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회차(40구간) : 화령재/450봉/산불감시초소/봉황산/660봉/비재(4/22)
*위치 : 경북 상주시 화서면 상곡리, 이동시간 2시간, 개인산행
*코스 : 화령재(320m)-450봉-산불감시초소-(4.5km)봉황산(740.8m)-660봉-(3.6km)비재(330m)
*산행거리 및 시간 : 8.1km, 화령재 9시도착 식사후 10시등산시작, 비재 14시20분, 4시간20분
(식사시간과 진달래꽃 따는데 1시간 소비)
*날씨 : 낮기온이 영상15도 이상으로 따뜻하며 화창하여 등산하기 좋은 날씨
신의터재-화령재-비재 구간중 화령재까지는 4월19일 가고파산악회 따라 등산을 하고
남은 화령재에서 비재 구간의 등산을 위해 승용차로 집에서 7시 출발,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대로
중부고속도로를 가다가 대전근처에서 경부를 타고 다시 당진 영덕간 고속도로에 진입하여 충북
음성을 거쳐 상주시 화서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화서면에 있는 화령장 전적비 앞을 지나
화령재에 9시 정각에 도착한다. 화령재에서 간단하게 컵라면과 김밥, 막걸리등으로
아침식사후 등산준비를 하여 10시경 비재를 향해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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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령정에 잘 기술되어있는 화령재의 내용>
옛 상주를 기록한 상산지에 본주의 산은 상령 물은 낙강 이라 했다. 백두에서 태백을 거처 소백에
이르는 큰 줄기의 맥은 상산을 애워싸고 있는데 문장대와 이곳 봉황산은 험준하지만 수려한 기암으로 구름위에 높이 솟아 정기로 뭉친 영산이며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이다. 상주의 서편은 곧 화령이고 령의 서편은 충청도 보은이며 화령은 소제(蘇薺) 盧守愼의 향리이며 달천의 운계서원과
미산의 봉무서당이 있어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며 이처럼 화령은 문향으로 산수가
기절한 곳이 많은 산간의 정풍어린 곳이다. 신라시대 건비군(建匕君) 영달비헌 (苓達匕縣)으로
그 후 경덕왕 때 화령군으로 개명해 고려까지 이어오다 조선 태종 13년 화령현으로 상주목에
속했고 고종32년 (1896)에 상주군 화서면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서남북의 십자도로가 트여 중화지역의 행정 경제의 중심지이며 교통의 요충지이며 산악이
천연요새로서 사산과 국사당 봉수를 중심으로 국사봉과 율림의 노고산성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백제 군사를 물리친 백화산의 금돌성 병영의 야망을 키운 장암과 하송의
병영성(城山山城) 은 신라 백제, 고구려의 접전지였다.
임진왜란을 당하여는 정기룡 장군이 북강하는 왜군을 용화지구 전투에서 물리치고 청계사는
창의군의 항쟁의 근거지였다. 또한 6.25동란 때는 괴뢰군 15사단 병력 일천 명을 사살한 반공전선의 유적인 화령장 지구 전적기념비가 있는 등 옛 부터 국방의 요충지였다. 여기 소백산맥의 준령을
넘나들며 상주를 방문하거나 이곳을 지나는 길손에게 상령 또는 화령이란 이름을 지닌 화령재
산마루에 옛빛이 찬란한 연륜을 자랑하고 역사의 현장을 소개하고자 이 정자를 건립하였다.
1990년 6월 상주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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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령장 전투는 한국전쟁 당시 남하하는 북한군 제15사단 48연대와 제49연대를 한국군
제 17연대가 하천과 주변의 고지 등의 지형을 잘 이용하여 화령장 일대에 매복 기습하여
북한군 1,000명이 넘는 전사자를 내고 50여명의 포로를 사로잡는등 대성과를 올렸다고 하며
화령장 전투를 통해서 북한군에 밀려 힘없이 남하 하던 공세를 지연시키고 한국군은
낙동강 방어전선을 구축하여 반격할 수 있는 전열을 재정비할 수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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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령재출발 2시간후인 12시에 오늘 산행 구간에서 주봉 역할을 하고 있는 봉황산 정상도착.
<봉황산(741m)은 1,300 여 년 전 봉황새가 날아들어 30년을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으며 정상이 봉황머리를 빼어 올리고 양 날개를 펼쳐 기상하려는 봉황과 같다하여
봉황산이란 이름이 붙은 산이라고 하는데, 봉황은 우익으로 화서면 상용리와 화남면
평온리를 품고 있으며 좌익으로는 상현리, 신봉리를 품고 있고, 북으로는 형제봉,
속리산, 청화산, 남으로는 윤지미산, 백학산으로 대간 길을 이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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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령재 출발 4시간20분후인 14시20분에 오늘산행 구간의 종착지인 비재 도착
총 4시간20분이 소요된 셈인데 하산길에 식사 시간과 진달래꽃을 따는데 1시간 정도 소비
실제 산행시간은 3시간20분이 소요된 셈이다. 비재에서 택시를 불러 다시 화령재의
승용차 주차한 장소로 이동(요금 15천원)하여 귀경,
무사히 산행을 마치고 귀가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2014년4월22일 저녁
<비재(320m)는 국도 49번 도로 葛嶺에서 분기된 도로이며 화남면 동관리와 장자동 사이에
있는 재로 백두대간에 위치하고 재의 형태가 새가 나는 형국이어서 비재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飛鳥재 라고도 부르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