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 운전을 하지 않는 필자는 퇴근할 때 종종 택시를 이용한다. 간혹 라디오에서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 나와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데, 기사양반이 빤히 쳐다 보아 머쓱해진 적도 있다. 좋아하는 모 가수의 노래 가사 중에 ‘그 사람 나를 보아도, 나는 그 사람을 몰라요’ 라는 구절이 있다. 필자가 신경과를 전공하기 전에는 무심코 흘려 듣던 이 구절이 인지-행동신경학을 배우고 나서는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었다.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고 나와 관계된 얘기를 하는데, 나는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이 얼마나 영화와 같은 설정인가? 그러나 신경과 환자들에게서는 실제로 종종 찾아볼 수 있는 상황이다.
안면실인증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얼굴을 뜻하는 ‘prosopon’, 지식을 뜻하는 ‘gnosis’, 반의어를 뜻하는 ‘a’의 합성어이다. 이는 사람과 사물, 동물과 사람과의 차이는 인지할 수 있으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차이점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여러 동물들과 사람 얼굴의 사진을 섞어 놓았을 때 사람의 사진은 잘 구분해내지만, 주변 인물인 갑과 을의 사진을 주었을 때는 이를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환자들은 새로운 얼굴을 기억회로에 등록하는 능력이 떨어지며, 화가 난 얼굴과 웃는 얼굴을 구분하는 것이 어렵다. 또한 얼굴을 보고 성별을 잘 가려내지 못하고, 상대방의 대강의 나이를 짐작하기를 힘들어한다.
‘베일리스’는 원숭이를 대상으로 여러 사진을 보여줬을 때, 다른 사물과는 달리 동료 원숭이 얼굴을 본 경우 특정 부위의 뇌세포가 뚜렷한 반응을 보이는 것을 발견하였다. 생물에게는 동족의 얼굴을 분별하고 인식하는 기능이 생존에 중요하기 때문에 이러한 특성이 발달되어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또한 ‘마타 파라’는 71명의 안면실인증 환자를 연구한 결과 측두엽과 후두엽 일부에 손상이 있음을 관찰하였고, 우측 반구의 손상이 좌측보다 더 의미가 있음을 밝혀냈다. 이들의 연구는 놀이동산의 수 많은 인파 속에서도, 먼발치에서 가족들을 구분해 내는 능력이 뇌의 특정 부위(특히 우뇌)에서 유래함을 증명해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질환에서 안면실인증이 관찰될까? 가장 흔한 것으로는 치매의 대표질환인 알츠하이머 병이다. 알츠하이머 병은 새로 등록한 기억의 유지가 안 되고 평소 사용하는 단어나 물건 이름을 잘 잊어버리며, 시공간능력이 떨어져 길 찾기 및 주차장소 찾기 등이 힘들고 이상행동(특히 집착)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말기로 진행할수록 안면실인증이 나타나, 심지어 가족들 조차도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 외에도 앞서 언급한 뇌의 특정 부위(후두엽과 측두엽)에 이상을 가져오는 다양한 질환들(뇌경색, 뇌종양, 뇌염, 뇌손상 등)이 안면실인증을 보일 수 있다.
말기의 치매 환자들을 보면 참으로 애틋한 마음이 든다. 치매를 앓고 나서의 기억은 과연 뇌의 어느 부위에 저장되고 있을까? 치매 환자를 볼 때 필자는 종종 손을 잡아 주거나 얼굴을 매만지곤 하는데, 필자를 알아보지는 못하지만 그들의 표정이 밝아짐을 알 수가 있다. 스킨십은 치매 환자들에게도 통용되는 아주 좋은 의사표현 수단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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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기억하지 못하는 것 혹은 잊는 것)가 안면실인증을 동반한다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어서
흥미로워 가져왔어요!
사람을 잊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안면실인증처럼 아예 인지하지 못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 안면실인증 측정 20개 문항(20-item Prosopagnosia Index)
다음은 당신의 안면인식 능력에 관한 질문들이다. 각 항목에 대해 동의하는 정도에 따라 1~5사이의 숫자 중 하나를 골라 응답하라. 1은 ‘매우 동의함’ 5는 ‘매우 동의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각 문항을 세심하게 읽고 최대한 솔직하게 응답할 것.
1. 나의 안면인식 능력은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좋지 않다.
2. 나는 항상 사람들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해왔다.
3. 특별한 특징이 있는 얼굴을 기억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얼굴을 기억하는 것 보다 월등히 쉽게 느껴진다.
4. 만나본 사람들과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의 얼굴을 자주 서로 혼동한다.
5. 학창시절, 같은 반 친구들의 얼굴을 쉽게 알아보지 못했었다.
