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에서 태백으로 오르는 길 중 산솔마을 솔고개 소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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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나무는 솔표 우황청심환과 과거 솔담배로 유명한 소나무의 모델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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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나 식물이나 빼어난 자태는 그 어떤 뭇생명 몇 만과도 비교하질 못하는가 보다
이 소나무는 크기와 가지가 적당한 조화를 이루어 가장 완벽한 자태를 보이는 최고 명품 소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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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팔방 가지, 줄기, 잎, 그리고 주위 자연환경 어느 면에서 보아도 어색한 감 없이 완벽함이 느껴지는 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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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단종이 승하한 후 태백산 산신령이 되어 쉬어가는 영혼을 노송들이 배웅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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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소나무공원 아래로 수달길 산책로도 있어 아름다운 옥동천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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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태백 O2리조트 등을 거쳐 삼척으로 들어갔다
중간중간 옛길이 아닌 자동차 전용도로가 구비되어 나름 덜 긴장하고 시간도 절약되었다
태백은 과거 탄광이 유명했던 도시로 2000년대 들어 동네 곳곳 폐허가 되었었으나 요즘은 새로운 중석광?등의 지하자원 개발로 다시 활기가 이어질 거라는 조그만 면소재지 점심식사 식당 주인아주머니의 희망찬 말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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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팔경 제1경인 죽서루에 도착했다
죽서루는 보물 제213호. 정면 7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건물. 삼척시의 서쪽을 흐르는 오십천(五十川)을 내려다보는 절벽 위에 세워져 있는데, 예로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 유명하다. 고려 충렬왕 때 이승휴(李承休)가 창건하였고, 1403년(태종 3) 삼척부사 김효손(金孝孫)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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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2년(현종 3) 도호부사였던 미수 허목은 〈죽서루기(竹西樓記)〉에서 죽서루의 비경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조선의 동쪽 경계에는 경치가 좋은 곳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여덟 곳(관동팔경)은 가장 뛰어나다.”
바로 위 글씨가 미수 허목의 글씨인데 이것은 오십천의 계류와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죽서루의 아름다운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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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서루는 관아에 바로 붙어 있는 누각이다. 남원의 광한루는 주변에 고정원을 크게 조성했지만 죽서루는 지금까지의 발굴조사에서 고정원과 관련된 유구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것은 죽서루가 있는 오십천 주변의 경관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별도의 정원 시설을 조성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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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천은 동쪽으로 흐르면서 오십 굽이 여울을 이루고 그 사이사이에 무성한 숲과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죽서루에 이르면 푸른 층암절벽이 높게 솟아 있는데, 맑고 깊은 소의 물이 여울을 이루어 그 절벽 아래로 감돌아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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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서루의 동쪽에는 대나무 숲이 있는데 그 옛날 죽림 속에는 죽장사(竹藏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죽서루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죽장사의 서쪽에 위치한 누각을 의미한다. 죽서루에는 많은 편액이 걸려 있다. 누각의 명칭과 의미를 나타내는 현판, 죽서루의 역사를 기록한 편액, 죽서루와 오십천의 풍광에 관한 경관시를 수록해놓은 편액 등 수없이 많은 액자가 누각을 장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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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처음 이 곳을 창건했다는 이승휴의 편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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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액은 서성의 편액이다
