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인생길을 걸어갈 때(겔 34장 11-15절) 240519 주일설교
G이 하시는 일 이해할수 없을 때 많으나 G의 일 오묘하며 옳고 선하심을 믿어야 한다.
“흐리고 캄캄한 인생길” 걸을 때 어디로 어떻게 할지, 뭘 할지 모를 때. 목자의 인도 받자.
“섭리” 삼위일체 G이 지으신 모든 세계를 그가 계획하신 목적에 이르도록 주권과 사랑과 지혜와 권능과 공의로 계속 보존 다스리시고 인도하시는 행위. 섭리는 성경에 없으나 G의 섭리 믿는 신앙은 성경적. 중국 강의에, ‘섭리’ 단어 통역 못함. 중국인에게 없는 단어.
L를 ‘목자’ 은유 성경에 등장(사 44:28; 렘 2:8; 10:21; 23:1~6; 25:34~38; 미 5:4~5; 슥 11:4~17) 왕을 목자로(삼하 5:2, 대상 11:2 겔 37:24) 고대 문서 ‘에타나 전설’(Etana legend) 고대 바벨론 역본과 함무라비 앗수르와 신바벨론 계승자에 대해 왕 목자 묘사.
목자의 인도를 받는다.
사람은 세상이 어떻게 운행되며 어떤 원리에 의해 다스려지는가에 대해 여러 답들 제시.
그 중 ‘이신론’ 신이 세상 창조 했으나 창조 후 세상을 더 이상 상관도 관심도 없고 세상과 멀리 떨어져 세상은 어떻게 운행될까? G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세상에 부여하신 원리에 의해 운행. 세상 다스리는 신이 있지 않고 원리가 곧 신이라서 이신론이다. 이신론의 ‘이’자는 둘 이가 아니라 이치 이(理)다. 원리에 의해 다스려지지 신이 세상을 다스리지 않는다. 이신론은 세상 자체의 원리에 의해 돌아가기에 G이 설 자리가 없다.
세상이 어떻게 운행되며 어떤 원리에 의해 다스려지는가? 숙명론은 세상만사 세상자체의 인과율, 원인과 결과의 법칙에 의해 다 결정돼 있다는 사고. 숙명론이 예정론으로 생각한다. 둘은 전혀 다르다. 예정론은 사람들이 구원받고 안받고는 G의 절대 주권에 있다. 예정론. 숙명론은 세상의 인과율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 G이 없다. 예정론은 G의 절대주권.
또 하나 우연론.은 세상이 어떤 일정한 목표나 방향으로 나가지 않고 일정한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것도 아닌 그저 순간순간의 우연에 의해 이끌려 진다고 주장.
그 밖에도 이 세상은 악이 지배하거나 악신에 의해 다스려진다고 보는 악지배론도 있다.
4가지 사고들 다르지만 공통점은 다같이 G이 간섭할 여지가 없다. G이 설 자리가 없다. 세상의 원리, 자체의 인과율, 우연, 악이 지배하는 세상이라는 사고들에는 G자리가 없다. 주장들 거짓 잘못 성경 4가지 이론들 일시에 거부하는 섭리신앙을 가르친다.
당시 IS은 여러 거짓 목자로 인해 고통. 2절 하반절 “목자들이 양의 무리를 먹이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냐” 이들이 사명을 다하지 않았음 수사학적으로 지적. 즉 이들이 양들을 먹여야 하는데, 양을 먹은 것(2절) 양들 위해서보다 자신들을 위해 사역. 4절 거짓 목자들은 자신들을 먹일 뿐, 마땅히 돌볼 양들을 돌보지 않고. 4절 5가지 설명, 16절과 대조적 구조.
거짓 목자들이 한 일(4절)
1) 연약한 자를(나헬레트) 강하게(하자크) 하지 않았고,
2) 병든 자를(하홀라) 고치지(라파) 않았고,
3) 상한 자를(니세베레트) 싸매어(하바쉬) 주지 않았고,
4) 쫓긴 자를(니다하트) 돌아오게(슈브) 않았으며,
5) 잃어버린 자를(오베데트) 찾지(바카쉬) 않았다.
참 목자가 하실 일(16절)
5') 잃어버린 자를(오베데트) 내가 찾으며(바카쉬),
4') 쫓긴 자를(니다하트) 내가 돌아오게 하며(슈브),
3') 상한 자를(니세베레트) 내가 싸매어 주며(하바쉬),
2') 병든 자를(하홀라),
1') 내가 강하게 한다(하자크).