6. 누군가 헤어스타일을 바꾸거나 모자를 쓸 경우 그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
7. 새로 사람을 만나면 미리 ‘나는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경고해줘야 할 때도 있다.
8. 개인의 얼굴을 쉽게 머릿속에 그릴 수 있다.
9. 다른 사람의 얼굴에 ‘별명’을 잘 붙이는 편이다.
10.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사람들을 구분하기가 힘들다.
11. 사람들의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불안감 때문에 여러 사회적 상황, 직업적 상황을 기피하게 된다.
12.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얼굴을 기억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13. 사진 속에서 나 자신의 얼굴을 찾아내는 능력에 대해서 강한 자신감을 느낀다.
14. 주인공들의 얼굴을 분간하지 못하는 탓에 가끔 영화의 내용을 따라가기 힘들다.
15. 친구들과 가족들은 나의 안면인식능력 혹은 안면기억능력에 문제가 있다고 여긴다.
16. 다른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함으로 인해 그들을 기분 나쁘게 만드는 일이 자주 생긴다고 느낀다.
17. 사람들이 서로 유사한 의상(양복, 제복, 수영복 등)을 입어야 하는 상황일 때 그들을 서로 구분하는 것이 쉽게 느껴진다.
18. 친척들과 모임을 가질 때 간혹 그들 중 일부를 서로 구분하지 못할 때가 있다.
19. 어떤 유명인의 ‘유명세 타기 전’ 사진을 봐도 그것이 누구인지 쉽게 알아볼 수 있다. 해당 사진의 모습이 그 인물의 현재 모습과 크게 다르더라도 마찬가지다.
20. 평소 알고 지내는 사람을 늘 만나던 것과 다른 상황 혹은 다른 장소에서 만날 경우 그들을 알아보기가 힘들다(예: 직장동료를 쇼핑 중에 만나는 등의 상황).
각 질문에 대한 대답의 숫자를 더하되, 8,9,13,17번 문항에 대해서는 점수를 거꾸로 계산한다 (5번=1점, 4번=2점, 3번=3점, 2번=4점, 1번=5점). 점수의 총합이 100점일 경우 심각한 안면인식 장애가 있는 것이므로, 이에 가까운 숫자가 나왔다면 도움을 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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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실인증 자가검진하는 질문들인데요, 작품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재미있지 않을까 해서 가져왔습니다!
"질문"의 형태니까요!
특히 저는 이번에 찾아보면서
안면인식장애를 겪는 분들이 영화나 드라마(연극도 포함되겠죠!)의 서사를 따라가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많이 와닿았어요.
막연한 생각으로... 연극은 종종 전부 같은 옷을 입은 인물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대사가 없는 경우도 있을 텐데.
그런 생각도 들구요. 그들에게 연극은 어떻게 다가올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사람들이 붐비는 관광지에서 노란색 티셔츠를 입은 젊은이가 벤치의 빈 자리를 노려봅니다. 자리에 앉은 그는 배낭을 벗어 바닥에 놓습니다. 파란 비닐백을 꺼낸 뒤, 배낭을 바닥에 그대로 두고 그는 그 자리에서 벗어납니다. 몇 분 뒤, 배낭속에 있던 폭탄이 터졌고 스무 명이 숨졌습니다.
근처의 CCTV 카메라에는 노란 티셔츠를 입은 흐릿한 옆모습만이 잡혔을 뿐입니다. 과연 이 청년의 얼굴을 알아내는 것이 가능할까요?
Photograph by REUTERS
태국 경찰은 캄보디아 국경에서 지난 8월 16일 방콕 에라완 사원에서 일어난 테러 용의자를 체포했습니다. 그러나 카메라에 잡힌 모습이 너무나 흐릿했기 때문에 경찰은 그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영국 경찰의 초인식자로 이루어진 팀도 종종 이런 상황을 겪습니다. 이들은 CCTV의 흐린 사진만으로도 사람의 얼굴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리 콜린스는 아주 뛰어나죠. 일요일 바베큐 파티 중에도 범인을 세 사람이나 찾아냈을 정도입니다.”
형사반장인 믹 네빌은 주말 동안 아이패드로 용의자들의 사진을 보는 한 팀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2011년 런던 폭동 이후, 이 초인식자들은 수천 시간 동안 CCTV를 관찰했습니다. 콜린스는 폭동에 참가한 이들 중 무려 190명을 구별해냈습니다. 네빌이 이끄는 런던 이미지 감식반에는 수천 명의 경찰 중 테스트를 통과한 152명이 소속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평소에는 자신이 속한 경찰서에서 일하지만 필요에 따라 감식반의 일을 하게 됩니다.
