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11-12장, 사울의 승리와 사무엘의 당부, 24.3.6, 박홍섭 목사
사울이 왕으로 세워진 후 암몬 왕 나하스가 길르앗 야베스 땅을 침략했습니다. 이때 야베스 사람들은 나하스와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합니다. 11;1을 보십시오. “우리와 언약하자 그러면 우리가 너를 섬기리라” 섬기겠다는 말은 나하스를 자신들의 왕으로 인정하겠다는 뜻입니다. 지금 이때가 언제입니까? 하나님께 왕을 달라고 그렇게 고집을 피워서 막 사울을 왕으로 세운 때입니다. 우리는 이미 10:17-27절까지 사울을 공식적인 왕으로 세운 절차와 내용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미스바에 불러모아 제비를 뽑는 방식으로 사울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왕이 다스릴 나라의 제도를 백성에게 말하고 책에 기록하여 여호와 앞 성소에 두고 백성들을 각기 집으로 돌려보내었습니다. 사울도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자들과 더불어 기브아의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바로 11장 1절의 암몬 왕 나하스의 침략 사건이 일어납니다. 사울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반대했던 인간 왕을 고집해서 허락받은 왕입니다. 그들이 왜 왕을 구했습니까? 8:19-20을 보십시오.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우리도 다른 나라들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하는지라” 이스라엘이 왕을 구한 가장 큰 이유는 다른 나라의 왕처럼 자기들을 대신해서 싸워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왕을 달라는 이들의 요구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버린 악한 요청이라고 말씀하시면서도 이스라엘이 원한 요구 조건에 가장 적합한 사람으로 사울을 선택하여 왕으로 세워주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른 나라가 쳐들어오면 사울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싸워달라고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바로 항복합니다. 암몬 왕 나하스에게 우리가 당신을 왕으로 섬기겠으니 제발 우리를 공격하지 말고 우리의 항복을 받아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리고 온갖 조롱과 모욕을 당합니다. 11:2을 보십시오. “암몬 사람 나하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오른 눈을 다 빼야 너희와 언약하리라. 내가 온 이스라엘을 이같이 모욕하리라” 이런 협박과 조롱을 당합니다. 이는 단순히 이스라엘을 향한 모욕과 조롱 정도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조롱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스라엘이 그토록 원했던 왕, 자신들을 위해 다른 나라와 싸워줄 왕으로 세워진 사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습니다.
11:3-5을 보십시오. 일주일의 말미를 구해 전령들을 이스라엘 각 지파에게 보낼 때도 따로 사울에게 요청을 하지 않고 심지어 연락도 따로 하지 않습니다. 사울도 이 소식을 밭에서 소를 몰다가 백성들이 우는 소리를 듣고 알게 됩니다. 사울은 지금 왕으로 세움을 받았지만, 전혀 왕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도 사울을 찾지 않습니다. 그에게 도움을 구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려면 왜 왕을 구했습니까? 심지어 사울을 찾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도 않습니다. 아무도 하나님 앞에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냥 바로 항복해버리고 조약을 요청했습니다. 그마저도 거절당하고 조롱과 멸시를 받고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서도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고 그들이 그토록 집요하게 원해서 세워주신 사울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을 잊고 있다는 뜻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하나님에 관한 인식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삶 가운데 있지 않습니다.
놀라운 점은 이스라엘이 이렇게 하나님을 까맣게 잊고 있는데 하나님은 이들을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6-7절을 보십시오.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의 노가 크게 일어나 한 겨리의 소를 잡아 각을 뜨고 전령들의 손으로 그것을 이스라엘의 모든 지역에 두루 보내어 이르되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의 소들도 이와같이 하리라 하였더니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매 그들이 한 사람같이 나온지라” 하나님의 영, 성령이 사울에게 임하여 역사하자 상황이 급변합니다. 사울이 군사를 모으는 징집령을 내리자 이스라엘이 삼십만 명, 유다 백성이 삼만 명, 총 삼십삼만 명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모욕하고 조롱하던 암몬 왕과 그의 군대를 패퇴시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구원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이 싸움에서 누가 이스라엘을 구원했습니까? 사울입니까?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그토록 원했던 왕정 제도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영, 곧 성령 하나님께서 이 싸움을 주도하셔서 암몬 왕 나하스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사울은 그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도구로 사용하셨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아직 이 사실을 모르고 이 승리에 고무되어 사울만 주목합니다. 그전에는 사울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도움도 요청하지 않고 있다가 승리하니까 사울이 승리를 주었다고 생각하고 사울을 높입니다.
12-13을 보십시오. 전에 사울을 멸시하고 그의 왕권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끌어내어 죽이려고 합니다. 왜 이런 말을 합니까? 이번 전쟁의 승리가 사울 때문에 주어졌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은 이런 백성들을 이끌고 길갈로 가서 다시 하나님께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을 왕으로 추인하여 언약을 갱신하고 다시 나라를 새롭게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마지막 고별설교를 합니다. 12장이 그 내용입니다.
