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이론으로 본명리학- 갈루아 군론, 칸토어 대각선 논법, 해밀턴 사원수로 명리학을 다시 본다 -
머리말
‘첨단을 달린다’란 말이 요즘처럼 매력적일 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말 자체가 동양 전통에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尖端’이란 말 자체가 ‘작음小’과 ‘큼大’의 합성어로서 어느 것의 끝이란 뜻이다. 다시 말해서 ‘큼의 끝’과 ‘작음의 끝’이 서로 만나는 지점이 ‘첨단’의 의미가 아닌가 한다. 그래서 ‘첨단’을 ‘peak, tip, cusp, cutting edge’ 등 영어로 번역되는 것은 마땅치 않고 오히려 첨단의 의미를 곡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동양에선 ‘첨단이론’ 같은 것이란 없다. 큼의 끝과 작음의 끝이 만나는 지점이 ‘첨단’이라면 그것은 반대되는 두 대칭이 서로 결합하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동양에선 매사에 걸쳐 대칭적인 사고를 하고 이를 ‘음양陰陽’이라고 했기 때문이라 본다. 오랫동안 ‘음양대칭’만을 생각해 오다 여기에 또 다른 대칭인 ‘오행五行’을 결부시켜 ‘음양오행’이라 한다. 그래서 동양에서 첨단이론이 없는 이유는 문명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모든 사물을 지배하는 것은 ‘음양오행’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양에선 문명의 여명기부터 대칭적 사고를 사악시 했으며 이런 사고를 하는 인물들을 그대로 박해하고 살해까지 하였다. 그러나 19세기 말부터 수학에서부터 대칭적 사고가 움트기 시작했고, 이를 이 책에서는 ‘첨단이론’이라 정의한다. 즉, 갈루아의 군론(1830년대), 해밀턴의 사원수이론(1850년대), 칸토어의 집합론과 대각선논법(1880년대) 등이 여기서 정의하는 첨단이론들이다.
갈루아 군론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음양은 ‘반영대칭reflectional symmetry’에, 오행은 ‘회전대칭rotational symmetry’에 해당한다. 그래서 동양은 문명과 문화의 그 시작에서부터 이 두 대칭적 시각에서 사고해 왔고, 그것이 오늘과 내일의 서양의 첨단이론과 같아진 것이다. 동양에서 두 대칭은 의학, 음악 그리고 명리학에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래서 필자는 『한의학과 러셀역설해의』(지식산업사, 2005), 『주역너머 정역』(상생, 2017), 『한의학과 현대수학의 만남』(지식산업사, 2018), 『악학궤범신연구』(솔과학, 2019), 『철학의 수학소』(동연, 2021) 등을 두 대칭의 시각에서 저술한 바 있다. 이번 『첨단이론으로 본 명리학』은 그 연장선상에서 음양오행 이상의 첨단이론은 없다는 일관된 주장에서 이도에서 출간하게 되었다.
이상에서 말한 첨단이론들은 모더니즘을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문명전환을 가져오게 했다. 후자는 모더니즘의 확실, 정확 그리고 명확한 것을 모두 불확실, 부정확 그리고 불명확한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 책은 명리학을 통해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 경향을 탐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대각선 논법에서 무한에 포함되지 않는 즉, 초과한 잔여 무한이 연속체 가설의 문제를 초래하였고, 이 문제는 100년 동안의 난제거리였지만, 1970년대에 ‘결정할 수 없음undecidable’으로 결론을 본다. 이는 동양의 선문답적 결론과 같은 것이다. 이를 두고 ‘첨단이론’이라 여기서 정의한다.
이 초과분 때문에 연속체 가설, 비결정성 그리고 불확실성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이는 곧 모든 학문이 직면하는 공통의 문제이다. 다시 말해서 명리학 역시 이 문제 해결에 있어서 가장 선두에 서 있다 할 정도이다. 명리학의 세계에 간여하게 된 것은 명리학 그 자체 때문이 아니고, 초과분에 대한 관심을 필생 가져온 사람으로서 이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을 가장 곤혹스럽게 만드는 이 초과분의 주제가 비과학적이라면 지금 주류 학문 가운데 미신 아닌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상 학문과 비정상적인 주술과 미신은 구별돼야 마땅하다. 이 책이 그러한 분별을 하게 하는 데 공헌하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 동양에선 문명의 여명기부터 음양오행을 통해 남는 잔여분, 찌꺼기 혹은 초과분 같은 존재 때문에 고민한다. 명리학에서는 그런 요소들과 인간의 운명 간의 관계를 고민하고 다루는 분야이다. 그리고 그 다루는 기법을 정교하게 발전시켜 왔다. 그래서 독자들은 이 책이 통속적으로 점치는 행위를 첨단이론으로 합리화시켜 주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철학, 수학, 과학, 종교 등 어느 분야에 이 책이 속하는 가에 앞서 이 문제 중심적 사고를 하기를 독자들에게 부탁한다.
이 말은 이 책이 결코 첨단이론을 통해 점술을 합리화 시키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오히려 동북아 문명권에서 역은 수 천 년의 역사를 하고 있으며, 역은 고정된 것이 아닌 강물처럼 흐른다. 하도, 낙서 가지고 정역도에 이르는 대하를 이루며 흐른다. ‘주역’하면 ‘점술’로 돼 버린 현실을 개탄한다. 이 책은 첨단이론이라는 도구를 통해 정역에 이르러 점술이 ‘신학’으로 발전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즉, 첨단이론을 통해 점괘 너머 ‘상제조림上帝照臨’이라는 한국적 정신세계를 보여줄 것이다. 서양 신학이 그 한계점에서 서양에선 신학교가 거의 문을 닫고 교회는 상가로 변하고 있다. 동양에서는 역이 거리의 점괘와 점술로 팽개쳐져 있는 현실은 더 개탄스럽다. 중세기 연금술이 뉴턴의 과학이 되었듯이, 역의 점괘가 동양적 나아가 한국적 신학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하면서 이 책을 마감할 것이다. 마감할 무렵 2023년 5월 1일 ‘일석一石’ 혹은 한돌einstein’ 혹은 ‘유령Spectre’ 문제는 새로운 첨단으로 첨가됐다.
이 책은 현대 학문의 특정 한 분야로 결정할 수 없어서 출판사마다 출판을 주저하던 차, 도서출판 이도의 김규승 대표님을 만난 것은 기회였다. 한 줄 한 글자 빠짐없이 다 읽어 주시고, 첨언과 참고 그리고 비판의 말을 가차 없이 해 주신 덕분에 이렇게 출간하게 되었다. 난해한 그림들이 많은 원고를 교정하고 다듬어주신 편집부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23년 동지
도봉산 기슭 도토리 마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