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기독교의 근본적인 3가지 질문
1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 하셨다 "나를 다른 것들과 비교해서, 나를 평가 해 보거라"
"시몬 베드로"가 말했다 "당신은 의로운 전령 (messenger) 같습니다."
"마태"가 말했다 "당신은 현명한 철학자 같습니다."
"도마"가 말했다 " 선생이여, 당신이 무엇과 같은지 나의 입으로는 묘사 할 수 없나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너의 선생이 아니다. 네가 마셨기에, 내가 만들어 낸 방울샘물 (bubbling spring)로 네가 취했음이라."
이러시고 그를 데리고 물러가사 그에게 세가지를 말씀 하셨다. "도마"가 돌아오자 친구들이 물었다 "예수께서 뭐라고 말씀 하셨는가?"
"도마'가 그들에게 말했다. "그가 말한 것 중 한 가지라도 너희에게 얘기 해 주면 너희가 돌을 들어 나를 칠 것이요, 불이 그 돌들로부터 나와 너희를 삼킬 것이다."
먼저 로마제국안에서 신앙공동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로마 제국은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며,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혼합된 다민족 제국이었습니다. 따라서 로마 제국 하에서 초기 기독교인들의 국적은 매우 다양했습니다. 초기 기독교는 중동 지역에서 시작되었지만, 로마 제국의 상업적, 문화적, 군사적 연결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초기 기독교인들 중 일부 주요 지역과 그들의 국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팔레스타인 지역: 기독교의 발상지인 이 지역에는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존재했습니다.
2. 그리스와 아나톨리아 (현재의 터키): 초기 기독교는 특히 이 지역에서 빠르게 확산되었으며, 여기에는 그리스인 기독교인들과 다양한 소아시아 민족들이 포함됩니다.
3. 이탈리아, 특히 로마: 로마에도 초기부터 기독교 공동체가 형성되었으며, 여기에는 로마인들과 다른 지역에서 온 이민자들이 포함되었습니다.
4. 북아프리카, 특히 카르타고: 이 지역은 초기 기독교의 중요한 중심지 중 하나로, 북아프리카 출신 기독교인들이 존재했습니다.
5.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를 포함한 이집트 지역은 초기 기독교의 중요한 학문적 중심지였으며, 여기에는 이집트인 기독교인들이 포함됩니다.
6.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 이 지역은 초기 기독교의 또 다른 중요한 확산 지역이었으며, 여기에는 시리아인들과 다양한 중동 민족들이 포함됩니다.
이처럼 로마 제국 내의 기독교인들은 국적이 매우 다양했으며, 이는 초기 기독교의 다양성과 광범위한 확산을 보여주는 요소입니다. 이러한 다양성은 초기 기독교가 로마 제국 내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확산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보통 이 텍스트는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도마가 가장 뛰어나고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내용이 무언인지에 대한 연구나 주석이 일반화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협의적인 해석입니다.이 텍스트는 초기 교회의 여러 공동체와 도마 공동체와의 관계,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라는 구절로 보아 직접 예수님께 들었던 사람들과 그들의 말을 신뢰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의 초창기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신앙의 3단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태"가 말했다 "당신은 현명한 철학자 같습니다."
마태 공동체의 입장은 마치 기자처럼 합리주의적 기조를 띄고 있습니다.저 또한 오랜 기간 종교철학을 연구하면서 과학적 역사적 객관적 사고의 방식으로 중립적인 태도로 기독교를 대해왔습니다.물론 성경을 읽고 만화판이나 영화등, 닫치는데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목사나 신부님이나 신학자 철학자들의 강의를 듣고,직접 공동체에 들어가서 경험을 쌓는등 갖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만 그것은 관찰자의 입장이었습니다.
