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겨울호를 펴내면서
나는 가끔씩 나의 친구들로부터 왜 그처럼 정치에 관심이 많고, 그토록 정치지향적, 혹은 권력지향적인 생각을 갖고 있느냐고 질타를 당하기도 한다. 이제는 포기----아아, 나의 경제적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도서출판 지혜를 설립하고----하고 말았지만, 나는 플라톤의 국가론보다도 더 뛰어난 국가론을 쓰겠다고 결심을 한 적도 있었고, 그 밑그림으로써 [나는 국민총동원령을 선포한다]라는 글을 쓴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나 내가 진정으로 정치에 입문하고자 했었다면, 본격적으로 문학에 뜻을 두었던 1980년대 초부터, 아니, 낙천주의 사상을 정립하고자 결심했었던 1990년대 초부터,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공부를 하고, 또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 최초로 낙천주의 사상을 정립하고, 이 ‘행복론’을 통하여 우리 한국인들을 ‘사상가와 예술가의 민족’, 즉, ‘고급문화인’으로 인도해가고 싶었던 것이지, 정치인이 되고 싶었던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던 것이다.
내가 태어나고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그러나 지극히 유감스럽게도 지난 오천 년 동안 단 한번도 주권국가이었던 적이 없었다. 당나라의 언어가 지배계급의 언어인 적도 있었고, 원나라의 언어가 지배계급의 언어인 적도 있었다. 명나라와 청나라의 언어가 지배계급의 언어인 적도 있었고, 일본어와 영어가 지배계급의 언어인 적도 있었다. 한 나라는 그 나라의 언어와 함께 성장하고 그 언어와 함께 소멸하게 된다. 우리 대한민국은 일제에 의한 ‘조선어 말살정책’이라는 뼈 아픈 경험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우리 한국어의 소중함과 그 아름다움에 대한 자부심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내가 동, 서양의 수많은 사상들을 공부하고 나의 낙천주의 사상을 정립하면서, 모든 사상가는 애국자이고, 인문주의자이며, 우리 인간들의 삶의 본능을 옹호하는 행복론자라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부처, 예수, 마호메트, 아르키메더스, 헤라클레이토스,데카르트, 칸트, 헤겔, 마르크스, 니체, 쇼펜하우어 등도 자기 민족을 구원해냈던 애국자이고, 인류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를 했던 인문주의자이며, 우리 인간들의 삶의 본능을 옹호했던 행복론자였던 것이다.
모든 사상은 낙천주의를 양식화시킨 것이다. 모든 사상가는 개인보다는 이웃을, 자기 가족보다는 사회를, 사회보다는 국가를, 국가보다는 인류 전체를, 인류 전체보다는 우주 전체를 탐구하며, 그 아름답고 풍요로운 이상낙원으로 모든 동식물들을 인도해가는 천지창조주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상가는 인간 중의 인간이며, 사상가는 신들 중의 최고의 신과도 같은 사람이다. 나는 부처처럼, 예수처럼, 모세처럼, 마르크스처럼, 니체처럼, 알렉산더 대왕처럼, 나폴레옹처럼, 셰익스피어처럼, 우리 한국어의 영광과 대한민국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왔고, 또한 나는 나의 낙천주의 사상을 통하여 모든 인간들이 다 함께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향유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모든 사상은 정치학인 동시에 윤리학이다. 모든 사상은 심리학인 동시에 사회학이다. 모든 사상은 과학인 동시에 경제학이다. 모든 사상은 언어학인 동시에 미학이다. 모든 학문의 최종심급은 사상이며, 이 사상을 정립하기 위하여 수많은 학자들이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피비린내 나는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나 모든 사상가는 정치와 윤리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왜냐하면 정치와 윤리가 가장 중요한 우리 인간들의 삶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헤겔, 마르크스, 칸트, 니체, 쇼펜하우어 등, 모든 사상가들의 저서가 바로 그것을 말해준다. 정치는 인간의 삶을 경영하는 것이며, 윤리는 그 경영의 수레바퀴이다. 권선징악의 윤리적 토대 위에서 정치가 꽃 피어나지 않으면 안 되고, 만인행복의 토대 위에서 윤리의 꽃이 피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일예로, 덴마아크인들은 둘만 모이면 협동조합을 만들고, 그들의 수입의 70%을 국가의 세금으로 납부를 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나 지극히 이상하게도 그 협동조합들을 규제하는 법률이 거의 없으며, 어느 누구도 자기 소득의 70%를 세금으로 내는 것에 대하여 불평과 불만을 토로하지 않는다고 한다. 전세계적으로 입법왕국인 우리 한국인들----아침에 법을 만들고 저녁에 그 법을 뜯어고치는 돌대가리 새끼들의 대한민국----의 눈으로 덴마아크인들을 바라본다면, 그들은 아주 미개하고 원시적인 야만인들에 지나지 않을는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지극히 유감스럽게도 덴마아크인들은 고급문화인이며, 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이다.
