襄公 19年(紀元前 554年)
十九年春, 諸侯還自沂上, 盟于督揚曰 : 「大毋侵小.」 執邾悼公, 以其伐我故. 遂次于泗上, 疆我田, 取邾田, 自漷水歸之于我. 晉侯先歸, 公享晉六卿于蒲圃, 賜之三命之服, 軍尉司馬司空輿尉候奄, 皆受一命之服.
십구년춘, 제후환자기상, 맹우독양왈 : 「대무침소.」 집주도공, 이기벌아고. 수차우사상, 강아전, 취주전, 자곽수귀지우아. 진후선귀, 공향진륙경우포포, 사지삼명지복, 군위사마사공여위후엄, 개수일명지복.
[解釋] 양공 19년 봄에, 諸侯들이 기수 가로부터 돌아와, 督揚에서 동맹을 맺었는데 그 맹세하는 말에, 대국은 소국을 침략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때 邾나라의 悼公을 생포한 것은, 주나라가 우리 노나라를 정벌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사수 가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우리 노나라 영토를 확정할 때에, 邾나라의 땅을 빼앗아, 漷水로부터 북쪽은 우리 노나라에 반환시켰다. 그리고 진나라 임금은 먼저 돌아가고, 우리 양공이 蒲圃에서 진나라의 六卿을 대접할 때에, 三命의 服을 하사하고, 軍尉, 司馬, 司空, 輿尉, 候奄에게는, 一命의 服을 하사했다.
賄荀偃束錦, 加璧乘馬, 先吳壽夢之鼎. 荀偃癉疽, 生瘍於頭, 濟河, 及著雍病目出, 大夫先歸者皆反. 士匃請見, 弗內. 請後曰 : 「鄭甥可.」
회순언속금, 가벽승마, 선오수몽지정. 순언단저, 생양어두, 제하, 급저옹병목출, 대부선귀자개반. 사개청견, 불내. 청후왈 : 「정생가.」
[解釋] 또 荀偃에게는 한 묶음의 비단에, 구슬을 붙인 것과 말 네 필과 吳나라 壽夢이 바친 솥[鼎]을 증정했다. 荀偃은 그때 병이 나서, 머리에 종기가 났었는데, 황하를 건너, 著雍이란 곳에 이르자, 눈이 툭 튀어나와 앞서 갔던 대부들이 모두 되돌아왔다. 士匃가 면회를 요청하자, 들여보내지 않았다. 계속하여 요구하기를, 「鄭甥만이 가하다.」고 했다.
二月甲寅卒, 而視不可含. 宣子盥而撫之曰 : 「事吳敢不如事主?」 猶視. 欒懷子曰 : 「其爲未卒事於齊故也乎?」 乃復撫之曰 : 「主苟終, 所不嗣事于齊者? 有如河.」 乃瞑, 受含. 宣子出曰 : 「吾淺之爲丈夫也.」 晉欒魴帥師從衛孫文子伐齊.
이월갑인졸, 이시불가함. 선자관이무지왈 : 「사오감불여사주?」 유시. 란회자왈 : 「기위미졸사어제고야호?」 내복무지왈 : 「주구종, 소불사사우제자? 유여하.」 내명, 수함. 선자출왈 : 「오천지위장부야.」 진란방수사종위손문자벌제.
[解釋] 그래서 2월 甲寅日에 그가 죽는데, 눈은 직시하면서도 입을 다물어 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범선사가 세수를 시키고 어루만지면서 말하기를, 「순오를 섬기기를 감히 당신을 섬기듯이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라고 했으나, 눈은 여전히 직시하고 있었다. 欒懷子가 말하기를, 「제나라와의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인가?」고 하고서, 다시 어루만지면서 말하기를, 「당신이 죽었다고 해서, 제나라에 대한 전쟁을 계속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황하를 두고 맹세하겠소.」라고 하니, 그제야 눈을 감고, 함을 받아들였다. 범선자가 나와서 말하기를, 「나는 졸장부로구나.」고 하였다. 晉나라 欒魴이 군사를 거느리고 위나라 孫文子를 따라 제나라를 정벌했다.
季武子如晉拜師, 晉侯享之, 范宣子爲政, 賦黎苗. 季武子興, 再拜稽首曰 : 「小國之仰大國也, 如百穀之仰膏雨焉. 若常膏之, 其天下輯睦, 豈唯敝邑?」 賦六月.
계무자여진배사, 진후향지, 범선자위정, 부려묘. 계무자흥, 재배계수왈 : 「소국지앙대국야, 여백곡지앙고우언. 약상고지, 기천하집목, 기유폐읍?」 부륙월.
