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미학과 명시 원고제출
수필가 남산 강 충 구
옥천 의 명소
내일이 추석이다.
추석차례 준비로 오전 내내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하였다.
주과포만 놓고 간결하게 차례를 모실 계획 이였는데 벌이면 춤이라고 이것저것 준비할게 많아진다.
둘째 아들과 셋째아들이 어제부터 내려와서 합심하여 차례준비를 마치고 점심을 먹고 나니 2시가 넘었다.
아내가 바람 쏘이기를 원하니 아들들이 승용차로 옥천 나들이를 하기로 하였다.
고속도로를 타고 옥천까지 시원스레 내 달려 오전 내내 힘들었던 심신의 피로가 한꺼번에 풀리듯 기분이 상쾌하였다.
처음 들린 곳은 시인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이다.
정지용 생가는 정면3칸 측면3칸으로 꾸며졌으며 부엌을 제외하고 정면 2칸은 퇴칸 구조이다.
이외에도 돌담과 사립문, 초가, 우물, 장독대 등 소담스레 자리하고 있다.
작은 사립문 사이로 생가에 들어서면 자신도 모르게 아련한 그리움이 묻어나온다.
정지용 문학관에 들어서니 정지용의 삶과 문학 그리고 그가 살았던 시대적 상황을 알 수 있었다.
1910년대부터 50년대 까지 현대시가 어떻게 변화 발전하였는지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정지용시집’ ‘백록담’ ’지용시선‘ ’문학독본‘ ’산문‘ 등 정지용 시인의 시 산문집 원본을 전시하고 있었다.
정지용 시집 한 장을 넘겨 시 한수를 읊어보았다.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담배ㅅ를 물고
들에 나가시니
궂은날도
곱게 개이고,
할아버지가
도롱이를 입고
들에 나가시니
가문 날도
비가 오시네.
시인 정지용은 섬세하고 독특한 언어를 통해 대상을 선명히 묘사하여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시인이시다.
정지용 시가 보여주는 가장 뛰어난 성과는 신선한 감각과 독창적 표현이다.
감각과 표현은 서로를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데, 정지용은 시가 갖추어야 할 핵심적인 요소를 창작의 전면에 내세움으로서
이전의 시와는 다른 새로운 지평으로 한국시를 고양시키고 있다.
다음에 들린 곳은 육영수여사 생가였다.
1600년대부터 김정승, 송정승, 민정승의 삼정승이 살던 곳인데 1918년에 육종관(육영수 여사의 부친)이 집을 매입 1925년 11월 29일 육영수 여사가 탄생하여 1950년 결혼 전까지 살았다고 한다.
1969년 현대건설에서 구입 전면적인 개보수를 하면서 원형이 훼손되었고 1974년 육영수여사 서거 후 방치되다 1999년에 철거 되었다고한다.
2011년 5월 11일에 육영수 여사 생가를 복원하여 개관 하였다고한다.
건평만 3,000평이 넘는다는데 정말 어마어마하게 넓고 크며 생존 시의 흔적들을 생생하게 보존하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부소담악을 들렸는데 추소리 팔각정에서 바라보면 산이 수몰되면서 기암괴석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해금강을 연상케 하였다.
대청댐이 형성될 때 수몰되면서 이룩한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새로운 명소를 만들어내고 있다.
아들들 덕택에 뜻하지 않게 옥천 지방의 명소를 두루 살펴볼 기회를 갖게 되는 행운을 얻었다.
대마도
큰아들과 큰딸이 회사에 연가를 내고 우리부부를 대마도 관광을 시켜준다고 한다.
아내는 몇 일전부터 밤잠을 설치며 초등학생 모양 좋아하며 들떠있다.
아침을 5시도 못돼서 서둘러 먹고 채비를 하늬라니 큰아들이 큰딸을 태우고 왔다.
대전역 동 광장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켜놓고 7시 33분 부산행 KTX에 올랐다.
나는 KTX를 난생 처음 타 본다.
비행기보다 좌석도 편하고 쾌적해서 좋다.
한 시간 30분 만에 부산역에 도착하였다. 옛날 다섯 시간씩 걸려 부산 여행을 했던 때를 생각하며 격세지감에 사로잡혀본다.
부산 여객터미널에서 11시 33분에 부산과 대마도를 오가는 BETLE호에 승선하였다.
파도는 잔잔하지만 배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은근한 걱정이 되었는데 모니터에 나타나는 BETLE 호의 주행모습을 보니 선두와 선미만 물에 닿고 완전히 바다 위를 날아가고 있었다.
BUS를 탄 것보다도 안전해 미동도 하지 않는다.