겔 전반부(1~24장) 심판의 메시지와 열방 심판(25~32장) 메시지, 33장부터 겔의 회복 예언. 33장은 3장과 파수꾼. 후반부(34~48장) 실제적 회복 34장 거짓 목자와 참 목자 비교.
겔 34~37장 역할 겔 신학 중요, ‘겔의 복음’ 회복 메시지. 겔의 회복은 참된 목자를 통해.
에스겔이 IS의 회복은
1) 참 목자를 통해(34장),
2) 모든 대적들을 심판하심으로써(35~36:15),
3) 백성들을 회복케 하심으로써(36:16~38; 37:15~28),
4) G의 영을 통해(37:1~14) 근본적으로 일어날 것을 말씀하신다.
목자 없는 IS은 “흐리고 캄캄한 날”들을 보내다(12절) G 목자 없는 양들에게 친히 목자(15절) ‘내 양’을 찾으시는 분 양들에 대해 관심과 사랑(11절) 구원하시며(12절) 그들을 돌아보시고(13절) 먹이신다(14~15절)
12~14절 양 찾으시는 L 목자의 사역을 대략 8가지 동사. 목자 1) 양떼를 찾고(바카르) 2) 그들을 건지며(나찰, 12절) 3)만민 중에 끌어내(야차) 4) 열방 중에서 모으며(카바츠) 5) 그들의 땅으로 데려가고(보우) 6) 그들을 먹이며(라아) 좋은 꼴로 먹이고(라아) 그들은 살진 꼴을 먹으며, 7) 그들을 높은 산 위에 두실 것(하야), 8) 그들은 좋은 우리에 누울 것(라바츠) 즉 구원, 인도와 보호, 먹이는 사역을 제대로 하는 참 목자의 사역을 감당.
L의 목자 상은 겔 11장 17절과 렘 23장 3절 시 23편에 미가 4장 6~8절 잘 나타난다.
섭리신앙의 고백
느 9장 6절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지으시기만 하고 너희들이 알사서 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계속 살아있는 것과 보전되는 것은 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것이다.
히 1장 3절 만물을 붙드는 주님, 행 17장 28절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고.
G은 세상 만물을 살아 움직이시고 어떻게 돌아감을 세상에 맡기지 않으시고 간섭. 시 103편 19절 “L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
대상 29장 12절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G은 한사람 한사람에 대해 내버려두는 G이 아니시다.
바울은 당대의 숙명론자들과 같은 스토아 학파들과 우연론자라 할 에피쿠르스 학파사람들이 우글거리는 아테네에서 정면으로 맞서 섭리의 G을 증언. 행 17장 24절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G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이라고 했으며, 25절 뒤에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26절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과 흥망성쇠가 G의 손에 있다.
G은 세상만물을 계획하신 목표에 이르도록 주권적 사랑과 지혜 능력 공의로 계속 보존하시고 다스리며 인도하심을 믿고 고백하는 것이 섭리신앙이다.
X 인들 섭리신앙과 다른 언어와 행동 삼가 예; ‘팔자소관’ 예수 믿어도 별 생각없는데 할 말 아니라 숙명론자들이 사용할 말. 숙명론자가 아닌 우리가 쓸 말이 아니다. 왜 팔자 따라 사는 사람들 아니다. G 선하신 뜻과 계획에 따르는 사람. ‘팔자소관’은 말하면 안된다.
또 ‘재수 있다, 없다’ ‘운 좋았다, 나빴다’도 사용하면 안된다. 그런 말들은 우연론자들이 하는 말로 우연론자가 될 수 없는 사용할수 없다. 섭리신앙 가진 X인에게 ‘재수’니 ‘우연’은 모순. 재수가 좋아 존재하거나 운 나빠서 사는 것 아님. G의 은혜와 섭리에 살고 지금 살고 있어 X인들 경우에 할 유일한 말 “G의 은혜에 감사” 모든 것 G의 은혜 감사다.
