, 특히 여자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 프랑스의 미남 배우 아랑드롱과 비슷한 외모 때문인데 독일 기준에서 보면 그리 잘생긴 남자는 아니다. 내가 아는 한 독일 여자들은 차라리 전임 감독 클린스만을 매력남으로 친다. 물론 내가 여자가 아닌지라 백프로 장담은 못하겠다.
전 국대 감독 클린스만과 코치 뢰브
요하임 뢰브 (1960-, Schoenau 출생)의 축구철학
저간의 모든 이력을 생략해버리고 뢰브가 어제 키커(Kicker)지와 한 인터뷰를 정리해보면 축구감독 뢰브의 내면을 좀 들여다 볼 수 있다.
기자: 최근에 어떤 축구인이 당신을 전투적 감독(Kampftrainer)이라고 했던데, 실제로 그런가요? 뢰브: 무슨 소리에요? 난 좋은 경기를 보고 싶어하는 "미학적 감독 aesthetischer Trainer"이에요. 내게 전투니 전략이니 하는 것은 주변적인 개념일 뿐입니다. 굳이 전투라는 말을 써야 한다면 내가 이해하는 축구의 전투는 무작정 적진으로 치달리는 거나 과격한 공격을 해대는 것이 아닙니다. 쓰릴과 긴장이 최고로 고조되는 상황이라는 의미에서 쓴 개념이라면 수용할 수 있겠지만...
◆ 도대체 축구 감독 중에 '미학Aesthetik'을 말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미학이란 게 뭔가? 통속한 의미에서 미학이란 보기에 아름다운 예술적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 학문이 바로 18세기 독일의 바움가르텐이란 학자에 의해 출발되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역시 피는 속일 수 없는 모양.
기자: 미학적 감독에게 질문을 하나 하지요. 이번 월드컵이 미학적으로 수준이 낮아 좀 실망스럽지 않나요? 뢰브: 실망한 건 아닙니다. 스페인 같은 팀은 탁월한 경기를 보여줬잖아요. 물론 이태리나 프랑스는 좀 실망스러웠어요. 아마도 이들은 정상(Zenith)을 넘어 내리막길에 서있지 않나 싶어요. ◆ 이건 거의 동양 철학적인 시각이다. '달은 차면 반드시 기울게 되어있다'는 인식이 동양사유의 근본 아닌가. 이것은 다르게 보면 겸손하게 준비해야하다는 윤리적 메시지다. 사실 지난 월드컵에서 우승한 이태리의 추락이나 그전 월드컵에서 승리한 프랑스의 몰락은 바로 오만과 내부 불화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잘 나갈 때, 가장 조심해야 한다는 말인데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란 어렵고도 어렵다.
행운을 갖다준다는 소위 '4골의 파란 셔츠', 뢰브는 주변의 강요로 씻지도 않은 이 셔츠를 스페인전에도 입을 것이라고 한다.
기자: 독일팀의 수비 말인데요, 수비에도 미학적 전략이 있나요? 뢰브: 특별한 것이 뭐 있겠어요? 일단 일 대 일 몸싸움에서의 몸놀림이 좋아야 합니다. 영국과의 경기에서 파울 없이 공을 많이 빼앗았는데, 이게 바로 수비의 예술, 그러니까 수비 진영의 미학이라 할 수 있어요.
◆ 그러니까 드리블 능력이나 개인기는 공격수만의 덕목이 아니라 수비수에게도 핵심 사항이라는 것. 이것은 한국과 아르헨티나전에서 김남일과 차두리가 문전 수비 중 일 대 일 대결에서 공을 빼앗겨 바로 골을 내어 준 상황을 생각하면 뼈아픈 인식이다.
기자: 남은 시합 실망하지 않고 잘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만? 뢰브: 시합에 지면 언제라도 실망할 수밖에 없잖아요. 심지어 결승전에 가도 거기서 지면 역시 실망하게 되어 있어요. 그렇지만 나는 결과에만 연연하는 감독은 절대 아닙니다. 우승컵이나 타이틀을 쥐고 돌아가는 게 다는 아니잖아요. 감독으로서 대본(Drehbuch)을 짜고 그 바탕 위에서 끊임없이 팀을 개선해 나가는 과정, 이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대본(Drehbuch)을 쓰는 감독이라! 축구를 미학이라 했다가 이제는 드라마로 표현. 자고로 미학 만큼 공연예술을 이해하는 데 핵심개념도 없다.
기자: 그런데 (승리를 위한) 전술과 (보기에 아름다운) 미학을 어떻게 결합시킬 수 있을까요? 뢰브: 사실 양자는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어요. 조직과 질서가 없는 경기문화란 개연성이 없어요. 공격하겠다고 죽어라 공격적 전략만 세우고 군형을 잡아주지 않으면 창조성 없는 혼란이 되어버립니다.
