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동남부지역의 해양문학 – 두타문학회의 역할

[취렴산방]

강원도 영동남부지역의 해양문학

– 두타문학회의 역할

신원철・ 2022.8.24.14:55

우리나라의 3개 바다가 다 특색이 있고 아름답지만 강원도 영동지역의 동해바다는 높은 산과의 어우러짐으로 인하여 다른 바다와는 다른 특이함을 갖는다. 즉 동쪽으로는 망망한 대해요 서쪽으로는 하늘을 찌르는 거대한 산이 있어서 산의 기운과 바다의 기운이 만나는 곳이다.

바다를 삶의 근거지로 하는 것이 그리 넉넉할 수는 없겠지만 영동의 바다에서는 특히 그러했던 것 같다. 우선 지형상의 특징으로 말미암아 자연재해가 잦았고(높새바람, 풍랑, 해일), 또 중국이나 일본 등 다른 나라와의 교류의 나들목이 될 만한 위치에 있지도 못했기 때문에 이 지역 사람들의 생활은 오로지 산에서 나는 약초 등 임산물과 협소한 농토에서 생산되는 곡식과 바다에서 채취하는 물고기 해초 등으로 자급자족하는 정도였던 것이다. 자연히 이들은 가난을 면하기 힘들었고 또한 나라의 중심인 서울과는 아득히 멀었었다. 이 지역에서 태백산맥을 넘어 서울까지 나들이한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었으니 자연히 이들에게는 대대로 고립감과 소외감이 하나의 한처럼 이어져 왔던 것이다.

흔히 영동지역이라고 알리어져 있는 이 지역도 사실은 세 곳으로 나뉜다. 대관령 동쪽 강릉을 중심으로 한 영동, 속초를 중심으로 한 영북, 삼척 동해의 영동 남부는 근접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약간씩의 문화적 차이를 지닌다. 앞에서 말한 바 있듯이 이 지역은 바다와 산의 조화가 아름다운 곳인데 영북지역에는 설악산, 영동 남부 지역에는 두타산이 주산으로 버티고 있다. 산과 바다는 문학적 영감을 자극하게 되어 있다. 유명한 이성선의 시는 바로 설악과 그 앞바다의 풍광이 만들어낸 것이고 그가 이끌던 <물소리문학회>는 한 때 무척 번성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외에도 이상국, 고형렬, 박종헌 등의 빼어난 시인을 배출한 곳이 이 지역이다.

대관령을 넘으면 바로 연결되는 강릉에도 많은 시인, 작가들이 배출되어왔다. 강릉의 수필가 최명희는 어느 글에선가 대관령이 주는 어릴 적부터의 인상을 “거대한 벽”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랬을 것이다. 그 벽을 넘어 서쪽으로 진출해야 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던가? 그녀는 결국 관동대 음악과를 졸업하고 이 지역의 음악교사로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녀 외에도 많은 문인들이 관동대 국문과와 관동 문학회를 통해 성장했으니 사립 관동대학이 이 지역에서 해온 일은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이 대학 국문과의 엄창섭 교수 시인은 지금도 이 지역의 문학계에서 꾸준히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영동 남부지역의 문학이다. 금강, 설악산의 빼어난 산세는 바다와 만나 양양의 명사십리를 이루고 강릉 경포대의 절경을 만든 다음 남으로 내려오는데 정동진을 거치면서 갑자기 척박해 진다. 즉 강릉을 경계로 산의 흙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동진 이남 지역의 흙과 암석이 지하자원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 지역은 결국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지하자원을 캐내기 위하여 개발된 삼척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강릉이야 오랫동안 영동지역의 꽃, 예향으로 성장해 왔지만(사임당 신씨. 허난설헌, 허균, 이율곡) 삼척은 정말 일제를 거치면서 새로운 도시로 성장했다.