상당수 우연론자들 쾌락주의 X인들의 섭리 신앙과 조화할수 없다. 사람의 목표도 삶의 법칙도 없는 사람 쾌락 추구가 현명할지 몰라 에피쿠르스 학파 중 많은 이들 쾌락주의 G 계획하신 영원히 복된 삶과 G의 인도하심 믿는 신앙인 무절제한 쾌락 추구 배제 영원한 복락의 삶 향한 사람들. 그것이 약속된 삶. 무당 불러 푸닥거리로 악귀 내쫓겠다는 행위 말할 것 없고, 점, 토정비결 결단코 X인들 할 일 신앙의 탈 썼지만 점이나 다름없는 예언기도 받겠다고 쫓아다니는 일 G 모독 삶 온전히 G 섭리에 맡기지 못하는 불신앙적 행위.
섭리신앙은 언제 어디서 무슨일이든지, 어떤 상황이든지, 내뜻대로 되든 안되든, 장래일 모르든 언제나 옳으시고 선하신 G 흔들리지 않은 신뢰 평안함 승리하는 삶 기독교 섭리신앙.G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 4가지 – 이수영 목사(새문안교회)
G이 섭리 중에 가장 중요한 것 G의 인도. 우리의 삶을 G이 목적하시는 곳으로 인도. G이 인도하시는 몇가지 방법 신학자들은 G이 인도 방법 4가지. 허락, 방해, 방향, 결정이다.1. 허락 G께서 어떤 때는 우리 일을 허락하심 인도. 가는 길과 하는 일이 G이 뜻하신 바와 일치할 때 그대로 내버려 두신다. G이 원하시는 길로 허락 G의 인도 방법 안다면 만사가 내 원대로 형통할때 내가 잘한다고 교만하지 않고 G이 허락으로 그런 것 겸손과 모든 것 G께 감사하는 믿음의 자세를 가진다. G이 허락 인도하심을 모르면, 잘되면 자기가 잘나고 잘해서 그렇다고 교만하기 쉽다. 사람은 교만하면 G을 잊어서 G은 교만을 싫어하신다.
2. 방해 G은 어떤 때는 하고자 하는 일을 막으시고 우리를 G이 원하시는 길로 인도한다. 잘 생각해 보니 제일 좋고 기도해도 좋은 것 같아도 G이 막으신다. 이렇게, 저렇게 해도 안된다. 할 수 없이 갈 수 있는 다른 길로 가면 된다. G이 다 막으셔서 G이 원하시는 길로 가도록 모는 것이다. 방해도 G이 인도하시는 방법이다.
예: 바울이 아시아에서 선교하려고 애 쓸데 길이 막혔다. 성령께서 길을 막았다. 마게도니아 사람이 환상중에 와서 도와달라는 것 보고 성령의 지시하심으로 깨닫고 마게도니아로 가서 유럽 전체가 복음화되는 유럽선교. G이 그것을 원하심. G은 그것을 위해 다른 데로 가는 길을 막으셨다. G의 인도방법을 이해한다면 무엇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좌절 원망 G을 의심 버리지 앓고, G의 뜻이 아닌가 G의 뜻 생각하고 내가 갈 길 보여달라고 기도, 응답 G이 원하시는 길로 형통의 역사. G의 인도방법을 알면 실패해도 낙심 않는다.
3. 방향 어떤 때는 G이 기뻐하셔서 허락하시고 좋지 못한 일임에도 막지 않으시고 내버려 두셔서 결과를 G이 원하시는 데로 방향을 바꾸셔서 G이 원하시는 더 큰 일 이루는 방법으로 인도. 방향 바꾸는 것. 예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팔았다. G이 좋은 허락하신 것 아니다. 나쁜 일임에도 G이 막지 않으셨다. 요셉이 애굽 총리로 7년간 기근에 잘 대비 애굽의 백성 살리고 인근의 백성들도 아버지와 집안 형제 살리는 역사. G은 이렇게도 인도하신다.
G의 인도방법 이해할 때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부조리와 악 때문에 분노 G이 계신지 안 계신지 의심 않는다. 도대체 왜 G은 악당을 그냥 두실까? G은 저렇게 착한 사람이 고생시키실까? 세상의 악과 불의와 부조리 때문에 G 원망하고 의심하지만 G의 섭리를 이해한다면 이 세상에 난무하는 악과 부조리에도 불구하고 기다릴 수 있다. G이 더 크신 선을 이루려 하심을 참고 기다림. 섭리 신앙이 없으면 세상이 조금만 어둡고 어지럽고 잘못되면 금방 불평, 원망, 의심. 세상이 뒤숭숭해도 G 믿고 기다리는 것은 G의 인도를 이해함.