◆ 이쯤되면 뢰브가 얼마나 독일적 감성과 언어에 침잠해 있는지 알 수 있다. 축구에 문화(Kultur)란 단어를 쓰고 질서(Ordnung)와 창조성(Kreativitaet)을 연결시키는 감독이 뢰브 말고 또 있을까? 이 Ordnung이란 말 독일 문화에 뿌리깊이 박혀 있는 개념이다.
축구와 문화적 소통에 관하여
기자: 당신 이전의 감독들을 보면 일단 선발한 선수들은 최고 기량을 갖추었다고 보고 그들의 발을 맞추는데 신경을 많이 썼는데 당신은 선발한 이후에도 새로 많이 가르치더군요. 뢰브: 물론 우리가 선발한 사람들은 좋은 기량을 소유한 선수들이지요. 그러나 감독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단순히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이 실제로 깨달아 자발적으로 액션을 취하도록 해야합니다. ◆ 독일적 교육철학이다. 자신이 납득하여 의미를 발견한 일이라야 창조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는 건데, 독일학교의 학습원칙라고 할 수 있다. 학생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도록 하는 게 선생들의 과제라는 이야기인데, 거의 소크라테스식 교육방식이 아닌가. 한국 학생들이 독일에 가서 논문을 쓰거나 리포트를 쓸 때 가장 당혹스러운 것 중에 하나가 주제나 문제 자체를 스스로 발굴해야 한다는 점이다.
기자: 당신이 만일 어린 소년으로 돌아간다면 당신 선수들 중에 누구의 유니폼을 입고 축구를 하겠습니까? 뢰브: 이야기의 방향을 좀 바꾸지요. 사실 난 우리 선수들 중에 월드컵까지 와서 한 번도 시합에 선발되지 못하거나 잔디 밟는 시간이 매우 짧은데도 불구하고 열심히 연습하는 선수들을 보면 존경심을 금할 수 없어요. 정말 훌륭합니다. 그들이 여기까지 와서 연습을 할 때 머리에 무슨 생각이 들겠어요. 이게 6년 전에 내가 전혀 보지 못한 축구의 또 다른 측면이고 미학입니다. 우리가 엘로우 카드 받은 선수가 7명이나 되지만 전혀 걱정을 안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오고가 있고 타쉬 같은 훌륭한 선수가 대기하고 있으니 요긴하게 쓸 것입니다. 아마 굉장한 실력을 발휘 할 것입니다.
◆ 얼마나 인간적이고 지혜로운 감독인가? 인간에게는 남을 비난하고 싶은 엄청난 유혹이 있는데 이걸 이렇게 간단히 떨쳐내다니! 게다가 기용하지 못한 선수들에 대한 배려가 존경심에까지 이르고 있다나. 과장이 좀 있겠지만 십프로만 사실이라고 해도 훌륭한 자질을 갖춘 감독임에 틀림없다.
기자: 국가대표 감독을 그만두고 지역리가 감독으로 돌아가는 걸 상상할 수 있습니까? 국대 감독이야 말로 최고의 자리 아니겠습니까? 뢰브: 물론 국가대표 감독을 한다는 건 아주 특별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하나의 팀을 잡고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작업을 해보는 것은 내가 늘 소망하던 일입니다. 매일 함께 뛰며 모든 개개 선수들과 깊게 교류할 수 있잖아요. 그런대 국가대표는 그게 힘들어요.
◆ 명예와 스포트라이트보다 축구 자체에 매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는 하기 어려운 발언이다.
기자: 국대 감독을 계속 해야 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뢰브: 그건 일단 시합이 끝나고 생각할 문제입니다. 최소한 이 아프리카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지요. 기자: 그렇지만 벌써 언론에서 이 문제로 야단이잖아요. 뢰브: 언론이 뭐라고 하든 내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일단 월드컵이 끝나야 되고 그 다음에 계속 감독을 하자면 또 분명한 컨셉이 서야 되요. 이런 문제는 올리버 비어호프와 대화를 해 봐야 되겠네요.
◆ 이보다 솔직 겸손한 발언이 또 있을까? 호언장담에 미래를 마구 주무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라도나 같은 감독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그리고 비어호프로 말하면 이 사람은 독일 대표팀의 메니저로 머리가 가장 좋은 사람이다. 국가대표 출신 중에 학력이 가장 높은데 (경영학 석사) 독일어를 가장 세련되게 구사하는 축구맨이다. 그가 국대 선수 생활 할 때, 선수들 중에 접속법(Konjunktiv)을 정확하게 구사하는 유일한 선수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다. DFB가 대외적인 발언을 할 때 비어호프가 자주 나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신이 최상부의 자리에 있지만 조금 다른 영역의 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전문가에게 의뢰하겠다는 자세는 전문화된 독일사회의 특징이다.
