次朴貞齋宜中韻(차박정재의중운) - 길재(吉再)
朝別不朝峴(조별불조현) : 아침에 불조현에서 이별했는데
諸君何所之(재군하소지) : 그대들은 지금 어디로 가 있나?
丹忱由耿耿(단침유경경) : 잊지 못하는 순수한 그 마음으로
哀怨結絲絲(애원결사사) : 슬프다 원통함이 실처럼 이였지
夜色歸雲濕(야색귀운습) : 밤의 어두움에 돌아가는 구름도 젖고
漏聲旅夢遅(루성여몽지) : 물시계 소리에 나그네 꿈도 더디네
莫論忠烈士(막론충렬사) : 충렬을 가진 선비를 논평 하지 말라
義出死生期(의출사생기) : 의리는 죽고 사는 일을 초월한다네.
박의중(朴宜中) : 고려 말기의 文臣(?~?). 자는 자허(子虛). 호는 정재(貞齋). 우왕 때에 밀직
제학으로 명나라와 교섭을 벌여 철령위를 철폐하였으며, 공양왕 때에 한양 천도를 반대하여
陰陽設의 허황함을 역설하였다. 조선 왕조에 들어와서 《高麗史》를 편찬하였다.
저서에 《貞齋集》(정재집) 이 있다.
부조현의 고사 : 고려(高麗)가 멸망하고 조선조(朝鮮朝) 태조(太祖)가 개국(1932년 7월)하자
고려의 유신(儒臣) 신규(申珪), 신혼(申琿), 신우(申瑀), 조의선(曺義先), 임선미(林先味), 이경
(李瓊), 맹호성(孟好誠), 고천상(高天祥), 서중보(徐中輔), 성사제(成思齊), 박문수(朴文壽),
민안부(閔安富), 김충한(金忠漢), 이의(李倚)등 72인의 충신들이 개성 동남방의 부조현(不朝峴)
에서 조복(朝服)을 벗어 걸어 놓고 헌 갓으로 바꿔 쓰고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광덕산 서쪽
기슭에 위치한 두문동(杜門洞)으로 새 왕조인 조선을 섬기지 않고 들어 갔다.
그 뒤 그들은 다시는 이 세상에 나오지 않고 여생을 보냈는데 후세의 사람들이 그들을
˝두문동 72현˝이라고 부르며 칭송하고 있다. 야은도 여기에 속한다.
첫댓글 충의를 노래한 옛사람의 명시 한 편을 읽으니 산란하던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끼게 됩니다. 잘 감상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
사람이 의지대로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이쉽지않지요
莫論忠烈士(막론충렬사) : 충렬을 가진 선비를 논평 하지 말라
義出死生期(의출사생기) : 의리는 죽고 사는 일을 초월한다네.
우국충절의 기게가 섬광처럼 빛나내요
세상에 다시 나올 수가 없었지요
이방원이 두문동을 모두 불태워버렸으니
고귀한 72인의 넋을 기렸으면 좋겠습니다
잘 감상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