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류씨와 그 배출 인물'을 소개합니다. 첨부파일 참조
문화류씨(文化柳氏)와 그 배출인물
柳씨는 車씨와 같은 시조에서 갈린 동족이성으로서 예로부터 삼한갑족으로 일컬어왔다. 柳씨의 始祖는 高麗 태조 때의 대승 류차달(柳車達)이다. 본래 황해도 신천 문화지방의 호부였던 그는 고려 태조 왕건이 개국 당시에 후백제의 견훤(甄萱)을 칠 때에 군비보급에서 자기 재산을 털어 군량을 보급하여 주어 그 공으로 익찬벽상공신에 서훈되었으며 태조로부터 차달이란 이름을 하사 받았다고 한다. 그에게는 효전(孝全), 효금(孝金)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 아들에게는 車씨를 작은 아들에게는 柳씨를 잇도록 하였다. 그것은 류차달의 6대조가 車씨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文化 柳氏 보에 의하면 그 선대는 원래 중국 고대 黃帝의 후예로서 기씨조선 때에 우리나라로 들어와 평양에서 은거하면서 王氏로 변성했다고 한다. 그러자 기씨조선이 위만에게 쫓기어 남으로 옮길 때에 王氏가 王이 된다는 가요가 퍼져, 준왕은 王氏를 모조리 잡아다 죽이니 왕몽이란 사람이 아들 임과 함께 지리산으로 숨어들어 신인의 계시를 받아 田氏 . 申氏로 변성을 했다가 車氏로 다시 변성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름도 무일(無一)이라고 고쳤다. 이 차무일의 32세손 차승색이 신라 애장왕 때에 좌상을 지냈는데 809년 왕의 숙부인 언승이 난을 일으켜 애장왕을 죽이고 스스로 헌덕왕이 되니 차승색은 전왕의 원수를 갑고자 현덕왕을 암살하려다 실패하니 황해도 구월산으로 들어가 성을 柳 이름을 색으로 다시 변성명했다는 것이다. 이 柳씨의 5세손이 곧 柳車達로 두 아들을 두었는데 그가 벽상공신에 서훈되면서 장자 孝全은 태조의 윤허를 받아 본성인 車성을 이었다. 차자인 孝金은 柳씨로, 따라서 車씨는 柳씨의 큰 집이 된다. 이것이 車씨와 柳씨가 본성이 되기까지의 전말인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연원이 오래된 성씨의 하나이다. 文化 柳씨는 始祖 柳車達의 10세손에서 12세손 때에 14파로 大別되는데 그 중에서도 충경공파, 좌상공파, 하정공파, 검한성공파, 지후시공파의 5파가 번성했다. 충경공파의 파조인 류양(柳亮)은 태종 조에 예문관 대제학, 우의정을 지냈고, 그의 5세손 류관은 인종 때에 좌의정을 지냈다. 좌상공파의 파조인 류만수(柳曼洙)는 이성계의 혁명에 가담하여 개국원종공신이 되었으나 제1차 왕자의 난에 방원에게 참살을 당했다. 그의 현손인 류순(柳洵)은 연산군 때에 영의정을 지냈으며, 6세손인 류전(柳琠)은 선조 조에 영의정을 지냈다. 하정공파의 파조인 류관(柳寬)은 태종 조에 예문관 대제학을 지냈고, 세종 조에 우의정에 올랐다. 그의 9세손 류상운(柳尙運)은 숙종 조에 영의정을 지냈으며, 그의 아들 봉휘(鳳輝)는 영조 조에 좌의정을 지냈는데 이른바 소론 4대신의 하나로 노론과의 당쟁에 휘말려 함경도 경흥에 유배되었다가 그 곳에서 죽었다. 지후시공파의 파조는 인수(仁修)인데 그 후손으로는 사육신의 한 분인 류성원과 정조 조의 실학자 류득공이 나왔으며, 또 광해군의 장인인 류자신도 이 파인데, 인조반정 후에 이 집은 화를 입었다. 이 밖에도 문화 류씨로 이름 있는 분은 세종 때에 하정 류관의 장질 류눌은 예문관 대제학으로 난계 박연과 아악을 정리한 공이 있으며, 임진왜란에 의병장 제봉 고경명과 함께 금산싸움에서 순사한 월파 류팽로 등이 유명하다. 부안에서 문화 류씨가 유명하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바 있는 반계 류형원(磻溪 柳馨遠) . 1622-1273)은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그이 아버지 흠(欽)이 광해 조에 벼슬을 하였기에 인조반정 후에 화를 입자 그의 조부는 반계를 정치계에서 멀리하라고 가르쳤다. 그는 1654년에 진사시에 합격한 후로는 다시 벼슬길에 나아갈 것을 단념하고 부안 우반동에서 오로지 실학에 전념하여 반계수록(磻溪隧錄)이라는 책을 편찬하였다. 그의 생애의 전성기의 절반이 넘는 20년간을 부안에서 보냈다. 그가 죽은 뒤에 동림 서원에 제향 하였다. 그의 후손 일파가 지금 보안면 덕산리에 세거하고 있다. 또 하서면 장신포와 대광에는 문화 류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부를 누리며 세거하여 왔다. 이 류씨는 충경공파로서 병자호란에 의병을 일으킨 노곡 류동수(柳東秀)가 충남 부여에서 이곳으로 은거하여 자손이 번성하여 대창 가문이다. 이 류동수의 12세손 류복희(柳福熙)는 부안군 의회 2선 의원으로 제3대 의회 후반기(6대) 의장에 당선되어 폭넓게 활약하였다. 이 밖에도 좌상공파의 한 가닥은 상서면에서 몇 집이 살고 있다. 문화 류씨는 우리나라에서 삼한갑족이라고 일컬어 왔음이 헛된 이름은 아니라는 것이 여러 방면에 입증되고 있다.
‘부안에 살고 있는 성씨고(저자: 양만정)’에서 인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