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Mahler,Kindertotenlieder
Gustav Mahler, 1860∼1911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땅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말합니다. 자녀는 부모를 뒤로 하고 자신의 인생을 향해 나아가지만, 부모는 늘 울타리이자 껍질로 자녀의 뒤에 서 있는 존재여서일까요? 자녀를 먼저 저 세상에 보낸 부모의 회한이란 그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서양음악의 새 기원을 연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1860-1911) 역시 평생 그런 고통을 안고 산 아버지의 한 사람이었답니다.
보헤미아 지방에서 태어났지만 주로 오스트리아에서 음악활동을 했고, 유태인으로 태어났지만 가톨릭으로 개종했던 말러. 자신의 뿌리를 정할 수 없어 고민하며 세상 어디를 가든 이방인으로 살았던 작곡가였죠. 스무 살 무렵부터 프라하, 라이프치히, 빈, 뉴욕 등 국제적인 음악도시에서 지휘자로 명성을 쌓았고 당대 최고의 지휘자로 인정받았던 그는 작곡자의 원래 악보를 수정해서라도 청중에게 진정한 감동을 주는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 했던 완벽주의자였습니다. 자신에게나 남에게나 똑같이 엄격하고 철저해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지휘자였다고도 합니다.
전곡 연속듣기
Kindertotenlieder (Mahler)
Gewandhaus zu Leipzig
Tomas Netopil, conductor
Lena Belkina, Mezzosoprano
뤼케르트는 여섯 명의 아이들이 있었는데 1833년 크리스마스 다음 날인 12얼 26일 막내딸 루이제(1830년 6월 25일생)가 성홍열에 걸렸고 닷새 뒤인 12월 31일에 죽었다. 이어서 다섯 살이던 Ernst(1829년 1월 4일생) 역시 이 병에 걸려 1월 16일에 죽었다. 말러가 뤼케르트의 시에 공감을 느낀 것은 뤼케르트가 잃은 두 아이 중 하나인 Ernst가 1874년에 죽은 말러가 가장 사랑했던 동생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아버지 프리드리히 뤼케르트는 남매를 한꺼번에 잃은 슬픔과 고통에서 오랫동안 헤어나지 못하였고 죽을 때까지 그 아이들의 초상화를 가깝게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1834년 첫 6개월 간 그는 하루 3, 4편의 시를 써서 죽은 아이들을 추모했는데 그것이 425편으로 모였고 그 후 또 18편을 더해 모두 443편이 되었다.
말러는 이 중 제2편의 56번째의 시의 1. '문으로 들어올 때(Wenn zue Thur)', 2. '너의 엄마가(Wenn dein Mutterlein)', 69번째의 시 '이제는 다 알겠네(Nun seh'ich wohl)', 그리고 제4편의 47번째 시 '자주 생각한다(Oft denk'ich)', 83번째 시 '이 같은 날씨에(Lu diesem Wetter)', 115번째 시 '태양은 곧 떠오르고(Nun will Die Sonne)'등 다섯 편을 골라서 작곡했다. 말러는 이렇게 다섯 편의 시를 골라 시인의 아픔과 희한에 공감한 감동적인 가곡을 작곡하였다. 말러는 죽음이 상징하는 암흑을 구원을 상징하는 빛에 대비시켰다 다라서 그는 태양 촛불 별 등 빛을 표현하는 시구가 들어 있는 시만을 선택하고 있다 말러는 이 연가곡을 완성하고 3년 후에 그의 사랑하는 딸 마리아를 잃고 애통해하는 운명을 맞이한다.
<곡별 나눠 듣기>
Kathleen Ferrier sings Mahler's Kindertotenlieder.
제1곡: 이제 태양은 찬연히 떠오르네 Nun will die Sonn'so hell aufgeh'n
이 연가곡의 첫 번째 노래 ‘이제 태양은 저토록 찬란하게 떠오르려 하네’는 아이의 죽음을 겪은 직후의 참담한 심경을 절망적인 색채로 그리고 있지요. 오보에와 호른의 전주에 이어 넋이 나간 듯 감정이 실리지 않은 바리톤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이런 불행을 겪는 사람은 세상에서 나뿐이다”라는 가사에는 깊은 분노와 원망도 담겨 있습니다
84마디로 구성되어있다. 이 곡에서는 사랑하는 아이를 잃은 아버지가 처음으로 맞이하는 아침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가사는 4절로 되어 있다. 태양은 모든 것을 비추고 있는데 우리 집의 '작은 등불을 꺼져버렸다'라는 원시를 네 번 반복하는 구성에서 음악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고 각 절마다 미묘한 변형으로 표현한다. 오케스트라는 1, 3절은 목관악기가 주로 반주하고 2, 4절은 현과 하프가 주로 반주한다. 6도 진행이 인상적인 각 절 끝 음행은 교향곡 5번 1악장에서도 나타난다고 한다.