탄광도시로의 성장은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이게 했고 그중에는 문학에 뜻을 둔 분들이 있어서 1960년대부터 동인활동이 싹트기 시작했다. <불모지문학>과 <동예문학>이 그것인데 거기서 가장 앞장선 분들이 시인 김영준, 정일남, 김은숙과 수필가 박종철이었다. 불모지라고 이름 붙인 데에는 문학적인 척박함을 스스로 한탄하는 의미도 있다. 그중 정일남 시인은 한 때 광부시인으로 명성을 날렸으며 팔순의 연세인 지금도 꾸준히 창작에 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지역의 본격적인 문학 활동은 <두타문학>을 통해서 일 것이다. 1970년대 태동된 이 문학단체의 주역은 시인 정연휘와 최홍걸, 소설가 김익하이다. 강릉의 문화적 중심이 관동대학이었다면 이 지역에는 삼척공전이 있었다. 원래부터 지하자원 개발을 위한 인재 양성에 목적을 두었던 이 학교는 광산과를 비롯한 공업계 학과만 있었으나 배움에 목이 말랐던 젊은이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문학에 뜻이 있는 이들이 있어 학과공부로 충족시킬 수 없는 문학에의 열정을 문학서클활동(“영시문학회”)을 통해 풀었으며 그들이 결국 졸업하고 두타문학을 이루게 된다. 앞에서 말한 세 문인도 바로 삼척공전 출신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아직도 지역문학의 중추로서 활동하고 있다. 기실 이 문학단체가 있었기에 영동남부지역의 문학은 독특한 색깔로 피어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시인, 작가들의 해양문학은 어떠한가?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바다를 한 번씩 건드리지 않은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옆에 늘 끼고 사는 바다는 애증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갈산 김영준의 시를 보자.

갈천동 앞바다에

겨울맞이는 통곡으로 시작한다.

무슨 한이 그리도 많은지

겨울내내 소리치며 울고 있는

바다와 어머니

두 손이 갈퀴처럼 뒤틀리도록 가을걷이를 했건만

그해 그 겨울 그 바닷가 사람들은

죽 한 그릇 배부르게 먹을 수 없었다

적막한 겨울 바다를 바라보는 어머니

고기잡이라도 떠나야 살 것인가를 생각했단다

어머니가 내뱉은 한숨 소리가

통곡으로 이어지는 서러운 날은

겨울 바다를 어머니 품속으로 숨어들게 할 뿐

아버지를 바람처럼 어디론가 떠나게 하여

물새 울음 울면서 긴 밤을 또 밝혀야 했다

어이하랴, 어이하랴 어머니의 바다에는 비가 내렸다

겨울비가 내렸다

어머니의 바다, 비 내리는 바다에서 뛰노는

철없는 아이들은 어머니의 바다처럼 고왔다.

- 「어머니의 바다」 전문

이 시의 분위기는 바다가 주는 낭만적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동해바다를 찾는 이들이 그 푸르고 시원한 물과 하얗게 떠가는 구름과 갈매기에 감탄하지만 여기에 터전을 두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바다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 것이다. 여기의 바다는 겨울 바다이다. 그것도 겨울 내내 소리치며 울고 있는 바다이다. 4, 50년대 우리나라 어느 곳이고 빈곤하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특히 앞으로 바다에 막히고 뒤로는 산에 가로막힌 이곳 사람들의 삶은 지난했었다.

그리하여 “두 손이 갈퀴처럼 뒤틀리도록” 추수를 해도 죽조차 배불리 먹을 수 없는 삶을 살아야만 했던 것이다. 집안의 살림을 책임진 어머니의 한숨은 끊일 날이 없고 그것은 다시 바다의 통곡 소리로 이어지는 것이다. 어감에서부터 뭔가 풍요롭지 못한 “갈천동” 앞바다란 바로 지금의 삼척해수욕장이며 그 앞의 좁은 들판에서 김영준 시인은 가난한 소시절을 보냈다(“우리의 여름은 / 냇물 속에 있었지/ 물결은 거센 숨소리를 뿜고/ 빗디딘 햇빛은/ 물살에 휘말려 갔었지/ 아이들은/ 덩달아 텀벙거리며 나이를 씻었지.”「유년기」). 그리고 결혼도 하지 않고 삼척의 불우한 아이들을 위한 교육사업을 하다가 마지막에는 삼척 문화원장으로서 생을 마친 그의 일생은 내내 빈곤으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호도 ‘갈산’이었다.