정치는 국가를 경영하는 것이며, 이 국가의 경영권은 늘, 항상 공명정대하게 행사되지 않으면 안 된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가 다같이 정치적이며 윤리적인 심판관이 되지 않으면 안 되고, 그가 소속된 국가가 분명한 목표를 갖고 그토록 엄청난 예산을 유효적절하게 잘 사용하고 있는지를 감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나라의 국민 모두가 다같이 이처럼 정치적, 윤리적인 심판관이 되었을 때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처럼 사색당쟁으로 이전투구를 벌이거나 ‘부정부패가 윤활유’가 되는 그런 야만의 나라는 없어지게 될 것이다. 덴마아크는 국가의 정의가 살아 있는 투명사회이며, 법이 없어도 그 어떠한 분쟁도 일어나지 않는 아름답고 깨끗한 국가이다.
좀 더 분명하게 말해본다면, 법률이나 규제가 많은 나라는 강도, 살인, 강간, 사기, 횡령,배임, 탈세, 불법이 난무하고 있는 국가이며, 서로가 서로를 상호 의심하고 배척하는 불량배들의 국가에 지나지 않는다. 법률과 규제가 많으면 많을수록 모든 국민들을 범죄인으로 만들게 되고, 그 국가의 운명은 이민족의 지배를 받게 된다. 사법질서 이전에, 좀도둑이 단 한 명도 살 수 없는 사회, 폴리스 라인을 절대로 침범하지 않는 시위대, 다수결원칙을 중요시 하는 국회, 횡령이나 배임이나 탈세를 꿈꿀 수 없는 사회, 어느 누구 하나도 기초생활질서를 무시하지 않는 사회가 되지 않으면 그 국가의 미래의 운명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학자는 사상가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상가는 그가 소속된 국가의 양심이며, 인류의 양심을 대변하는 수호신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아, 우리 한국인들이여, 이제 제발 정신 좀 차리거라!
사법질서를 외치지 않아도 어느 누구 하나 기초생활질서를 무시하지 않는 대한민국을 위하여!
아아, 우리 한국인들이여, 이제 제발 정신 좀 차리거라!
표절학자는 산채로 잡아다가 포항제철소의 용광로에 넣어버리고, 진정한 사상가와 예술가의 민족으로 거듭 태어나기 위하여!
학자의 경쟁력은 국가의 경쟁력이고, 국가의 경쟁력은 학자의 경쟁력이다. 우리 학자들은 하루바삐 사상가가 되지 못한 죄,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들을 입시지옥으로 수장水葬시킨 죄, 가짜 석, 박사 학위를 통해서 짝퉁 정치인들과 짝퉁 인간들만을 대량으로 생산해낸 죄를 역사와 민족 앞에서 진심으로 사죄를 하고 할복자살하기를 바란다.
오오, 모두들 썩었다고 말하는 데, 우리 학자들만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것은 ‘부정부패의 꽃’이라고 말한다.
‘폴리페서, 텔레페서, 커미션페서’ 등, ‘영원한 反개혁의 슈퍼 甲인 우리 학자들이’.......
내가 일본의 최고 부자인 손정의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성김 주한미국대사라고 하더라도, 내가 한국계 프랑스 장관이라고 하더라도,‘우리 한국인’이라는 더럽고 추한 피를 열 번도, 백 번도 더 세탁했을 것이다.
나는 손정의가 왜 일본인보다도 더욱더 자랑스러운 일본인이 되어갔는지, 성김 주한미국대사가 왜 미국인보다도 더욱더 자랑스러운 미국인이 되어갔는지, 한국계 프랑스 장관이 왜 프랑스인보다도 더욱더 자랑스러운 프랑스인이 되어갔는지, 그 심정을 온몸으로 헤아려 보고 있다.
표절이 출세의 보증수표가 되고, 뇌물이 윤활유가 되고, 남북분단과 사색당파가 일년내내 만발하는 우리 대한민국이 너무나도 자랑스럽고, 또 자랑스러운 나머지 그들은 모두가 우리 추한민국에게 등을 돌렸던 것이다....
이처럼 고귀하고, 훌륭하고, 자랑스러운 동포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는 우리 한국인들은 단 한 놈도 이 세상을 살아갈 자격조차도 없는 기생충들에 지나지 않는다.
