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행6: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오늘날에도 천사의 존재 여부가 가끔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만 이 세상에는 천사와 같이 아름다운 삶을 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괴로움을 당할 때마다 우리에게 인간 모습의 천사들이 우리를 돕는다는 사실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이웃을 생각할 때 바로 우리 자신이 천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천사 같은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성경 말씀의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1. 아줌마는 천사이신가요? 열 살 된 소년이 뉴욕의 한 신발 가게 앞에 맨발로 서 있었습니다. 멋진 차를 타고 가던 한 여인이 소년을 보고 멈춰 섰습니다. 아름답게 옷을 차려 입은 그녀는 차에서 내려 소년에게 다가갔습니다. “얘야, 왜 그렇게 신발 가게 유리창을 쳐다보고 있니?” “저는 단지 하나님께 신발 한 켤레를 달라고 기도하고 있었어요.” 소년은 꽁꽁 언 발을 동동 구르며 대답했습니다. 그녀는 소년을 데리고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그녀는 종업원에게 양말 열두 켤레를 주문하고 대야와 수건을 부탁했습니다. 이윽고 종업원이 그녀가 부탁한 것들을 가져왔습니다. 그녀는 소년을 데리고 가게 뒤쪽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장갑을 벗고 무릎을 꿇고 앉아 소년의 얼굴과 발을 따뜻한 물로 씻겨 주고 수건으로 구석구석 닦아주었습니다. 그녀는 아이에게 양말을 신기고 가게 중앙으로 돌아와 신발 한 켤레를 샀습니다. 헤어질 때 그녀는 소년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더 편안해지기를 바란다.” 소년은 그녀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아줌마는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이신가요?”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히13:16) 성애성구사 임선재 장로님 이야기입니다. 그가 찢어지게 가난할 때 심장병에 걸렸습니다. 그런데 40만원이 없어서 수술을 못하고 죽어갈 판이었습니다. 그때 어떤 천사 같은 사람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아 기적적으로 생명을 구하였습니다. 임 장로님은 생활형편이 나아지자 40만원을 들고 세브란스병원 심장병 담당 의사를 찾아가서 내밀었습니다. 의사는 웬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네, 이 곳에서 나는 심장수술을 하였습니다. 그때 40만원이 없어서 죽을 뻔하였습니다. 지금도 그런 환자들이 없으란 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긴급하게 돈 없는 환자가 오면 누구라도 좋으니 거절하지 마시고 이 돈으로 고쳐 주십시오.”임 장로님은 매년 심장병 환자 1명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6:9∼10)
2. 불에 타 버린 천사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딤전6:18) '좋은 생각'에 나온 글입니다. 나에게는 고모가 한 분 계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고모를 볼 때마다 “다른 사람은 다 못 가도 저분만은 천당에 가실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고모는 유별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고모가 세인의 주목을 끌게 된 이유는 그의 구제 생활에 있었습니다. 시골에 홀로 사시는 노인들을 비롯하여 가난한 이웃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하시는 일 중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길거리의 거지들을 한데 모아 먹이는 일이었습니다. 농촌이 바쁜 철이 되면 거지들을 대여섯 명씩 데리고 와서 우리 집 일을 도와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 잊혀지지 않는 거지가 한 명 있습니다. 아마 가장 오랫동안 고모를 따라다녔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어느 추운 겨울 밤 모닥불을 피워놓고 잠을 자다가 옷에 불이 붙어서 심한 화상 입은 것을 고모가 병원에 입원을 시켰는데, 치료비가 너무 많이 들어 어쩔 수 없이 다리 하나를 잘라야만 했다는 것이다. 이듬해 겨울, 나는 초라한 초가집 단칸방에서 혼자 공부를 하고 있었다. 밤은 깊어 가고 거리는 조용했습니다. 가끔 바람에 나뭇잎 날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습니다. 열한 시쯤 되었을까.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습니다. 왠지 무서운 생각이 엄습해 왔습니다. 조심스레 문을 열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두컴컴한 마당 가운데 흉칙스런 옷차림에 목발을 짚은 그 애가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무서운 생각은 사라졌지만 갑자기 나의 머리 속은 깊은 갈등으로 가득찼습니다. 