[解釋] 季武子가 진나라로 가서 진나라가 제나라를 정벌한 것에 대하여 사례하니, 진나라 평공은 그를 대접하는데, 范宣子가 재상이 되어, 黎苗라는 시를 읊었다. 季武子는 곧 일어나, 재배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기를, 「소국이 대국을 우러러 받드는 것은, 온갖 곡식들이 단비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향상 기름지게 한다면, 온 천하는 화목하게 되니, 어찌 우리나라뿐이겠습니까?」라고 하면서, 六月의 시를 읊었다.
季武子, 以所得於齊之兵作林鐘, 而銘魯功焉. 臧武仲謂季孫曰 : 「非禮也, 夫銘, 天子令德, 諸侯言時計功, 大夫稱伐, 今稱伐, 則下等也, 計功, 則借人也, 言時, 則妨民多矣. 何以爲銘. 且夫大伐小, 取其所得, 以作彛器, 銘其功烈, 以示子孫, 昭明德而懲無禮也, 今將借人之力以救其死, 若之何銘之. 小國幸於大國, 而昭所獲焉以怒之, 亡之道也.」
계무자, 이소득어제지병작림종, 이명노공언. 장무중위계손왈 : 「비례야, 부명, 천자령덕, 제후언시계공, 대부칭벌, 금칭벌, 즉하등야, 계공, 즉차인야, 언시, 즉방민다의. 하이위명. 차부대벌소, 취기소득, 이작이기, 명기공렬, 이시자손, 소명덕이징무례야, 금장차인지력이구기사, 약지하명지. 소국행어대국, 이소소획언이노지, 망지도야.」
[解釋] 季武子는, 제나라에게서 빼앗은 무기로써 임률의 종을 만들어, 노나라의 공로를 새겼다. 장무중이 계손숙에게 말하기를, 「그것은 예가 아니오, 대저 종에 새기는 명은, 천자는 그 아름다운 덕을 새기고, 제후는 제 때에 행한 사업이나 공적을 새기고, 대부는 전쟁에서 세운 공로를 새기는 것이 원칙이오, 그런데 지금 제나라와의 싸움에서 공로를 세운 것은, 진나라의 지배하에 이루어진 하등의 것이고, 공적을 따져 보아도, 진나라의 힘을 빌려 이루어진 것이며, 시기로 말해도, 백성에게 해로움이 많았소. 그러나 그런 일을 어떻게 명으로 샛길 수가 있겠소. 또 대국이 소국을 쳐서, 그 얻은 것을 빼앗은 무기로는 일반적인 도구를 만들어, 그 공적을 새겨, 자손에게 보이는 것이오, 곧 훌륭한 덕을 밝혀 무례한 소국을 징계하기 위해서요, 그런데 지금 우리는 남의 힘을 빌어 겨우 죽음을 면한 격인데, 어떻게 명을 만들 수가 있겠소. 소국이 운 좋게 대국을 이겨, 그것에서 취한 물건을 보여 대국을 노하게 한다면, 이는 망하는 길이오.」라고 했다.
齊侯娶于魯. 曰顔懿姬, 無子, 其姪鬷聲姬, 生光, 以爲大子. 諸子仲子戎子, 戎子嬖. 仲子生牙, 屬諸戎子. 戎子請以爲大子, 許之. 仲子曰 : 「不可. 廢常, 不祥. 間諸侯難. 光之立也, 列於諸侯矣, 今無故而廢之, 是專黜諸侯, 而以難犯不祥也. 君必悔之.」
제후취우노. 왈안의희, 무자, 기질종성희, 생광, 이위태자. 제자중자융자, 융자폐. 중자생아, 속제융자. 융자청이위태자, 허지. 중자왈 : 「불가. 폐상, 불상. 간제후난. 광지립야, 열어제후의, 금무고이폐지, 시전출제후, 이이난범불상야. 군필회지.」
[解釋] 제나라 영공이 노나라로부터 부인을 맞이해 갔다. 그녀의 이름은 顔懿姬인데, 아들이 없고, 그녀의 조카 딸 鬷聲姬가, 光을 낳으니, 이를 大子로 삼았다. 자성을 가진 첩들 중에 仲子, 戎子가 있었는데, 戎子는 영공에게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仲子는 牙를 낳아, 이 아들을 융자에게 부탁하여 키웠다. 戎子는 이 아들을 大子로 삼고 싶어 요청하니, 영공은 이를 허락했다. 그때 仲子가 말하기를, 「그것은 안 됩니다. 적자를 세우는 전통을 피하면, 상서롭지 못합니다. 제후들을 이간시키면 곤란합니다. 光을 大子로 세워, 제후들에게 인정을 받았는데, 지금 이유도 없이 이를 폐하는 것은, 전적으로 제후를 속여, 어려운 일을 하여 상서롭지 못한 것을 범하는 것입니다. 임금께서는 반드시 후회할 것입니다.」고 했다.