그 주된 내용이 무엇입니까? 먼저 1-5은 사무엘의 자기 사역 회고입니다. 자신이 지난날 동안 백성의 지도자로서 언약에 충실했음과 깨끗한 삶을 살았다고 천명합니다. 그리고 6-15절까지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나님을 잊고 하나님께 반역했으며 우상을 숭배했는지를 회고하면서 지금 이들이 왕이 구한 행위가 얼마나 악한 행위인지를 이 전쟁을 통하여 확인했다고 책망합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배신하고 우상을 섬기는 이들을 징계하셨고 그때마다 사사를 통해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돌아서서 또 여호와를 배반하고 죄를 짓고 마침내 왕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요청을 허용하시고 사울을 세워주셨음에도 그 왕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들을 구원해주셨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에게 왕의 유무는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왕이 없을 때에도 사사를 통해 구원해주셨고 왕을 허락했을 때는 사울을 통해 구원하셨습니다. 사무엘은 고별설교를 통해 너희에게는 왕의 유무보다 하나님 앞에서 새로워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누가 왕이 되든지 왕과 백성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며, 거역하면 받을 심판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당부합니다. 우상을 버리고 사시고 참된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하며, 하나님의 통치 수단에 불과한 인간 왕을 의지하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만 붙들고 의지하여 다시는 하나님을 잊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사무엘은 열방과 같이 왕을 구한 너희들의 죄가 얼마나 큰지를 이적을 통해 확인시킵니다. 16-18을 보십시오. “너희는 이제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희 목전에서 행하시는 이 큰일을 보라. 오늘은 밀 베는 때가 아니냐 내가 여호와께 아뢰리니 여호와께서 우레와 비를 보내사 너희가 왕을 구한 일, 곧 여호와의 목전에서 범한 죄악이 큼을 너희에게 밝히 알게 하시리라. 이에 사무엘이 여호와께 아뢰매 여호와께서 그날에 우레와 비를 보내시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와 사무엘을 크게 두려워하니라” 지금 이때는 밀을 거두는 시기로 건조해서 비가 내리지 않는 때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사무엘의 기도를 들으시고 천둥과 비를 내리심으로 백성들이 열방과 같은 왕을 구한 일이 얼마나 악한 일이었는지를 확증시켜 주십니다. 왜 이렇게 합니까? 지금 너희들 앞에 있는 사울 왕을 구한 것이 얼마나 불 신앙에 근거한 미련한 일이었는지를 잊지 말고 그럼에도 너희들을 구원하신 너희들의 참된 왕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뜻입니다.
이에 하나님이 진노하시어 자신들을 죽음으로 치실지 모른다는 큰 두려움에 빠진 백성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사무엘에게 기도를 요청합니다. 19절이죠. “모든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가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 사무엘은 이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제발 여호와를 따르는 길에서 돌아서서 헛된 것을 따르지 말고 오직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만 섬기라고 촉구합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결단코 범하지 않을 테니 너희들은 너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여호와께서 자신의 이름을 위해서도 너희들을 버리지 않으실 신실하심을 믿고 그분을 유일한 소망으로 삼고 오직 그를 경외하고 진실하게 섬기라고 당부합니다. 그리고 만일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고별설교를 마칩니다(20-25).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 붙들어야 할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들이 붙들어야 할 것은 왕의 제도 자체가 아닙니다. 그들의 참된 왕이 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들을 구원하고 승리하게 하시는 원인은 인간 왕의 능력이 아니라 사울에게 성령을 주셔서 승리케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감동하심과 힘주심입니다. 우리도 동일합니다. 우리도 이스라엘처럼 늘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리의 욕심을 위해 악을 행하고 죄를 짓습니다. 유익하게도 하지 못하고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들을 꿈꾸고 따르는 삶을 살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징계하시면 두려워하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사울에게 성령을 주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사무엘의 고별설교를 통하여 그들을 다시 세워주신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교회를 통하여 변함없는 긍휼하심과 사랑으로 인도하시고 다시 은혜를 주셔서 새롭게 살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교회를 통하여 허락하신 공적 예배와 공적 기도회의 모임마다 다시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 결과 우리를 불쌍히 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 되고 있냐고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징계하실지언정 우리를 버리지 않고 인도해가시는 하나님의 열심과 자비하심이 우리의 유일한 믿음의 근거가 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 하나님을 잊지 말고 다시 하나님 앞에 서라고 당부하시는 주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까? 악을 행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 자기만 사랑하는 지독한 이기심의 삶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다운 삶으로 돌아오라고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그 마음에 응답하고 있습니까? 그런 물음으로 우리 교회와 자신을 돌아보면서 하나님께 나아가 은혜를 구하는 저녁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