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사륜구동협회의 정기모임이 열렸던 예천 오프로드 파크는 일반인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다. 한적한 임도와 괜찮은 하드코어 코스가 있지만 두 대 이상이 함께 움직이는 것이 좋다. 봄빛 찾아 떠난 길 때아닌 폭설로 고생을 했으나 최고의 설경을 마음껏 즐기고 왔다.
중앙고속도로 이용해 쉽게 갈 수 있어
예천은 경상북도의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어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었다. 원주-단양-예천으로 가는 코스나 충주-문경을 거치는 길 모두 고속도로에서 2시간 이상 달려야 하는 산길이었다. 하지만 중앙고속도로가 뚫린 후에는 예천IC에서 나가 10km 정도를 달리면 도착할 수 있다. 이곳에 국내 처음으로 지방자치단체인 예천군이 오프로드 코스를 위해 정식으로 개방한 임도가 있다. 예천군 용문면 원류리-내지리 일대와 문경시 동로면 석항리로 내려가는 임도가 그것이다. 지난해 경기가 열릴 때, 예천군이 용문사 입구에서 시작하는 진입로를 정비하고 경기를 치를 수 있도록 코스를 만들어 말 그대로 오프로드 파크가 되었다. 예천군은 이를 더욱 발전시켜 다양한 산악 레저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멋진 코스를 다양하게 경험할 장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쪽으로 간다는 부푼 마음을 안고 찾아간 날은 2월 둘째 주. 서울은 매서운 겨울 날씨가 가시지 않은 때였다. 중앙고속도로에 들어서면서부터 꿈은 산산이 깨어지고 말았다. 내려가는 내내 치악산을 포함한 태백산맥 줄기는 하얀 눈을 품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이런 풍경에 감탄했을 테지만, 이번에는 한숨만 나왔다.
게다가 오프로드 코스를 찾아간 토요일에는 설상가상(雪上加霜)이라는 사자성어가 그렇게 정확하게 맞을 수 없는 날씨였다. 예천 시내에는 간간이 빗줄기가 뿌렸지만 교외로 나가자 비는 눈으로, 그것도 모자라 폭설로 바뀌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 날은 경북 내륙지역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졌다고 한다. 오프로드 파크로 가는 임도는 설국(雪國) 그 자체였다.
이번 오프로드 도전기에 동반한 차는 지프 체로키다. 3.7X 210마력 엔진과 스위치로 간단하게 조작하는 크루즈 컨트롤은 차가 드문 평일 고속도로에서 운전하기 아주 편했고, 셀랙 트랙 파트타임 4WD는 눈이 쌓인 국도에서 풀타임 4WD를 고를 수 있어 도움이 되었다. 추운 아침 차에 올랐을 때 열선 시트가 얼마나 좋은 장비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오프로드 파크 가는 길
용문사 입구 ~ 석항리
우선 오프로드 파크로 가기 위해서는 예천 시내에서 28번 국도 연결점으로 가다가 좌회전, 59번 국도로 이어지는 928번 지방도를 탄다. 입구가 좁아 놓치기 쉬운데, 시장이 있는 길을 따라 북쪽으로 1km쯤 가면 표지판이 나온다. 928번 지방도로 15km를 달리면 경천댐이 눈앞에 보이는 용문사 삼거리다. 여기서 우회전해 3km를 산 쪽으로 올라가서 용문사 입구 큰 소나무가 있는 곳에서 우회전하면 오프로드 파크로 들어서게 된다.
초입은 콘크리트로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지만 경사가 만만치 않다. 게다가 겨울 내내 녹지 않는 얼음이 아래에 깔려 있어 미끄러지기 쉽다. 도로가 완전히 마른 상태가 아니라면, 진입하기 전에 로 기어로 바꾸고 액셀 페달을 꾸준하게 밟아 접지력을 유지해야 한다. 용문사 입구 갈림길에서 2km 올라가면 다시 갈림길이 나오고 본격적인 비포장도로가 시작된다.
이곳에 도착하면 주변임도 안내판과 예천군에서 걸어 놓은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크다’는 경고문이 눈에 띈다. 하지만 경고보다는 ‘오프로드 동호인들이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다’는 문구가 더 눈에 들어온다. 그동안 오프로드를 찾아다니면서 숱하게 만났던 바리게이트나 주민들이 갖다 놓은 바위 같은 것이 없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이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9.8km를 가면 문경시 동로면 석항리로 내려가 문경과 단양을 잇는 59번 국도로 이어지고, 오른쪽으로 3.36km를 달리면 용문면 원류리에 닿는다.
