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마을~금오산~깃대봉~연대봉~남해대교
봄꽃의 절정기를 구가하는 진분홍색 철쭉꽃이 온 산하를 물들일 무렵이면 게으른 농부라도 밭을 갈아 씨를 뿌리고 논에 물을 가두고 모내기를 서둘러야 한다.철쭉꽃은 본격적인 성장의 시기이자 풍요로움을 기약할 수 있는 질풍노도의 성하(盛夏)의 계절이 턱밑으로 다가왔음을 알리는 화신(花信)이니,더 이상 게으름을 피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봄날을 마무리짓는 곡우(穀雨)는 나흘 전에 이미 지나갔으며, 절기상 본격적인 여름의 문턱을 넘어서게 된다는 입하(立夏)가 열흘 앞으로 성큼 다가왔으니 농심은 더욱 한가할 틈이 없는 거다.
간간히 봄비가 내려 땅을 적시곤 했다지만 농사에 넉넉한 건 아니라고 관계기관은 말하고 있다.곡우 때 가물면 땅이 석자가 마른다고 했지만 산객들에게는 비가 내리는 날은 공치는 날이나 다를 게 없으니 농부들 눈에는 그들의 행동거지가 달가울 수는 없을 터이다.낙남금오지맥의 마지막 구간인 세 번째 구간의 산행 들머리인 하동군 진교면 안심리 신안마을 동구에서부터 산행은 발행이 되는데,우리의 이동 베이스 캠프인 버스에 오른지 4시간이 훌쩍 흐르고 난 뒤다(11시49분).
여느 때라면 3시간의 버스 이동시간이면 도착할 것을 4시간으로 부쩍 불어난 것은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상의 안성휴게소 못미친 지점에서 버스에 이상이 발생한 것이다. 그로 인한 다른 버스로의 대차하는 과정은 1시간이 필요했던 거였다. 구만리장천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르지만 한낮의 햇살은 이제 부드럽고 따사로움에서 뙤약볕의 무더움으로 치닫고 있다.
신안마을 동구 일대의 중소 단위의 공장 두어 곳의 곁을 지나고,내처 신안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마을을 벗어나면 진교면 소재지 쪽과 그 반대 쪽인 서쪽의 금남면 덕천리 방면 사이를 잇는 12번 군도가 지맥을 가로지르고 있다.한여름의 뙤약볕이나 다를 게 없는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는 12번 군도를 따라 우측으로 300여 미터쯤 따르면 도로 좌측으로 '아임허브'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길쭉한 입간판이 세워져 있는 곳에서 12번 군도를 뒤로하고 좌측의 양회임도로 발걸음을 옮긴다.
양회임도는 푸릇푸릇한 매실이 다닥다닥 열려 있는 매화나무의 과수밭으로 이어지고,과수밭 사잇길을 다 거치고 나면 울창한 대나무 숲길이 뒤를 잇는다.서늘한 기운이 가득한 울창한 대나무 숲길을 벗어나면 지맥의 산길은 비포장 임도와 한데 어우러지는데, 임도를 따라 우측으로 발걸음을 옮기는게 더 수월할 듯하지만 수렛길을 곧장 가로질러 맞은 쪽의 오르막 산길로 그냥 들어서는 게 더 낫다.
오르막 산길은 다소 희미하다.치받이 산길은 점차 가파르게 이어지고, 하늘을 가릴 듯한 울창한 편백나무 숲의 그늘도 일견 시원함을 가져 올 것 같지만 바람 한 점 없는 오르막은 팥죽땀만을 필요로 한다.헐떡거리며 가풀막진 오르막을 올려치면 지맥을 가로지르는 양회임도가 기다린다.이 때에도 양회임도를 곧장 가로질러 맞은 쪽의 가풀막진 치받이 오르막을 올려쳐야 한다.
금오산 정상 가는 길
간간히 바람이라도 일렁거린다면 발걸음은 가볍게 마련인데,바람 한 점 불어오지 않으니 팥죽땀만 비질비질 흘러내린다.산 위에서 부는 시원하고 고마운 바람은 죄다 어디로 가버렸는가.가뿐 숨을 몰아쉬고 팥죽땀을 연신 훔쳐가며 가풀막진 비알을 애면글면 올려치면 지맥를 가로지르는 포장도로가 산객을 기다린다.이 도로는 앞으로 오르게 되는 금오산 정수리께까지 연결이 되는 임도인 거다.