‘추한민국’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노예민족’이라는 사실도 모르는 이 바보 멍청이 새끼들!!
‘기획특집: 논쟁문화의 장’은 오십팔 번째로 안서현의 [이토록 힘겨운, ‘다른 사랑’의 탄생]을 내보낸다. 지난 시절에 일군의 ‘미래파’라는 시인들이 있었고, 이제는 어느덧 ‘포트스 미래파’에 대한 관측과 그에 대한 조명이 가해지고 있는 것도 같다. 안서현의 글은 ‘미래파’와 ‘포스트 미래파’에 대한 논쟁 사이에서, ‘포스트 미래파’는 ‘서정의 귀환’이 아닌, ‘존재론적 귀환’이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일군의 젊은 시인들, 예컨대 ‘황인찬, 이이체, 성동혁’의 시세계를 살펴보고 있는 것이다.
이번 호의 ‘애지의 초대석’에서는 ‘풀꽃’의 나태주 시인과 ‘추억론의 마술사’인 구석본 시인, 그리고 ‘시간 이미지의 대가’인 이사라 시인을 초대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 1]과 이숭원의 작품론 [하나님 다음가는 창조자, 구석본의 신작시 [추억론] 외 4편과 황정산의 작품론 [기억을 추억하는 기록], 그리고 이사라의 신작시 [말단末端의 사랑] 외 4편과 안서현의 작품론 [문턱의 시간, 그 앞의 존재]를 다 함께 읽고 감상해주기를 바란다. ‘애지의 초점: 이 시인을 주목한다’에서는 강영은 시인과 박정옥 시인, 그리고 박은형 시인의 신작시들을 내보낸다. 강영은 시인의 [녹두] 외 4편과 이성혁의 작품론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쓰는 사랑의 편지], 박정옥 시인의 [소를 보러갔다] 외 4편과 김영범의 작품론 [고독의 높이와 깊이, 아득한 늪의 안과 바깥], 박은형 시인의 [아직 우리는] 외 4편과 전소영의 작품론 [아까보다 조금 더 가까이 왔다]를 또한, 다 함께 읽고 감상해 주기를 바란다.
지면관계상 이성렬 교수의 기획연재와 그밖의 글들은 다음 호로 넘기게 되었다. 여러 필자 선생님들의 너그러운 이해와 양해를 부탁드린다.
계간시전문지 {애지}와 애지문학회가 제정한 제12회 애지문학상 수상작에는 최서림의 [아청鴉靑빛 시간]이, 제1회 애지문학회 작품상에는 김은주의 [이응의 세계]가 선정되었다. 최서림의 [아청빛 시간]은 “시인과 농부라는 모티브”를 통하여, “아청빛 같은 언어를 만들어내고 그 언어를 통해 역사를 치유하고 세상을 다시 보는 안목을 되찾는다. 그러한 깊은 시선으로 빚어진 언어가 마치 농부가 농사를 짓는 것처럼 새로운 생명을 길러 많은 생명을 먹여 살리는 정신의 양식을 만들어” 낸다. 김은주의 [이응의 세계]는 그 “ㅇ”에 “둥근 원인 지구를 끌어와 긍정적 시각으로 아주 사유가 깊은 내포적 가치를 지닌 성찰을 이끌어 내었다. 사물 그 너머 이면을 감지하는 능력이 돋보이며, 특수한 것을 보편적 감각으로 드러내 놓는 필력 역시 대단하다.”
본지는 이번 호에도 [나의 세신사] 외 9편을 응모해온 곽성숙 씨를 애지신인문학상 당선자로 내보낸다. 애지문학상 상금은 5백만원, 애지문학회 작품상은 3백만원이며, 시상식은 애지신인문학상과 함께, 2014년 12월 6일 오후 4시 충남대학교 정심화홀에서 있을 예정이다.
도서출판 지혜에서는 나태주 시인의 시선집 {풀꽃}을 가장 아름답고 멋진 호화양장으로 출간했고, 이 시선집은 대한민국 최고의 시선집으로서 한국출판문화의 지형도를 바꿔나가게 될 것이다. 인적 자원으로나 재정적으로나 모든 것이 열악하고 형편없는 지방문화의 한계를 넘어서서, 우리 {애지}는 무한히 전진하고 또 전진해나갈 것이다.
감히 말씀드리자면, {애지}의 편집자의 능력이 통하는 그런 시대가 온다면, 우리 한국인들은 곧바로, 남북통일을 이룩하고, 세계적인 최고급의 문화인이 될 것이다.
비판만이 위대하고, 또, 위대하다.
비판은 당신의 존재증명이다. 당신은, 누구를, 무엇을 비판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