이 곡은 제5곡 「이 같은 날씨에, 몰아치는 폭풍우 속에는」와 연관시켜 감상하면 그 의미가 선명해질 것이다. 아이의 장례를 폭풍우가 내리는 날씨 속에서 치르고 난 뒤의 다음 날 맑게 갠 아침의 풍경을 상상해 볼 수 있다. 태양은 여전히 세상을 박게 배추고 있는데 화자(話者)인 아버지의 '작은 등불'은 꺼져버렸다는 것은 절묘한 표현이다.
제2곡: 이제야 알겠네, 왜 그리도 어둡게 타고 있었는가를 「Nun seh'ich wohl, warum so dunkle Flammen」
두 번째 곡 ‘왜 그처럼 어두운 눈길을 보냈는지 이젠 알겠네’에서 아버지는 자식들의 마지막 모습을 더없이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렇게 회상합니다. ‘너희는 눈빛으로 아빠에게 말하려 했던 거였구나. 아빠 곁을 떠나고 싶지 않지만 운명이 너희를 데려간다고.’ 말러 [5번 교향곡] ‘아다지에토’ 악장 테마와의 선명한 연관성을 보여주는 이 곡에서 말러는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주곡 초입에 등장하는 ‘트리스탄 코드’를 의도적으로 사용했습니다. ‘아이들은 멀리 떠나지만 그들의 눈빛은 밤하늘의 별빛으로 영원히 살아있다’는 구절에서 도드라지는 이 화성은 ‘죽음을 통한 사랑의 영원한 완성’을 암시하는 장치입니다.
74마디로 구성되어 있다. 아이가 질병으로 아프면서 뜨거워진 눈길이 본향으로 돌아갈 것임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가사로 노래는 시작된다. 노래의 전주는 c 단조로 시작되는데 이 부분을 장조로 바꿔보면 교향곡 5번의 '아다지에토'와 유사한 느낌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노래의 시작 부분은 교향곡 4번 3악장 또는 『대지의 노래』의 제1곡을 연상시키는 느낌이다.
노래의 백미는 아버지의 독백으로 노래되는 '지금은 눈빛이기만 하치만 밤마다 아버지에게 별이 되어 올 것입니다'라는 부분이다. 죽은 아이가 밤마다 별이 되어 올 것이라는 생각을 통해 얼마나 아버지가 아이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지 느낄 수 있다.
제3곡: 네 엄마가 들어설 때 「Wenn dein M tterlein tritt zur T r herein」
그러나 듣는 이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은 여기에 이어지는 세 번째 곡 ‘네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설 때면’의 전반부입니다. “네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설 때면/ 그래서 내가 고개를 돌려 네 엄마를 바라볼 때면/ 엄마 얼굴을 먼저 쳐다보는 대신/ 난 네 귀여운 얼굴이 나타날 것 같은/ 그 곁, 문지방 뒤부터 보게 되는구나/ 늘 그랬듯 기쁨이 넘치는 밝은 얼굴로/ 네가 들어설 것 같아서 말이다, 내 귀여운 딸아.”
70마디로 이루어져 있다. 엄마가 문으로 들어설 때 항상 같이 있던 아이가 있었던 것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탄식하는 듯한 애절함이다. 오케스트라에서도 바이올린이 빠져있다. 잉글리쉬 혼과 오보에가 활약을 많이 한다. 이제는 가고 없어진 아이가 평상대로 뛰어 놀고 있는 환영을 보는 가사 내용이다. '아버지의 분신이며, 기쁨이 빛이 너무나 빨리 꺼져 벼렸네' 라고 탄식하는 끝 부분에서 비통함은 절정에 달한다. 아이가 아버지에게는 자신의 분신이며, 기쁨의 빛이라고 표현했다.