이 초인식자들은 14세 소녀 앨리스 그로스를 살해한 연쇄살인범 검거를 도왔고 지금도 적어도 30건 이상의, 예술품 및 보석 절도를 포함한 사건의 범인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번 주 브라질 리오 카니발 다음으로 큰 축제인 노팅힐 축제에도 동원되어 있습니다. “축제기간 동안에는 수많은 범죄가 일어납니다.” 이 초인식자들은 CCTV를 통해 서로 대립 관계에 있는 지역 폭력배들을 관찰합니다. 그리고 발견된 폭력배들의 무장을 해제함으로써 잠재적인 위험을 제거합니다. “노련한 형사들조차도 이들의 구별 능력에 감탄하곤 합니다.”
어쩌면 당신에게도 이런 능력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뉴사우스 웨일즈 대학의 범죄심리학자 데이비드 화이트는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는 능력에는 매우 다양한 수준이 있다고 말합니다. 가장 능력이 떨어지는 이들은 상모실인증(prospagnosia)이라는 “안면 인식장애(face blind)”를 가진 이들입니다. (최근 세상을 떠난 올리버 색스가 이 증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절친인 에릭을 그의 “두터운 눈썹과 두꺼운 안경”으로 구분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쪽 끝에 초인식자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은 다른 사람의 얼굴을 잘 알아본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안면인식 능력이라는 말을 들을 때, 자신이 이미 아는 사람을 알아보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혀 모르는 사람을 두 장의 사진을 펼쳐놓고 확인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입니다.
당신은 자신의 능력을 테스트할 수 있습니다. 그리니치 대학의 심리학자 조쉬 데이비스는 스스로 이를 알아보는 간단한 테스트를 만들었습니다.
데이비스는 얼굴 인식 능력이 대부분 타고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이 능력의 분포가 IQ와 같이 종모양을 그린다는 뜻입니다. 이와 관련된 유전자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지만, 2010년의 한 연구는 일란성 쌍둥이의 안면 인식 능력이 이란성 쌍둥이에 비해 더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또한 안면 인식장애는 머리 후방의 특정 뇌 부분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아마 초인식자의 능력 역시 이 부분에서 발견될 듯합니다.
그렇다면 초인식자의 비율은 어느 정도 될까요? 데이비스는 경계를 어디로 잡느냐의 문제이긴 하지만, 분명하게 남들보다 뛰어난 이들의 비율은 1% 이하일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다음 질문은 이 초인식자들의 능력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느냐일 겁니다. 네빌은 자신의 팀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이들의 연락을 종종 받고 있습니다. 화이트 역시 호주 여권국에서 얼굴 인식 능력 테스트와 하루 종일 사람들의 얼굴과 사진을 확인해야 하는 여권심사관들의 훈련을 도운 적이 있습니다.
왕립학회 연례회보B(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에 지난주 화요일 발표된 연구에서 화이트는 얼굴인식을 전문으로 하는 감식관들이 일반인들보다 더 나은지를 비교함으로써 훈련의 효과를 확인했습니다.
이들은 훈련받지 않은 학생들보다 나았으며, 얼굴감식을 자주 하지 않는 감식관들보다도 나았습니다. (또한 컴퓨터 얼굴 인식 알고리듬보다는 훨씬 더 나았습니다.) 이들은 처음부터 어느 정도 더 나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놀라운 점은, 이들이 위아래로 뒤집어진 얼굴에 대해서 “자연적인” 초인식자보다도 훨씬 나은 성적을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화이트는 이로부터, 전문가들은 얼굴을 부분들로 나누어 분석하는 능력을 기르게 되며, 원래의 능력에 이 기술이 더해짐으로써 더 나은 점수를 기록했을지 모른다고 추측했습니다.
물론 법원이 이들의 확인을 증거로 수용할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하지만 네빌은 자신들이 수사의 시작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곧 보다 분명한 증거를 찾기 위한 시작점이 되는 것이지요.
태국 경찰 역시 이 용의자의 지문과 DNA, 그리고 다른 사진들을 통해 더 확실한 증거를 찾고 있습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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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사실 그 반대의, 초인식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초인식자와 더불어, 안면인식 관련 기사들을 찾다보니 단연 요즘 발달하는 기술로
안면인식 프로그램이 활발히 개발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많더라구요.
우려의 시선들도 많았구요. 중국에선 수업 때 학생들 얼굴을 다 인식해서, (그러니까 표정, 감정들이요)
개개인이 집중을 하고 있는지, 다른 생각을 하는지, 무슨 일이 있는지 다 알아본다고 해요. (섬뜩하죠ㅠㅠ)
안면인식장애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을 수도 있지만
원관념을 이해하는 데에 혹시나 반대의 관념들이 도움이 되진 않을까 싶어 가져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