많은 분석과 지식과 심리적인 배경을 알아내었지만 저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었습니다.마치 WIFI가 연결 안된 휴대폰과 같았습니다.독자적인 스마트폰의 내장 어플은 실행되었지만 하나님과의 연결은 없었습니다.하지만 마태의 노력은 복음서 집필로 이어졌고 유태인 전통과의 연동을 통해 유대인교인들도 하나님의 복음의 확장판을 체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이것은 밖에서 창문을 통해 들여다 보는 것입니다.그것은 실험을 하는 연구자와 같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지혜로운 철학자로 봅니다.그러나 인간의 내면을 치유하고 성장 시키는 창조자이신 하나님으로는 보지 않는 유대교인들과 그들의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시몬 베드로"가 말했다 "당신은 의로운 전령 (messenger) 같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나이가 많은걸로 보입니다.그는 ‘세례 요한’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그에게는 로마정부의 통치와 그들의 앞잡이인 헤롯왕조에 대한 종교적 비판을 한 ‘세레요한’를 종교적 메신저로 보았습니다.그리고 예수님도 같은 선상에서 보았습니다.세계의 많은 인권 운동가들이 소수민족이나 독재정권에 대하 바핀하고 탄압받고 목숨을 잃습니다.베드로는 유대민족이 각성하고 봉기하여 로마군을 몰아내고 유대민족의 독립을 원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체포 사화에서 그는 제지하고자 제사장의 하인의 귀를 칼로 자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베드로의 행동을 나무라시고 지지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지점입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의 전쟁을 막지 않으십니다. 인간의 어리석은 행위를 지켜 보십니다.결국 우리들은 억눌렀던 탐욕과 분노 이기심의 끝판왕을 경험하게 됩니다.그리고 어느때 보다 더 평화와 사랑 영적 성장을 바라게 됩니다.군대에 가보면 그렇게 따분할 수 가 없습니다.그리고 너무나 시간이 안 갑니다.집에 있을 때도 내성적이라 그렇게 즐겁지 않았는데 군대에서 시간만큼은 할 일은 많은 데 시간은 너무 느리게 가는 희한한 시공간을 겪게 됩니다.
우리는 전쟁을 통해 지옥을 경험하고나서 야 평화를 생각하고 인간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습니다.베드로는 예수님의 돌아가심과 자신이 살고자 예수님을 부인하고 깨 버린 맹세를 통해 어리석음과 나약함을 발견하였고 비로서 진정으로 회개합니다.그의 마음에는 무장 혁명도 폭력도 사라지게 됩니다.지금도 이스라엘은 하마스와 전쟁중입니다.하마스는 지하에 땅굴을 파고 하마스는 이스라엘인들에게 테러를 저지릅니다.희생자들의 울음소리가 팔레스타인을 진동 시키고 우리는 어리석게도 나누지 않고 다툼만을 원합니다.
"도마"가 말했다 " 선생이여, 당신이 무엇과 같은 지 나의 입으로는 묘사 할 수 없나이다."
도마는 지식인도 혁명가도 아니었습니다.그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누구인지 알지 못했습니다.바로 이 책이 말하는 신앙의 3단계,시험을 통한 영적 변화가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예수님의 말씀은 지식도 아닙니다.그렇다고 무장혁명을 바라는것도 아닙니다.어떻게 사랑과 자비 믿음이 우리 민족의 구원과 여원한 생명을 준단 말입니까? 그리고 당신은 누구이십니까? ‘메신저’입니까? ‘투사’입니까?
이런 비명이 지를 때 비로서 하나님의 시험이 시작되고 그는 영적으로 변하게 됩니다.내 자신의 지식도 투영된 분노와 야심도 내려 놓을 때 진정한 회개와 구원의 시험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너의 선생이 아니다. 네가 마셨기에, 내가 만들어 낸 방울샘물 (bubbling spring)로 네가 취했음이라."