석항리로 가는 길 중간에 넓은 주차장과 간이 화장실 등을 갖춘 공원이 있다. 작년에 오프로드 경기가 열린 곳은 여기에서 1km 정도를 더 들어가야 한다. 여기까지 가는 내내 발목까지 빠지는 눈 속에서 이리저리 미끄러지는 차를 다잡느라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오프로드 파크라고는 하지만 간이 화장실만 남아 있을 뿐 인공적으로 조성된 코스는 많지 않다. 록 크롤링이나 힐클라임 경기가 열린 곳을 이용하면 나름대로 재미있겠다.
처음 계획은 오프로드 파크를 거쳐 아래 용문사로 이어지는 길에 들어갈 생각이었지만, 이번에도 나 홀로 출정이고 스노 체인도 없이 모르는 길로 들어선다는 것은 만용이라는 생각이 들어 차 머리를 돌렸다. 여기까지는 길이 넓어 승용차도 무리 없이 들어갈 수 있지만 주변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매봉을 거쳐 명봉사-석항리로 이어지는 길은 말 그대로 ‘임도’다. 때문에 4WD 로 기어 2단이나 3단에 고정하고 느긋하게 달리면서 맑은 공기를 만끽할 수 있다.
산을 거의 내려간 부근에 약간 급한 내리막이 있고 이후에는 포장도로가 이어진다. 59번 국도와 만나기 전까지 길이 2차선 도로에서 1차선으로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59번 국도에서는 왼쪽으로 꺾으면 다시 예천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단양으로 이어진다.
한적한 내리막과 샛길 많은
용문사 입구 ~ 원류리
다시 처음의 표지판이 있던 갈림길로 돌아왔다. 전에 이곳에서 경기가 열릴 때도 폭설이 내려 경기가 중단되었기 때문에 기자에게 예천 하면 ‘눈 내리는 고장’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속도가 느릴 때 4WD 기능이 있는 SUV는 2WD인 일반 승용차에 비해 훨씬 안전하다. 하지만 속도가 빨라질수록, 무겁고 무게중심이 높은 SUV는 관성의 영향을 더 받는다. 때문에 4WD라고 해도 앞바퀴의 그립을 잃고 코너 밖으로 밀려 나가는, 언더스티어를 일으키기 쉽다. 무조건 서행하는 것이 최고이기에 짧은 거리의 오프로드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반나절이 훌쩍 지난다.
원류리로 가는 길은 길지 않고 완만한 내리막의 연속이다. 산등성이를 한 굽이 돌아가면 내리막이 나타나고, 또 한 굽이를 돌면 다시 내리막이 이어진다. 눈이 잦아들었으나 녹은 눈이 얼면서 노면 상태는 최악이 되었다. 얼음 위에 빙수를 덮어놓았다고 해야 할까. 사진을 찍기 위해 차에서 내리면 빙판 이상으로 미끄럽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로 기어 1단에 고정한 상태로 액셀 페달은 밟지 않으면서 2km 정도를 내려오는 데 30분 이상이 걸렸다.
갈림길에서 2.3km를 달리면 오른쪽으로 좁은 길이 있는 갈림길을 만난다. 길이 좁아 보여 300m쯤 걸어서 내려가 보았다. 길은 계속 이어지지만 중간에 작은 무덤이 길 한쪽을 차지하고 있어 지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진입을 포기했다. 작은 차 두 대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진입하면 끝이 어디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차를 돌려 왼쪽으로 꺾어 내려가면 928번 지방도와 만나게 된다. 여기서 우회전하면 용문사 입구 삼거리까지 1.5km 정도가 된다. 입구 근처에는 예천 권 씨의 종가 별당인 초간정이 있다. 들어가 보니 굵직한 소나무에 작은 연못까지 꽤나 운치가 있다. 오프로드를 둘러보고 여기에 모여 도시락을 먹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물론 날씨가 따뜻할 때의 이야기다.
때아닌 폭설로 제대로 흙을 밟았는지도 모르겠고 그렇게 바라던 봄소식은 간신히 흔적만을 찾을 수 있었다. 이번 오프로드 도전기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예천 오프로드 파크는 아직 유료화 계획은 없다고 한다.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지만 핸드폰이 잘 터지지 않고 인가까지 거리가 꽤 되기 때문에 혼자서 진입하면 낭패를 겪을 수도 있다.
돌아올 때는 예천을 들르지 않고 그대로 59번 국도로 달려 월악산 국립공원의 옆자락을 끼고 단양으로 향했다. 대설주의보가 내린 이곳은 전나무와 소나무 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많은 눈이 내렸고, 세상은 온통 하얗게 변해 버렸다. 기자는 이번 겨울, 아니 지금껏 살아 오면서 최고의 설경을 즐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