이외에도 죽서루의 선경을 찬양한 글은 수없이 많다. 이이(李珥)를 비롯한 여러 명사들의 시가 붙여져 있는데, ‘關東第一樓(관동제일루)’라는 대액(大額)은 숙종 때의 부사 이성조(李聖肇)가 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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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특히 눈에 띄는 곳은 용문바위와 암각화이다. 용문바위는 자연석의 돌이 기괴하게 구멍이 뚫려 사람들이 그곳으로 빠질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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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굴에는 두 개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하나는 신라 제 30대 문무왕이 죽은 후 호국용이 동해바다를 지키게 되는데 용이 되어 동해바다를 지키던 문무왕은 어느 날 오십천으로 오게 된다. 오십천에 온 문무왕은 오십천 절벽을 조각해서 지금처럼 아름답게 만들었단다. 그런데 동해바다에 있던 문무왕이 오십천으로 뛰어들 때 지금의 용문바위를 뚫고 지나갔는데, 그때 생긴 것이 용문바위의 구멍이라 한다. 이 용문바위 구멍은 문무왕이 오십천을 아름답게 조각하려 가다가 만든 곳이라 하여 이 구멍을 사람들이 들락거리면 아름다운 모습으로 될 수 있다고 하고, 또 용처럼 장수를 할 수 있다고 하며, 많은 복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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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바위 위에는 바위에 새겨진 북두칠성 모양의 성혈이 있는데 이것이 선사 암각화라고 한다. 선사시대 원시인들이 별을 보고 기원을 하면서 돌에다가 새긴 별 모양의 그림이라 하여 암각화라 하는데, 이곳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암각화는 바위나 절벽 또는 동굴 내의 벽면에 物像, 記號, 性穴 등을 그리거나 새겨놓은 것을 말하는데, 죽서루 선사 암각화는 바위 위에 여성 생식기 모양의 구멍을 뚫어 놓은 성혈 암각이다. 성혈은 선사시대에 풍요, 생산, 다산을 상징하는 것으로, 한국적인 원시신앙의 형태로 발전하여 조선시대에는 칠월칠석날 자정에 부녀자들이 성혈터를 찾아가서 일곱 구멍에 좁쌀을 담아 놓고 치성을 드린 다음 그 좁쌀을 한지에 싸서 치마폭에 감추어 가면 아들을 낳는다는 민간신앙이 성행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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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죽서루에는 이름에 따른 또 다른 이야기가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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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죽선녀의 집 서편에 있는 누각’이라 해서 죽서루라 했다는 설이다. 죽죽선녀는 고려시대 기생이었다. 그런데 워낙 아름답고 지혜롭고 청순하며 정조가 곧았다. 그래서 많은 관리와 시인묵객들이 이 기생을 마음에 담아 두었단다. 그 때문에 언제나 그녀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모두 그녀를 흠모만 할 뿐 욕심을 채우지는 못했단다. 그래서 그녀의 이름을 대나무처럼 곧은 선녀라 해서 죽죽선녀(竹竹仙女)라 이름하고, 죽죽선녀가 있는 유희소의 서쪽에 있는 누각이라 해서 죽서루라 불렀다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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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팔경 가사로 유명한 정철의 시비가 오른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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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죽서루 바깥에 비석군과 과거 건물터가 남아있으나 복원을 못하고 있다
죽서루 위쪽에는 천년고찰 삼장사가 있는데 최근에 복원했는지 고풍스러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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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절은 신라 말에 범일국사(梵日國師)가 창건하고 죽장사(竹藏寺)라 불렀으며, 고려 때 절 이름을 관음사로 바꾸었다 한다
원래[原來] 삼척[三陟]의 진산[鎭山]인 갈야산[葛夜山]의 일지맥[一枝脈]에 정남향[正南向]으로 오십천[五十川]이 수태극[水太極]으로 감돌고 근산[近山]에서 이어져 내려온 남산[南山]은 산태극[山太極]으로 절터를 만들었으니 절은 언제 없어졌는지 모르고
척주[陟州]고을 동헌[東軒]이 들어서게 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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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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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에는 천태종 삼상사란 절도 있다
주변 허목선생이 지어서 유명한 척주 동해비도 찾을까 했는데 쉽지 않아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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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삼척에서 울진으로 향하는 길가 맹방명사십리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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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바다는 오늘도 거센 바람과 함께 하얀 포말의 파도로 세차게 우리를 맞아 주었다
그래도 미세먼지가 걷혀 먼 발치까지 시원한 풍광에 마음이 탁 트인다
역시 동해바다의 진면목이다
바닷길을 따라 드라이브하며 공양왕릉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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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왕의 릉은 경기도 고양시와 삼척시 두 군데에 있다 이곳은 그의 유배지이며 사사지(賜死地)였던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의 것인데, 한 사람의 무덤이 두 곳에 존재하는 것은 고려 왕실의 마지막을 상징해주는 것이라고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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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물 하나 없이 커다란 봉분에 넓은 잔디밭이다
모두 4기의 무덤이 이곳에 있다. 가장 남쪽에 있는 것이 공양왕의 무덤이고, 2기는 왕자의 무덤, 나머지 1기는 왕의 시녀 또는 왕이 타던 말의 무덤이라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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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동해 바닷길을 따라 내려오며 최근 삼척해상케이블카가 설치된 한국의 나폴리라 불리는 장호항에 여독을 풀 숙소를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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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모양의 새하얀 해안선이 아름다워'한국의 나폴리'라 불릴 정도로 깨끗한 백사장을 자랑하는 장호해변과 절벽을 따라 형성된 가벼운 산책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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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엔 무척 붐볐을 이 곳이 인적 하나 없는 모습이다