그는 마태처럼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선생이라 따랐을 것입니다. 예수님께 새로운 율법을 배우고 ‘신방’을 다니고 자신 도 독립해서 신도들을 모으고 목회자 랍비의 길을 걷는 미래를 꿈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그분은 선생님이나 교수님이 아니었습니다. 공부 시키고 취직 시켜주는 선생님은 나의 ‘물거품’같은 꿈이었습니다.예수님은 당신을 목회자를 만드시려고 하시지 않으십니다.안전한 곳에서 매일 성실히 예배 준비를 하는 삶은 먼 후대의 일입니다.
이러시고 그를 데리고 물러가사 그에게 세가지를 말씀 하셨다. "도마"가 돌아오자 친구들이 물었다 "예수께서 뭐라고 말씀 하셨는가?"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가장 큰 물음은 3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원래는 도마의 의심과 기드온의 의심에 대해 다룰려고 했습니다.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믿음에 대한 질문을 하기로 했습니다.이것은 오늘날의 신자들에게도 미치는 문제입니다.첫째는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믿음입니다.
마리아님은 동정녀이시고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셨습니다.이것은 합리주의 시각에서는 보자면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신의 아그네스’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신의 아그네스"("Agnes of God")는 1985년에 제작된 영화로, 논란이 되는 종교적, 심리적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미국의 작가 존 필링어가 쓴 동명의 연극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노먼 주이슨이 감독을 맡았습니다. 주요 출연진으로는 제인 폰다, 앤 밴크로프트, 메그 틸리 등이 있습니다.
줄거리 요약: 영화는 어느 폐쇄적인 수녀원에서 발생한 충격적인 사건으로 시작됩니다. 어린 수녀 아그네스(Agnes)가 자신의 방에서 신생아의 시체와 함께 발견되고, 아기의 목이 졸린 채 사망한 것으로 드러납니다. 아그네스는 아기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며, 그녀가 임신한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고 주장합니다.
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법정 정신과 의사 마사 빙턴(Dr. Martha Livingston, 제인 폰다가 연기)이 수녀원에 파견됩니다. 마사는 수녀원의 엄격한 원장 마더 미리엄 루스(Mother Miriam Ruth, 앤 밴크로프트가 연기)와 대립하게 되는데, 마더 미리엄은 아그네스를 보호하려 하고, 마사는 진실을 밝히려 합니다.
영화는 아그네스의 정신 상태와 그녀의 임신과 출산에 이르게 된 비밀스러운 경로를 탐구하며, 종교적 신념과 과학적 사고 사이의 긴장을 탐색합니다. 아그네스는 순진하고 어린 아이 같은 성격을 지녔으며, 신비한 경험과 환상을 겪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마사는 아그네스의 과거를 조사하면서 수녀원 내에서의 그녀의 삶과 그녀를 둘러싼 비밀스러운 사건들을 밝혀내려 합니다. 영화는 아그네스가 임신한 방법과 아기의 아버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합니다. 이 과정에서 신앙, 죄책감, 순수함, 그리고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질문이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집니다.
영화의 결말은 관객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기며, 종교적 신비와 인간의 심리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탐구합니다. "신의 아그네스"는 그 강렬한 스토리와 감정적인 연기로 인해 많은 논란과 함께 찬사를 받았습니다.
영화는 우리에게 진실을 받아들일 용기가 있는지 물어봅니다. 그것은 성령으로 잉태한 사실을 믿는 쪽과 단순히 미혼모로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하는 우리의 모습을 영화는 강렬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아그네스는 자신이 죽였다고 자백하며 영화는 끝납니다. 저는 합리주의자입니다. 하지만 이 도마복음은 영적인 변환과 성장을 말하고 있습니다.도마에게 물은 사람들은 당시에 가장 묻고 싶은 내용을 대표합니다.
