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반열반경 제6권
대반열반경_4. 여래성품③
네 가지 법에 의지하다(1)/ 법에 의지하다/ 이치에 의지하다/ 지혜에 의지하다/ 요의에 의지하다/
네 가지 법에 의지하다(2)/
네 가지 법에 의지하다(3)/
[네 가지 법에 의지하다(1)]
가섭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좋은 말씀이십니다. 여래의 말씀이 진실하고 허망하지 않으니, 제가 금강의 보배와 같이 받들어 지니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비구들은 네 가지 법에 의지하여야 할 것이니,
무엇을 네 가지라 합니까?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며,
이치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말며,
지혜에 의지하고 식(識)에 의지하지 말며,
요의경(了義經)에 의지하고 불요의경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니,
이 네 가지 법은 네 종류 사람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법에 의지하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법’을 의지한다는 것은 곧 여래의 대반열반이니 모든 부처님 법이 곧 법의 성품이며, 법의 성품이 곧 여래이다.
그러므로 여래는 항상 머물고 변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이가 여래는 무상하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법의 성품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것이니,
법의 성품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이에게는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위에서 말한 네 종류 사람은 세상에 나서 법을 수호하는 사람이니, 그런 줄을 알고 의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여래의 비밀하고 깊은 법장을 잘 아는 까닭이며,
여래가 항상 머물고 변하지 않는 줄을 아니,
만일 여래가 무상하고 바뀐다고 말하면 옳지 않다.
이 네 종류 사람은 곧 여래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여래의 비밀한 말씀을 잘 이해하고 또 말할 수 있는 까닭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여래의 깊고 비밀한 법장을 잘 알고,
여래가 항상 머물고 변하지 않는 줄을 안다면,
이런 사람은 이양을 위하여 여래가 무상하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도 의지하여야 하는데, 하물며 네 종류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겠는가?
법에 의지함은 곧 법의 성품이며,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음은 곧 성문이다.
법의 성품은 곧 여래이며, 성문은 곧 함이 있는 것이다.
여래는 항상 머무는 것이며, 함이 있는 것은 무상이다.
[이치에 의지하다]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파계한 몸으로 이양을 위하여 여래가 무상하고 바뀐다고 말하면,
이런 사람에겐 의지하지 않아야 한다.
선남자야, 이것을 결정한 이치라고 한다.
‘이치’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말라는 것은,
이치는 깨달음이며,
깨달았다는 뜻은 못나고 약하지 않음이며,
못나고 약하지 않다는 뜻은 만족함이며,
만족하다는 뜻은 여래의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않는 것이다.
여래의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않는다는 뜻은 법이 항상함이며,
법이 항상하다는 뜻은 승가가 항상하다는 것이며,
이것이 이치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것이 말에 의지하지 말라는 것인가?
꾸며대는 언론과 번드르르한 문장이다.
부처님께서 말한 경전들과 같이 탐심이 많아 만족한 줄을 모른다거나, 간교하고 아첨한다거나, 가면으로 친한 체하거나, 점잖은 모양을 꾸며 이양을 구하거나, 세속 사람들을 위하여 일을 하는 것이다.
또 말하기를,
‘부처님도 비구들에게 종이나 부정한 물건인 금ㆍ은ㆍ보배ㆍ곡식ㆍ창고ㆍ소ㆍ양ㆍ코끼리ㆍ말 따위를 받아서 저축하는 일과 장사하여 이익을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으며, 흉년드는 세상에서 제자들을 불쌍히 여겨 비구들에게 저축하고 오래도록 묵게 하면서 손수 밥을 지으며 받지 않고 먹을 것을 허락하셨다’고 한다면,
이런 말은 의지할 수 없다.
[지혜에 의지하다]
‘지혜’에 의지하고 ‘식’에 의지하지 말라는 것은,
지혜라고 함은 곧 여래이니,
만일 성문들이 여래의 공덕을 잘 알지 못하면 그런 식은 의지하지 말아야 하며,
여래가 곧 법신인 줄을 알면 그러한 참 지혜는 의지할 만하다.
여래의 방편으로 이룬 몸을 보고 그것이 5음ㆍ6입ㆍ18계의 소속된 것이며 음식으로 기르는 것이라 말하면,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식은 의지하지 못할 것이며,
또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이나 그런 경전도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요의에 의지하다]
‘요의경’에 의지하고 ‘불요의경’에는 의지하지 말라는 것은,
불요의경은 성문승이니 부처님의 깊고 비밀한 법장을 듣고 의심을 내고 이 법장에서 큰 지혜를 내는 줄을 알지 못하는 것이,
마치 어린아이가 아는 것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은 이름을 불요의라 한다.
요의라 함은 보살의 진실한 지혜를 말함이니,
그 마음을 따르는 걸림 없는 지혜는 마치 어른이 모르는 것이 없는 것과 같으니 그것을 요의라 한다.
또 성문승은 불요의이며 위없는 대승은 요의이다.
성문이 말한 것을 증득하여 알아라 함은 불요의이며,
보살이 말한 것을 증득하여 알아라 함은 요의이다.
만일 여래가 음식으로 자란다 하면 불요의이며,
만일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않는다 하면 요의이다.