이 시가 우리에게 환기시켜주는 서정은 무엇인가? 6, 70년대 초등학교 음악 시간에 반드시 배웠던 노래 중에 한인현 작사의 「섬집아기」라는 노래가 있었다. 아기를 혼자 남겨두고 굴을 따러간 어머니의 가난이 그때 많은 아이들의 가슴을 적셨는데 그 노래와 이 시가 왠지 상통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은 필자만일까? 이 시는 김영준 시인의 대표시처럼 되어 있다.

필자가 <두타문학>에 가입했던 1997년은 김영준 시인이 타계한 다음 해였고 삼척문단에서는 한창 추모열기가 가득했었다. 서울에서 공부만 하다가 이 지역의 대학에 발령받게 되어 아무 것도 모른 채 막연히 먼 지방도시로 생각했던 삼척에서의 그 문화적 열기를 보고 내심 놀라고 감탄했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삼척에는 정일남과 김은숙이라는 시인이 있었다. 정일남은 1980년대 초반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실력파 시인이다. 삼척공전 광산과를 졸업하고 일직부터 광산업에 투신했던 이 시인은 한때 광부시인으로 이름이 높았었다. 산속에 그것도 항상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지하 깊숙이에 있는 석탄을 캐던 이 시인으로서는 바다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을 것으로 생각되나 역시 삼척 바다 사람인 것은 어쩔 수 없었다(“나 혼자 지새우는/ 불면의 밤바다에/ 물새는 어디 가서 밤을 새우나/ 내 몸도 이젠 잠언에 눈감고/ 고향바다에 눕고 싶다”「고향 바다」).

정일남 시인은 그야말로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지금 팔순에 이른 연세에도 맑고 여린 눈매를 유지하고 있는 천상 시인이다. 이 시에서 우리가 받게 되는 인상은 이제 모든 세파를 다 접고 고향 바다에 몸을 눕히고 싶은 안식에의 열망이다. 그런 그에게 “물새는 어디 가서 밤을 새우나”가 걱정이었던 것이다. 이 시인은 아직도 펜을 놓지 않고 부지런히 시를 쓰고 있다.

김은숙은 앞의 두 시인과 함께 시작했으나 나중에 삼척, 동해의 여류들을 모아 <물보라문학회>를 조직했다. 그녀는 이 지역의 중학교에 국어교사로 재직하면서 꾸준히 시조를 써왔다. 앞의 두 시인에 비해 큰 경제적 어려움이나 질곡 없이 살아왔기 때문인지 그녀의 시에는 큰 그늘이 없다. 그녀의 바다는 여성스럽고 섬세하게 묘사되고 있다.

물먹은 자갈 주워

파도소리 들어라

밀물 썰물 가는 세월 알알이 고운 몸매

자르르 백사장 가득

해옥을 뿌렸으니

소금꽃 피는 정분

붉어오는 사랑일까

저리도 눈빛 고와 괜시리 서러운데

초사흘 실날같은 달

쪽배 되어 가노라면

파도소리 자갈소리

숨어 우는 바람소리

동화 속 그림처럼 점점이 흩어진 섬

지는 해 가슴 비우느라

아리듯 타고 있다.