저 또한 이 질문에 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누군가 처녀가 아이를 배고 다른 사람들에게 ‘아이 아버지가 누구냐?’고 지탄을 받는다고 해도, 과연 제가 그녀의 편에 서서 내가 아버지다. 그리고 그녀의 산후조리와 아이가 잘 클 수 있도록 우리 공동체가 그들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이냐고 묻고 싶습니다.저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이셨고 양부였습니다.아니 저의 가족들은 모두 양 가족이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36세가 되어서 알게 되었고, 혼란의 도가니였습니다. 마치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듯 작동을 멈추고 에러표시만 나오는 상태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으나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마태: 1:18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녀를 누명 주어 공개하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1:19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꿈에 나타나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너는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의 몸에 잉태된 것이 성령으로 된 것이니
1:20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리라 하니라
1:21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진 것은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1:22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1:23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하신 대로 하여 그의 아내를 맞이하되
1:24
그녀와 동침하지 아니하고 아들을 낳을 때까지라 아들을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1:25
‘동정녀의 성령 잉태’를 의심과 변명으로 점철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이제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과연 우리는 미혼모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그리고 우리 사회는 그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변했는지.도마복음은 보다 나은 세상과 보다 나은 인간형을 말하고 있습니다.
동정녀의 잉태는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초자연적인 설명을 제공하며, 신앙의 중요한 요소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와 관점에서 볼 때, 이 이야기는 미혼모와 그들이 직면하는 도전에 대해 고찰하게 만듭니다.
현대 사회에서 미혼모는 여전히 많은 도전과 편견에 직면해 있습니다. 사회적 지원과 이해 부족,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가족 및 사회로부터의 압박은 미혼모들이 겪는 주요한 문제들입니다. 동정녀의 잉태 이야기는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들과 대비되며, 미혼모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지원 체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합니다.
미혼모들이 직면하는 사회적, 경제적, 정서적 어려움을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미혼모와 그들의 자녀들에게 보다 나은 지원과 이해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상기시킵니다.
결국, 동정녀의 잉태 이야기는 단순히 종교적 신념을 넘어서 사회적 책임과 인간적 공감에 대한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미혼모들을 어떻게 더 잘 지원하고 포용할 수 있는지, 그들의 삶과 양육 환경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세간의 질타를 무시하고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성경에서는 요셉과 마리아가 나옵니다. 그들은 누구도 쉽게 하지 못하는 선택을 하였습니다. 저의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나도 내가 36년동안 내가 입양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약혼녀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그를 양육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자식을 끝까지 책임지고 최후의 나에도 십자가 밑에서 그를 지켰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많은 의로운 이들이 저마다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 보다 나은 사회와 인간 창조를 위한 참여였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의 이야기는 신앙, 헌신, 용기의 강력한 사례입니다. 마리아가 성령에 의해 임신한 것과 요셉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마리아와 함께 아이를 양육하기로 결정한 것은, 당시 사회의 통념과 매우 다른 행동이었습니다. 이러한 결정은 높은 수준의 신앙과 자기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1. 요셉의 결정: 요셉은 처음에는 마리아와의 약혼을 파기하려고 했지만, 하나님의 사자가 꿈에 나타나 마리아의 임신이 성령에 의한 것임을 알려주자, 이를 받아들입니다. 요셉의 결정은 당시 사회에서 큰 용기와 신앙을 요구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의 비난과 오해를 감수하고, 마리아와 예수를 보호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2. 마리아의 헌신: 마리아는 자신의 몸에 잉태된 아이를 끝까지 책임지고 양육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부터 성장, 공생애,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까지 그녀는 끊임없이 아들 곁을 지켰습니다. 마리아의 헌신과 사랑은 그녀가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서 울며 서 있는 모습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이 두 인물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한 개인적인 참여와 헌신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보다 나은 사회와 인간 창조에 기여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큰 교훈과 영감을 제공합니다. 개인이 직면한 어려움과 사회적 압박에도 불구하고, 신앙과 사랑으로 올바른 길을 선택하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예수님의 가족 이야기와 저의 가족 이야기를 연결해 보면, 책임감, 사랑, 그리고 가족에 대한 헌신을 알 수 있습니다. 가족은 때로는 힘든 결정을 내리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로를 지키고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우리 모두에게 각자의 위치에서 어떻게 사랑과 헌신을 실천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두번째와 세번째 질문은 같습니다. 첫번째 질문은 소외받는 이들 앞에서 과연 네가 인간의 생존을 위한 본능, 탐욕과 분노와 이기심 앞에서 과연 자신의 안락한 삶을 살 권리를 포기할 수 있느냐? 문제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유대인 공동체에서 하기 힘든 결정을 합니다. 미혼모인 마리아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비난을 못 이겨 자살합니다. 그들은 스스로 원한적이 없기에 극단적인 대가를 치릅니다.
