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장문(德水張門)의 재실(齋室)
풍덕사(豊德祠)
국토(國土)가 남북(南北)으로 갈리어 우리 장문(張門)도 부득이 본향(本鄕)을 떠나온지 어언 반세기여, 또한 종친회(宗親會)를 발족한지 30여년, 그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는 선조님의 사당(祠堂)을 여기 평택 팽성(平澤 彭城) 분토(粉土)골 4세조 의랑공(議郞公) 묘역(墓域)에 웅장하게 건립하고 풍덕사(豊德祠)라 이름하였다.
의랑공(휘 : 우(羽)) 조(祖)는 시조 공숙공(恭肅公)의 증손(曾孫)이며 고려조(高麗朝)의 예부의랑(禮部議郞) 벼슬을 지내셨으나 나라가 바뀌자 고려 충신 72현(賢)과 함께 두분동(杜門洞)에 은거중 이조(李朝)에서는 정승(政丞)으로 하여금 여러차례 설득끝에 핵(?)아우님과 함께 입조하여 자헌대부(資憲大夫)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올랐고 평택지구에 정착하게 되어 참판공파(參判公派)의 근거지가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17년전인 1985년 제15회 정기총회 때 갈 수 없는 본향(本鄕) 하늘에 떠도는 누구하나 돌보지 못하는 시조님을 비롯한 선조님의 혼령을 모시기 위한 재실(齋室)을 여기 의랑공묘역에 건립하기로 결의하고 지금까지 우리 후손일동은 다같이 꾸준히 준비하여 이제사 그 위대한 정성이 찬란한 꽃을 피운 것이다.
여기 풍덕사(豊德祠)에는 시조 공숙공(恭肅公)을 비롯하여 열두 종파조(宗派祖)까지의 스물여덟분과 실전된 참판공(參判公)의 아드님 7세 어모장군(휘 : 희안)조와 참의공(參議公)의 아드님 7세(世) 도승지(휘 : 을보)조와 新豊府院君(신풍부원군) 계곡(谿谷, 휘 : 維)선생의 서른 한분을 봉안(奉安)하였다.
이제 우리 덕수장문(德水張門) 후손들은 여기 재역(齋域)을 우리의 본향 즉 풍덕(豊德)으로 하고 다 함께 뭉쳐서 연면(連綿)히 이어 내려온 전통(傳統)과 명예(名譽)를 더욱 빛낼 것이며 후대(後代)에 물려 주어야 할 것이다.
이제 서기 2002년 10월 20일 (음 9월 15일. 신유. 오시)에 덕수장문(德水張門) 후손 일동은 정성을 다하여 우리의 재실(齋室) 풍덕사(豊德祠)를 건립하였아오니 선조님이시여 부디 이곳에 안정하시어 후손들이 번성(繁盛)하도록 또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큰 힘과 경복(景福)을 내리시옵소서.
현 풍덕사(豊德)는 시조(始祖) 공숙공(恭肅公)을 비롯하여 의랑공(議郞公) 판윤공(判尹公) 도사공(都事公)의 삼대중시조(三代中始祖)와 12종파조(宗派祖) 그리고 공훈조(功勳祖)를 배향(配享) 하고 있다
위치 ㅣ 경기도 평택 시 팽성읍 노양리
풍덕사 찾아가는길
대중교통
경기도 평택역 (기차) 건너편에서 15번 낚시터행 버?? 이용하여 종점을 경유 비료공장앞에서 하차
자가용 이용
경부고속도로 이용시
안성IC 평택 행 (국도 38번) 로 하여 국도 45번 아산 당진행이용하여 고가도로에서 3KM 직진 석근5거리 (미군부대 후문표시판 있음)에서 계양리 우회전 :( 유의: 잘못하면 미군부대로 갈수있음)
덕수장씨재실 이정표 보임 우회전하여 4KM 직진 (전투경찰건물 지나고 ) 개성초교 이정표입구 에서 좌회전하여 1KM 직진후 비료공장 또는 오리농장 표시판 우회전 200M 에 의랑공 묘소 및 재실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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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제실도 있었어......음~~~우리도 뿌리는 있는거구나....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