DFB 메니저 비어호프, 독일 축구계의 지성
기자: 좋습니다. 신상적인 이야기는 그만 하지요. 그런데 시합이 끝난 뒤 밤에는 뭘 합니까? 어떻게 머리를 식힙니까? 와인이라도 한 잔 합니까? 뢰브: 책을 좀 읽습니다. 기자: 아니, 책읽을 여유가 있어요? 도대체 무슨 책을 읽는단 말입니까? 뢰브: 요즘 다니엘 실바의 탐정물을 읽어요. 사실 난 굉장히 구식입니다. 집에서 컴퓨터나 TV를 보는 일은 거의 없어요.
◆ 책읽는 감독. 축구 감독이 시합을 앞두고 탐정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닐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 상상력이나 논리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이번 월드컵에서 보여준 독일의 변신은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고는 이해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기자: TV도 안 본단 말이에요? 그래도 경기 비디오는 봐야 될 거 아닙니까? 뢰브: 그건 트레이너 회의 때 보면 되요. TV는 머리만 산란하게 하고 별 재미가 없어요. 기자: 그래도 당신 부인은 TV를 볼 텐데, 가령 세르비아전 때 당신이 물병을 내던지고 난리를 친 데 대해 뭐라고 하지 않던가요? 뢰브: 그런 건 이미 수도 없이 봤겠지요. 뭐, 집에서도 종종 있는 일이에요. 예컨대 정원에서 고기 구워먹다가 쏘시지 하나만 태워도 발생하는 일 아니겠어요 ㅋㅋㅋ. 그런 감정의 발로는 언제나 일어나잖아요. 심지어 시합에 이겨도 세부 장면 때문에 화를 낼 때가 있어요. ◆ 문명의 이기에 모든 걸 의존하지 않겠다는 고전적 사고의 소유자. 많은 축구팬들이 뢰브가 보여준 경기장 매너에 실망했겠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기 감정에 매우 솔직한 남자네. 그리고 여자들에 대해 마초 기질도 다분하고.
기자: 2003년에 친구랑 킬리만자로를 정복한 적이 있잖아요. 얼마 전에 듣기로 또 한 번의 모험을 준비하고 있다던데.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기획하는 의미에서 또 한 번 원정을 시도해 보지 그래요. 뢰브: 그런 산행은 긴 준비가 필요한데, 혹 계속 국가대표를 맡아야 한다면 가능한 일이 아닐 겁니다. 두고 보지요.
◆ 역시 미래를 쉽게 예단하지 않은 겸손이 돋보이는 지혜로운 태도.
총평: 뢰브 감독의 미학적 축구론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의미심장한 이야기다. 무엇보다 독일팀은 그동안 2차대전에서 연유하는 소위 '전차군단 Panzertruppe'이라는 반미학적 수식어를 늘 달고 다녔다. 더 나아가 이것은 딱딱하고 무겁고 오로지 목표지향적인 게르만 감성 일반을 대변하는 것으로 오도되어 왔다. 이런 맥락에서 뢰브의 축구미학은 -최소한 외부에서 보면- 독일의 문화적 감성에 일대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전조가 아닌가 싶다. 레나 현상이나 베티나 신드롬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
하여간 독일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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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 씨~~~ 선배 잘난 남자한테 컴플렉스 있는 거 확실하네.... 뢰브에 대해 이리도 잘 써 놓고 마지막에 꼭 이런 사진 넣어야 되나... 나를 포함한 한국여자들의 호감에 꽤 심장상해하던데 왜 다 멋진 사진만 있나 했네.... 몇 년 전 처음 티비로 본 뢰브는 바바리에 왠지 시집을 끼고 다닐 것 같은 스타일이라 축구 감독으로는 잘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시집은 아니라도 책은 가까이 하는 인간이었구나. 우쨌거나 저쨌거나 멋있는 남정네임은 틀림없네.(나는 예전엔 베켄바우어도 참 좋아했음)
자기보다 더 잘난 사람에게 컴플렉스 없는 사람이 어디 있노. 마지막 사진은 며칠 전에 브라질 신문에 크게 났던 것인데, 브라질이 탈락하기 전에 유명해진 사진. 그러니까 사람들이 브라질과 독일이 결승에서 맞붙지 않을까, 말들을 하니까 독일을 야유하기 위해 띄운 사진이지. 독일에서는 이걸 받아 또 "코구멍 파는 감독 Nasenbohrender Trainer"란 타이틀로 띄우고. 컴플렉스 때문이 아니고 최근에 뜬 사진 중에 가장 유명한 이미지야 ㅋㅋㅋ . 대신에 더 멋있는 사진 한 장 올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