이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7,8백 미터쯤 이동을 하면 임도 우측으로 수렛길처럼 널찍한 오르막 산길로 발걸음을 옮긴다.해발666.1m봉 오르는 산길이다.진분홍의 철쭉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완만한 오르막의 수렛길을 3,4백 미터쯤 올려치면 무인산불감시 철탑이 우뚝 세워져 있는 멧부리로 산객은 안내가 된다.이 멧부리가 해발666.1m봉이다.동쪽으로 남해의 사천만 일대의 그림 같은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풍광이 눈에 들어온다.
해발666.1m봉의 무인산불감시철탑
666.1m봉을 넘어서고 나면 머지않아 조금 전의 도로와 다시 한데 어우러지며 산길은 꼬리를 잇는다.그러나 도로를 따라 4백여 미터쯤 발걸음을 한 뒤 다시 양회임도 우측 편의 해발762.5m의 삼각점봉을 오르려고 임도 우측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이번의 산길은 희미하고 철쭉을 비롯한 관목들과 잡목들의 저항이 기다리고 있는 '길없는 길'의 행색이다.완만한 오르막이지만 '길없는 길' 행색의 무덥기만한 등성잇길은 기력과 심신을 모두 지치게 하는 법이다.외려 짜증까지 솟아나는 게 아닌가.
그런 뒤에 오르게 되는 멧부리가 정수리 한복판에 2001년 재설한 삼각점(남해11)이 번듯한 해발762.5m봉이다(13시33분).762.5m의 삼각점봉을 뒤로하고 나면 우측으로 문바위(0.3km) 갈림길에서 그 반대 쪽인 좌측의 비탈로 발걸음을 옮기면 금오산 정수리 방향의 도로가 기다린다.도로를 따라 우측의 완만한 오르막으로 1km쯤 발품을 더하면 금오산 정상 직전에 닿게 되는데,금오산 정상은 군부대의 통신중계시설이 차지하고 있어서 관계자외에는 얼씬을 할 수 없으니 언저리께에 오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9부 능선께까지 발걸음을 다 마치면 그곳에서부터 금남면 청소년 수련원 인근으로 이어지는 금오산 케이블카가 여행객들을 기다리고 있다.총연장 2.5km에 대당 8명이 탑승할 수 있는 20여 대의 자동순환식 곤돌라가 설치될 예정인데,현재도 일부는 운영을 하고 있지만 아직은 계획한 모든 공정이 모두 마무리가 되어 있지 않아 지금도 공사가 한창 진행중에 있는 금오산 케이블카다.금오산 정수리 꼭대기는 아니지만 남해 한려수도의 아름답고 시원스러운 조망이 산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13시50분).남쪽의 남해대교 방향으로 꼬리를 잇는 지맥의 등성이가 한눈에 부감이 된다.
서쪽으로는 광양의 제철소 단지가 부감이 되고, 그 반대 쪽인 동쪽으로는 사천시 방면이 아스라하게 조망이 된다.그러한 환상의 조망을 자랑하는 금오산 정수리 언저리에서 지맥의 산길은 좌측 9시 방향의 가파른 내리막이다.내리막 어귀에 '덕천마을(3.45km)'과 '금오산 마애불(0.5km)' 를 가리키고 있는 이정표가 산객을 안내한다.내리받잇길은 그림 같은 남해 한려수도를 다시 한 번 더 조망할 수 있는 울퉁불퉁한 전망바위로 이어지고,전망바위를 지나고 나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9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 금오산 마애불로 산객은 안내가 된다.
금오산 정상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이 되는 이 마애불은 금오산의 남쪽 산비탈 굴속 바위벽에 선(線)으로 새긴 한길이 채 안 되는 높이의 마애불이다.철책을 두른 마애불의 앞 쪽으로는 마치 파수를 보는 것처럼 세 개의 돌탑이 우뚝하다.그러한 행색의 마애불을 뒤로하고 나면 덕천리 방면(우측)의 갈림길과 대송리 쪽(우측)으로의 등하행 갈림길을 차례로 지나게 되고,너덜바윗길을 한차례 거치는 등의 짜증이 날 만큼 지루한 내리막을 거치고 나면 지맥을 가로지르는 대치리 방면과 그 반대 쪽인 서쪽의 대송리 사이를 잇는 군도의 터널 위로 지맥의 산길은 산객을 안내한다.
