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힐링로드 84 불국사역
기다리거나 기다리지 않아도 기차는 온다. 경주 불국사역은 올해로 설립 운영된 지 딱 100년이다. 1918년 11월1일 처음 운행을 시작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지금까지 숱한 사연을 실어 나르고 있다. 불국사역 대합실은 오늘도 여전히 기다리는 사람들의 초조한 시선이 가득하다.
불국사역은 이름처럼 경주 불국사를 찾는 사람들이 거쳐 가는 전초기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때문에 50대 이상의 사람들은 불국사역으로 추억의 수학여행 프로그램으로 꾸준히 재방문의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또 어린이들의 체험학습장소로도 인기다.
불국사역은 역사가 가진 건축물의 문화재적인 가치와 함께 사계절 지지 않는 꽃밭과 공원으로 꾸며져 힐링센터 기능을 하면서 꾸준한 방문객들을 확보하고 있다.
불국사역 인근에는 영지, 원성왕릉, 성덕왕릉과 효소왕릉, 보문관광단지, 불국사 등의 다양한 역사문화사적들이 즐비해 역은 늘 관광객들의 전초기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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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역사
경주 불국사역은 경주에서 울산으로 가는 7번국도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 세계문화유산 불국사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해 역 이름이 불국사역으로 지어졌다. 이름처럼 열차를 이용해 불국사를 찾는 사람들은 반드시 불국사역을 지나가게 된다.
불국사역 역사는 1918년에 현재 불국사역 동편 200m 지점에 소정역으로 역사가 건립됐다. 1936년 현재 위치로 옮겨 일본인 건축가의 손으로 재건축 되었다.
불국사역은 조선시대 전통 건축양식으로 일제강점기에 평양, 전주 남원, 남양, 북청, 군선, 명천, 수원, 경주역과 같은 시기에 건립되었다. 남은 역사는 경주역과 불국사역사가 유일하다.
한국철도공사가 2013년 불국사역사를 철도문화재로 지정했다. 역사는 열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표를 사고 기다리는 대합실과 사무실이 있는 본체, 부속건물 화장실과 숙소, 기술자들이 머물면서 사무를 보는 건물, 수리하고 도구들을 보관하는 창고 등으로 모두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축물이다. 레일과 레일 사이에 고객대합실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목재건물도 요즘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당시에 지어진 가건물이지만 깨끗하게 보존되어 이용되고 있다.
불국사역사와 함께 100년의 시간을 함께한 나무가 있다. 역에 내려서면 역사로 들어서는 입구에 35그루의 가이즈카 향나무가 사계절 푸른빛으로 방문객들을 맞는다. 고 박정희 대통령이 경주를 자주 방문하면서 아꼈던 나무라고 전한다. 박 대통령이 조명을 밝혀 야간에도 향나무의 정취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외부에서 불국사역으로 들어서면 늦가을까지 월동초 같은 두꺼운 푸른잎 사이로 안개꽃처럼 노란꽃을 매달고 있는 월계수나무를 볼 수 있다. 역 광장에는 좌우로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쉼터 가운데는 팔각정자가 있어 여름이면 마을 사람들이 둘러앉아 수박, 옥수수를 나누어 먹는 정나눔의 자리가 된다. 불국사를 찾는 사람들이 기차에서 내려 길을 물으면서 경주의 인심을 느끼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불국사역은 여행자들의 추억이 담긴 장소일 뿐 아니라 국민들의 애환이 서린 유서 깊은 역사적 산물이다.
오래된 역이지만 지금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줄어들지 않는다. 하루 평균 주중에는 500~600명, 주말이면 1천500여명의 방문객들이 찾는다. 특히 여름방학, 휴가철, 명절에는 하루에도 5천여명에 이르는 방문객들이 불국사역을 찾아 성황을 이룬다.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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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수학여행
수학여행이라면 경주다. 경주하면 또 불국사가 첫 번째로 연상된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추억을 찾아 회귀하는 것 같다. 불국사역을 찾아오는 장년들의 모습에서 그러한 습성이 묻어난다.