여래께서 열반에 드는 것이 나무가 다하여 불이 꺼짐과 같다 하면 그것은 불요의이며,
여래가 법의 성품에 든다 하면 그것은 요의이다.
성문승의 법은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여래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방편으로 성문승을 말하였으므로 마치 장자가 아들에게 반쪽 글자[半字]를 가르친 것과 같다.
선남자야, 성문승은 밭을 처음 갈고는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것과 같으므로, 이것을 불요의라 하며,
그렇기 때문에 성문승은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대승의 법은 의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여래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방편으로 대승을 말한 것이기 때문에 마땅히 의지해야 하니 이것은 요의라 한다.
이러한 네 가지 의지할 데를 마땅히 증득해 알아야 한다.
[네 가지 법에 의지하다(2)]
또 ‘이치’에 의지하라는 것은, 이치는 질박하고 솔직한 것이며 질박하고 솔직한 것은 광명이다.
광명은 못나거나 약하지 않은 것이고, 못나거나 약하지 않은 것은 여래이다.
또 광명은 지혜이며 질박하고 솔직함은 항상 머무는 것이다.
여래가 항상하다는 것은 ‘법에 의지함’을 이르는 것이다.
법은 항상함을 이르는 것이며 또한 가없음을 말한다.
헤아릴 수도 없고 붙들 수도 없고 얽어맬 수도 없지만, 볼 수는 있는 것이다.
만일 볼 수 없다고 말한다면, 이런 사람은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또 어떤 사람이 미묘한 말로 무상하다고 말하면, 이런 말은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치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다.
승가는 항상하고 함이 없고 변하지 않으며, 여덟 가지 부정한 것을 받아 두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에 의지하고, 식에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다.
만일 식이 짓고 식이 받는다고 말하면 화합승(和合僧)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화합이라 함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며 아무것도 없다면, 어떻게 항상하다 말하겠는가?
그러므로 식은 의지할 수 없는 것이다.
‘요의’에 의지한다 함은 요의는 만족한 줄을 아는 것이다.
가면으로 위의가 청백한 듯이 나타내며,
교만하고 높은 체하여 이양을 탐하지 않으며,
여래가 방편으로 말한 법에 대하여 집착을 내지 않으면,
이것을 요의라 이른다.
만일 이런 가운데 머무는 이가 있으면, 이 사람은 이미 제일의에 머문 줄을 알아야 하니,
이것이 요의경에 의지하고 불요의경에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다.
불요의라고 함은 경전에 말하기를,
‘모든 것이 타는 것이며, 모든 것이 무상하고, 모든 것이 괴롭고, 모든 것이 공하고, 모든 것이 내가 없다’고 한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이치를 분명히 알지 못하므로, 중생들로 하여금 아비지옥에 떨어지게 한다.
그 까닭을 말하면 집착하기 때문에 이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탄다’고 함은 ‘열반도 타는 것’이라고 여래가 말하였다고 하는 것이며,
‘모든 것이 무상하다’ 함은 열반도 무상하다는 것이고,
‘괴롭고 공하고 내가 없다’ 하는 것도 그와 같은 것이므로,
불요의경이라 하니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네 가지 법에 의지하다(3)]
선남자야, 어떤 이가 말하기를,
‘여래께서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며 시기를 잘 아신다.
시기를 잘 아시므로 가벼운 것을 무겁게 말하고, 무거운 것을 가볍게 말하셨다’고 한다.
또, ‘여래께서, 제자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이바지할 단월이 있어 궁핍함이 없게 할 줄을 아셨으면, 이러한 사람에게는 종이나 금ㆍ은이나 재물 따위의 부정한 것을 받아 두거나 장사하여 팔고 사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또 만일 제자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할 단월이 없거나, 흉년을 당하여 음식을 구하기 어렵고 정법을 건립하고 호지하도록 하기 위하여,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종이나 금ㆍ은이나 수레나 집이나 밭이나 곡식 따위를 받아 두기도 하고 쓸 것을 무역하도록 허락하셨으나, 마땅히 깨끗이 보시하는 신심이 견고한 단월이어야 한다’고 하면,
이러한 네 가지 법은 의지하여야 한다.
어떤 계율에나 아비담(阿毘曇)이나 수다라(修多羅)라도 이 네 가지에 위반하지 않는 것을 의지할 것이며,
어떤 이가,
‘때가 되었거나 때가 아니거나 법을 수호하지 않거나 간에, 여래께서 모든 비구에게 이렇게 부정한 물건을 받아 두라고 허락하셨다’고 말하면,
그런 말은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계율이나 아비담이나 수다라에 이 말과 같은 것이 있으면, 이러한 세 가지는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육안을 가진 중생들을 위하여 이 네 가지 의지할 것을 말하였으며,
혜안(慧眼)이 있는 이를 위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네 가지 의지할 것을 말하는 것이다.
법이란 것은 곧 법의 성품이며,
이치라 하는 것은 여래가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않는 것이며,
지혜란 것은 모든 중생들이 모두 불성이 있다는 것이며,
요의라 하는 것은 온갖 대승의 경전을 통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