4. 결정 G의 목적. 구원하시려는 G의 뜻에서 자유 주셨다. 신앙 양심 가지고 판단 자유롭게 행동. 그 자유로운 행동에도 구원하시려는 G의 결정은 변함 없다. G의 인도 방법을 받아들이면 자유로울 수 있다. J안에 자유함. 진리가 너희들을 자유케 하리라. 다는 아니지만 늦게 예수 믿은 사람을 보면 예수 믿기 전 제 멋대로 살다 예수 믿고 작은것 하나도 자기 맘대로 못한다. 어떤 넥타이 맬까? 점심은 뭘 먹을까 같은 것도 반드시 기도하고 묻는다.
그렇게 할 것 없다. 구원과 상관없는 것들은 맘대로 하라. G이 우리에게 자유 주셨다. 우리 맘대로 하지만 구원에 관계 없다. G의 구원은 이루어졌고 은혜 안에서 자유 주셨다. 서울서 부산가는 기차 안에서 앞으로 가든 뒤로 가든 기차는 부산 간다. 기차 반대편 좌석에 앉아도 간다. G이 우리를 천국 가는 기차를 태워주셨다. 기차 안에서 맘대로 자유롭게 다니라. 기차 안에서 맘대로 왔다갔다 해도 내리라고 바깥으로 던지시는 G이 아니시다.
지금까지 잘되던 일이 갑자기 안될 때 G의 인도 섭리 믿으면 어떤 일을 바라거나 행할 때라도 그 일 때문에 조바심 불안해 마라. 일이 뜻대로 안된다고 낙심 죄절 원망 않고 인내하라. 주위에 옳지 못한 일에도 G의 존재와 능력을 의심 비난 말고 더 큰 G의 뜻 드러나기를 기다리라. 섭리신앙은 지금 내가 이해할 수 없더라도 만사는 G께 달려있음을 믿으라.
“X인 사건들의 이해되지 않음을 견딤” 정의. X인 사건들이 이해되지 않아도 견딜수 있다.
나에게 딸이 셋, 48세에 얻은 늦둥이 아들. 아들이 어렸을 때 즐겨하던 장난은 차 타면 차창 열고 닫는 버튼 누르며 장난. 차만 타면 어느 날 보니 장난 치다 창 열고 몸이 절반 나가 그 다음부터 아들이 장난치기 전 운전석에 잠금버튼 누르면 아들이 버튼 만져도 창이 꼼짝 않는다. 아들은 버튼 눌러도 창이 움직이지 않자 나중에 짜증 나 버튼을 두들기고 운다. 그것 보며 섭리신앙을 생각했다.
살다보면 지금까지 잘되던 일이 갑자기 안될 때 갑자기 왜 그런지 이해 할수 없을 때 잘 움직이든 창이 갑자기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들을 보호하려는 아버지의 사랑. 그냥 내버려 두면 무슨 화를 당할지 몰라 아들을 보호하려 만사형통하면 교만해져 G을 잊고 브레이크 고장 난 기관차 처럼 무슨 사고 날지 모르기에 미리 G이 브레이크를 거신다.
그럴 때 G의 뜻과 다르게 살아온 것 아닌가, 내가 지금 G이 기뻐하시는 방법 아닌가, G이 나를 사랑하시기에 뭔가 손 쓰셨나? 생각이 섭리신앙. 역경에서 G께 돌아서 G 생각해야 만사형통하면 G 잊는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 G 잊지 않도록 신앙의 길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도록 G이 붙드심. 사업이 잘 안되거나, 갑자기 집안의 우환이 겹치고, 뜻하지 않는 일 일어나 속상한 분들 G의 사랑의 손길과 G 선한 계획 있음 믿고 위로받고 힘내기 바란다.
칼뱅은 “번영할 때 감사한 마음을, 역경 속에서 인내를, 미래에 관해서는 염려로 부터의 놀라운 자유를 얻는 것”이 섭리신앙의 요점. 참 작절하다. 번영 할 때 자기가 잘나서 그런 줄 G이 은혜 믿고 감사, 역경 중 G의 더 크고 좋은 계획 있음 믿고 뜻이 나타나도록 기다리고 인내하고, 미래는 알지 못하는 세상이기에 불안 미래의 염려로 부터 자유를 얻는 것.
벧전 5장 7절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삶은 G이 돌보신다. 돌보시지 않는 것 같아도 돌보신다. 염려 말고 모든 것을 G께 맡기고 늘 순종과 평안함 가운데 살아야 하고 그렇게 우리를 해주는 것이 섭리신앙이다.