불국사역에서 불국사까지는 약 3㎞ 거리다. 토함산 석굴암까지는 15㎞, 아사달아사녀의 애달픈 사연이 깃든 영지와 원성왕릉까지도 3㎞ 남짓 된다. 성덕왕릉과 효소왕릉, 신문왕릉과 통일전, 선덕여왕릉, 사천왕사지 등의 많은 역사문화유적지들이 불국사역에서 승용차로 5분 거리다.
불국사역이야말로 수학여행 1번지라 해도 누구나 쉽게 토를 달지는 않는다.
오랜 역사를 가진 불국사역의 상징적인 이미지 등으로 주변 어린이집과 초등학생들까지 체험학습을 위해 찾는다. 이 때문에 불국사역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이중고를 겪는다. 어린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직원이어도 한여름 뜨거운 날에는 비지땀을 흘리며 혼쭐이 난다.
부산이나 서울, 수도권지역에서도 심심치 않게 세련미를 풍기는 숙녀들이 단체로 추억의 수학여행길에 올라 불국사역을 방문한다. 그녀들을 안내하는 역할은 대부분 정년퇴직을 앞둔 홍만기 역장의 몫이다. 불국사역의 오랜 역사와 미래에 대한 자랑은 물론 주변 문화역사까지 침을 튀겨가며 소개하는 열성적인 문화관광해설사의 몫을 하는 역장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불국사 가는 길
불국사역 주변은 역사문화가 면면히 묻어나는 사적지 일색이다. 역에서 승용차나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도 즐길거리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역에서 빠져나와 쉼터를 지나면 남쪽 100m 지점 개울가에 요즘 보기 힘든 빨래터가 있다. 불국사 토함산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개울이다. 개울 곳곳 지하에서 용솟음치는 물줄기가 보인다. 온천수여서 한 겨울에도 손이 시리지 않다. 따뜻한 물이 흘러 겨울에도 개울가에는 파랗게 미나리가 돋는다.
불국사역 쉼터 옆으로는 모양이 좋은 소나무가 노래 가사처럼 서있고, 대나무와 메타쉐콰이어가 심어져 가로수길을 잇는다. 그 길을 따라 5분만 걸으면 불국사시장이 도심지 냄새를 살짝 담아 다양한 먹거리를 선물한다. 돼지암뽕식당이 퍼떡 눈에 들어온다. 4일과 9일 5일장이 서는 날이면 토함산을 넘어온 양남, 양북과 감포의 싱싱한 해산물과 산나물, 농특산물들이 북새통을 이룬다. 오래된 떡집에도 연신 김을 토해내면서 구수한 참기름 냄새가 진동한다.
역 광장에서 동쪽 정면으로 이어진 길이 불국사 가는 길이다. 대로를 따라 100여m만 걸으면 넓은 공원이 나온다. 신라의 달밤이라 적힌 토함산 닮은 돌비석이 누워있다. 전라도 고흥에서 영호남 화합을 위한다는 의미를 담아, 50t 기중기 2대가 동원돼 옮겨왔다.
공원 가운데는 원형의 거대한 아사달 아사녀 조형물이 햇빛을 받아 번들거려 멀리서도 대번 눈에 들어온다. 조형물 주변에는 벤치가 돌아가면서 놓여있고, 정자가 있어 여행객들과 마을주민들이 정보를 나누는 쉼터가 되기도 한다. 젊은 남녀들은 새로운 아사달 아사녀가 되어 어깨를 감싸 안고 사랑을 키우다 마을 어르신들의 눈살을 찌푸리게도 한다.