들어오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가라고 해야 할까. 그는 아무 말 없이 서 있기만 했습니다. 침묵이 계속 흘렀습니다. 나의 눈을 바라보는 그 애의 모습이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습니다. “제발 나한테 가라고 하지 마세요. 날씨는 너무 춥고 전 갈 곳이 없어요. 그냥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만 있을 게요. 제발 들어오라고만 해 주세요.” 하며 간절히 부탁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난 마음이 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모습이 성 프란체스코의 이야기에 나오는 문둥이의 모습과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나는 무거운 입을 열었습니다. “고모네 집에 가지 왜 여기에 왔니? 어서 고모네 집에 가 봐.”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는 아무 말 없이 서서히 목발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밤 나는 그의 뒷모습이 아른거려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고모가 오셨습니다. 고모는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봉기야, 어젯밤에 그 애가 죽었단다. 모닥불 옆에서 자다가 옷에 불이 붙어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외치니까 이웃집에서 뛰쳐나와 물을 부었는데 그때는 이미….” 고모는 어젯밤에 철야기도 가느라 집을 비웠었고, 마침 대문이 꼭 잠겨 있었다는 것입니다. 내 가슴이 쿵 하고 울렸습니다. 성 프란체스코는 문둥이의 손발을 씻겨 주고 목욕까지 시켜 주었는데, 난 그를 불에 타서 죽게 하다니…. 그 날 밤, 마당에 서 있던 그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좀 들어가도 될까요?" "안돼" "구석에 쪼그리고 있을께요" "안 된대도" "제발 들어오라고만..." 죽어버렸다던 거지애는 쉬지 않고 내 가슴에 속삭이고 있습니다.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잠3:27,28)
3. 우리 곁에 천사들이 있기에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가 어느 날 가난한 집을 심방하게 됐습니다. 그때 그에게는 2실링6펜스뿐이었습니다. 그가 찾아간 집에는 갓난아이를 안은 어머니가 몸져누워 있었습니다. 그는 속으로 ‘내가 가진 돈이 3실링 6펜스라면 이 가난한 여인에게 1실링을 기쁘게 줄텐데!’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기 엄마에게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늘에는 자비롭고 사랑 많으신 아버지가 계십니다”라고 위로했습니다 그때 그의 마음 속에서는 ‘이 위선자, 이 사람들에게 사랑 많으신 하나님 운운하면서 주머니에 돈을 움켜쥐고 있다니!”하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받은 그는 아기 엄마에게 자기가 갖고 있던 돈 전부를 꺼내 주었습니다. 단칸방으로 걸어오는 그의 발걸음은 빈 주머니만큼이나 가벼웠습니다 다음날 아침 굶을 수밖에 없는 그에게 10실링 짜리 금화 하나가 우편으로 우송돼왔습니다. 그는 그 날 아침 성경의 진수를 맛봤습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주시리라”(잠 19:17)
사랑의 클리닉 이병욱 원장의 글입니다. 몇 개월 전 병원에 40대 중반의 부부가 미소를 지으며 찾아오셨습니다. 남편이 암으로 고생하시고 계셨습니다. 첫인상이 부부가 서로를 참 사랑하시는구나 하고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픈 것을 부인에게 미안해하고 부인은 부인대로 더 잘해 드리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암세포가 척추로 전이된지라 몸을 가누기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 후 어느 날 그 분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환우는 더운 날씨에 앉아있기도 힘든 처지인데 여전히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습니다. 복부에 복수도 차고 힘든 가운데 있었습니다. 같이 기도했습니다. “주님, 기적을 나타내주세요. 건강한 몸으로 이 부부가 더욱 사랑하며 기쁨과 소망 가운데 이 병마를 털고 일어나 주님의 일을 많이 감당하게 해주세요.” 부인의 눈에 이슬이 맺혔습니다. 같이 수박을 나누며 이야기했습니다. 선교지에도 한번 가보고 싶다고도 했습니다. 그래서 몸이 회복되어 내년에 필리핀에 의료 선교를 같이 가자고 제안도 했습니다. 헤어짐이 아쉬웠습니다. 병세가 위중하여 혹시 다시는 못 뵐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기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저 분 살려주세요. 아직도 아이들이 어립니다.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알지 못하오나 귀한 가정의 행복을 깨뜨리지 마시고 많은 날을 연장시켜 주시길 빕니다.” 집으로 올 때까지 가족들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계속 기도가 되었습니다. 이후 이분은 세 달을 더 사셨습니다. 