-「살다가 외로우면 파도리를 찾았거라」 전문

바다가 어쩌면 이리도 아름답게 묘사될 수 있을까? 시인의 동양적 정서가 시조 가락을 타고 정말 아름답게 전달되고 있다. 이 시인은 직장에서 은퇴한 후 전국 곳곳을 다니며 그 기행의 감회를 시조 가락에 담고 있다. 위에서 보이는 작고 아름다운 바다와 여성 특유의 섬세한 상상력은 이 시를 하나의 뛰어난 그림으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삼척 문학이 오늘까지 줄기차게 전승되어 온 데에는 두 명의 공로자가 있었다. 그 성실함으로 모든 기록과 유품을 관리해온 정연휘와 튀는 개성으로 주변 시인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었던 최홍걸이다. 정연휘의 시에 있어서 삼척은 자랑스럽기 그지없는 곳이며 삼척의 모든 풍광에는 옛 역사와 설화가 베어 있다. 그는 삼척의 역사에 대해서 “뱃사람과 뭍의 사람들이/ 가슴 열린 웃음소리, 껄껄걸/ 해풍과 육풍이 악수하는/ 아침의 땅 삼척에 가면/ 아름다움에 눈을 뜬다.”(「천년하고도 천년」) 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 성실성에서 따라올 이가 없는 이 시인이 없었다면 삼척의 문학은 결코 오늘의 모습을 갖고 있지 못할 것이다. 그의 시 한 편에서 아픔의 설화를 본다.

바다는 일어서서 山行을 한다.

잠든 야밤에 도적 같이

해변 상가 지붕 위를 걸어서

두타산 산정에 따개비 붙이려

바다는 山行을 한다.

추암 마실 할아버지 말씀이

윙윙윙 고막을 울리는데

-옛날 아주 옛날 조수가 일어나

두타산에 바다 따개비가 붙었다.

밤비 내리는 날 소리없이

적막으로, 해안 도시의 고층건물을 밟고

부풀어 부풀어 바다는 山行을 한다.

강진으로 일본열도가 주저 앉던 날

동해안 해일주의보 내리던 날

옛날 아주 옛날 두타산에

바다 따개비 붙었다는

전설이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山行을 하고 있다.

- 「해일주의보」 전문

다소 동화적인 냄새가 풍기는 이 시는 그러나 이 지역의 중대한 지역적 재난 하나를 재미있게 전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이 지역은 유달리 바다의 재난이 잦았다. 삼척의 육향산에는 지금도 해일을 물리치고자 하는 기원을 담은 허목의 퇴조비가 서 있고 그것의 주술적 힘을 믿어 탁본으로 떠서 액자로 걸어둔 집들이 여럿 있다. 얼마나 재난이 잦았으면 이런 것이 주문으로 믿어질까? 이 시에서의 발상은 재미있다. 이 지역의 주산 두타산 산정에 따개비를 붙이기 위해 바다는 또 한 번 용트림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바다를 보는 시인의 눈이 그리 두려움에 차 있지는 않아 보인다. 바다의 장난쯤으로 보고 성큼 성큼 걸어가는 전설을 순진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바다와 워낙 친밀하기 때문에 그런 시각이 가능할 것이다.

정연휘와 달리 최홍걸은 튀는 상상으로 가득한 시인이다. 1986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시인 다음의 시에서 우리는 그 전형적인 예를 본다.

이전 정말 심각한 문제인데,

어시장 좌판에 널부러진 생선들이

이를테면

오징어 문어 노가리 멸치 칼치 명태 해삼 멍게

꼴뚜기 골뱅이 게 한치 쥐치 새치 꽁치 양미리

가오리 고등어 도루묵 가자미 꼼장어 새우 복어

청어들이

일제히 되살아나 펄쩍펄쩍 뛰면서

바다로 가겠다면 어쩔거냐

너희들 식욕의 도마위에서

생선토막으로 잘리워지지 않고

기름에 튀겨지기를 거부하고

냄비 속에서 볶아지기를 거부하고

펄떡펄떡 뛰면서 살아나

바다로 가겠다면

어쩔테냐 정말 어쩔테냐

-「어시장에서」 전문

어시장에 펼쳐진 생선들을 보면서 이런 상상을 한다는 것은 세상 만물을 따뜻이 바라보면서 그 생명력을 파악해내는 다소 장난스러운 시인의 눈이 아니고서는 어렵다. 세상 모든 것들이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는 이기적인 인간의 눈을 뒤집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런 역발상은 불가능하리라. 그리고 일단 이 시에서는 슬픔이 보이지 않는다. 선배인 김영준, 정일남의 시에서 보이던 아련한 슬픔이 최홍걸의 시에서는 장난끼로 승화되고 있다.