전 11장 5절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G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알지 못해도 G은 만사를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가신다.
사 55장 8절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L의 말씀이니라” 본문에서 바울은 “깊도다 G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바울은 G의 길은 우리의 길과 다르다. G의 판단은 우리 생각으로 알 수 없지만 G은 모든 일을 선하고 아름답게 이루심을 믿으라.
신 32장 4절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G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라고 말한다.
1997년 대장암 수술 1년 쉬면서 항암치료. 대장암 판정 "왜 접니까" 마음. 이때까지 G이 하지 말라시는 것 안하고 반듯하게 살았는데 왜? 신대 교수생활 아쉬움 신학대 교수가 기도하고 성경 볼 시간 없다. 너무 가르칠 과목과 강의 시간 주당 25시간 3시간 이상 잘수 없을 정도. 교수 중 어떤 분 설교하다 "죄 없이 감옥 갔으면 좋겠다" 감옥 가면 시간이 많아서 기도하고 성경보겠다. 나도 같은 심정 암걸리고 1년동안 투병 시간이 남았다. 눈뜨면 기도하고 성경보고 기도하고 그 자리에서 잠들고 깨면 기도하고 성경 읽었다. 기도하고 성경읽기 위해 감옥가는 것이 이루어졌다.
그러다 큰 은혜 받았다. G이 암에 걸리게 하신 이유. 암을 통해 내 속에 숨은 영적 암을 발견. 당시 동료 교수 중 불편한 교수를 용서해야 하는데 용서 못하고 미워했다. 학생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며 동료를 미워함이 내 속에 숨은 것 발견. 얼마나 울었는지 눈뜨는 첫 시간에 그분위해 기도.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 어떻게 하겠는가 했던 것이 가능해졌다. 내힘으로 안되는데 셩령님이 원수를 사랑하게 해주고, 가장 미워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게 하는 은혜를 체험하니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운지 모른다. 놀라운 은혜였다.
그 후 “암은 아무나 걸리지 않고, 진짜 G이 사랑하는 사람이 걸리며, 암은 은혜받는 기회” 저는 암 안걸렸으면 큰일날 뻔. 그럼 영적 암 숨기고 목사로 살았을 것. 암이 목회에도 도움. 목회자로 교인 중 암 걸린 사람 많다. 수술 전 암 걸려 불안한 교인에게 위로할 말 별로 없다. 저도 몇 년 전 암 수술 했다며 깊은 은혜 받을 기회 감사하라. G이 사랑하는 줄 알라고 하면 사색이 된 교인들의 입이 벌어지고 화색이 돌며 할렐루야 하며 수술실에 들어간다. 그런 분들을 위로하고 목회하라고 암이라는 훈련을 시켜주신 것을 깨닫게 된다.
뒤돌아보면 삶은 다 G 계획과 인도하신 삶. 삶의 어느 한순간도 G이 한눈팔거나 내버려두신 순간 없다. 생각을 뛰어넘으신 G이 우리를 항상 선한 길로 인도하심을 굳게 믿으라. 그래서 늘 감사와 기쁨과 순종으로 가득한 삶 사시는 여러분 되기를.
다윗은 시 23편에 L는 나의 목자시고, 나는 그의 양이라고 고백. 광야의 양과 목자의 관계는 한마디로 ‘생명의 관계’ 광야에서 양은 목자 없이 생존이 불가능하다. 광야는 부족함이 너무 많은 지역, 양은 상대적으로 그 부족함을 채울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유대 광야 지중해의 습한 바람 서쪽은 숲, 동쪽에 사막은 더운 바람 지속적 광야 겨울에 서쪽에 불어오는 바람이 산지에 부딪힌 뒤 이슬이 광야에 내려 초지, 잠시 내린 비로 푸른 풀밭, 건기 광야에서 양들에게 목자 없다면 생존불가.
양은 머리가 나빠 집을 찾아오지 못해 목자의 인도 필수. 양은 눈이 나쁘다. 양은 색맹. 광야에 풀 색깔과 흙 색깔 구분 힘들다. 푸른 풀도 습한 지역 위주로만 드문드문 풀밭 형성 양은 색 식별 못하고 멀리 내다 볼 수 없다. 풀밭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어 양에게 목자는 생존에 필요. 목자는 멀리 바라보고 양들 인도하고 풀 났던 자리를 기억해 인도하기 때문. 광야의 샘은 대부분 골짜기에. 비는 광야 아닌 산 위에 내리지만 빗물이 동쪽 광야로 흘러간다. 기드론 시내에서 계곡은 기드론 골짜기 이루고, 베들레헴 근처 지날 때 200m 넘는 깊은 협곡을 이룬다. 샘물도 이런 계곡에 위치한다.