공원에서 길을 건너면 사적 제27호로 지정된 방형분이 있다. 경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사각의 고분이다. 네모나게 호석을 쌓아 동서남북에 각각 3구씩의 12지신상의 조각을 세웠다. 남쪽 방향에는 돌문이 있어 지금도 무덤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굴식돌방무덤이다. 무덤 안에는 주검과 널을 얹었던 돌침대와 받침대가 있다. 통일신라시대 말기에 축조된 것으로 짐작된다. 묻힌 사람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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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에서 부르는 연가
“영원한 사랑이 있습니다.” 아사달 조각가가 불국사의 석가탑을 다듬고 있었다. 그의 정인 아사녀는 석가탑이 완성되어 못물에 그림자가 비치기를 기다리다 그만 빠져 죽고 말았다. 탑을 완성한 아사달이 그리운 아사녀를 찾아왔지만 이미 불귀의 몸이 된 것을 보고 자신도 못으로 뛰어들었다. 영원한 사랑이 이루어진 곳이다. 그 이후로 석가탑의 그림자는 못에 비치지 않았다. 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무영지라 부르다 지금은 영지로 불린다. 불국사역에서 3㎞ 남쪽에 있다. 못의 경관이 빼어나 공원과 같다. 곳곳에 쉼터가 조성되어 있는 순환산책로가 데이트코스로 인기다.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사랑의 1번지로 떠오르고 있다.
영지에서 7번 국도를 건너면 신라 38대 원성왕릉이 있다. 왕릉 입구에 주차장이 넓게 조성되어 있고, 석비와 무인상, 문인상, 사자상이 양쪽으로 시립해 있다. 넓은 부지에 12지신상의 호석이 둘러쳐진 왕릉과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소나무숲이 장관이다.
효성왕릉과 성덕왕릉은 불국사역에서 경주시내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오른쪽으로 철길을 지나면 소나무숲 속에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다. 다양한 조형물들이 뛰어난 조경처럼 조성되어 있다.
불국사역에서 동쪽으로 직선으로 난 도로를 따라 가면 불국사와 보문단지에 금방 이르게 된다. 수학여행 1번지 불국사역이 자랑하는 인근지역의 역사문화사적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다.
◆홍만기 역장
“불국사역은 국민들의 애환이 서린 역사적인 기념물로 반드시 존치되어야 하는 곳입니다.”
불국사역의 홍만기 역장은 2020년 폐기될 예정인 철도청의 계획에 반기를 들고 있다. 울산과 부산, 대구와 포항 등으로 향하는 경주시민과 경주를 찾는 여행객들의 편의를 위해 불국사역은 반드시 살려야 한다는 것이 홍 역장의 주장이다.
오래 전부터 불국사를 찾는 경주 관광의 전초기지이자 불국사역 주변 시민들의 삶을 지속하게 하는 수단이요 삶의 터전이라는 설명이다.
홍 역장은 “불국사역에서 불국사, 경주보문단지로 이어지는 모노레일을 설치해 경주를 찾는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불국사역은 꼭 필요한 곳”이라며 “경제적, 문화적인 이유와 함께 국민들의 정서적인 고향을 버려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는 불국사역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역사 주변에 화단을 조성하고, 메타쉐콰이아 거리, 관광안내판 설치 등의 일거리를 찾아 하나씩 해결하고 있다.
특히 주변 주민들을 포함 불국사역에 대한 애정을 가진 사람들을 불러모아 불사조밴드를 만들어 불국사역을 지키기 위한 여론 조성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불사조는 불국사역을 사랑하는 조직위원회 약칭이다. 그는 수시로 회원 확보에 나선다. 역 주변의 주민들은 대부분 회원으로 가입한다. 돼지국밥집 주인, 버스승강장 앞의 25시 편의점은 물론 농협과 면사무소 직원들까지 그의 등살에 모두 회원이 된다.
불국사역 주변주민들은 그의 투혼이 불국사역을 사수하고, 국민들의 추억의 곳간을 풍성하게 하면서 경주 역사문화를 빛나게 하는 초석이 될 것으로 믿는다.
불국사역은 아무래도 철도청의 계획처럼 폐쇄의 길로 가지는 않을 것 같다. 국민 추억의 고향 불국사역은 역사문화 힐링의 쉼터로 오래 달려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