이 시인은 삼척을 떠나지 않고 바닷가에 살았다. 공양왕의 슬픈 이야기가 전해오는 궁촌 바닷가에 집을 짓고 오랫동안 살아서인지 두타 시인들 중에서 바다에 관한 시를 많이 쓴 편이다. 그의 상상은 바다의 모든 것들에 생명을 부여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갯내음 진한 걸 보니/ 오늘 해는/ 난산이었나 보다”「갈남리 아침바다」) 그에게는 세상만유가 싱싱한 생명력을 가지고 펄펄 뛰고 있으며 그 속에서 아무 스스름 없이 같이 뛰어노는 것이다. 정연휘가 성실한 시인이라면 최홍걸은 자유의 시인이다. 자유를 추구하는 그의 눈으로 볼 때 바다 속을 마음껏 유영하며 만 리 길을 오가는 동해안의 은어야 말로 부러운 대상이었을 것이다.

유영을 하네

하얀 연꽃으로 피어나는 달빛 바다

맨살의 나신으로 유영을 하네

물의 살은 자유와 평화

젖은 생애 흐늑이게 하네

수평선을 딛고

달 기둥 하늘로 이어져 있네

어머니의 양수 속인 듯 품속인 듯

물살처럼 피어나는

海印의 말씀

- 「유영」 부분

최홍걸은 궁촌 앞바다에서 특히 밤에 부인과 함께 수영하기를 즐겼다고 한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 특히 밤바다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수영을 한다는 것은 대단히 황홀한 경험이었으리라. 이 시에 대해서 뭐라고 설명을 붙이는 것은 불필요해 보인다. 그냥 아름답고 자유로운 시라고 밖에는, 그리고 그렇게 자유를 사랑하던 이 시인은 결국 고향을 뛰쳐나갔다. 고향이 아름답고 아늑하긴 하지만 답답했던 것이다. 이 지역의 문학을 위해서는 참으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들보다 약간 뒤에 활동을 시작한 시인들이 박종화, 김진광이다. 박종화의 경우 8권의 시집을 상재했으며 끊임없는 토속적인 언어로 고향의 풍광과 풍습을 지치지 않고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중한 시인이다. 김진광 시의 모태는 증산리 바다이다. 이 바다는 삼척 후진 바다와 추암 바다 사이에 있는 작고 조용한 어촌으로서 이 시인의 태생지이다. 또한 임원바다, 정라진, 신남리 바다 등 그의 시에는 많은 삼척의 바다들이 등장한다. 김진광의 시는 나름대로 독특한 토속성이 있고 남성적이다. 「임원항」이란 시에서의 “어젯밤 늦도록 술에 취했던 임원항/ 파도에 뒤척이던 잠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라는 구절이나 “임원항 사내들은 죽은 고기는 잡지 않는다/ 술을 먹어도 사발로 벌컥벌컥 마신다.”와 같은 구절은 이 시인의 시적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구절이다.

이번에 시를 선보인 류재만과 이애리는 두타문학에서 직접 활동한 적은 없는 동해시 지역의 시인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결코 두타문학의 전통에 영향받지 않은 시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삼척과 동해는 가까이 위치하고 있지만 묘한 라이벌의식이 있다. 동해시라는 것이 결국은 삼척의 일부를 뗀 데다 옛 묵호를 합해서 만든 신흥도시인만큼 삼척에 비하면 전통문화의 면에서 취약하다. 두 시인은 다 이것을 알고 새로운 전통을 창조하기 위해 열심히 시작에 매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선 류재만의 시를 생각해 보자.

이 시인은 무엇보다 그 이야기체의 형식에 매력이 있다. 그냥 이웃집 아저씨의 이야기처럼 편안하게 들려오는 것이 그의 시이다. 이번에 발표된 세 편의 시 중에서 「석준이네 택태기」를 보자. 아마 이 시인의 성장기 당시에는 농토가 없는 어민들이 넉넉한 농토를 가지고 농사를 짓는 농민들에 비해서 다소 괄세를 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가난한 어부 석준이네 아버지가 남의 집 밭일을 해주고 그 품삯 대신에 받아온 경운기 엔진을 절묘하게 재활용하여 배에다 얹는다. 이후 그 엔진을 이용하여 배는 동력 배가 되고 그 속력을 이용하여 고기잡이업이 한 층 더 번성하게 되며 처음에는 비웃던 어머니마저 같이 배를 탄다는 것이다.