하지만 요셉은 스스로 마리아를 자신의 아내로 맞는 선택을 합니다. 그의 선택은 희생을 불러오고 고난을 불러옵니다.그러나 그는 기꺼이 그것을 감내한 것입니다.마리아의 인생은 고난 그 자체입니다.한 여자로써 종교적 순교자의 운명을 가진 아들을 키우는 어머니의 고통은 너무나 힘들었을 것입니다.뱃속에 있을 때부터 십자가 순교와 부활까지 마리아의 삶은 신앙의 모범 그 자체입니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영적인 삶을 선택할 때 문제는 두가지의 의문이 든 다는 것입니다.
”과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가?”
“과연 예수님은 부활 하셨는가?”
저 또한 많은 시간을 고민하고 논쟁과 분노와 불안으로 보냈습니다. 그전에 저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알코올중독 자였습니다. 거의 철들고 나서부터 술로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아버지는 친구의 딸에게 성추행을 하여 고소 당했습니다.그 때가 1988년 올림픽었던걸로 기억합니다.아버지는 감옥인지 구치소인지 모를 곳에서 한동안 집에 오시지 않았습니다.아마 합의금을 내고 풀려나신 걸로 기억합니다.감옥에 갔다오고나신 후 조금 괜찮아 지셨다가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할 무렵 결국 근로능력을 잃고 술로 세워을 보내시기 시작했습니다.
알코올중독자 가정의 아들들은 나이가 고등학생이 되면 더 이상 아버지에게 맞거나 집안에서 술에 취해 난리치는 아버지를 가만 두지 않습니다.아버지를 때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아버지는 술에 취해 집에서 난동을 부리다가 저의 발차기에 얼굴을 맞고 주먹에 뺨을 쥐어 박히셨습니다.폭력이 대물림 된 것입니다.할머니는 아무리 아버지가 애비 짓을 못해도 때리면 안된다고 나무라셨습니다.그러나 같은 동네에 살던 사촌 동생네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리던 작은 아버지가 사촌동생에게 손을 밟혀 몇칠동안 손을 쓰지 못하신 것입니다.결국 아버지는 위암으로 돌아가셨고,저의 가정은 평화가 온 줄 알았습니다.하지만 아버지는 평소에도 건강에 대한 염려증 때문에 술을 드시면서도 약을 많이 드셨는데 당시 약방에서 임의로 약을 주거나 약국에서도 약사가 조제를 해서 판매를 하던 시기라 집안에는 각종 약들로 넘쳐났습니다.어릴 때부터 약국에 ‘소화제,위장약,신경통약,간장 약. 술 깨는 약’들을 사오는 심부름을 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암으로 인한 돌아가심은 너무나 충격이었고 암을 고치고자 말도 안되는 짓을 벌였습니다.당시는 한의학이 대세였던 시절이라 도서관에 가서 한의학 서적들을 빌려다가 보기 시작했고 약국에서 파는 ‘소청룡탕’ 이나’반하사심탕’ 을 직접 약제를 사서 조제해보고 달여보는 실험을 하기 시작한것입니다.마치 마약을 직접 만들려고 시도하는 미드의 주인공 처럼 저의 취미는 여가생활이 아니라 ‘덕질’ 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당시 유행하던 생활 정보지에서 ‘기치료로 1도 화상을 치료’라는 광고를 보았습니다.그래서 월촌역으로 찾아갔는데 ‘기림원’이라는 간판이 붙어있고 왠 50대 정도의 아저씨가 개량 한복을 입고 계셨습니다.여기 저기 한자로 씌어진 표구가 걸려있고 불경이 은은하게 들려오는 것이 제법 도인 풍모를 가지셨습니다.저는 그 당시 요도염과 신경성 소화불량으로 고생하고 있었고 그 처사님은 나에게 기치료를 해준다고 하셨습니다.