참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이 부부의 사랑을 기쁘게 보시고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 듯합니다. 부인을 통해 며칠전 남편이 하늘나라로 갔다고 그동안 감사의 인사를 전화로 받았습니다. 오늘은 췌장암으로 힘들게 투병하시다 돌아가신 환우의 아들의 전화도 받았습니다. 할머니도 다른 환우보다 6개월 정도 더 사셨습니다. 아마도 가족들의 지극 정성인 듯합니다. 많은 암 환자를 진료하다보면 참으로 환자와 보호자들로부터 감동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담대히 기쁨으로 병마와 싸워 견디는 환우를 통해서, 하루하루 생명의 연장을 감사함으로 병 수발하시는 보호자 분들을 대하고 있으면 하루의 바쁜 일상의 피로로 지친 어깨가 어느 듯 회복됩니다. 의사를 감동시키는 우리 곁의 천사들이 있기에 오늘도 외래는 기쁨의 공간이 됩니다. 우리 곁에 천사들이 있기에 우리의 하루는 행복합니다. 어렵고 지치고 고통과 고난 가운데 힘들 때마다 우리 곁으로 보내신 하나님의 천사들을 만나고 힘을 내어 전진합시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3:23)
3. 성 프란체스코에 관한 일화입니다. 어느 비바람이 심하게 휘몰아치는 밤 누군가가 프란체스코의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문을 열고 나가 보니 초라한 거지 한 사람이 비에 온몸이 젖은 채 벌벌 떨면서 먹을 것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프란체스코는 쾌히 그 거지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거지는 얼굴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지고 코가 문드러져 나간 나환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개의하지 않고 음식을 대접하고 갈아입을 옷을 주고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거지는 프란체스코의 침대에 다가오더니 추워 죽겠으니 함께 잘 수 없겠느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나환자의 몸에서 흘러내린 피고름과 진물, 썩은 악취 때문에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지만 프란체스코는 오히려 그 거지를 자신의 두 팔로 안고 자신의 체온으로 그 거지의 몸을 따뜻하게 녹여 주었습니다. 새벽기도 시간에 프란체스코가 눈을 떠보니 거지는 온데간데 없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되어 잠자리를 살펴보니 거지와 같이 잔 흔적조차 없고 오히려 방안은 깨끗하고 향기로 가득했습니다. 그 순간 프란체스코는 간밤에 누가 자신을 찾아왔었는지를 깨닫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잠14:21)
4. 소록도의 두 천사 소록도에는 40여년간 한센병 환자들과 울고 웃으며 애환을 나누어온 두 천사가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수녀인 마리안느(68세)와 마가레트(67세)입니다. 모두 가기를 꺼리는 곳에서 순수한 자원봉사자로 살아왔습니다. 정부보조금 10만원과 텔레비전도 없는 방에서 사과궤짝 만한 장롱과 침대 한 개로 생활합니다.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환자를 돌보는 수녀들은 생활비를 줄이느라 속옷도 직접 꿰매 입습니다. 여러 언론사의 기자들이 그들을 만나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기자들이 온다는 이야기만 들으면 그들은 멀리 숨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좋아서 하고 있는 일을 세상 언론이 꼬치꼬치 캐물을 필요가 무엇이 있겠느냐는 것이 주위사람들의 답변입니다. 모두가 드러내기를 원하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는 세태에 묵묵히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며 오직 하나님께만 인정받기를 원하는 그들은 분명 이 어두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 한국의 목회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이 가슴깊이 새겨보아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 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마6:2-4)
5. 군복 입은 천사 어느 날 할머니가 병으로 쓰러지셔서 병원에 입원을 하셨습니다. 할머니의 신장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의사들은 당장 수혈을 하지 않으면 그 날 저녁을 넘기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할머니의 혈액형이 Rh- AB라는 데 있었습니다. Rh- AB는 요즘도 구하기가 힘들지만, 혈액은행도 없고 혈액을 공급할 운송시설도 없던 그 당시에 Rh- AB 혈액을 구하는 일을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식구 모두가 다 검사를 받아 보았지만 그러한 혈액형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할머니를 살릴 희망은 없다고 의사가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작별인사를 하도록 친척들을 데리러 갔습니다. 