公曰 : 「在我而已.」 遂東大子光, 使高厚傅牙, 以爲大子, 夙沙衛爲少傅. 齊侯疾, 崔杼微逆光, 疾病而立之. 光殺戎子, 尸諸朝, 非禮也. 婦人無刑, 雖有刑, 不在朝市.
공왈 : 「재아이이.」 수동태자광, 사고후부아, 이위태자, 숙사위위소부. 제후질, 최저미역광, 질병이립지. 광살융자, 시저조, 비례야. 부인무형, 수유형, 부재조시.
[解釋] 이에 영공이 말하기를, 「내 생각에 달려있는 것이다.」고 하고서, 드디어 大子光을, 동쪽 변경으로 쫓아내고 고후로 하여금, 牙의 스승으로 삼아 아들 大子로 삼고, 夙沙衛로 少傅를 삼았다. 그러나 영공이 병이 들자, 崔杼는 몰래 光을 맞이하여, 영공의 병이 중해지자 그를 태자로 삼았다. 그래서 光이 戎子를 죽여, 그녀의 시체를 조정에 드러내 놓은 것은, 예의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여자는 형벌을 받는 일이 없고, 비록 형을 받아도, 조정이나 시장에 드러내 놓는 법이 아니다.
夏五月壬辰晦, 齊靈公卒, 莊公卽位. 執公子牙於句瀆之丘, 以夙沙衛易己.」 衛奔高唐以叛. 晉士匃侵齊, 及穀, 聞喪而還, 禮也.
하오월임신회, 제령공졸, 장공즉위. 집공자아어구독지구, 이숙사위이기.」 위분고당이반. 진사개침제, 급곡, 문상이환, 예야.
[解釋] 여름 5월 임진 그믐날에, 齊나라 靈公이 죽고, 莊公이 卽位했다. 公子牙를 체포하여 句瀆의 언덕에 유폐시키고, 夙沙衛는 장공이 자기를 경멸했다.」고 여기자, 그는 高唐으로 달아나 반란을 일으켰다. 晉나라 士匃가 齊나라를 침략하고, 穀지방에 이르렀다가, 제나라 영공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본국으로 돌아간 것은, 예의에 맞는 일이었다.
於四月丁未, 鄭公孫蠆卒, 赴於晉大夫. 范宣子言於晉侯, 以其善於伐秦也. 六月, 晉侯請於王, 王追賜之大路, 使以行, 禮也. 秋八月, 齊崔杼殺高厚於灑藍, 而兼其室. ≪書≫曰 : 「齊殺其大夫.」 從君於昏也.
어사월정미, 정공손채졸, 부어진대부. 범선자언어진후, 이기선어벌진야. 륙월, 진후청어왕, 왕추사지대노, 사이행, 예야. 추팔월, 제최저살고후어쇄람, 이겸기실. ≪서≫왈 : 「제살기대부.」 종군어혼야.
[解釋] 4월 정미일에, 정나라 공손채가 죽으니, 진나라 대부에게 알려왔다. 范宣子가 진나라 평공에게 보고하니, 공손체가 진나라를 정벌할 때에 훌륭하게 싸웠기 때문이었다. 6월에, 진나라 평공이 주나라 천자에게 요청하자, 천자는 공손채에게 대로라는 수레를 하사하여, 장례식 때에 사용하게 했으니, 예에 맞는 일이다. 가을 8월에, 齊나라 崔杼가 灑藍지방에서 高厚를 죽이고, 그의 가산을 겸병했다. 경문에 이르기를, 「제나라가 그 대부를 죽였다.」고 한 것은, 고후가 영공의 어리석음을 좇았기 때문이다.
鄭子孔之爲政也專, 國人患之. 乃討西宮之難與純門之師, 子孔當罪, 以其甲及子革子良氏之甲守. 甲辰, 子展子西率國人伐之, 殺子孔, 而分其室. 書曰 : 「鄭殺其大夫.」 專也.
정자공지위정야전, 국인환지. 내토서궁지난여순문지사, 자공당죄, 이기갑급자혁자량씨지갑수. 갑진, 자전자서솔국인벌지, 살자공, 이분기실. 서왈 : 「정살기대부.」 전야.
[解釋] 鄭나라 子孔이 정치를 전담하자, 정나라 사람들이 그것을 걱정했다. 그래서 서궁에서의 난리와 초나라 군대가 정나라 서울의 성문인 순문에 쳐들어 왔던 사건을 성토하자, 子孔은 죄를 당할까 염려하여, 수하의 군대와 子革, 子良의 군대로써 자기 집을 지키게 했다. 그러나 甲辰日에, 子展과 子西는 나라 사람들을 거느리고 정벌하여, 子孔을 죽이고, 그의 재산을 분재했다. 경문에 이르기를, 「정나라는 그 대부를 죽였다.」고 한 것은, 자공이 전권을 휘두른 것에 기인한 것이었다.