저더라 바닥에 눕게 하고는 자신은 조금 높은 단위에 올라가 기치료를 제가 하는것이었습니다. 뭐가 뭔지 알 수 없었고 저는 ‘따뜻한 열기’같은 걸 느꼈졌지만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처사님은 기치료가 끝났다면 일어나서 가라고 했습니다.저는 일어날려고 했지만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원장님 일어날 수 가 없어요.’
‘다리가 천근만근 같습니까?’
‘네.’
원장님은 어디론가 가더니 천수경을 트는 것이었습니다.그 순간 저는 ‘잘못했습니다.’ 를 연발하며 절하기 시작했습니다.소위 말하는’빙의’였습니다.당시에는 심리학도 정신의학도 지금처럼 대세이지 않았습니다.tv에서는 한의학과 무당,그리고 도인들이 나와서 모든 걸 영혼의 장난으로 보고 ‘구병시식’ 같은 것들이 유행하던 시절이었습니다.저의 눈에는 아버지가 보였고 정신없이 절을 하자 아버지의 영혼이 저 멀리 떠나가는 것이었습니다.저는 원장님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제가 이 야기를 하는 이유는 ‘빙의’난 구병시식 도인선전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지껏 우리가 증명할려고 했던 예수님의 ‘하나님 아들’ , ‘부활’을 물리적인 공간안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이라 증명하는데 에너지를 허비 했다는했다는 것.제사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으로 아버지의 영혼을 보고 진정한 회개를 통해 영혼의 구제를 받는 것은 합리주의적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적인 체험이고 개인에게는 엄연한 사실입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본인에게는 생생하게 만질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는 드라마인것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에서 가난한 목수의 모습을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그리고 역사적인 맥락으로 볼때 유대독립운동가로 볼 수 도 있습니다.그것은 이성적 비판적 논리적 구조의 스펙트럼으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1. 개인적인 영적 체험의 중요성: 저의 경험은 영적인 체험이 개인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경험은 물리적, 이성적 사고를 넘어서는 영역에서 일어나며, 개인에게 깊은 의미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2. 신앙과 고난의 관계: 저의 아버지에 대한 경험과 그로 인한 고난은 신앙과 영적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고난과 개인적인 갈등은 종종 영적 성찰과 깨달음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3. 예수님에 대한 다양한 해석: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적 관점과 '역사적 인물'로서의 관점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신앙의 다양한 해석을 나타냅니다. 이는 신앙이 개인의 경험, 문화, 지식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이해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4. 영적 체험과 합리주의의 한계: 영적 체험은 종종 합리주의적 사고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영역에 속합니다. 이는 영적인 체험이 개인에게 실재하는 경험이며, 각자의 신앙 여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일 때,더 이상 성경속의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 증명이 아니라 나의 삶에 깊은 위안이 되고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됩니다.거의 대다수의 청소년들이 자신의 진로로 고민합니다.그래서 ‘국,영,수’ 같은 현실적인 문제는 도외시하고 ‘마블 코믹스’ 나 ‘토르’ , ‘아이언맨’ 에게 열광합니다.하지만 성경속의 가르침은 단지 우리를 구경꾼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저의 처남은 기구한 운명의 소유자입니다. 집사람 나이 9살에 장모님이 자살하신 것입니다.게다가 장인어른은 월남하신 분이십니다. 이념 갈등으로 서로를 학살할 때 그러니깐 장인어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인민군에게 학살 당할 때 집사람의 할머니가 장인어른을 품에 안고 총을 맞아 겨우 목숨을 유지 하셨다고 합니다. 장인 어른의 삼촌 즉 집사람의 작은 아버지가 업고서 월남하여 지금의 김천에 정착하신 것입니다.