제4곡: 얼마나 자주 나는 아이들이 잠깐 산책 나갔다고 생각하는지
「Oft denk'ich, sie sind nur ausgegangen」
세 번째 곡이 그 일상적인 현실감 때문에 슬픔을 더욱 강렬하게 만든다면, 네 번째 노래 ‘때로 난 아이들이 그저 놀러 나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아이의 죽음이 현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간절한 소망과 자기기만을 담고 있어 또 다른 애달픔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음악적으로 보면 이 곡은 다섯 노래 가운데 가장 분위기가 밝고 멜로디가 아늑해, 고통에 지친 마음에 따뜻한 위로의 손길을 건네는 듯합니다.
71마디로 이루어져 있다. 아이는 이미 죽었지만 아버지는 아직도 단지 외출했을 뿐이라고 자위해보지만 결국은 아이는 자기보다 단지 먼저 떠났을 뿐이고 곧 자기도 아이가 있는 곳으로 따라갈 것이라는 내용이다. 햇빛 속으로! 날씨도 좋은 저 언덕 위로!
제5곡: 이 같은 날씨에, 몰아치는 폭풍우 속에는
「In diesem Wetter, in diesem Braus」
‘이런 날씨에, 이렇게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날에’로 시작하는 마지막 곡은 다시 격정적인 분위기로 돌아옵니다. 험한 날씨에 밖으로 나가는 아이들을 말리지 못한 아버지의 뼈저린 회한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노래의 후반부로 가면 음악은 다시 자장가처럼 다정한 위로로 울립니다.
“이제 아이들은 마치 엄마 집에 있는 것처럼 편히 쉬고 있네.
폭풍우를 두려워할 일도 이젠 없지.
하느님의 손길이 지켜주시는 가운데 그 애들은 엄마 곁에서처럼 쉬고 있구나.”
<죽음의 참담함, 말러의 염세적 세계관을 강하게 드러내는 연가곡이다.>
‘동병상련’이라는 말처럼, 똑같은 고통을 겪어본 사람은 지금 그 고통을 겪는 사람을 진정으로 위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말러의 이 연가곡은 더욱 큰 호소력을 지닙니다. 우리는 보통 한식과 추석 때 조상의 묘소를 찾고 세상 떠난 이들을 기억하지만, 서양에서는 죽은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달을 11월로 정해두었습니다. 스산한 바람과 닥쳐오는 추위에 몸을 떨 때 차가운 땅 속에 누운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욱 애절하게 떠오르기 때문일까요?
139마디로 이루어져 있다. 가사는 5절로 구성되어 있는데 d 단조의 앞 4절은 '불안하고 고뇌에 가득 찬 표현으로' 심한 폭풍우 속에서 아버지가 이이들을 떠나보내는 고통을 표현하고 뒤의 5절은 모든 고통을 떠나 아이들이 하늘나라에서 가질 안식과 평화를 기원하고 확신하는 듯 D 장조의 자장가가 노래된다. 마치 레퀴엠 같은 느낌을 갖게 하는 마지막 5절의 잔잔한 흔들림은 요람을 흔드는 손길같이 부드럽고 꿈꾸듯 섬세하고 아름답다. 『어린이의 요술 뿔피리』에서 '아름다움 트럼펫 소리 들리는 곳'과 더불어 말러 가곡에서 본인이 특히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곡이다.
작곡 시기가 차이가 있어서 그런지 앞 제4곡에서는 햇빛이 가득한 하늘나라를 생각하다가 갑자기 폭풍우가 스산한 날씨에 진해되는 장례식의 비통한 심정을 노래하는 것으로 분위기가 급변했다.
앞 부분의 4절에서는 이런 심한 폭풍우 속에서는 평상시 같다면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겠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곡이 진행되지만 5절에서는 현실적으로 이미 죽은 아이들이 이러한 5절에서는 '이 같은 폭풍우 속에서라도 저 아이들은 엄마의 집에서처럼 자고 있을 것'이라고 기원하는 평화롭고 부드러운 자장가로 노래된다. 이 전환은 연가곡을 마무리짓는 끝 곡에 잘 어울리는 놀라운 효과를 갖는다.
이 가곡집의 초연은 1905년 1월 29일에 말러의 지휘로 빈에서 바리톤 프리드리히 바이데만(Friedrich Weidermann)이 독창과 빈 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이루어졌다. 말러는 이 가곡집을 바리톤 독창으로 연주되기를 바랐는데 그것은 바리톤이 아버지의 절제된 고통받는 심정을 나타내는데 적절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의 생전에도 콘트랄토나 소프라노가 노래하기도 했다.