그러나 이곳에는 물이 있지만 들짐승들도 숨어 양들을 기다리는데 양은 들짐승 대항할 뾰쪽한 뿔, 날카로운 이, 강력한 앞뒷발이 없어 육식 동물에게 최상의 먹잇감이다. 양이 지구상에 가장 많은 짐승 중 하나가 된 것은 그들에게 항상 목자가 곁에 있기 때문이다.
양의 목자는 멀리 견제할 수 있는 지팡이와 근접에 사용할 짧은 막대기를 가지고 들짐승들을 방어. 지팡이와 막대기 다윗 물맷돌 목동에게 유용한 양치는 도구. 양이 다른 길로 갈 때, 목자가 돌로 양 옆에 던져 바로 가 목자가 잘못 던지면 큰일. 양 상하게 할 수 있다.
아무리 푸른 풀밭도 방심은 금물, 광야에 날카로운 가시들이 많다. 광야 그늘 역할 싯딤나무나 로뎀나무는 가시가 있다. 나무의 잎사귀 따먹다 얼굴과 머리 등이 찔려서 양들이 양 우리에서 목자 기름으로 문 앞에 양 상처 치료. 기름. 목자 먹을 것 마실 것 연약함 치료.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L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원어, “L가 나의 목자 되실 때 그의 선함(토브)과 인자함(헤세드=사랑)이 내가 살아 있는 모든 날 동안 나를 집요하게 추적하신다” 뜻. 내가 다른 곳에 가고 싶어도 목자의 눈이 나를 주시, 양치기 개가 나를 호위하며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 돌들까지도 나를 보호. 기억력이 나쁘고 공격 무기가 없는 양을 인도해 선하시고,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니 다른 길로 갔다가 목자의 음성 듣고 영원한 집, L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양 우리를 알면 다윗이 말하는 L의 집에 대해 더 깊이 이해. 유대 광야는 석회암 자연동굴 많다. 목자들은 동굴을 개조 양 우리 만든다. 반원 모양의 동굴 앞에 타원형 모양 돌담 쌓고 그 위에 가시덤불 놓는다. 들짐승들 밤에 뛰어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양 우리의 가장 취약점은 문. 가시가 있어도 허술하고, 양 우리의 가시덤불도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기에 목자들은 우리에 양 넣고 양 문 앞에서 잠 잔다. 특히 양치기 개가 없을 때는 더욱 그렇게 G의 보호 양 우리가 바로 L의 집이다.
J은 이런 양 우리에서 태어나셨다. 양들의 체취, 노린내가 진동하는 지저분한 양털이 이리저리 날리는 곳에서 태어나셨고 누일 곳 없어 양의 여물통 구유에 누우셨다. 하늘의 영광 버리고 오신 만왕의 왕 구세주가 참 비참하게 오셨다. 그러나 여기에 의미가 있다. J이 양 우리에 오심으로 선한 목자다. 선한 목자 J은 양과 함께 임마누엘 G 되시고 양 지키기 위해 양 문 앞에서 밤새 “양의 문”이 되셨으니 양의 집, L의 집에서 안전하게 거할 수 있다.
시 23편 부족함이 상존. 목동이 다윗은 광야에 양과 목자 관계가 어떠한지? 목자를 떠난 양은 죽어 “L는 나의 목자시니” “L는 나의 생명” 신앙고백, '주님 떠나 살 수 없다' 색맹에 근시다. 멀리 못 보고 목자를 의지 어떤 공격도 못해 목자의 지팡이와 막대기 의지해야.
그러나 양에게 큰 강점. 목자의 음성 들음. J도 최고의 율법, 신 6:4-5 “쉐마” “들으라” 양의 강점은 '청종' 목자의 음성 들을 때 내가 강하지 않고 선한 목자 주님 목숨 걸고 지켜 주시니 강하고 부족함 없다. 광야 같은 세상 선한 목자 J C 생명 양식, 생수의 근원, 양의 문 되어 주시니 부족함 없다. 세상에 L의 집, 주안에 거하는 삶 누리시기를(이문범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