10대때 처남은 무면허로 3중 충돌 사고를 일으켰고 집사람이 보증을 서고 합의금을 대느라 집은 빚에 쪼들렸습니다. 고등학교는 자퇴했고 어렵게 만난 여성은 유부녀였습니다. 게다가 처남댁이 이혼한 후 전남편의 18살된 딸을 집으로 데려 오는 등 처남의 인생도 꼬여만 갔습니다.처남댁과 낳은 아들과 전남편의 자식인 딸과 삶을 꾸려가던 어느 날 거래처가 부도가 나고 갑자기 큰 빚이 생긴 처남은 장인 명의로 돈을 빌려 돌려막기를 하던 중 결국 터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저의 노력에도 처남댁은 이혼을 선택했고 처남은 방황하다가 겨우 외가정에게 지원되는 영구 임대주택으로 이사하여 겨우 안정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이혼한 가정에서 처조카의 방황은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저는 생각합니다.저와 집사람은 천주교 신자입니다.하나님은 처남도 비껴가지 않으셨습니다.얼마전 전화를 받은 집사람이 처남이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제사를 4대나 지내던 처남이 고난 속에서 다른 삶을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성적 합리적 과학적 사고와 합리주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적 태도로는 삶을 살 수 가 없는 것입니다.10대 조현병 환자가 ‘신이 없다’ 이야기하며 북 유럽 신화의 ‘토르’ 이야기를 했습니다.저도 그랬습니다.삶은 살아야 하는 것이고 인간이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때 비로서 알게 됩니다.진정한 인생의 2막은 이 일을 하다가 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영적으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처남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아래와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영적 신념의 중요성: 처남의 이야기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떻게 삶에 깊은 위안과 지침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신념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수준을 넘어서 개인의 삶에 심오한 영향을 끼칩니다.
2. 개인적 고난과 영적 성장: 저의 처남과 가족의 이야기는 인생의 고난이 영적 성장의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고난 속에서 다른 삶의 방향을 찾는 과정은 영적인 변화와 성숙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3. 합리주의와 영성의 균형: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말처럼, 합리주의와 과학적 사고는 중요하지만, 삶의 모든 측면을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영적 신념과 경험이 삶에 균형과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4. 삶의 영적 변화: 제가 강조한 것처럼, 인생의 진정한 변화는 단순히 외부적인 활동의 변화가 아니라, 내면의 영적 변화에서 비롯됩니다. 이는 삶의 근본적인 태도와 인식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1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 하셨다 "나를 다른 것들과 비교해서, 나를 평가 해 보거라"
"시몬 베드로"가 말했다 "당신은 의로운 전령 (messenger) 같습니다."
"마태"가 말했다 "당신은 현명한 철학자 같습니다."
"도마"가 말했다 " 선생이여, 당신이 무엇과 같은지 나의 입으로는 묘사 할 수 없나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너의 선생이 아니다. 네가 마셨기에, 내가 만들어 낸 방울샘물 (bubbling spring)로 네가 취했음이라."
이러시고 그를 데리고 물러가사 그에게 세가지를 말씀 하셨다. "도마"가 돌아오자 친구들이 물었다 "예수께서 뭐라고 말씀 하셨는가?"
"도마'가 그들에게 말했다. "그가 말한 것 중 한 가지라도 너희에게 얘기 해 주면 너희가 돌을 들어 나를 칠 것이요, 불이 그 돌들로부터 나와 너희를 삼킬 것이다."