子然子孔宋子之子也, 士子孔, 圭嬀之子也. 圭嬀之班亞宋子, 而相親也, 二子孔亦相親也. 僖之四年, 子然卒, 簡之元年, 士子孔卒, 司徒孔實相子革, 子良之室, 三室如一, 故及於難, 子革子良出奔楚, 子革爲右尹. 鄭人使子展當國, 子西聽政, 立子産爲卿.
자연자공송자지자야, 사자공, 규규지자야. 규규지반아송자, 이상친야, 이자공역상친야. 희지사년, 자연졸, 간지원년, 사자공졸, 사도공실상자혁, 자량지실, 삼실여일, 고급어난, 자혁자량출분초, 자혁위우윤. 정인사자전당국, 자서청정, 입자산위경.
[解釋] 子然과 子孔은 정나라 목공의 부인 宋子의 아들이고, 士子孔은, 圭嬀의 아들이었다. 圭嬀의 계급이 송자 다음이었는데, 서로 친하여, 士子孔도 子然`,子孔과 서로 친하게 지냈었다. 정나라 희공 4년에, 子然이 죽고, 簡公 元年에, 士子孔이 죽자, 司徒 子孔은 두 사람의 아들인 子革과 子良의 집안을 실제로 돌아보아, 세 집안이 한 집이 되었기 때문에, 子革과 子良도 이런 일에 말려들어, 초나라로 달아났고, 子革은 그곳에서 右尹이 되었다. 그래서 정나라 사람은 子展으로 하여금 정권을 담당하게 하고, 子西를 재상으로, 子産을 卿으로 삼았다.
齊慶封圍高唐, 弗克. 冬十一月, 齊侯圍之, 見衛在城上, 號之乃下. 問守備焉, 以無備告. 揖之乃登. 聞師將傅, 食高唐人. 殖綽工僂會夜縋納師. 醢衛于軍. 城西郛, 懼齊也.
제경봉위고당, 불극. 동십일월, 제후위지, 견위재성상, 호지내하. 문수비언, 이무비고. 읍지내등. 문사장부, 식고당인. 식작공루회야추납사. 해위우군. 성서부, 구제야.
[解釋] 齊나라 慶封의 高唐을 포위했으나, 이기지 못했다. 겨울 11월에, 제나라 장공이 직접 고당을 포위하고, 숙사위가 성 위에 있는 것을 보고, 그를 부르니 내려왔다. 그에게 수비 상태를 물으니, 무방비 상태라고 보고했다. 장공이 그에게 읍하자 그는 다시 곧 성 위로 올라갔다. 숙사 위는 제나라 장공의 군대가 거의 성에 육박하여 온다는 소식을 듣자, 高唐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베풀었다. 이 틈을 타서 식작과 공루가 모여 밤에 잠입해서 성 위로부터 망을 내려놓고 군대를 끌어들였다. 그래서 숙사위는 군중들에게 죽음을 당하여 젓 담김을 당했다. 노나라가 서부에 성을 쌓은 것은, 제나라를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齊及晉平, 盟于大隧. 故穆叔會范宣子于柯. 穆叔見叔向, 賦載馳之四章, 叔向曰 : 「肹敢不承命.」 穆叔歸曰 : 「齊猶未也. 不可以不懼.」 乃城武城. 衛石共子卒, 悼子不哀. 孔成子曰 : 「是謂蹶其本. 必不有其宗.」
제급진평, 맹우대수. 고목숙회범선자우가. 목숙견숙향, 부재치지사장, 숙향왈 : 「힐감불승명.」 목숙귀왈 : 「제유미야. 불가이불구.」 내성무성. 위석공자졸, 도자불애. 공성자왈 : 「시위궐기본. 필불유기종.」
[解釋] 제나라는 진나라에게 강화를 요청하여, 大隧에서 동맹을 맺었다. 그러므로 穆叔이 范宣子와 柯에서 회합했다. 穆叔이 叔向을 만나, 載馳의 넷째 구절을 읊자, 叔向은 말하기를, 「제가 감히 명령을 받들지 않겠소.」라고 하고서, 穆叔이 돌아와 말하기를, 「제나라는 아직 안심할 수가 없소. 불가불 두려워해야 하오.」라고 하고서, 곧 武城에 성을 쌓았다. 衛위나라 石共子가 죽자, 그의 아들 悼子가 슬퍼하지 않았다. 孔成子가 말하기를, 「이것이야말로 그 근본을 뽑아 버리는 것이다. 반드시 그 조종을 계승하지 못하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