병원을 나서는 아버지의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려가는데 한 군인이 엄지손가락을 세워서 차를 태워 달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크게 상심하여 있었기 때문에 그 군인을 태워 줄 마음이 없었지만 어떤 큰 힘에 끌린 듯 차를 세우고 군인이 차에 타도록 허락했습니다. 아버지의 눈에서 뺨으로 흐르는 눈물을 본 그 군인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Rh- AB혈액형을 찾을 수 없어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되었다고 눈물을 흘리며 설명하면서 오늘 저녁 안으로 같은 혈액형을 찾지 못하면 돌아가시게 될 것이라 설명했습니다. 아버지가 말을 마치자 그 군인은 자신의 손을 내밀어 손바닥을 펼쳐 아버지에게 내밀어 보였습니다. 그 손바닥 위에는 그의 군번표가 있었고 거기에는 혈액형이 Rh- AB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군인은 아버지에게 당장 차를 돌려서 병원으로 갈 것을 재촉하였습니다. 할머니는 그 일이 있은 후 47년이나 더 사시다 1996년에 돌아가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 군인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가끔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 군인은 사람이 아니라 군복을 입은 천사였다" 고 말입니다.
6. 천사장과 바보 왕초 정신 지체아 수용시설에서 보육사 담임 목사로 일할 때였습니다. 정신 지체 아동들과 24시간 함께 살면서 돌보는 보육사들 중에는 신앙심 깊고 마음씨 착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봉사하러 오시는 분들은 그런 보육사들을 보고 “천사 같다”며 무척 칭찬했습니다. 그런 천사들의 목사로서 나는 당연직으로 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들의 딸들이 봉사하는 것을 본 부모님들은 난리를 쳤습니다. “이 바보 같은 것아, 뭐가 모자라 저런 미친 애들 뒤치다꺼리를 하는 거냐!” 그 순간 나 역시 창졸간에 천사장에서 미친 아이들 돌보는 바보들의 왕초로 전락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장애인 시설에서 목회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무서운 이중성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장애인들을 돌보는 일을 남의 집 딸이 할 때는 천사가 하는 일이 되고 내 딸이 할 때는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 되는 이중성입니다. 왜 가난한 자들에 대한 테레사 수녀의 사랑은 고귀한 일이 되고 내 자식의 장애인 사랑은 바보들이나 하는 일이 돼야 합니까?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이 귀한 일이면 당연히 그 일은 내게도 귀한 일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 11;1∼2) 여러분 주님의 삶은 설교하라고 있는 게 아니라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 삶의 기준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렇게 훌륭한 사도를 고린도 교회에 보내 주신 것은 사도 바울을 위해 기념비를 세워주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고린도 교회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라는 뜻으로 훌륭한 사도를 허락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곁에 희생의 길, 사랑의 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을 붙여주시는 것은 우리 좋을 대로 은혜와 감동 받는 것으로만 끝내라는 게 아니라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됨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남과 나를 구별해 천사와 바보로 구별하는 한 우리는 결코 인생의 주인공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감동은 있으나 영화 속의 세상과 실제 존재하는 삶은 언제나 다르듯이 항상 감동만 받고 은혜만 받는 삶 속에는 열매란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열매는 삶의 문제이지 은혜와 감동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제는 더 이상 천사와 바보를 구별하지 말고 그 일이 가치 있는 일이고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천사처럼 보이면 우리도 힘써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때때로 원망과 불평도 해봅니다만은 우리는 너무 많이 받았고 너무 잘살고 너무 편안합니다. 너무 안일한 가운데 있어서 주님의 뜻까지 거역할 때가 많은 저희들입니다. 저희들의 부끄러움과 저희들의 잘못한 일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거룩한 성도의 심성으로 돌아가 이웃을 돌보고 형제를 돌보고 냉수 한 그릇에 목숨을 건 불쌍한 심령들을 돌볼 줄 아는 그런 사람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천사와 같은 아름다운 마음을 가져서 하나님께서 이 땅에 큰복을 내리시는 그러한 우리가 되고 우리 민족이 되고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