도마복음의 기록자는 다양한 신앙공동체의 주장을 기록하였습니다. 베드로 공동체,마태공동체,도마공동체,그리고 ‘예수께 말씀 하셨다’라는 형식을 사용하는 기록자나 그들의 공동체의 주장을 실으며,당시 가장 큰 물음을 던집니다.’동정녀 잉태’ 와 ‘하나님의 아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 하지만 도마는 말하지 않습니다.대신 이렇게 대답합니다.
너희가 돌을 들어 나를 칠 것이요,
이 구절은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선포가 유대인들의 신성모독에 해당하여 돌팔매를 당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도마가 말하는 이 공동체나 설교장소가 유대인들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불이 그 돌 들로부터 나와 너희를 삼킬 것이다."
이것은 서기 64년 미쳐버린 네로황제의 방화로 로마에 일어난 화재에 대한 구절입니다. 로마 대화재는 서기 64년 7월에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이 화재는 로마 제국의 수도 로마에서 발생했으며, 약 일주일 동안 지속되어 도시의 상당 부분을 파괴했습니다. 이 사건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가집니다:
1. 대규모 파괴: 로마 대화재는 도시의 14개 구역 중 10개 이상을 파괴했습니다. 많은 건물, 주택, 그리고 사원들이 소실되었으며, 수많은 시민들이 집을 잃었습니다.
2. 네로 황제와의 연관성: 당시 로마를 다스리고 있던 네로 황제는 이 화재와 관련하여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일부 역사가들은 네로가 화재를 일으켰거나 적어도 이를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 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 증거는 불분명합니다.
3.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 로마 대화재 후 네로 황제는 화재의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돌렸습니다. 이는 로마 제국 내에서 기독교인들에 대한 첫 번째 큰 박해로 이어졌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체포되어 처형되거나 박해를 받았습니다.
4. 도시 재건과 변화: 화재 이후 네로 황제는 도시를 재건하면서 여러 개혁을 시도했습니다. 네로는 로마의 건축 양식을 변경하고, 도로를 넓히며, 대규모 공공 건물을 건설하는 등의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로마 대화재는 로마 역사 뿐만 아니라,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도 중요한 사건으로 남아 있으며, 이 사건은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맥락에서 다양하게 해석됩니다.
이 구절은 복음과 설교의 방향성이 로마의 개혁이나 유대민족의 독립으로 흐르는 것을 경고하는 메시지입니다. 그것이 사실이던 거짓이던 로마의 대화재는 큰 충격이었고 많은 사상자를 낳았습니다. 부패한 네로 정권은 이것을 기독교인들의 탓으로 돌리고 그들을 화형 시키고 맹수에게 먹이로 던지는 등 온갖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도마복음이 형성되거나 기록된 후에도 많은 로마인들은 그 사건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이 설교 공동체의 교재인 도마복음을 강론 되는 현장에도 많은 로마인들이 참석했을 것입니다.정리해보겠습니다.
1. 예수님에 대한 다양한 인식: 도마복음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다양하게 해석하는 부분은 예수님의 복잡한 정체성과 그에 대한 다양한 이해를 반영합니다. 베드로, 마태, 도마 각각이 예수님을 전령, 철학자, 묘사할 수 없는 존재로 해석하는 것은 신앙공동체 내에서 예수님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함을 보여줍니다.
2. 유대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경고: 예수님의 "너희가 돌을 들어 나를 칠 것이요"라는 말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선포를 신성모독으로 간주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메시지가 전통적인 유대교와 충돌할 수 있음을 나타냅니다.
3. 로마 대화재의 상징성: "불이 그 돌들로부터 나와 너희를 삼킬 것이다"라는 구절을 로마 대화재에 대한 예언 또는 상징으로 해석하는 것은, 당시의 역사적 사건과 기독교에 대한 박해를 연결짓는 흥미로운 시각을 제공합니다. 이는 로마 대화재가 초기 기독교 역사에 미친 영향을 강조합니다.
4. 도마복음의 역사적 맥락: 도마복음이 기록된 시기와 그것이 전달된 배경을 고려할 때, 로마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의 긴장과 기독교 박해의 역사적 배경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