가난하던 시절의 구수한 정서가 흠뻑 묻어 있다. “밑구멍 터진 속곳을 찾으라니요/ 입술보다 부드러운 속곳 대령입니다/ 이런 걸로 꼭 문질러야 되요”라든가 “고추가 여물면 타라고요 아침마다 얼마나 딴딴한데요.”와 같은 구절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한 번씩 미소를 짓게 되리라. 「미역은 줍는다?」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머리가 벌써 산만한 자식이/ 거꾸로 쫄아 든 어미젖을/ 게 껍질 같은 불순한 손으로 쥐어짜대니”와 같은 구절도 역시 그러하다. 류재만의 시적 특성은 이러한 구수하고 유머러스한 토속성에 있다. “아버지 이게 뭐래요” 라든가 “수경으로 보면 아주 쉬와” “얻어 왔아” 등의 표현들은 이 지역의 사투리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동해 앞바다는 삼척 앞바다와 또 다르다. 망상의 명사십리는 넓고 풍요롭기로 소문이 나있다. 그리고 지금은 횟집들이 늘어서 있는 어달리 앞바다도 아담하면서 아이들이 놀기 좋은 곳이다. 여기서 어린 장난꾸러기로 뛰어다녔을 통통하고 다부진 이 시인을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는 것이다.

이애리는 실제 묵호 등대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바닷가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시인이다. 그녀는 현재 <동해여성문학회>와 <해연풍문학회>에서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다. 동해 지역은 삼척과 달리 여성문학이 활발하다. 그리고 주부 시낭송회 활동도 그러하다. 그녀는 바닷가 태생이 아니라 백복령 골짜기 삼화 태생이다. 그 골짜기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어려운 가사를 돌보며 성장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녀의 시에 등장하는 가장 빈번한 용어가 “해연풍”이다. 이것은 무슨 특별한 바람은 아니고 바닷가에서 선선히 불어오는 감미로운 바람을 일컫는 것이라 한다. 이 해연풍이 감도는 곳에서 그녀는 살며 시작에 몰두하고 있다. 이번에 발표된 작품의 “묵호진”, “감추사” 등의 지명은 바로 그녀의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장소들이다. 이런 곳에서의 작은 변화 하나하나를, 심지어 감추사 화장실 곁을 기어다니는 진딧물조차도 시의 소재로 삼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서 그녀의 시어들이 좀 과격해 지는 것 같아 약간 염려스럽긴 하나 그것은 사회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각이 예리한 날을 세우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홍구보의 소설에까지 뭐라고 언급하기에는 필자의 능력이 부친다. 시에 비해 소설 쪽은 장르상의 특징 때문인지 이 지역에서 그다지 활발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홍구보 소설가는 좋은 작품을 계속 발표하고 있고 삼척에도 박문구라는 소설가가 늘 대박을 터뜨릴 태세를 갖추고 있다.

최근에 희곡 쪽으로 손대고 있는 조관선 소설가도 빠뜨려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이렇게 영동남부의 문단은 움직이고 있다. 어느 지방 소도시이든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겠지만 이곳도 젊은이들이 없다. 생활을 찾아 서울, 인천, 부산으로 떠나가고 오로지 남아있는 소수만이 지역문화를 지켜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동안 이들이 척박한 환경 속에서 나름대로 지역 문화의 발전에 핵심적 역할을 하였듯이 앞으로도 그러하기를 기원한다. 아울러 바다에 대한 더 좋은 작품을 생산하여 한국 해양문학 발전에도 한 몫을 당당히 해 주기를 기원한다.

<해양문학>(2007?) 발표

[출처] 강원도 영동남부지역의 해양문학 – 두타문학회의 역할|작성자 신원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