터널 위를 지나면 만나게 되는 양회임도를 300여 미터쯤 따르다가 양회임도를 뒤로하고 좌측의 숲길로 접어들면 키가 큰 교목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고 철쭉을 비롯한 관목들만의 오르막 산길이 기다린다.어귀에 '깃대봉 철쭉군락지'라고 새긴 상석처럼 생긴 석조물이 눈에 띈다.뙤약볕을 닮아가는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는 치받잇길은 그늘 하나 없는 가파른 오르막이다.바람 한 점 불어오지 않는 오르막 산길은 철쭉꽃 향기만이 산객의 코를 찌를 뿐이다.
잔뜩 녹이 슨 낡은 철조망을 우측으로 끼고 발걸음을 재촉하면 비로소 오르게 되는 붕긋한 멧부리가 해발503.8m의 깃대봉 정상이다(15시).사방팔방 거칠 게 없는 정수리에서의 조망은 더 말할 나위 없이 화려하고 시원스럽기만 하다.시원한 그늘은 빈약하지만 그것을 대신할 조망이 시원스러우니 그나마 다행스럽지 않은가.조망의 깃대봉 정상을 뒤로하고 다시 내리받잇길로 들어서면 가파른 비탈이 기다린다.맞은 쪽 저만치 앞으로 오르게 될 연대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깃대봉을 뒤로하는 내리받잇길이 길어질수록 맞은 쪽의 연대봉은 그만큼 높이가 부쩍부쩍 커 나간다.그러한 내리받잇길은 머지않아 넉넉하고 부드러운 사거리 안부로 산객을 안내한다.송문리 샘골 방면과 그 반대 쪽인 고개너머 동쪽의 대치리 연화동 쪽 사이를 잇는 등하행 산길이 넘나드는 고갯길,아침재다(15시20분).가뿐 숨을 가다듬고 마른목까지 축인 뒤 오르막 산길로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다.
가풀막진 오르막은 게다가 너덜겅의 바위 오르막이다.무릎의 관절을 괴롭히는 가풀막진 너덜겅을 헐떡헐떡 올려치고 한 차례 더 가파른 치받잇길을 애면글면 올려치면 비로소 오르게 되는 붕긋한 멧부리가 해발447m의 연대봉(蓮台峰) 정상이다(15시52분).연대봉 정상은 봉수대터처럼 크고 작은 돌들로 기단을 2중으로 쌓았는데,막상 한복판의 봉수대 자리에는 원뿔형의 돌탑1기만이 우뚝하다.이러한 행색의 연대봉 정상에서의 조망이야 더 이상의 찬사를 위한 수사(修辭)는 끼어들 여지가 없어보인다.
조금 후에 득달하게 될 남해대교와 새로 건설된 노량대교,그리고 울돌목과 남해 한려수도의 아름답고 화려한 풍광이 한폭의 진경산수화를 감상하는 것처럼 수려하다.조망의 연대봉 정상을 뒤로하고 내리받잇길을 따라 30분여의 발품이면 노량리(구 노량) 마을에 이르고 마을 앞에는 남해도를 손쉽게 넘나들 수 있는 오늘 산행의 날머리이자 낙남금오지맥의 종착지인 남해대교가 기다린다(16시30분).
-바닷가나 강변에는 으레 바람이 쉬어가게 마련인데,바람 한 점 불어오지 않는다.눈이 부시게 아름답고 화려한 풍광으로 이를 대신하시라는 자연의 오만함인가.어쨌든 금년들어 처음으로 느껴보는 한여름의 산행을 방불케한 하루는 아니었는지.동지섣달이라면 해거름인데, 아직도 반 밖에 기울지 않은 것처럼 햇살은 한낮이나 다를 게 없다.
(산행거리; 12.7km. 소요시간;4시간40분) (2021,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