말러는 이 가곡집 첫 머리에 "이 다섯 곡은 나눠질 수 없는 완전한 연가곡임으로 중단 없이 계속해서 연주되어야 한다."라는 주의를 써놓았다.
아이를 잃은 두 아버지 - 시인 뤼케르트와 작곡가 말러
말러는 성격이 어둡고 괴팍하기로도 유명했는데요, 이는 쇼펜하우어의 염세철학에서 받은 영향이기도 했지만 어린 시절에 형제들의 죽음을 경험하며 얻은 충격 때문이라고도 하는군요. 오래 독신을 고수했던 말러는 마흔 두 살에 스무 살 연하인 알마 쉰들러와 결혼했는데, 그 한 해 전인 1901년에 그는 프리드리히 뤼케르트(Friedrich Rueckert, 1788-1866)가 쓴 시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를 작곡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섯 곡으로 이루어진 이 연가곡은 [대지의 노래],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 등과 더불어 말러의 독특한 가곡 세계를 보여주는 걸작입니다.
아름다운 서정시들을 남긴 독일 시인 뤼케르트는 뛰어난 예술적 재능과 학식으로 동양의 시편들을 번역하고 개작해 유럽에 알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두 아이를 잃고 깊은 상심 속에 살다 간 아버지이기도 했지요. 그 쓰라린 심정을 기록한 시 몇 편을 읽은 말러는 마음이 움직여, 어둡고 침울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주는 뤼케르트 시에 어울리게 반음계 형식을 사용한 연가곡을 같은 제목으로 발표했습니다.
<죽음에 대한 슬픔과 따스한 위로가 함께 공존한다.>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를 작곡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말러에겐 자식을 잃게 되리라는 불안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결혼도 하기 전이었으니까요. 1곡 ‘이제 태양은 저토록 찬란하게 떠오르려 하네 Nun will die Sonn' so hell aufgehen’와 3곡 ‘네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설 때면Wenn dein Muetterlein’, 그리고 4곡 ‘때로 난 아이들이 그저 놀러나간 거라고 생각하지Oft denk' ich, sie sind nur ausgegangen’를 말러는 1901년 여름에 작곡했습니다. 이 해에 말러는 알마를 만나 이듬해 결혼했고, 몇 년간 각별히 왕성한 창작시기를 보냈습니다. 1901년부터 1906년 사이에 교향곡 4번, 3번, 5번 6번이 차례로 초연되었죠
알마와 결혼한 그 해에 말러는 사랑스러운 첫 딸 안나 마리아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교향곡 5번]이 초연된 1904년 여름에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의 2곡 ‘왜 그처럼 어두운 눈길을 보냈는지 이젠 알겠네 Nun sehe ich wohl, warum so dunkle Flammen’와 5곡 ‘이런 날씨에 In diesem wetter'를 작곡해 이 연가곡을 완성했죠. 이 해에 둘째 딸 안나 유스티나가 태어났죠. 연가곡의 초연은 이듬해인 1905년 1월 29일, 말러 자신이 궁정 오페라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빈에서 이루어졌고, 바리톤 프리드리히 바이데만이 전곡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큰 딸 안나 마리아는 아버지 말러가 베를린, 로마, 빈, 상트 페테르부르크, 헬싱키 등 온 유럽을 순회하며 연주활동을 하던 1907년 여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자 말러는 마치 자신이 작곡했던 연가곡이 딸의 죽음을 불러온 것 같아 심한 자책감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원래 심장이 약했던 말러는 이때 결정적으로 심장병을 얻어 위기를 겪게 됩니다. 이때부터 말러는 작곡할 때 ‘죽음’이라는 주제를 결코 벗어나지 못했고, 이 죽음은 고통, 죄, 피할 수 없는 상황 등의 연상으로 이어져 그의 예술세계를 지배했습니다.
첫댓글 침통하고 애절하네요
말러의 곡들이 대체적으로 인간의 생애나 우주질서와 변화에 대한 과감한 표현이 많아 무척 부담스럽기도합니다.즐거움도 있지만, 항상 부정적인 면을 동반함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말러에게는 감상이 어렵지만 계속 빠져들게 되는 이유이기도인 것 같습니다. Tears In Heav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