배가 점점 먼 바다로 나아갈수록 양 옆으로 펼쳐지는 망망대해가 검푸른 색으로 시야에 펼쳐질 뿐이다.
한 시간 십분 만에 대마도에 도착하였다.
우리세대는 일본에 대한 선입감이 우호적이지 못한데 대마도 하면 우리나라를 수없이 침범하여 약탈하였던 왜구의 본거지이며 세종대왕시대 대마도를 완전 정복하여 조공을 바치도록 조치하였던 인연 깊은 섬이다.
대마도에 도착하면서 느낀 것은 완전 시골 어촌이여서 한적하고 공기가 맑고 쾌적한 환경이라는 점이였다.
대마도는 북 대마도와 남 대마도의 두 개의 섬으로 이루어졌으며 두 마리의 말의 형상을 하고 있어서 대마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도착한 HETAKTSU (比田勝港)국제터미널은 한국인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대마도 인구가 3만 명이라는데 한국관광객이 30만 명이상이 들끓는다고 한다.
일본이 대마도를 개발제한구역으로 통제하면서 국제관광 청정지역으로 조성하고 있다고 한다.
우선 렌터카를 임대해 아들이 직접 운전을 해서 우리가 묶을 호텔부터 찾았다.
花海莊 이라 간판이 붙은 HOTEL은 바닷가 언덕에 자리 잡고 있어서 앞바다가 훤히 내다보이는 경치가 아름다운 환경 이였다.
우리일행이 여정을 풀고 처음 찾은 곳은 諸의湯(기미쓰시마)온천 이였는데 물이 좋고 전망이 좋아 내가 지금까지 다녀본 수많은 온천중 물의 질이 가장 으뜸이라 느껴졌다.
북 대마도는 낙후된 전형적인 어촌 이였는데 한국관광객이 몰려들면서 어느 정도 근대화기 되어가고 있었다.
HETAKTSU 항은 물론 대마도의 발전을 한국관광객이 이룩해 가고 있는 것이다.
간판도 한글이 병기되어있고 사람들도 한국어 사용이 능숙해 대마도는 일본 땅이 아닌 한국 땅 같은 느낌이 들었다.
특히 부산관광객이 주를 이루었는데 주말에 낚시를 하거나 등산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았고 면세쇼핑에 맛들 린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부산에서 오전배로 입항해 자전거를 빌려 타고 관광을 한 다음 오후배로 귀향하는 학생들도 꽤 많다고 한다.
대마도는 특별히 관광명소가 있는 것은 아닌데 공기가 청정하고 산천이 때 묻지 않아 자연 그대로를 느낄 수 있어 미세먼지로 고통 받는 한국인 들이 즐겨 찾는 관광소가 되어가고 있다.
온천에서 나와 러일전쟁 기념비를 찾았는데 러일전쟁 때 러시아군의 상륙 장소에 승전비를 세우고 관광지로 관객을 유도하고 있었다.
한국전망대에 들렸는데 날씨가 좋아 망원경으로 부산을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해수욕장과 몇 군데 들리다가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았더니 식당마다 일찍 문을 닫아서 골목 끝에 식당을 찾아 겨우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식당 건물도 낡았지만 엣 전형적인 일식 건물인데 식탁에 재떨이가 놓이고 옆 좌석에서는 손님들이 담배를 수시로 피우고 있었다.
우리나라 60년대 풍경을 보는 듯 하였고 음식 값도 비싸지만 짜고 입맛에 맞지 않아 비위가 상했다.
호텔에서 일박을 하고 아침에 거실에 앉아 바다에서 떠오르는 장엄한 일출을 볼 수 있어 장관 이였다.
호텔에서 먹는 아침은 깔끔하고 입에 맞아 모처럼 맛있게 먹었다.
비록 일박이일의 짧은 여정 이였지만 미지의 땅을 둘러보는 알찬 여행이 되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33353E5B4AF6F618)
성명 남산 강 충 구
한울문학 제 106기 수필부문 신인문학상 수상
2012년 12월 수필가로 등단
충남당진출생 현 대전광역시 거주
42년간 교직에 봉사
대한노인회대덕구지회 부설 노인대학장
중도일보 명예기자
저서 : 추억의여로 등 다수
한울문학의 시화집 5회공저
현주소 : 대전광역시대덕구송촌동동춘당로 114번길 60
선비마을 312동 609호
연락처 ; 010-5284-0765
첫댓글 감사히 잘 보고 갑니다
늘 건강하시고 편안하십시요
강충구 수피가님...
귀한 옥고 감사합니다
좋은 작품집이 되리라 믿습니다.
무더위에 강녕하십시오.
충고의 말씀 감사합니다.
강녕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